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콜드 블러드 트루먼 커포티 선집 4
트루먼 커포티 지음, 박현주 옮김 / 시공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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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이 주연을 맡은 영화 <커포티>의 시작을 본 기억이 난다. 19591115, 캔자스 주의 작은 마을 홀컴에서 허버트 클러터 일가족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총기 사용이 허용된 미국 전역에서 비슷한 사건이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지 않는가. 하지만 당대 유명 작가 트루먼 커포티가 이 사건에 달려들면서, 클러터 가족 사건은 그야말로 전국적 유명세를 치르게 된다.

 

커포티는 자신의 최전성기에 클러터 사건을 다룬 <인 콜드 블러드>를 뉴요커에 연재하고 책으로 출간하면서 일약 출판계의 스타 반열에 오르게 된다. 정말 클러터 가족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리처드 딕 히콕이 랜싱 교도소에서 감방 동기 플로이드 웰스에게 들은 빈약한 정보를 바탕으로 크게 한 탕을 준비하면서 비극은 잉태되었다. 비슷한 처지의 인디언 혼혈 페리 스미스와 작당해서 성실한 농장주 허브 클러터의 집에 있는 금고를 털겠다는 야심으로 끔찍한 사건을 벌인다.

 

딕 히콕과 페리 스미스는 사전에 준비한 칼과 엽총 그리고 테이프로 네 명의 클러터 가족을 결박하고 끔찍한 살인행각을 벌인다. 그리고 달랑 50달러 남짓한 현금과 쌍안경 그리고 딸 낸시의 재니스 라디오를 챙겨서 사건 현장을 떠난다. 사건이 드러나고 홀컴 마을은 충격에 빠진다. 클러터 가족은 누구에게 해를 끼친 것도 없고, 성실하게 살아온 가족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 중에 범인이 있다고 생각하고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사건이 벌어지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홀컴 사람들은 집의 문도 잠그지 않고 살았다고 한다. 엽기적인 사건도 사건지만, 더 이상 서로를 믿지 못하고 의심하게 된 상황이 내게는 더 비극적이었다.

 

사건을 조속하게 해결하라는 피니 군민들의 성화에 KBI를 필두로 해서 보안관 앨빈 듀이를 중심으로 하는 수사팀이 꾸려졌지만, 범인들을 추적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어떠한 명백한 증거도, 살인도구도 그리고 무엇보다 왜 사건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단서가 턱없이 부족했다. 그동안 마을 사람들은 보안관에게 왜 조속하게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는지 추궁하고, 서로를 의심하고 또 마을을 아예 떠나는 사람들도 생겼다.

 

커포티는 또 한편에서 딕과 페리의 과거를 되짚어 나간다. 두 명의 청년들은 이러저러한 이유로 사회에서 소외된 외로운 늑대같은 존재들이었다. 특히 커포티와 많은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알려진 페리는 정말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났다. 아버지 텍스 존과 어머니는 일찍이 이혼했고, 아버지 슬하에 들어간 페리를 제대로 학교에도 다니지 못했다. 그러니 어머니의 사랑은 받아본 적도 없었겠지. 사냥꾼 아버지를 따라 다니면서 야생에서 생존하고 잡다하게 돈버는 기술은 배웠지만, 제대로 된 인성교육을 받을 기회는 전무했다고 해도 무방하다. 게다가 아버지의 학대는 또 어떤가.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딕은 나름 공부를 잘해서 대학에 진학할 수도 있었지만 가난 때문에 그러지 못했고, 고등학교 졸업 후 자동차 수리공의 삶을 살았다. 너무 어린 나이에 16세 소녀 목사의 딸 캐럴과 결혼해서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지만 성실한 삶 대신 도박과 한탕주의에 빠져 결국 부도수표 전문가가 되어 교도소 신세를 지게 됐다. 딕과 페리의 신산한 삶의 모습들을 보면서 과정 사회의 교정 시설이 그들의 갱생을 돕는 건지 아니면 오히려 범죄자로서의 삶을 극대화하는 게 아닌지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또 한편으로는 딕과 페리가 제대로 된 교육의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면 그런 범죄의 길에 빠졌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범죄자들이 처음부터 범죄자로 태어나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커포티는 <인 콜드 블러드>를 네 개의 장으로 나누고, 사건의 시작부터 시작해서 관련된 인물에 대한 자세한 소개를 거쳐 범인들의 체포과정, 재판 그리고 사형에 이르는 단계를 마치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세하게 기술한다. <인 콜드 블러드>로 커포티는 일명 논픽션 소설이라는 장르를 개척했다고 하지 않던가. 그런데 나는 묻고 싶다. 도대체 어디까지나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소설인가. 전자는 비교적 명백하지만 후자는 정말 가늠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그의 추정 가운데 얼마가 사실인가? 딕과 페리가 체포되면서 유사 미제 사건들의 용의자로 그들이 떠오른 건 너무나 당연했다. 195912월 중순 플로리다에서 워커 가족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비슷한 시기에 그들이 그 부근에 있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본 기사에 따르면, 수사관들이 초동 대처를 좀 더 신속하게 했다면 어쩌면 관련된 사건들을 미연에 방지할 수도 있지 않았나 하는 추정도 있다.

