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브러더
라이오넬 슈라이버 지음, 박아람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모든 책은 읽을 때가 따로 존재하는 모양이다. 수년 전에 나온 라이오넬 슈라이버의 <빅 브러더>를 아마 신간으로 샀던 것 같은데 이제야 읽었다. 지난달에 집어 들어서 28쪽을 읽고 나서 묵혀 두었다가 이틀 전부터 읽기 시작해서 하루 만에 다 읽었으니 나의 집중력도 대단했고, 슈라이버 작가의 필력은 그 이상이었다. 냉정하면서도 문제의 핵심을 찌르는 저자의 서사에 그만 반해 버렸다. 아마도 슈라이버 작가의 팬이 될 것 같다. 그전에 읽다만 그녀의 책들부터 찾는 게 먼저 아닐까 싶지만.

 

소설의 주인공 판도라 할프다나르손(스웨덴 조상이다)은 원래 출장 뷔페 사업을 하다가 말하는 인형제조업으로 대박난 사업가다. 그녀는 원래 사람들의 주목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지만, 사업의 성공은 그녀를 다수의 인터뷰로 이끌었던 모양이다. 남편 플레처는 가구 자영업자인데, 판도라와 달리 까다로운 성격의 소유자다. , 이제 판도라의 오빠 플레처가 등장할 차례인데 뉴욕의 재즈씬에서는 한 자락하는 재즈 피아니스트인 모양이다. 소설의 주된 갈등 구조는 바로 플레처와 판도라의 오빠 에디슨 담당이다.

 

뉴욕에서 당분간 지낼 거처가 없다는 하소연에 혈육을 외면할 수 없었던 판도라는 당분간이라는 단서로 플레처를 설득해서 에디슨 오빠의 아이오와 뉴홀랜드 행을 유도한다. 그리고 시더래피즈 공항에서 4년 만에 에디슨 오빠를 만나는 순간 판도라는 경악에 빠진다. 내가 꼽은 소설의 결정적 순간 중의 하나다. 물론 그전에 슈라이버 씨는 공항 승객들의 대화를 통해 독자들에게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 마음의 준비를 시킨다. 아니 그 해당되는 사람은 판도라였던가. 75kg의 날씬한 체중으로 어려서 엄마가 돌아가신(아마 자살로 추정) 이후 십대 소녀 판도라의 우상이었던 오빠 에디슨이 무려 175kg의 초고도 비만이 되어 등장한 것이다 짜잔! 자 이제 독자들은 소설의 제목이 왜 <빅 브러더>인지 바로 알게 된다. 조지 오웰은 잊어버리시라.

 

갈등은 에디슨이 먹어 치우는 어마어마한 양의 음식뿐만이 아니다. 꽤 오래 먹을 수 있는 판도라가 커피에 타먹는 하프 앤 하프 우유를 한 끼에 처치했다고 했던가. 사사건건 에디슨과 펠트치(플레처의 새로운 별명)는 부딪히고 싸운다. 모든 생활의 방식과 습관이 맞지 않는 것이다. 뭐 이 정도 갈등이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으니 문제가 없다. 진짜 문제는 아빠 트래비스 씨가 한 때 끗발 날리던 시절 찍은 유사가족 <공동 친권>에 나오는 드라마가 아니라, 누군가의 목숨이 달린 문제라는 점이다. 에디슨 오빠가 과연 이런 초고도 비만 상태를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을까? 수면 무호흡증을 필두로 해서 당뇨 및 심장병 외에도 다수의 합병증이 대기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자신이 낳은 자식은 아니지만 플레처가 데리고 온 두 자녀 태너와 코디에 대해서도 판도라는 어머니 역할을 충실하게 해내야 한다.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세상에 나설 준비를 하는 태너는 세상을 우습게 여기면서 시나리오 작가의 꿈을 꾼다. 그나마 코디는 좀 나은 편으로 에디슨 새삼촌에게 피아노 레슨도 받으면서 집안 분위기를 그나마 누그러뜨리는데 진심으로 노력한다. 하지만 어디 세상 일이 그런 노력들만으로 해결 가능했던가? 절대 아니다.

 

우여곡절 끝에 판도라는 자신의 결혼이라는 큰 판돈을 걸고 뚱보 오빠 살리기 프로젝트에 나선다. 여기가 바로 소설의 터닝 포인트다. 자신은 여전히 남편 펠트치와 아이들을 사랑하는데, 가혹한 외동아들 출신 남편은 자신이냐 아니면 오빠냐며 다그친다. 그리고 별거를 선언하지. 354일 동안 자그마치 78만 칼로리를 태워야 하는 지상 최대의 다이어트 작전을 시작한다. 일단 번영을 구가하는 판도라의 말하는 인형사업 덕분에 재정 상태는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그런데 자신의 사업에 자신이 없었던 판도라는 이 사업이 오래 지속되지 않을 거라는 걸 직감적으로 느낀다.

