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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
피에르 크리스탱 지음, 세바스티앵 베르디에 그림, 최정수 옮김 / 마농지 / 2020년 2월
평점 :

내 독서의 원동력은 즐거움이다. 그리고 한 부스러기의 지식과 성찰이면 족하다. 프랑스 출신 피에르 크리스탱의 <조지 오웰> 그래픽 노블 역시 읽으면서 즐거웠다. 그리고 사회주의자로 행동하는 양심이었던 조지 오웰의 족적을 따라가는 재미도 만만치 않았다.
조지 오웰의 본명은 에릭 아서 블레어였다. 그는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 벵골 비하르의 모티하리라는 곳에서 1903년 6월 25일 태어났다. 구글맵으로 찾아보니 모티하리는 네팔에 가까운 곳이다. 에릭이 한 살 되던 해, 그의 어머니는 영국으로 이주했다. 영국에서 보낸 시골 생활은 그다지 기억할 만한 게 못되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곧 이어 시작된 악명 높은 대영제국 학교생활은 더더욱 그랬다.
에릭의 부모들은 아들의 미래를 위해 사립학교인 세인트 시프리언에 에릭을 진학시킨다. 가난했던 블레어 가족은 아들의 학비를 절반가량 감액 받았던 모양이다. 부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체벌이 일상화되었던 영국 교육 시스템에서 어린 에릭은 교장 선생에게 줄창 타작의 대상이 되었다. 채찍이 부러질 정도로 얻어맞았던 걸 보면 말이다.
사립학교에서 학업 성적이 우수했는지, 에릭은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이튼스쿨에 입학해서 제국주의 영국의 번영을 위한 재목이 되기에 부족하지 않은 교육을 받는다. 물론 그곳은 속물들의 천국이었다. 이튼스쿨을 졸업한 에릭 블레어는 옥스브리지 같은 명문대에 진학하는 대신, 특이한 경력을 시작한다. 그는 버마 주재 경찰에 자원했다. 1922년 아시아로 가는 긴 여정에서 영국식 자본주의 허상을 목격하게 된다. 그야말로 배 위에서 신과 같은 존재로 거들먹거리던 항해사가 승객들에게 제공된 케이크를 슬쩍하는 장면을 본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제국주의 식민지 지배에 반감을 품고 있던 그는 버마(현재의 미얀마) 현지에서 사람을 해치고 난동을 부리는 코끼리를 죽이면서 식민 지배의 위선과 허위를 깨닫게 된다. 5년 정도의 버마 생활은 마친 그는 다시 본국으로 향한다. 이 때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버마 일기>라는 자전적 소설을 썼다고 한다. 예의 책도 나의 서재 어딘가에서 실컷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1927년 유럽으로 돌아와서는 파리의 호텔에서 접시닦이를 하는 그야말로 밑바닥 인생을 경험하기도 했던 모양이다. 호텔 역시 자본주의 사회의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엄격한 위계질서가 지배하는 그런 곳이었다. 노동에서 제외된 지배인 계급을 필두로 해서, 요리사는 상위 계급이었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접시닦이는 그야말로 불가촉천민 같은 그런 존재였다. 파리에서의 이런 경험과 런던에서의 경험을 살려 그는 훗날 <파리와 런던에서의 따라지 인생>을 저술했다고 한다. 아마 이 즈음부터 글쓰기에서 자신의 능력을 조금씩 인정받기 시작한 모양이다. 저널리스트로서의 꿈을 꾸기 시작한 에릭 아서 블레어는 조지 오웰로 자신의 필명을 정하고, 저명한 출판사에 자신의 저술들을 발송하고 퇴짜 맞기를 거듭한다. 역시나 위대한 작가들 역시 하루아침에 모두의 존경을 받는 그런 존재가 된 것은 아니고 수차례 뻰찌를 먹으면서도 불굴의 의지로 작가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다음 장인 <블레어가 오웰을 창조하다>에서는 보수당 아나키스트이자 사회주의자로서 조지 오웰의 면모가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1930년대 영국 노동계급의 비참한 현실을 그린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은 르포르타주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나도 이 책은 읽었는데, 역시나 오래 전에 읽어 기억이 다 가물가물하다. 1936년 6월 8일 아일린 오쇼네시와 결혼한 조지 오웰은 월링턴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한편, 바다 건너 대륙의 스페인에서는 내전이 한창이었다. 행동하는 양심이었던 조지 오웰은 국제여단의 일원으로 프랑코가 이끄는 파시스트들과 싸우기 위해 스페인 내전에 참가하기로 결정했다. 아내 아일린과의 허니문도 채 즐기도 못한 채, 결혼한 지 6개월만에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조지 오웰은 전국노동자연맹(CNT)의 일원으로 공화파에 가담하려 했으나 현지의 사정으로 인해 통합노동자당(POUM)의 전사로 최전선에 투입된다.
