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광기 그리고 죽음의 이야기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0
오라시오 키로가 지음, 엄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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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시오 키로가 작가의 <사랑 광기 그리고 죽음의 이야기>에서 다루고 있는 세 가지 주제들을 아우르는 그런 제목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언젠가 해피 엔딩이라는 짧은 에세이를 쓴 적이 있었는데 영어 단어 'end'에는 죽음이라는 뜻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내가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그리고 후안 카를로스 오네티에 이어 세 번째로 만난 우루과이 작가 오라시오 키로가는 자신의 소설집에서 사랑과 죽음이 빚어내는 광기에 대한 초현실적 르포로 전달해 준다.

 

키로가 집안 삼대에 걸친 죽음의 연대기에 대해서는 후기에서 잘 다루고 있으니 굳이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우리네 인생이 그러하듯, 소설의 주인공들 역시 삶의 종착역인 죽음을 피해갈 수는 없다. 라틴 아메리카의 녹색 지옥이 제공하는 타나토스적인 유혹은 소설 곳곳에 포진해 있다. 날것 그대로인 대자연이자 매혹적인 공간으로서 녹색 지옥을 소재로 삼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와 루이스 세풀베다 이전에 그들의 선배격인 오라시오 키로가가 존재했다는 점도 내게는 대단히 흥미롭다. 우리가 모르는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새로운 지경을 만난 느낌이라고나 할까.

 

키로가 작가가 소설집에서 그리는 사랑이라는 감정은 왠지 광기의 동의어라는 느낌이 들었다. 사랑이 필연적으로 지닐 수밖에 없는 비이성적인 요소들은 광기로 연결되고, 예의 광기가 카이로스(특별한 시간)와 연쇄반응을 일으키게 되면 결국 크로노스(죽음 혹은 소멸)에 이르게 된다는 그런 설정이라고나 할까.

 

레콩키스타 이래, 신대륙 정복에 나선 에스파냐 이달고들의 후예인 이민자들은 원주민들과 달리 녹색 지옥의 두려움을 알지 못했다. 아기레나 코르테스 같은 무법자들이 그랬다면 이해하겠지만, 수세기가 지나서도 무모한 도전이 계속되는 건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결혼을 앞두고 색다른 경험을 해보겠다고 나섰던 객기 넘치던 청년은 어이없게도 코렉시온 개미떼의 습격을 받아 백골이 되었다. 훗날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하나의 특질이 된 주술적 리얼리즘의 원형을 엿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 정글 전설의 문학적 재현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녹색 지옥의 특징 중의 하나인 벌목장의 현실을 겨냥한 <멘수들>도 수작으로 꼽고 싶다. 우리가 사는 지구별의 허파라는 아마존 밀림이 경작지 확장과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지난 수십 년간 파괴되어 온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지난 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현재 우리가 직면한 심각한 기후 위기의 도래를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녹색 지옥에 침투한 서구 자본주의의 추종자들은 자신들의 눈앞에 펼쳐진 무진장한 산림자원을 그저 돈벌이의 수단으로만 생각했다. 지금처럼 고도의 기계문명이 발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목재를 베고 실어 나르기 위해서는 인간의 노동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등장하는 직종이 바로 멘수, 나무를 베고 임가공하는 계약직 노동자들이었다. 자본가들은 솜씨 좋은 멘수들에게 처음에 목돈을 안겨 주었다. 그러면, 미래에 대한 계획이 없던 멘수들은 그 돈으로 흥청망청하며 유흥에 그 돈을 탕진했다. 그런 방식으로 멘수들은 관리인들에게 종속되어 갔다. 빚쟁이가 되어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된 멘수들이 관리인들의 감시에서 벗어나 목숨을 걸고 탈출이라도 하게 되면, 윈체스터 소총으로 무장한 현장 감독들은 인부들을 동원해서 바로 인간 사냥에 나섰다. 녹색 지옥을 소중한 현금으로 바꿔줄 귀중한 자산이 도망치는 걸 그들은 용서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천신만고 끝에 동료를 정글에서 말라리아로 잃고 탈출했지만 결국 다시 벌목장으로 돌아가게 되는 멘수의 모습에서는 키로가 작가가 라틴 아메리카 스타일의 리얼리즘에도 비범한 안목을 가졌구나 싶었다.

 

니퍼 더 도그(Nipper the dog)가 그려진 축음기를 얻기 위해 강에서 나무를 건져 올리는 이의 이야기는 또 어떤가. 파라나 강변의 베테랑 칸디유는 서구 문명의 이기라고 할 수 있는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는 노랫가락에 홀렸다. 축음기를 손에 넣기 위해 칸디유는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홍수에 떠내려 오는 나무들을 건져 올린다. 이것은 사랑이 유발한 광기와는 다른 차원의 광기다. 칸디유와 거래에 나선 영국인은 고급 목재인 자단나무를 요구한다. 물욕에 대해 칸디유가 보이는 광기는 소중한 자단 원목을 지키겠다고 홍수에 도전했다가 목숨을 잃은 이의 그것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서구에서 이식된 폭스테리어가 라틴 아메리카의 야구아이(강아지)가 되어 가는 과정도 흥미롭다. 일단 대지를 달구는 타는 듯한 더위와 가뭄은 그 땅에 사는 사람들과 짐승들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다. 이놈의 야구아이는 다른 사냥개들처럼 뛰어난 사냥 솜씨도 발휘하지 않고 그저 취미로 도마뱀붙이 정도나 잡는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인간에게는 유익한 존재가 아닌 것이다. 극심한 가뭄으로 만디오카며 옥수수마저 모두 말라 죽게 되자, 비굴하게 야구아이로서의 자존심을 버리고 생존에 올인한다. 야구아이는 설익은 옥수수를 훑고, 이웃의 닭장을 기웃거리며 빠르게 살아남는 법을 습득한다. 이 지점은 왠지 우루과이 민중의 비참한 현실에 대한 지식인 키로가 스타일의 헌정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물론 자신의 소중한 암탉을 털린 주인들은 소총으로 응징에 나서고, 야구아이라는 존재의 소멸로 귀결된다.

 

소설집의 여기저기서 보이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한 기술은 결국 모두가 덧없는 환영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시간이 갖는 소멸성은 한때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감정까지 모두 휘발시켜 버리는 무시무시한 위력을 보여준다. 녹색 지옥의 대자연이 빚어내는 형용할 수 없는 광기의 실체는 낯선 유혹인 동시에, 파멸의 전주곡처럼 그렇게 다가왔다. 때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설정도 등장해서 서사를 곱씹게도 만든다. 처음 만난 작가가 차린 성찬에 감탄할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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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0-10-09 06: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처음 들어보는 작가-_- 레삭매냐님 덕분에 알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레삭매냐 2020-10-09 21:17   좋아요 0 | URL
저도 이번에 처음으로 알게 된 작가
인데, 정말 세상은 넓고 우리가 모르
는 작가들은 천지삐까리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