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 한계 시간 민음사 모던 클래식 68
율리 체 지음, 남정애 옮김 / 민음사 / 201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법학이라는 학문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법에 대해 문외한인 일개 독서가가 생각하는 법학의 존재 이유는 아마도 죄에 대한 규정과 그에 대한 처벌을 정하는 아카데믹한 여정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우리의 법학 박사님이자 법조인인 독일의 율리 체 작가께서는 <잠수 한계 시간>에서 자신의 전문 분야인 법학에 대한 썰을 유감 없이 펼쳐 보여주신다. 그리고 아울러 내가 실패했던 잠수의 세계에 대해서도. 그러니 감사할 따름이다.

 

<새해>로 율리 체 작가의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희한하게도 <형사 실프><잠수 한계 시간>의 순서로 읽게 되었다. 어떻게든 읽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인간이니 무엇이 문제가 될 것인가. 다만, <새해>에도 공간적 배경이 되었던 카나리아 섬의 란사로테가 다시 등장해서 독일 사람들에게 카나리아 제도가 얼마나 선호하는 관광지인지 알 수 있게 되었다는 게 하나의 수확이었다고나 할까.

 

제목에도 잠수가 나오듯이 소설 <잠수 한계 시간>은 잠수 강사 스벤 피들러의 관점에서 돌아가는 이야기다. 또 삼천포지만, 뤽 베송 감독의 <그랑 부르>에 나오는 한없이 푸르른 바닷속이 그리고 경쟁에 나섰다가 스러진 엔조의 모습이 바로 떠올랐다. 영화 <그랑 부르>가 바다, 잠수, 우정, 경쟁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면 소설 <잠수 한계 시간>은 다른 궤적으로 내달린다.

 

출발은 베를린에서 날아온 두 커플이 독일을 떠나 14년 째 라호라 섬에서 다이버로 활동하는 스벤에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하는 지점에서 시작된다. 아버지의 후광으로 배우가 되는데 성공했지만, 연타석 히트를 날리지 못해 배우 생활의 위기를 맞은 금발의 매력녀 욜라 그리고 그의 띠동갑내기 남자친구 테오. 그 둘은 스벤에게 2주간 24시간 자신들에게 잠수를 도와주고, 돌봐 주는 조건으로 14,000유로라는 거금을 제시한다. 호모 컨슈머티쿠스인 현대인에게 돈은 반드시 필요한 물질이다. 스벤도 예외는 아니었다. 잠수는 돈이 많이 드는 사업이었다.

 

이쯤에서 스벤의 과거를 되짚어 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그는 한 때 촉망받는 법학도였으나, 결국 그놈의 몽테스키외라는 프랑스 출신의 기묘한 철자법을 가진 철학자 때문에 우리 법학 박사님과는 달리 법학도의 궤도에서 이탈해 버렸다. 대신 공병대 잠수부로 갈고 닦은 실력을 바탕으로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독일을 떠나 아프리카 해변의 카나리아 군도의 어느 작은 섬에 연착륙했다. 그리고 그에게는 안톄라는 나이 어린 연인이 있다. 물론 이 둘의 관계는 매력녀 욜라의 등장으로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언제나 그렇듯이.

 

소설은 스벤의 이야기와 챕터 말미마다 등장하는 욜라의 일기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이 둘의 진술이 아주 상이하다. 처음부터 왠지 스벤과 욜라의 관계가 심상치 않다. 어느 순간 그 둘이 바로 사랑에 빠져 버려도 이상할 게 하나 없는 전개라고나 할까. 욜라의 남자친구 테오(42)는 그녀가 무언가 자신이 모르는 계획을 꾸미고 있다는 사실을 감 잡았지만 그것이 뭔지는 아직 모른다. 욜라와 테오의 도착적으로 보이는 관계는 우리의 스벤을 온통 혼돈 속으로 밀어 넣는다. 테오는 스벤을 한심한 놈이라고 부르며, 노골적으로 자신의 애인을 유혹하라고 했던가. 자신이 잠수하기 싫다고 한 날, 스벤은 욜라의 은밀한 유혹에 빠져 선을 넘을 뻔한 위기에 봉착한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서사는 분열하기 시작한다. 스벤은 자신이 욜라의 유혹을 패스했다고 진술하지만, 욜라의 일기에는 다른 기록이 적혀 있다. 이번에는 영화 <라쇼몽>이 떠오른다. 과거에 발생한 진실은 하나지만, 그것을 해석하는 이들의 입장과 시선의 차이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포스트트루스(post-truth) 시대를 겨냥한 서사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탁월한 내러티브가 일품이다.

