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쿠가와 이에야스 6 - 제1부 대망 6 미카타가하라 전투
야마오카 소하치 지음, 이길진 옮김 / 솔출판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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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하자마 전투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지긋지긋한 인질생활을 끝내고 비로소 독립하게 되는 극적인 전환의 계기였다. 그렇다고 해서 마츠다이라 가문이 굳건한 기반을 세운 것은 아니었다. 가장 유력한 패자였던 이마가와 집안이 몰락했을 뿐, 동맹관계이긴 하지만 여전히 이에야스에게는 형님 같은 이웃 오와리의 오다 가문이 있었고, 곧 대결구로도 접어들게 될 카이의 타케다 신겐이 그야말로 호랑이 같이 버티고 서 있었다.

 

천하포무라는 구호로 교토 상경에 나선 오다 노부나가는 구습을 인정하지 않는 파격적인 행보로 센코쿠 시대의 패자로 등장하게 된다. 유랑신세였던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무로마치 바쿠후의 15대 쇼군으로 세우면서 대의명분까지 얻게 된 킷포시. 하지만 다혈질의 난폭한 성정의 킷포시는 필연적으로 사방에 적을 만들게 된다. 영웅이라면 당연히 이런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일까. 쇼군 요시아키는 자신을 꼭두각시로 세우고 전국을 좌지우지하는 오다의 부상에 위협을 느낀 전국 다이묘들에게 오다 토벌령을 내린다.

 

한편, 오카자키에서는 또다른 격랑이 일고 있었다. 남편 이에야스에게 격렬한 반감을 품은 츠키야마 마님이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고 만 것이다. 항상 문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발생하는가 보다. 과연 수신제가에 실패한 이에야스가 이 난세를 어떻게 헤쳐 나가는지 관전 포인트가 아닐 수 없다.

 

천하에 의리의 싸나이라는 이름을 남기고 싶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오다에 반기를 들고 대항에 나선 아사쿠라와 아사이 연합군과 싸우기 위해 오미로 향한다. 주공을 양보하지 않으려는 오다와 도쿠가와 사이의 열전이 오가고, 미카와와 토토우미의 고작 60만 석 영주가 240만 석 영주인 오다의 긴키 정벌을 위해 싸우겠다는 주장을 냉철한 오다는 결국 받아들인다. 다른 건 몰라도, 이에야스의 배포 하나는 천하의 오다도 인정한 모양새다. 마츠다이라 가신단의 뛰어난 활약으로 아사쿠라 본진 기습에 성공한 도쿠가와-오다 연합군은 대승을 거둔다.

 

다음에 이어지는 이야기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참전한 전투 가운데 가장 처참한 패전으로 기록된 타케다 신겐과의 미카타가하라 전투의 전모다. 센코쿠 시대 불패의 신화를 자랑하는 용장으로 카이와 시나노의 지배자 타케다 신겐이라는 효웅이 있었다. 전투에서는 신출귀몰하는 전략을 장기로 하고, 내정에서도 뛰어난 실력을 보여준 카이의 성주 신겐. 이웃한 에치고의 용 우에스기 켄신과 대결하는 바람에 중앙 진출의 시기가 늦어졌다.

 

16세에 첫 출전해서 30여 년간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카이의 호랑이에게는 센코쿠 시대 전국 최강이라는 기마대와 24무장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용장들이 있었다. 풍림화산(風林火山)이라는 대장기를 앞세운 신겐의 부대는 패배를 모르고 전장을 누볐다. 50대의 노련한 장수가 된 신겐은 자신의 시간이 무르익길 기다리고 있었다. 신겐에게 이에야스는 이제 전장터에 출전한 애송이 같은 존재였다. 사가미의 호죠 가문과 동맹을 맺고, 카가와 엣츄의 잇코 종도를 종용해서 후방의 우에스기 켄신을 견제하는데 성공한 신겐은 마침내 용의주도하게 준비해온 상경 작전을 개시한다.

 

신겐이 앞길을 가로 막는 적들을 그대로 때려 부수고 달려 나가는 그런 스타일이라면, 그의 후계자 카츠요리는 전장에서의 우직한 승부보다는 적의 약점을 파악하고 내부자멸을 꾀하는 그런 스타일이었다고나 할까. 이에야스의 약점이 오카자키에 있는 츠키야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카츠요리는 스파이 의사 겐케이와 아야메를 파견해서 오카자키 내전의 자멸을 유도한다. 노히메나 오다이에게는 먹히지 않을 엉성한 계획이 이마가와 가문에서 공주처럼 자란 츠키야마에게는 유효했던 모양이다.

 

마침내 서방으로의 진격을 개시한 타케다 3만 대군의 첫 번째 장애물은 바로 하마마츠의 도쿠가와 이에야스였다. 그는 대등한 관계라고 생각하고 싶었겠지만, 그보다 한 수 위였던 기후의 오다는 풍전등화 같은 위기에 처한 동맹군에게 보낼 원군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자신 역시 사방의 적으로 에워싸여 고작 3,000명 정도의 응원군 밖에 지원할 수가 없었다. 도쿠가와 역시 본성이 오카자키를 비롯해서 하마마츠 사이의 요시다 성까지 지켜야 했기에 타케다 군을 저지할 병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8,000명 정도의 병력으로 타케다의 기마군단을 저지할 방법은 전무했다.