 

사실 <인 콜드 블러드>는 출간 당시부터 숱한 논란에 휩싸였다. 커포티는 녹음기나 노트 같은 보조 장치 없이 딕 히콕과 같은 천재성을 발휘해서 논픽션을 창조해냈다. 그러니 당연히 사실에 대한 오류가 발생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게다가 커포티가 <인 콜드 블러드>에서 영웅으로 묘사한 보안관 앨빈 듀이가 사실은 커포티에게 상당한 대가를 받고 인터뷰 대상자들과의 접촉을 주선하고 수사 관련 자료들을 보여준 것이 나중에 드러나기도 했다. 반세기도 전에 발생한 사건인지라 관련된 많은 이들이 세상을 떠나 정확한 사건의 진실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으리라. 지금처럼 과학 수사가 발달됐다면, 딕과 페리의 범행의 실체가 좀 더 밝혀질 수 있었겠지만 사건이 발생한 시대가 1950년대 말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것 또한 난망했을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 이 논픽션에서 가장 불쌍한 캐릭터 중의 하나는 낸시를 사랑한 보비 럽이었다. 그는 과연 자신의 첫사랑 낸시의 죽음이라는 트라우마를 이겨 내고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었을까? 사건 초반에는 유력한 용의자로 몰리기도 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어쩌면 딕과 페리의 재판이 요즘 열렸다면 두 악당들은 정신분열 증세를 이유로 해서 사형 대신 종신형 어쩌면 정신병원으로 감형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분노한 배심원들은 노골적으로 딕과 페리가 처음부터 법정 최고형을 받아야 한다고 공공연하게 의사 표현을 하지 않았던가. 1950년대 보수적인 캔자스의 분위기를 고려해 보았을 때, 평소에는 사형제를 반대한 이들도 일가족 몰살이라는 엽기적인 범죄 앞에서는 자신의 신념을 번복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도 씁쓸하게 다가왔다.

 

<인 콜드 블러드> 이후에도 숱한 논픽션 소설들이 등장했지만, 아마 오리지널의 아우라를 넘볼만한 작품은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반세기가 넘도록 여전히 논쟁의 중심에 서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내가 처음으로 만난 트루먼 커포티의 책은 기대 이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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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메모수첩 2019-07-25 17: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카포티가 특히 페리에게 동질감과 연민을 느끼면서 서술하던 것이 기억나네요. 영화에서였는지 책에서였는지 “페리와 나는 형제지만 난 앞문으로, 그는 뒷문으로 나갔다”란 내용의 문장이 기억이 나요.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레삭매냐 2019-07-25 21:22   좋아요 1 | URL
책에 그 문장이 나오지요.

영화에서는 아마 커포티가 페리를 이용해
먹었나 그런 설정이라고 들은 것 같습니다.

사면 받게 해줄 것처럼 해놓구선 결국
악이 처벌받게 된다는... 감사합니다.

목나무 2019-07-25 17: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집도 아닌 그 이전 버전으로 이 책을 구입해두었건만 개정판이 나오도록 책을 펼치지 않았다는 걸 이 리뷰를 보고 문득 깨달았네요. --;;;;;;
몇 년 전 친구에게 선물한 카포티 전집을 친구는 읽었을래나.. 이런 엉뚱한 생각도 함께..ㅋㅋ

레삭매냐 2019-07-25 21:23   좋아요 1 | URL
저는 며칠 전에 책상 밑에서 이 책을
찾아 내어 읽기 시작했는데 정말 기대
이상으로 재밌더라구요.

리뷰에는 제가 느낀 감정을 반도 못
담아낸 느낌이랄까요...

가끔 친구들에게 주는 책 선물이 혹
은 부담이 아닌지 뭐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답니다 :> 뭐 그런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