 

그런데 왜 스벤은 물 속의 세상을 좋아하는 걸까? 그것은 아마도 우주인이 되고자 하는 이들의 욕망과 부합하지 싶다. 우주에 공기가 없듯이, 물속에도 공기가 없다. 그런 결핍된 요소들로 구성된 세계에 도전하는 이들만의 욕망에 율리 체 작가는 방점을 찍는다. 그걸 결핍의 유혹이라고 해야 할까? 물속에서는 육지와 같은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테오와 욜라의 안전을 전적으로 책임진 스벤은 하나의 절대자 같은 존재다. 그리고 그들은 물속에서 서로 상호간에 준비된 신호 체계로 의사소통에 나선다. 작은 실수가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상대방이 보내는 신호에 집중해야 한다. 육지에 사는 우리들은 대부분 언어라는 시스템으로 치환된 청각 신호에 무신경하다. 말 한 마디 잘못 들었다고 해서 당장 위험에 빠지는 건 아니니 말이다. 물론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테오와 욜라는 빈번하게 스벤이 잠수에 앞서 엄격하게 세운 게임의 규칙을 무시한다. 그들에게 스벤이라는 존재는 돈을 주고 산 피고용인일 뿐이다. 그들은 스벤과 안톄가 절실하게 필요한 자본의 힘으로 그들을 구속한다. 하긴 그렇게 따지자면, 자본의 노예가 된 건 스벤들 뿐만이 아니지. 시간이 갈수록 테오와 욜라들은 안톄의 신경을 거슬리게 만든다. 동시에 스벤도 위기의 남자가 된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자본의 결핍은 스벤이 고객들에게 강력하게 나가지 못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이제 독자가 기다리던 파국의 도래는 시간문제일 뿐이다. 종결 지점에 가서 되짚어 보니, 스벤이 초반에 태국으로 전 재산을 팔고 떠난다는 글귀가 생각난다. 독일에서 실패한 법학도에게 라호라는 세상의 끝이자, 도피처였다. 그에게 독일이라는 현재진행형의 전쟁을 끌고 온 이들은 바로 테오와 욜라였다. 일단 그들의 스벤의 세계에 침투하자, 스벤이 꿈꾸던 일상은 차례로 파괴되기 시작한다. 스벤의 관심사는 지상이 아니라 오직 바닷속의 일일 뿐이었다.

 

지상에서 스벤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이다. 잠수한 뒤의 정리나 카사 라야의 정리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것도 그동안 모두 안톄의 도움으로 유지해 왔으나, 그녀가 리카르도와의 관계를 이유로 스벤의 곁을 떠나면서 모두 스벤의 몫이 되었다. 물속에서는 그 누구보다 침착하고 유능한 남자가 다른 세계에서는 맥을 못추는 기이한 현상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나. 자신이 물속에 만든 질서 속에서는 그렇게 편안하고 여유 넘치며, 어떤 문제라도 해결해낼 자신이 있는 사람이 스벤이 아니었던가.

 

어쨌든 욜라가 치밀하게 계획한 파국은 막판에 순전히 스벤의 이타적 선의로 방향전환을 하면서 모두를 구원한다. 익사할 뻔한 테오도, 모든 계획의 주모자였던 욜라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살인죄로 기소될 뻔한 스벤까지도. 오래전 알랭 들롱 주연의 <태양은 가득히>에 버금가는 파국을 기대했던 건 무리였을까.

 

모든 잠수부들에게 해당된다는 정언명령인 올바르게 행동하라는 메시지가 고루하기는 하지만, 설계된 파국을 막고 연루된 이들에게 나름대로의 해피엔딩을 제공하는 하나의 예언처럼 작동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이제 율리 체 작가의 두 번째 만남을 통과했다. 책이 나온 지 6년 만에 읽게 된 점이 아쉬울 다름이다. 아니 이제라도 알게 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게 맞는지도. 바로 <어떤 소송>에 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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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0-10-11 20: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예 체를 거덜내시는군요. ㅋㅋㅋㅋ
저도 체의 광팬입니다. 매냐님처럼 훑지는 않지만 눈에 띄었다하면 이름만 가지고도 주저없이 선택하는 작가 가운데 한 명입니다.

레삭매냐 2020-10-11 21:32   좋아요 0 | URL
그저 폴스태프님처럼 먼저 가신
분들의 길을 뒤쫓는 것 뿐이지요.

저도 믿고 읽는 작가 중의 하나로
꼽아야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