조지 오웰의 그래픽 바이오그래피에서는 정확하게 다루고 있지 않지만, 당시 스페인 내전에서 프랑코의 쿠데타군에 맞서 싸운 노동자 농민의 군대는 오합지졸로 규율도 없었고 변변한 무기도 갖추고 있지 않았다.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미국 같은 서방 국가들은 공화파의 대의에는 공감했지만, 대두하는 파시즘 세력과 일전을 벌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전투에 필요한 무기 지원 같은 실질적 원조는 꺼렸다. 히틀러의 나치 독일과 무솔리니의 이탈리아가 세계대전에 앞선 시험장으로 스페인을 무대로 삼아 콘도르 군단 같은 직접적인 군사지원을 한 것과 대조적인 상황이었다.
오직 소련의 스탈린만이 공화파를 지원했다. 조지 오웰은 전선에서 내셔널리스트들을 상대하다가 목에 관통상을 입고 후방인 바르셀로나로 후송된다. 그리고 그곳을 장악한 스탈린 일파가 자신과 다른 입장의 사회주의 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 작업을 벌이는 것을 보고 아내 아일린과 함께 귀국을 결심한다.
귀국해서 조지 오웰은 비로소 작가로서 자신의 능력을 만개하기에 이른다. 서평, 시, 기사, 에세이는 물론이고 소설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주제와 장르의 글들을 발표했다. 결핵에 걸린 그가 마라케시에 가서 요양을 했다는 사실은 처음 듣는 흥미로운 사실이었다. 이 때 그는 소설 <숨 쉬러 나가다> 완성했다. 조국 영국이 파시즘에 맞서 싸운 2차 세계대전에서 자원했지만, 결핵후유증으로 현역은 아니고 국민방위군 중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BBC 방송의 선전담당을 맡기도 했다. 1944년에 아내 아일린과 함께 조지 오웰은 리처드 호레이쇼를 입양했다.
세계대전이 끝나던 해에 발표된 <동물농장>은 조지 오웰의 대표작으로 스탈린 치하의 사회주의 시스템에 대한 신랄한 비판서로 그에게 대대적인 상업적 성공을 안겨 준 작품이기도 하다. 같은 해 3월 아내 아일린을 잃은 조지 오웰은 누이동생과 아들 리처드와 함께 주라 섬에서 마지막 걸작인 <1984>를 집필했다. 죽기 전 해인 1949년 11월에 <1984>를 발표한 조지 오웰은 1950년 1월 21일 폐결핵으로 사망했다.
예전부터 조지 오웰의 전작에 도전해야지 하며 마음만 먹고 있었는데, 이번에 그의 그래픽 노블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전작도전의 의지가 불타올랐다. 이미 올해는 다 가고 열흘 정도 남았으니 내년 연간 독서 프로젝트로 잡아야 하나 싶다. 그래픽 노블에서는 연도를 다루지 않아, 위키피디아로 일일이 찾아보는 수고가 들었다. 하긴 그런 것도 독서의 재미가 아니었던가. 일단 집에 가서 조지 오웰의 책들이 뭐뭐가 있는지 검토부터 해봐야겠다. 굳이 없는 책들을 사서 볼 필요는 없을 것 같고, 소장하지 않은 책들은 도서관에서 빌려다 봐야지. 이 참에 <동물농장>과 <1984>도 다시 읽어야 하나. 가장 먼저 도전하고 싶은 책들은 <숨 쉬러 나가다>, <버마 일기> 그리고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이다. 우선 이 책들부터 찾아야겠다. 어디에 있나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