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쿠가와 이에야스 28 - 제3부 천하통일 28 유성
야마오카 소하치 지음, 이길진 옮김 / 솔출판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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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대망의 두 번에 걸친 오사카 성 전투를 남겨 놓고 있다. 지난 두 달간 죽어라고 소설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읽은 끝에 이제 다섯 권만 더 읽으면 다 읽게 된다. 내가 보기에 고희를 넘긴 미카와 너구리 선생은 라떼꼰대가 되었다. 노망이 들어 자신에게 충성을 다한 가신들에게 짠 녹봉을 주지만, 자신의 기량이 부족한 아들들에게는 수십만 석의 영지를 보장한다. 그리고 중신들의 후손까지도 출세를 봉쇄해서 아들들의 보좌를 맡기는 모습에서는 역시나 만년에 도달한 절대 독재자는 어쩔 수 없구나 싶어졌다. 그놈의 신불 타령은 이제 지겹기도 하고.

 

무장으로 센고쿠 시대를 살아온 오고쇼 이에야스가 더 이상의 소요를 용납하지 않고, 도쿠가와 가문이 영원히 지배하는 질서 아래 일본국의 통일을 원한 것이다. 그건 그의 생각이고, 일단의 무사들은 그와는 전혀 상이한 생각과 견해를 무장한 채 세월을 죽이고 있었다. 그 중의 한 명이 바로 사나다 가문 출신의 유키무라, 겐지로였다. 누가 봐도 그의 아버지 사나다 마사유키는 전쟁광이었다. 특히 군략과 병법에 특출난 기량을 선보였던 사나다 마사유키와 유키무라 부자는 세키가하라 전투 당시 서군 측에 붙어서 쇼군 히데타다의 서진을 막았다.

 

기이한 것은 같은 사나다 가문 출신으로 장자였던 노부유키는 동군으로 참전했다. 마사유키가 질 게 뻔한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동군 대신 서군에 붙은 것은, 거대한 판돈이 걸린 도박판에서 서군이 승리하면 최소 백만석은 보장되는 다이묘가 되리라는 철저한 계산에서였다. 유난히 자신의 가신들에게 짠 미카와 너구리 선생이 신참 토자마 다이묘에게 후한 대접을 할 리가 없다는 냉철한 판단이 마사유키가 서군 측에 붙게 한 이유였다.

 

그리고 패전 이후, 장남 노부유키의 목숨을 건 구명으로 마사유키는 코야 산 밑의 쿠도야마에 은거하면서 반 도쿠가와 대란이 일어나길 기대하다가 사망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유지를 그대로 받아들인 유키무라의 오사카 입성에 모두의 관심이 집중됐다. 카가 마에다 가문의 객장 신분의 타카야마 미나미보가 수장이 되고, 유키무라가 군사가 되어 거병하는 것을 막기 위해 에도 바쿠후에서는 회유와 협박 그리고 읍소를 병행한 전략을 구사한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형이 노부유키의 친서의 겉봉도 뜯지 않고 돌려보낸 유키무라의 오사카 합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한편, 오고쇼 이에야스에게 소환된 카타기리 마츠모토는 모든 문제의 근원이 되는 업화의 중심 오사카 성에서 히데요리의 거취문제를 통보받는다. 도요토미 타이코가 남긴 오사카 성은 마력처럼 천주교도와 떠돌이무사 그리고 반 도쿠가와 세력을 빨아들였다. 슨푸의 이에야스는 도쿠가와의 천하 유지를 위해 더 이상 오사카 성을 방치해 둘 수가 없었다. 히데요리의 영지 이전을 요구하는 이에야스에게 카타기리는 시간을 달라고 부탁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17주기를 맞이해서 호코 사의 대종을 만들어 추모하겠다는 오사카의 계획은 세이칸 대사가 쓴 종명 문제로 사달이 나고 만다. 별 것도 아닌 여덟 글자에 도요토미 가문의 흥성을 그리고 도쿠가와 가문의 저주를 내린다는 친 도쿠가와 가문 성향을 지닌 관변학자들의 장난질로 에도와 오사카 간의 갈등은 폭발한다. 도요토미 가문의 기둥인 카타기리 마츠모토는 백방으로 갈등과 미증유의 소요를 진압하기 위해 뛰지만, 그가 기량으로서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모든 책임은 이제 성인이 된 주군 히데요리와 그의 곁에서 제대로 보필하지 못한 카타기리 이치노카미가 독박을 쓸 판이다.

 

슨푸의 오고쇼는 관대해 보이지만 어쩌면 그야말로 가장 음험한 모략가가 아닐까 싶다. 오사카에서는 이츠노카미와 요도 부인을 시종하는 부인네들을 각각 사자로 슨푸로 파견한다. 미카와 너구리 선생은 이치노카미가 당초에 한 약속(히데요리의 영지 이전)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예 면담도 거절한다. 그리고 자신의 속셈을 똑 부러지게 알리지 않고 수수께끼에 가까운 난제로 상황을 어렵게 만든다. 이치노카미는 임의로 늙은 너구리 선생의 난제를 자신이 스스로 정한 세 가지 조건으로 만들었다. 언제 오고쇼가 그런 조건을 내걸었던가? 그저 상량문 문제와 오사카가 속속 입성하고 있는 떠돌이무사들에 대한 처분을 이치노카미에게 말했을 뿐이다.