 

나는 여기서 펠트치의 속마음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포이어바흐 집안에 여유가 없는 것도 아니고 왜 그렇게 에디슨 애팔루사에게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던 걸까.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자신이 하는 사업이(사실 취미생활에 가깝다) 아내 판도라의 그것에 비해 형편없다는 이유가 아니었을까. 아이오와 사람들에게 그의 수제 가구보다는 정형화되고 착한 가격의 천편일률적인 가구들이 좀 더 호소력 있게 다가왔다는 것을 그가 진짜 몰랐을까. 그래서 가구 제조와 자전거 타기는 그에게 하나의 탈출구였을 지도 모르겠다. 그에게 에일리언이었던 에디슨의 존재는 자신이 생각한 이상적 가정을 파괴하는 이질적인 존재였을 테고.

 

하나의 가족 서사 가운데 이렇게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을 줄 알았나 싶다. 그래서 슈라이버 작가를 사람들이 높게 평가하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일단 새로운 형태의 미국 중서부 지방의 가족을 토대로 이런 저런 갈등 구조를 배치한다. 부부간의 경제적 불균형 상태도 좋은 선택이었다. 돈벌이에 무능력한 남편에 상대적으로 돈 잘 버는 사업가 아내. 세상을 만만하게 생각하는 십대 아들 태너는 결국 학교도 때려치우고 새삼촌의 뒤를 이어 캘리포니아로 튄다. 아내는 오빠를 돌보겠다고 결혼을 판돈으로 걸고, 새살림을 차린다. 그리고 오빠를 돕는다는 핑계로 자신감 회복을 위해 자신도 다이어트에 나선 동생은 동포 뚱보들에 대해 깊은 사색의 시간을 갖는다. 어쩌면 이 비만이라는 문제가 단순하게 순간의 즐거움을 포기하지 못한 개인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는 그런 멋진 결론에 도달하기도 한다. 미국 사회를 뒤덮은 프랜차이즈 식당에서 무한 리필로 제공하는 탄산음료들이 모두 옥수수당으로 만들어졌다는 건 이제 비밀도 아니지 않은가. 그런 무한의 소비를 위한 생산이 아메리칸 동포 뚱보들을 양산해 내는 사회적 이유가 아닌지에 대해서도 한 자리 거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상하게도 판도라 가족의 위기가 산으로 갈수록 에디슨 오빠 구하기 프로젝트는 성공 가도를 달린다. 일 년 만에 102kg을 감량하리라고 그 누가 예상했겠는가. 아마 가장 부정적인 인간은 바로 펠트치였으리라. 결국 성체중식이라 불린 요란한 파티에서 에디슨 애팔루사는 다이어트 성공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멋진 성공이 아니었냐고. 또 다른 추락은 바로 그 지점으로부터 시작한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라이오넬 슈라이버의 <빅 브러더>는 나의 기대 이상의 작품이었다. 한동안 즐겨본 미드 <모던 패밀리>의 그것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해 가는 미국식 가정의 한 단면을 쪼개서 그 안을 다양한 재료의 소스와 패티로 채운 성찬이라고나 할까. 항상 하는 생각이지만 막상 책 읽을 때의 감정과 그 감정을 리뷰로 옮길 때의 그것에는 뛰어 넘을 수 없는 그런 간극이 존재하는 것 같다. 이유는 아마도 나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탓으로 돌려야지 싶다. 슈라이버 작가의 <빅 브러더>는 올해 내가 읽은 책 중에 아디치에의 <보라색 히비스커스> 다음으로 손에 꼽고 싶은 책이다. 그리고 세 번째로 좋았던 책은 이제 막바지로 달려가고 있는 카를로 레비의 <그리스도는 에볼리에 머물렀다>가 될 것이다.


[뱀다리] , 표지는 정말 기가 막히게 뽑았다.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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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9-08-08 09: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모던 패밀리> 같은 그런 책이군요?! <보라색 히비스커스> 다음으로 손에 꼽는다니, 메모해두겠습니다. 그나저나 표지는 정말 장난 아닌데요? ㅋㅋㅋ 표지때문에 책이 눈에 확 들어옵니다.

레삭매냐 2019-08-08 13:23   좋아요 0 | URL
<모던 패밀리> 같은 책은 아니고,
예의 미드에서 보여 주는 가족의 진화
를 엿볼 수 있는 그런 소설이라고나
할까요.

슈라이버 작가가 구사하는 냉소적
유머는 진짜 일품이었습니다.

원서 표지보다도 더 주제에 부합하는
그런 느낌이지요...

물감 2019-08-08 10: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와 좀처럼 연이 없다하시더니 드디어 읽으셨군요. 축하드립니다ㅎㅎ

레삭매냐 2019-08-08 13:24   좋아요 1 | URL
<내 아내에 대하여> 그리고 <맨디블 가족>
모두 읽다 말았거든요.

<빅 브러더>로 기운내서 다른 책들도 마저
읽어 보려고 합니다. 응원, 감사합니다.

목나무 2019-08-08 17: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표지보면서 가슴이 답답해지는 건 저뿐인 걸까요. ㅎㅎㅎㅎ
그나저나 가족사는 끈끈한 동양이나 널널한 서양이나 복잡하기는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어느 집안이나 문제 없는 집안이 있을까 싶기도 하고요. ~

레삭매냐 2019-08-08 17:43   좋아요 1 | URL
아주 아주 오래 전에,,,
대학 친구에게 가족이 원쑤라는 말을
듣고는 조금 충격을 먹었던 기억이 -

완벽한 가족에 대한 신화를 해체해야
하는 시간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표지는 근 10년 간 나온 책 중에 최고
라고 주장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