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쿠가와 이에야스 16 - 제2부 승자와 패자 16 동쪽으로 단결
야마오카 소하치 지음, 이길진 옮김 / 솔출판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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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까지 소설 <도쿠가와 이에야스> 32권의 16, 딱 절반을 읽었다. 누군가는 이 책을인간 처세술의 비법이 담긴 책으로 읽을 것이며, 나 같은 사람은 일종의 무협지 같은 성격의 역사 소설로 접할 것이다. 이 세상에 꼭 읽어야 하는 그런 책은 없는 법이다. 나에게 맞는 책이라면 그저 그것으로 만족할 뿐.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2만 대군을 동원한 유람 같은 큐슈 정벌까지 마치고 나서 전국의 모든 다이묘들에게 상경할 것을 명령한다. 가장 껄끄러운 상대였던 미카와 도쿠가와 이에야스마저 고집을 꺾고 상경한 마당에 또 누가 명실상부한 천하인 칸파쿠의 명령을 거부하겠는가 싶었지만 아직도 그런 선수가 하나 남았으니. 칸토 지역에서 백여년 오대를 이어온 호죠 가문이었다.

 

호죠 가문 처리 전에, 요즘 들어 부쩍 다도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칸파쿠는 키타노 다회를 열어 천하를 놀라게 한다. 칸파쿠라는 인간은 무력과 재력 그리고 자신이 가진 지략을 이용해 전대미문의 일들을 만들어 내길 즐기는 것 같다. 오다 노부나가와는 또 다른 성격의 천하인이라고나 할까. 어쩌면 그것은 오다나 마츠다이라 같이 명문가 출신으로 대대로 충성을 받친 후다이 가신들의 부재에서 오는 신흥 재벌 특유의 허세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키타노 다회에 갑자기 등장한 천주교 다이묘 타카야마 우콘과 오긴의 만남이 흥미롭게 진행된다. 히고의 영주로 전봉된 삿사 나리마사의 학정으로 천주교도들의 폭동이 발생했다고 한다. 역전의 무장 타카야마 우콘은 신앙의 자유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처해서 떠돌이무사가 되었다. 센노 리큐의 양녀 오긴을 노리는 칸파쿠의 시선이 부담스럽게 다가온다. 천하통일이라는 일생의 목표를 달성하자, 자꾸만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던가.

 

장삼봉 조사 앞에서 태극권을 시전하는 장무기도 아닌 나는 왜 어제 읽은 책의 내용이 벌써 헷갈리는 것인가. 가라시아 부인이 호죠 가의 멸문 그리고 다이나곤의 영지 교체 등을 아마 예언하지 않았나 싶다.

 

다이나곤의 후계자가 되는 삼남 히데타다를 낳은 사이고 부인과 아사히히메가 차례로 죽는다. 도쿠가와 집안의 내전이 그나마 잘 운영되는 편이라고 한다면, 도요토미 집안에는 바람이 일기 시작한다. 우여곡절 끝에 아버지 아사이 나가사마와 어머니 오이치 부인의 원수 칸파쿠의 소실이 된 챠챠히메는 칸파쿠의 정실 키타노만도코로 네네가 바로 잡고자했던 내전의 질서를 거부하고, 임신설로 칸파쿠의 정신을 뒤흔든다.

 

자식문제는 비록 천하는 평정했지만 든든한 적통 후계자를 가지지 못했던 히데요시의 가장 강력한 약점이었다. 천하의 칸파쿠를 그런 식으로 챠챠히메는 농락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된 내전의 무질서는 칸파쿠의 최고 참모 이시다 사키치 미츠나리도 어쩔 수 없는 그런 은밀한 문제였다. 그는 도요토마 가문의 결속을 위해 일체의 파벌 조성을 용서하지 않으려고 했으나. 그런 그의 태도가 가장 큰 문제였다. 융통성 없는 그의 태도가 훗날 무단파와 문치파의 대결로 궁극적으로 도요토미 가문의 붕괴를 가져 왔으니 말이다.

 

소설의 후반부는 칸토에 웅거한 호죠 가문 평정에 관한 이야기다. 믿는 빽도 없이 무슨 깡다구로 호죠 가문은 도대체 칸파쿠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단 말인가. 호죠 가의 당주 우지나오는 강화파였고, 여전한 실세였던 우지나오의 아버지 우지마사는 다이나곤의 선무공작에 말려 주전파의 거두였다. 급할 게 없었던 칸파쿠 히데요시는 전국의 다이묘들에게 동원령을 내리고, 다이나곤 이에야스를 선봉에 세워 오다와라 평정에 나선다.

 

물론 오다와라에서는 준비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군으로 판단했던 다이나곤 이에야스가 칸파쿠의 편에 서고, 철통같은 농성전을 치르려고 준비했던 것들이 모두 무위로 끝나면서 항복 외에는 아무런 선택지가 없게 되었다. 끓는 물 속에서 서서히 익어가는 모양새로 그렇게 호죠 가는 멸망의 길을 걸었다.

 

그 이전에 다이나곤 이에야스 측에서는 히데요시가 호죠 가가 지배하던 칸토 8개 주로 자신들을 전봉하려는 계획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다. 수많은 전쟁을 치르면서 늘어난 가신들에게 나누어질 토지가 칸파쿠에게는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일본식 봉건주의의 밑바탕에는 바로 토지라는 경제적 요소가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피와 살이 튀고 언제 목숨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을 그런 전장에서 가신들과 무사들의 충성을 유도하는 것은 바로 경제적 보상이었고, 당대 경제적 보상의 실체는 바로 토지였다.