 

오사카에서는 요도 부인의 인질(오고쇼의 소실), 히데요리의 영지 이전 그리고 히데요리의 에도 상경 및 항복 조건을 기정사실화하고 일곱 무사를 비롯한 오노 슈리 등이 칸토와의 일전이 불가피하다고 강력 주장해서 관철시킨다. 화의의 가능성이 모두 사라져 버리고 이제는 강대강의 대결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렇지 않아도 도쿠가와 가문의 하타모토들은 도요토미 가문과 타이코의 유자 히데요리에게 관대한 오고쇼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지난 15년간의 평화는 센고쿠 시대 창 한 자루로 다이묘의 지위에 오른 영웅담에 대해 동경을 품고 있는 이들은 각기 다른 각도에서 자극했다. 동군 쪽에서는 이번 오사카 전투야말로 새로운 기회일 거라는 생각으로, 오사카 성에 집결한 서군 쪽에서는 이번에야말로 세키가하라의 복수전이 될 거라는 생각으로 상대하게 된다.

 

한편, 오사카 전투에서 무장으로서 제갈공명에 버금가는 지략과 용맹을 떨치게 되는 쿠도야마의 사나다 사에몬노스케 유키무라는 엄중한 포위망을 뚫고 오사카 입성을 예고한다. 사실 사에몬노스케와 그의 아버지 마사유키는 센고쿠 시대였다면 세키가하라 패전 이래 당장 처형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전란의 시대를 끝내고 평화의 시대를 주창하는 오고쇼 이에야스는 사나다 부자에게 관대한 처분을 내렸다. 동군 측의 영지 10만석의 다이묘 제안에도 불구하고, 사에몬노스케는 누가 봐도 승부가 뻔한 오사카 전투에 아들 다이스케와 함께 참전하기로 결정한다.

 

어쩌면 사에몬노스케는 오사카 전투에서 악역을 자처해서 여전히 센고쿠 시대의 추억을 잊지 못하는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이들을 모조리 끌어 모은 한 판 승부에 도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고쇼의 명령으로 자신을 이중삼중으로 감시하는 마츠쿠라 분고의 포위망을 뚫고 쿠도야마를 탈출하는 사에몬노스케의 계획은 정말 탁월했다. 사나다 부자가 2대에 걸쳐 준비한 플랜을 마츠쿠라 분고의 기량으로는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고나 할까.

 

이제 전장의 무대는 준비되었고, 전국에 동원령을 내린 오고쇼는 자신이 직접 오사카 토벌에 나서기로 결정한다. 세키가하라 전투의 주력이 히데요시 키즈 출신의 무장들이었다면 이번에는 토호쿠에서 차출된 병사들이 오사카 토벌군의 주력이었다. 이미 자신과 전장을 누볐던 동료들은 일선에서 물러나고, 그들의 아들과 손자들과 함께 천하의 태평을 위해 말도 타지 못하는 건강으로 서쪽으로 향하는 미카와 너구리 선생의 결기는 비장하기까지 했다. 마지막까지 오고쇼는 오사카와의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원했지만 아무도 그의 의중을 읽지 못했고, 그렇게 전쟁의 수레바퀴는 멈추지 않고 굴러갔다.

 

[뱀다리] 이번 28권의 표지는 호코 사의 대종과 종명 여덟 글자다. 국가안강 군신풍악(國家安康 君臣豊樂)이라는 별 것도 아닌 문장에 격노해서 전쟁에 나서는 오고쇼 이에야스는 과연 전쟁광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 대신 히데요리의 영지 이전을 가신들을 교란시키는 대신, 강하게 압박해서 오사카 지도부에 관철시킬 수 있지 않았을까. 결국 도쿠가와 이에야스 역시 모든 것을 전쟁으로 해결하는 전국인(戰國人)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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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0-09-17 12: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히데요시 사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무관심해 보이는 행동이 오사카 성을 지나간 시대의 인물들을 모아들였다고 밖에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소설 상에는 혼자서 평화를 위한 노력을 한 듯 묘사되지만 결과적으로는 한 번에 쓸어버리기 위해 기회를 보고 있었다는 평가을 면할 길이 없어 보입니다. 그런 면에서 ‘너구리 영감‘이라 불리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별명은 적당하다 여겨집니다...

레삭매냐 2020-09-18 14:12   좋아요 1 | URL
야마오카 소하치 작가가 너무 미카와
너구리 선생을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게 마음에 걸리더라구요.

결국 도요토미 가문을 멸망시킨 사람
은 2대 쇼군 히데타다도 아닌 오고쇼
이에야스였으니 말이죠.

한 마디로 말해서 짜고 치는 고스톱
이라고나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