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과 에블린 민음사 모던 클래식 57
잉고 슐체 지음, 노선정 옮김 / 민음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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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독일이 된 지 어느덧 30년이 되었다. 패전국은 44년 만에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이 되었는데 패전국가도 아닌 우리나라는 여전히 분단국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구 동독 출신 작가 잉고 슐체는 통일을 눈 앞에 두고 있던 시점에서 동독을 탈출해서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서독으로 망명하려던 한 커플의 이야기를 <아담과 에블린>에 담아냈다. 아니 보다 자세하게 말하자면 서독으로 가고 싶어하는 사람은 21세의 에블린 슈만이었다. 식당 종업원 일을 하는 에비에게 동독은 그야말로 후진 나라였다. 하지만 그의 애인 아담은 이야기가 달랐다. 33세의 헝가리민주화운동이 일어나던 해에 태어난 아담은 노련한 재단사로 뭇 여성들의 사랑을 받는 전문가다. 그에게는 서독에 갈 이유가 전혀 없다. 단 에비가 문제다.

 

소설은 시작부터 화끈하다. 자신이 옷을 만들어 주던 중년 여성 릴리에게 매력을 느낀 아담은 결국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고, 언젠가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던 에비는 절교 선언을 하고 아담을 떠난다. 이제부터 아담의 줄기찬 스토킹이 시작된다. 역시 자신감의 발로였을까? 에비가 돌아올 거라고 예상하지만, 배신의 대가는 혹독했다.

 

체코슬로바키아와 헝가리 그리고 오스트리아를 누비는 독일판 로드무비가 시작된다. 에비는 서독 출신 생명공학자(, 그는 아마도 영생을 꿈꾸는 과학자였던가) 미하엘 커플의 차를 얻어 타고 벌러톤 호수로 향한다. 기묘한 조합의 나그네들에게 새로운 낙원이었던 헝가리의 벌러톤 호수는 2차 세계대전 막판에 최악의 격전을 치른 곳이 아니었던가. 아담과 이브의 서사에서 어쩌면 뱀의 역할은 미하엘의 몫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아담은 우연히 만난 카탸와 동행해서 국경을 넘는 모험을 감행하기도 한다. 자신을 증명해줄 아무런 신분증도 없이 그런 위험을 무릅쓰는 아담의 행동이 조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에게 돈과 먹을 것을 아낌없이 나눠준다. 그러면서 자신의 사랑은 오로지 에비 뿐이라는 말이 나에게만 공허하게 들리는 걸까. 결국 에비는 서방 세계의 물질을 대표하는 미하엘과 새로운 희망을 꿈꾸게 되고 아담은 그야말로 닭 쫓던 개 신세가 될 판이다.

 

헝가리의 페피네에 기숙하게 된 일행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페피 아버지가 짓밟힌 헝가리 민주혁명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인류의 역사는 진보한다는 말일까. 1989년 당시 헝가리 사람들은 이웃 독일 난민들에게 국경을 개방하는 파격적인 일을 했었는데, 왜 지금은 그렇게 시리아 난민들에게 매몰차게 구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쩌면 추축국의 일원이었던 독일에 대한 호감 때문일 지도 모르겠다.

 

페피네서 새로운 일감을 찾은 아담의 인기를 도대체 식을 줄을 모른다. 공산진영의 동독이 그랬던 것처럼, 헝가리 여성들 역시 아담의 실력을 칭송하느라 바쁘다. 직접 치수를 재고, 자신의 몸에 딱 맞는 맞춤형 재단으로 여성들의 자존감을 살려주는 그야말로 아티스트로서 아담이 가진 재능이 만개하는 순간이었다. 그런 그를 어찌 여성들이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나중에 에비가 아담에게 페피 엄마와의 관계에 대해 묻는 엉뚱한 질문이 마냥 허황된 것은 아니지 싶더라.

 

결국 낙원을 떠나 물질세계로 들어가는데 성공한 아담과 에비 그리고 카탸. 그 중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카탸였고, 서독의 대학에 진학해서 새출발을 다짐한 에비가 그 다음 그리고 아무런 일자리도 구하지 못하고 날건달이 된 아담이 꼴찌 순으로 행복해 보인다. 아담은 처음부터 자신의 고향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오로지 에비를 위해 그 모든 모험을 치른 것이다. 사랑의 이름으로. 그런데 그 사랑의 이름으로 모든 걸 극복할 수 있을까? 그건 아마도 아닌 듯 싶다. 서방세계에서 아담의 자존감은 수직으로 추락하기 시작한다.

 

우선 서독에서는 아무도 재단사가 만든 옷을 입지 않았다. 공산주의 동독이 그나마 인간적인 모양새의 사회였다면, 서쪽의 자본주의 세례를 받은 베씨들은 물질의 노예였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동일한 문화를 공유한 민족이라도 40여년을 떨어져 살았다면 상호간의 이질감은 필연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사회를 유지하는 이념이 다르지 않았던가. 그렇게 낙원에서 추방된 아담은 이방의 공간이 낯설 수밖에 없었으리라. 반면 보다 나은 삶이라는 구호로 무장된 여성 동지들에게 서독은 축복이었다. 기술자 특유의 곤조를 가진 아담이 고작 기성복의 기장이나 고치고 수선하는 일에 만족할 수는 없었겠지. 시대가 바뀌면 사람도 바뀌어야 하는데, 평생 자신이 고수해온 일에 대한 자존감으로 똘똘 뭉친 오씨 아담에게 서독은 성경에 나오는 대로 저주였을까 과연.

 

문득 아담은 통일된 독일에서 안녕한지 궁금해졌다. 사회부적응자가 되어 연금생활자가 된 건 아닌지. 그리고 그렇게 사랑한다는 이유로 일과 고향집마저 떠나게 된 궁극의 이유인 에비와의 관계는 무사한지. 우리보다 한 세대 전에 통일을 이룬 독일도 숱한 문제들이 산적해 있는데 아직까지도 적대적 관계를 청산하지 못한 우리의 경우는 어떨지 모르겠다. 처음 만난 드레스덴 출신 이야기꾼 잉고 슐체가 그린 통일 독일에 대한 서사는 흥미진진했다. 낙원에서 강제로 퇴장당한 아담의 로맨스는 떫었고, 코미디는 블랙이었다. 그리고 현실은 언제나 그렇듯 만만하지 않았고. 뭐 그렇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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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19-08-19 23: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담에게 감정이입이 되는건 이상한건가요? 아담이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비극적인 ㅠ 읽고싶은 책을 또 추가하게 해주셨네요ㅠ 글 잘 읽었습니다:)

레삭매냐 2019-08-20 09:17   좋아요 0 | URL
아주 자연스러운 귀결 같아 보이는데요.
제 생각에 소설의 진짜 주인공은 아담 같습니다.

모든 액션은 결국 아담의 결정 때문에
이루어지게 되거든요.

연애를 기본 줄거리로 삼고, 통일 독일의
이모저모를 담은 수작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