 

누대에 걸쳐 미카와, 토토우미, 스루가 그리고 카이와 시나노에 둥지를 튼 도쿠가와 이에야스 집단을 격정의 반도 무사들이 날뛰는 칸토로 보내는 수는 그야말로 칸파쿠 히데요시에게는 희대의 묘수였다. 일단 기존의 영지를 가지고 있던 미카와 고집쟁이들의 반발은 어떻게 무마할 것인가? 당장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한판 붙자고 대들 게 아닌가? 호죠 가의 잔당들은 또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지만 너구리 기회주의자 다이나곤 이에야스는 이 또한 자신에 대한 히데요시의 테스트라는 걸 정확하게 파악했다.

 

이미 이전에 오다 노부나가가 아케치 미츠히데에게 이런 식으로 했다가 혼노사의 변이라는 비극적 결과를 초래하지 않았던가. 기존의 영지들을 거두고, 아직 정복하지도 않은 지역을 주겠다고 했다가 천하포무의 꿈이 사그라졌다. 천재 전략가 히데요시는 똑같은 이에야스에게 강요했다. 그래 너라면 어떻게 할 건데라는 식으로 말이다.

 

바로 이때 등장해서 도쿠가와 가문의 당주 이에야스를 적극 지원한 자가 바로 그 유명한 혼다 사쿠자에몬 시게츠구였다. 이미 자신의 주군에게 위해가 벌어지면, 칸파쿠의 생모 오만도코로를 불태워 죽이겠다고 오카자키에서 미카와 고집쟁이의 기백을 보여준 바 있는 그런 똘기 충만한 무사였다. 이번에도 악역을 자처해서, 배드 캅 역을 자진해서 맡았다. 일단 주군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잠정 은퇴를 감행한 다음 오다와라 정벌에 나선 칸파쿠 히데요시를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면서 태클 거는 장면에서는 사이다를 사발째 들이키는 그런 시원함이 느껴졌다.

 

미카와 무사들의 가풍이라는 핑계를 대며, 거의 무례에 가까운 막말까지 천하인 히데요시에게 퍼붓는 기개는 정말 대단했다. 사쿠자에몬 역시 히데요시의 영지 교체 강권이 피할 수 없는 가문의 운명이라는 사실을 자신의 주군처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악역을 자처해서 이번 위기가 도쿠가와 가문의 새로운 출발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요약하자면, 자신 같은 고인 물들은 빠지고 돈도 명예도 그리고 목숨까지도 필요 없다고 생각한 선수들을 중심으로 해서 새로운 판을 짜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개인의 영달과 가문의 보존 그리고 부귀영화를 바라는 게 당연한 삶의 귀결이 아니었던가. 기회주의자 다이나곤 이에야스는 말끝마다 세계평화 타령을 하지만 결국 타자에 의한 평화가 아닌 자신이 만들어낸 평화에 대한 애착을 드러낸다. 미카와 가신단을 주군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는 똘마니 집단으로 묘사된느데 과연 그럴까 싶기도 하다. 그런 점이 소설로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재미를 더하게 하는 결정적인 요소이긴 하지만 말이다.

 

칸파쿠에 의해 칸토로 전봉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에도(오늘날의 도쿄)를 중심으로 새출발에 나선다. 그리고 오다 노부나가가 자기 삶의 정점에서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 것처럼, 마침내 일본을 통일하는데 성공한 도요토미 히데요시 역시 몰락의 단초가 되는 조선 침략 더 나아가 명나라와 천축 정복이라는 망상을 가동한다.

 

이미 이익의 귀재들인 사카이 상인 집단에서는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이 계륵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투자에 비해 얻을 게 없다는 것이었다. 먹기 쉬워 보이는 떡보다 차라리 남만 정벌로 눈길을 돌렸다면 어땠을까. 그런데 야마오카 소하치의 남만 정벌 타령은 현대 일제의 대동아공영권과 교묘하게 맥을 같이 한다. 아니 어쩌면 신관에서 상인으로 변신한 나야 쇼안(쿠마 도령) 같은 이들이 자신들의 총지배인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을 부추겨 파멸로 인도한 게 아니었을까. 전대미문의 국제전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상업적 이익을 남기면서 말이다. 예나 지금이나 전쟁은 어느 누군가에는 돈벌이의 기회가 되니 말이다.

 

430년 전, 맹목적으로 조직에 충성한 가신의 모습이 최고의 가치인양 미화한 설정이 좀 거슬렸다. 확실히 구시대적 사고를 가진 작가의 글이라는 게 절실하게 느껴졌다. 요도도노나 츠키야마 부인처럼 자주적 사고를 가지고 자신의 삶을 산 여성들은 하나같이 부정적으로 묘사된다. 그 대신, 오다이나 사이고 부인처럼 패전 후 경제 부흥이라는 조국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경제전쟁에 나선 남편들을 대신해서 가정을 지키고 아이를 키우는 역할이 일본의 전통적 여성의 귀감이라는 식의 설교도 걸러서 들어야 한다.

 

다시 한 번, 글쓰기도 어려운 일이지만 그 이상으로 균형 잡힌 독서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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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8-29 16: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32권의 16권을 읽으신 것, 축하드립니다. 보통 일이 아니죠.
제가 예전에 삼국지 열 권짜리가 길어서 6권짜리로 된 걸로 골라 완독했었죠.
저자가 정비석이었던 것 같아요. 완독하고 나니 뿌듯하더군요.

레삭매냐 2020-09-05 10:17   좋아요 0 | URL
시리즈를 잡고 나니 다른 책은
아예 엄두도 내지 못하겠더라구요.

3부 22권을 읽고 있습니다.

일단 목표는 이번 추석 전까지
모두 읽는 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