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 홈 : 가족 희비극 (페이퍼백) 움직씨 만화방 2
앨리슨 벡델 지음, 이현 옮김 / 움직씨 / 2018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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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다양한 책과 만나게 되는 경로가 아닐 수 없다. 알라딘 이웃인 단발머리님의 소개로 이 책을 알게 됐다. 그리고 바로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고놈의 코로나 때문에 요즘에는 도서관 입장도 쉽지 않다. 열을 재고, 도서관 회원증의 바코드 스캔을 하고서야 입장할 수가 있었다. , 마지막 단계가 빠져 있었구나. 손소독.

 

바로 책을 빌린 다음에 한 시간 정도 내쳐 달렸다. 흠 이 책 흥미롭고 재밌구먼. 게다가 내가 좋아라하는 그래픽노블이지 않은가. 다만 글밥이 좀 많은 게 조 흠이랄까. 그래픽노블의 시작은 저자 앨리슨 벡델의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죽은 사건으로부터 시작한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사고사이지만, 앨리슨은 벽장 게이였던 아버지의 죽음을 자살로 규정한다.

 

아 그전에 그래픽노블의 제목으로 등장한 <펀 홈>에 대한 설명부터 해야겠다. 펀 홈은 funeral home 의 약자로 벡델 집안의 가업이다. 군인으로 저자의 어머니 헬렌과 독일에 체류 중이던 아버지 브루스 벡델은 할아버지의 부고 소식에 고향 비치 크리크로 돌아온다. 그리고 장례업을 하면서 동시에 고등학교 교사로도 활동한다. 저자에 의해 소개되는 아버지의 취향을 보면 아무래도 쫌하는 의심이 든다. 고급은 아니지만, 벽장 게이 스타일로 집안의 모든 걸 공들여 수리하고 고치는 예술가의 취향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픽노블에는 제임스 조이스와 오스카 와일드의 이야기들이 연달아 등장한다. 앨리슨의 눈에 어머니 헬렌은 남편 오디세우스의 부재로 20년 동안 과부생활을 한 페넬로페의 다른 모습이다. 아이들을 셋이나 낳은 브루스가 사실은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철저하게 숨긴 벽장 게이였다니! 물론 앨리슨은 일기장 회고를 통해 여러 가지 단서들이 차례로 등장시킨다. 아버지가 보관 중이던 사진에서 찍은 사진, 미성년자에게 술을 사주었다는 혐의로 법정에 서고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했다는 이야기 등등.

 

또 한 가지 중요한 역사적 사실은 자신의 생리 시작과 더불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대통령 닉슨이 몰락하게 되었다는 점도 짚어낸다. 보통 사람과 똑같은 행세를 했지만 사실은 벽장 게이였던 아버지 브루스와 누구보다 민주주의를 수호하는데 앞장 서야 했던 정치지도자가 사실은 민주주의 파괴자였다는 기묘한 변주. 흥미롭지 않은가. 우리에게 워터게이트 사건은 이제 기억조차 희미한 사건이었지만, 당대 미국인들에게 그 사건은 일대 충격이었다. 정치 사회 문화 모든 면에서.

 

대학에 진학한 앨리슨은 비로소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깨닫고 자아를 찾기 위한 모험에 나선다. 아마 가장 먼저 했던 일이 부모님에게 자신이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편지로 알린 것이었지. 자신의 처지를 가장 잘 이해해 줄 거라고 믿었던 아버지와의 관계가 사실은 가장 어려웠던 모양이다. 저자가 정말 다양한 독서를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게 되어가는 과정이 개인적으로 이 그래픽노블에서 가장 인상 깊었다. 십대 시절, 강박 의식에 사로 잡혀 소멸의 공포를 느끼는 지점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어느 시점에서는 하게 되는 고민이 아니었을까.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왜 아버지는 진작에 게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을까라는 질문 앞에, 그랬다면 자신과 자신의 형제들도 존재하지 않았을 거라는 엄혹한 사실 앞에서는 그런 가정을 부인하고 싶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앨리슨 벡델의 다른 작품인 <당신 엄마 맞아?>도 만나 보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고 책은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지 않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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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05-22 18: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페이퍼에 등장하는 알라딘 이웃 단발머리입니다^^ 저도 같은 책을 읽었건만, 분명 저도 읽었건만 레삭매냐님 리뷰 읽으면서 다시 이 책이 읽고 싶어지네요. 특히 저자가 초경하는 시점과 대통령 닉슨이 몰락하는 과정의 묘한 일치에 대한 설명과 해석에 감탄합니다.
참고로만 말씀드리자면, 전 <당신 엄마 맞아?>도 좋았습니다. 저자가 정신상담을 받는 과정이 책에 그대로 서술되는데 그 점에서 아트 슈피겔만의 <쥐>와 비슷하다는 생각도 했고요.

레삭매냐 2020-05-22 17:58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이 읽었다는 말을 듣고서
바로 도서관으로 내쳐 달렸답니다.

상당히 흥미로운 그래픽노블이었습니다.

<당신 엄마 맞아?>도 봐야 하는데,
고건 도서관에 없더라구요. 그렇다면
사서 읽어야 하나 뭐 그런... 급관심
이 땡기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