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폭풍 속에서 뿌리와이파리 알알이 4
에른스트 윙거 지음, 노선정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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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저마다의 운명이 있다. 그렇게 고대하던 에른스트 윙거의 <강철 폭풍 속에서>가 드디어 출간되었지만 읽는데 무려 5년이나 걸렸다. 14년과 작년에 각각 실패하고 드디어 5년 만에 완독의 고지에 오르는데 성공했다.

 

이번에는 그동안 두 번이나 읽은 기시감 때문인지 아니면 반드시 완독하고 말겠다는 나의 의지 때문인지 진도가 쑥쑥 나갔다.

 

1920년에 발표된 <강철 폭풍 속에서>의 저자 에른스트 윙거는 1895년 독일의 하이델베르크에서 태어났다. 화학기술자였던 그의 아버지 에른스트 게오르크 윙거는 광산업으로 부를 모았다고 한다. 하노버에서 학교를 다니던 그는 곤충학과 모험 소설에 관심을 가졌다. <강철 폭풍 속에서>에 보면 그가 상당히 프랑스어를 잘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그것은 아마도 그가 프랑스 생캉탱으로 교환 학생으로 지낸 경험에 바탕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프랑스 외인부대에 지원해서 알제리에 파견될 뻔 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파란만장 시절의 주인공이 아닐 수 없다.

 

하노버의 기숙학교에 다니던 윙거는 19세의 나이에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81, 지원하여 소총수로 샹파뉴 전선에 투입된다. 그 지점이 바로 <강철 폭풍 속에서>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조국을 위해 싸운다는 이유로 사기충천한 어린 병사들은 자신과 동료들의 팔다리가 적군의 총알과 포탄에 날아가는 지옥의 문턱을 경험하고 나서 비로소 그들이 꿈꾸던 전쟁의 비참한 현실을 깨닫게 된다. 세계대전 초반, 프랑스 전선에서 대치한 프랑스 영국 연합군과 대치한 독일 젊은이들은 적군의 총탄만큼이나 무서운 고역이었던 노역에 시달려야 했다. 미로처럼 연결된 참호를 파기 위해 쉴 틈 없이 그들은 삽질을 해야만 했다. 윙거의 증언에 따르면 추위보다 무서운 게 바로 습기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보다 더 무서운 건 바로 전장의 지루함이었다. 그래서 어쩌면 병사들에게 전투에 참가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렇게 무모한 돌격을 감행했는지도 모르겠다.

 

프로이센 사람 특유의 기록정신을 발휘해서 여가 시간에 윙거는 그날그날의 전투에서 자신이 직접 보고 느낀 점들을 기록했다. 바로 그 기록들이 위대한 전장문학 <강철 폭풍 속에서>의 탄생 배경이 되었다. 적의 강철 탄환으로부터 윙거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19154, 레제파르주 전투에서 왼쪽 다리에 관통상을 입은 윙거는 치료를 위해 후방으로 이송되고, 예비군대대로 편입된 가운데 아버지의 제안을 받아들여 사관후보생에 지원하게 된다.

 

육 주 간의 교육을 마친 윙거는 초급장교로 다시 전선에 배치된다. 그전에 일반 소총수였다면 이번에는 말단의 지휘관으로 새로운 경력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 후에 전개되는 윙거는 전쟁터에서의 모습은 그야말로 마블식 새로운 영웅의 탄생이라고 할 수 있다. 수많은 동료와 전우들이 전쟁터에서 전사하고 부상당했지만(물론 윙거도 7번이나 크고 작은 부상을 당했다) 숱한 격전을 치르면서도 결국 그는 생존하는데 성공했다. 놀랍지 않은가. 첫 번째 투입지였던 샹파뉴를 비롯해서 19169월의 기유몽 전투, 베르덩과 함께 1차 세계대전 당시 최대 격전지였던 솜 전투에도 참가하고 독일군의 마지막 승리라고 할 수 있었던 1917년 말의 캉브레 전투 그리고 마지막 1918년 루덴도르프가 구상한 춘계대공세 등 최전선에서 윙거 같은 전사가 아니면 누가 전쟁영웅으로 불릴 수 있단 말인가.

 

, 그런데 소설의 표지를 보니 장편소설이라고 되어 있네. 그렇다면 <강철 폭풍 속에서>가 전쟁 르포르타주 형식의 리얼 스토리가 아니란 말인가? 아마 아닐 것이다. 적의 총탄이 빗발치는 가운데서도 한가한 시간에 아리오스토를 읽고, <트리스트럼 샌디>를 읽는 장교 윙거의 모습이 어쩌면 소설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전쟁 초반에는 중세 기사도 정신이 전장에 배어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곧 기관총과 독가스 같은 대량 살상무기가 도입되면서 전투는 개인의 무용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대량학살의 현장이 되어 버렸다. 물량전 그리고 기계전으로 이어지는 전쟁사의 치열한 현장을 윙거는 기록에 남겼다. 어쩌면 그가 그렇게 소중하게 기록했던 일기는 전투가 벌어지지 않는 시간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 아니었을까.

 

1차 세계대전 당시 서부전선에 투입된 독일, 영국 그리고 프랑스 병사들은 저마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 그리고 미래의 세대에게 넘겨줄 영토를 지키기 위한다는 투철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참전했다. 하지만 5년이라는 장기간에 걸친 미증유의 전쟁은 모든 사람의 의식을 바꿔 버렸다. 전쟁이 사기충천한 병사들이 생각한 것처럼 낭만적이지도 않고, 비참한 현실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전쟁 후반에 가서 서방 연합군의 압도적인 무력과 보급의 우세로 패전의 기운을 느낀 윙거가 각성하는 장면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개별 전투의 승리는 병사들의 무용으로 결정될 수 있지만, 대국적인 차원에서의 전쟁은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 걸까. 마지막으로 부상을 당했을 때, 기다리던 죽음이 마침내 찾아왔다는 착시에 빠진 윙거의 모습에서, 어쩌면 그것이 그가 기다리던 안식의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나폴레옹이 창안한 것으로 알려진 훈장(독일에서는 철십자훈장) 수령이 병사들에게 최고의 명예였다는 점도 흥미롭다. 윙거 역시 전쟁터에서의 용맹스러운 무공으로 일급 철십자훈장을 받지 않았던가. 그에게 훈장을 건네준 장군이, 훈장이 반창고라는 유머는 정말 최고였다. 그리고 소설이 독일 황제가 전쟁 기간 동안 오직 11명의 보병 중대장에게 수여한 제국 최고의 명예훈장인 푸르르메리트를 받는 것으로 끝난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참고로 에른스트 윙거는 살아남은 마지막 푸르르메리트 훈장의 서훈자이기도 했다.

 

<강철 폭풍 속에서>가 사적 기록을 바탕으로 했다는 점에서 전쟁영웅으로서 자신에 대한 미화가 되지 않았을까라는 지적도 새겨 들을만하다. 역설적이지만, 무자비한 전쟁의 참화 속에서 생존한 어느 고지식한 프로이센 전사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래서 더 매혹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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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10-30 19: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재독도 많이 하시네요 역쉬👍👍👍

레삭매냐 2019-10-30 21:33   좋아요 1 | URL
제가 문장을 모호하게 썼었군요 :>

재독을 한 것은 아니고 완독하지
못하고 초반 그리고 중반 부분울
자꾸만 읽어서 기시감이 든다는
말이었답니다.

카알벨루치 2019-10-30 22:43   좋아요 1 | URL
이 책 뿐만이 아니고 님은 재독 많이 하시니 괜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