 

그렇다고 천하의 이에야스가 자신이 웅거한 하마마츠 성을 공략하지 않고 조용히 서방으로 진격하는 타케다 신겐을 그냥 보내기에는 자존심이 용서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가신들은 하나 같이 하마마츠 성에서 농성할 것을 주장했으나, 이제 삼십대가 된 이에야스는 가신들의 충성 어린 조언을 뒤로 하고 타케다 군과 싸울 것을 결정한다. 농성을 예상했던 도쿠가와 군이 출병했다는 말을 들은 타케다는 이에야스가 죽을 생각으로 전투에 나선다는 점을 간파했다. 역시 고수다운 안목이 아닐 수 없다.

 

절대열세의 병력으로 적군을 포위해서 섬멸하는 학익진으로 타케다의 강병들을 상대했다. 반대로 타케다 군은 촘촘하게 짜인 어린진으로 도쿠가와 군의 엉성한 포위망을 타격하고, 일격에 도쿠가와 군을 박살내 버렸다. 어리석은 주군 이에야스는 전장에서 전사할 각오로 적군에게 달려들었지만, 충성스러운 미카와의 가신들이 그야말로 몸빵으로 자신들의 주군을 지켜냈다. 한 순간의 판단착오로 수많은 충성스러운 가신들이 전장의 이슬로 사라져갔다. 말을 타고 하마마츠 성으로 도주하던 이에야스는 얼마나 다급했으면 마상에서 똥까지 쌌을까.

 

이후의 경과는 승기를 탄 타케다 군이 그대로 밀어 붙이면 함락시킬 수 있었던 하마마츠 성을 이에야스와 가신들은 계교로 지켜내는데 성공한다. 가문이 박살날 누란의 위기에서도 역시나 특유의 침착함을 발휘해서 패전의 상처를 보듬고 오카자키 성을 수리하며 후일을 도모하는 이에야스. 도쿠가와를 패주시키고, 이제 본격적으로 오다 노부나가를 상대하겐 된 타케다 신겐은 대승으로 방심했는지 방심한 틈에 그만 적의 총포에 저격당해 죽는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은 아무래도 작가의 소설적 상상력의 소산물이나 혹은 전승이 아닐까 싶다. 신겐은 출전에 앞서 자신의 건강을 염려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역사에 알려진 대로 지병으로 병사한 게 아닐까 싶다. 용의주도했던 신겐은 카게무샤(그림자 무사)를 이용해서 자신의 죽음을 알리는 대신, 주도면밀하게 다시 코후성으로 퇴각한다. 적들은 그의 죽음을 3년 동안이나 몰랐다고 하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자신의 후계자 카츠요리가 자신만큼의 그릇이 되지 않는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던 지도 모르겠다.

 

카이에서 파견한 스파이들이 오카자키 성에 잠입해서 츠키야마의 내전을 휘젓는 것으로 나머지가 장식된다. 아버지 이에야스와는 달리 귀공자로 자란 노부야스는 전쟁터의 무서움도 모른 채, 그저 출전해서 공을 세울 것만을 기대한다. 가신들의 충언을 듣는 데서도 아버지와의 차이점을 명징하게 드러내며 조급증을 가진 애송이로 그려진다. 아마 카이의 세작들이 활동하기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것 같은 환경이 바로 오카자키의 그것이었다. 츠키야마와 불륜을 저지른 오가 야시로는 보다 큰 꿈을 꾸며 오카자키를 카이의 카츠요리에게 팔아먹을 궁리를 하는데...

 

다시 한 번 야마오카 소하치는 삶의 덧없음에 대해 명멸해 가는 가문들과 개인들의 운명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새로운 세계의 존재를 깨닫게 된 가신이 개인의 영달을 위해 배신을 도모하는 장면도 그렇고,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도 무사의 자존심을 세우겠다고 무모하게 타케다의 기마군단에 돌격하는 이에야스의 모습도, 질투에 눈이 멀어 일족을 멸문으로 이끌지도 모를 그런 위험천만한 도박에 나서는 츠키야마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들이 버무려지니 어찌 재밌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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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0-08-10 19: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서 괴멸적인 타격을 입은 이에야스지만, 당시 도망쳐간 성 안에서 자신의 처참한 모습을 그림으로 그리게 하면서 자신의 패배를 받아들였기에, 이후에는 큰 패배없이 성장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한편, ‘제가 齊家‘를 하지 못해 가정에서 점점 더 커지는 불화의 씨는 독자들에게 긴장감을 주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이에야스의 모습을 통해 전후 일본에서 ‘가정에는 소홀해도 직장에 충성하는 아버지‘ 상이 확립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선뜻 두 번 손이 가질 않는 작품이지만,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예를 들면, 츠키야마 부인 또는 아케치 미쓰히데의 관점으로 읽으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레삭매냐 2020-08-10 22:06   좋아요 1 | URL
저녁에 뼈해장국을 뜯다가 문득...
그 생각이 들었었는데 겨호님이 예리하게
짚어 주셨네요.

야마오카 작가가 일부러 츠키야마 마님을
부정적으로 그린 게 아닌가 하는. 어쩌면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현대여성의 전형
같아 보이는데, 전후 일본에서는 환영받지
못한 여성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산업역군으로 가정에 충실하지 못한 남
편을 대신해서 가정을 지키는 현모양처
의 이미지.

오다를 잡은 아케치 미쓰히데까지는 도달
하지 못했지만, 전통적 시선에서 탈피해서
색다른 시선으로 살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