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종말 전쟁 1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김현철 옮김 / 새물결 / 200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제는 우파로 경도된 한 때 좌파 지식인이었던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세상 종말 전쟁> 1권을 읽었다. 19세기말, 브라질 바이아 지방의 카누도스라는 곳에서 벌어진 민중 봉기를 그린 소설이다. 이것은 역사인가 아니면 소설인가. 소설의 기본 골조는 역사적 사실을 따르면서, 디테일은 전적으로 작가의 상상력의 소산으로 보인다. 놀랍다, 어떻게 이런 상상이 가능할지. 선지자 안토니오를 따르는 일단의 가난하고 착취받는 민중들을 브라질 정부와 지주들은 광신자 무리라고 폄하한다. 선하신 예수님의 뜻을 따른다는 일명 야군소의 카누도스는 프루동이나 바쿠닌 같은 무정부주의자들이 서구 사회에서 주창한 이상적 사회주의와 맥을 같이 한다는 점에서 혁명가들을 매혹시킨다. 그 땅의 주인인 지주들에게는 당연히 원수 같은 존재일 테고. 공화주의, 공상적 이상주의, 광신적인 종교 추종자들을 비롯해서 어쩌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각자도생의 시대에 대한 축소판으로 읽을 수가 있을 것 같다. 500페이지나 되는 소설의 전반부를 읽어 내렸다.

1896년부터 이듬해 가을까지 벌어진 카누도스 전쟁의 본질은 과연 무엇일까. 오랜 가뭄과 재앙이 브라질 북동부 바이아 지방을 휩쓸었다. 노예제와 쿠데타에 이은 공화국 수립도 브라질 민중들의 삶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새로운 도량형의 도입, 혼인신고제와 세금 부과 등 근대 국가를 향한 브라질 중앙정부의 정책은 지방자치를 원하는 지주들과 대다수 농민들에게 반감을 불러 일으켰다. 훗날 카누도스 3차 토벌대 보병 제7연대의 지휘를 맡은 모레이라 세사르 대령은 공화국에 반란을 일으킨 세력을 무자비하게 진압하면서 살인마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시국이 이렇게 어수선하면 반드시 혹세무민하는 이들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일명 선지자라 불리는 안토니오는 카톨릭 사제를 비롯해서 그 어느 누구도 거두어 주지 않는 가난한 사람들과 소외 받은 이들 심지어 강도와 살인자 무리까지 ‘선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교화시킨다. 그의 존재를 받아들일 수 없는 지주 계급을 비롯한 기득권층은 그들을 광신자 무리로 부르면서 공화국의 위력을 보여 주기 위해, 카냐브라바 남작의 카누도스 농장에 자리 잡은 야군소들에 대한 토벌에 나선다.

 

그 과정에서 브라질의 강력한 중앙집권을 원하는 연방주의자들과 지방자치를 원하는 세력 간의 충돌을 비롯한 다양한 군상이 적나라하게 전개된다. 에파미논다스 곤살베스라는 정치가는 스코틀랜드 출신 골상학자이자 프랑스와 에스파냐에서 무정부주의 혁명가로 활동한 갈릴레오 갈에게 카누도스 야군소들에게 서구에서 들여온 최첨단 무기를 공급하라는 밀명을 내리고, 다른 부하들을 시켜 외세(영국)가 개입했다는 조작을 꾸민다. 놀랍지 않은가.

이런 정치협잡꾼과 모레이라 세사르 대령 같은 광신적 애국주의로 무장한 이상주의자가 토벌대 측에 서 있다면, 반대측에는 선지자 안토니오를 필두로 해서 브라질 민중계급을 대표하는 선수들이 포진해 있다. 백인 지주를 죽이고 야군소 무리에 들어온 사탄 조앙을 필두로 해서, 외곽에서는 전혀 카톨릭 사제 같지 않은 형상으로 카누도스를 지원하는 조아킴 신부, 온갖 불행과 역경을 딛고 물자관리와 조직에 능수능란한 솜씨를 발휘하는 안토니오 빌라노바 형제, 만인의 어머니로 거듭나게 되는 마리아 쿠아드라도, 서커스단에 팔릴 정도로 기구한 운명이지만 특별한 재능으로 선지자의 서기가 되는 나투바의 레온 그리고 카누도스 방어사령관으로 활동하는 조앙 아바데가 바로 그들이다. 이런 허접한 광신자 무리가 대포와 기관총으로 중무장한 정부군을 상대로 무려 3번의 승리를 거두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그들의 무기는 낫과 활 그리고 조잡한 엽총 정도가 전부가 아니었던가.

카누도스 민중 봉기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한 정부군을 대표하는 모레이라 세사르 대령은 야군소 뒤에는 브라질의 값싼 사탕수수를 원하는 영국을 대표로 하는 군국주의자들이 버티고 있다고 판단한다. 그의 정세 판단은 반은 맞았고, 반은 틀렸다. 야군소들은 자생적 반군들이었다. 물론 바이아의 지주 계급을 대표하는 카냐브라바 남작 같은 경우, 반군과 정부군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구체제의 귀족 칭호를 사용하는 남작은 바이아 지방분권주의자들을 분쇄하기 위해 카누도스 반군을 이용하려는 중앙정부의 획책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모두가 반대하는 모레이라 세사르 대령에게 적극 협력하자는 의견을 밀어 붙인다. 하지만 1권의 말미에서 자신의 칼룸비 농장이 야군소들에게 의해 파괴되고 불타자, 우선 직면한 적인 카누도스의 반군을 일소하기 위해 세사르 대령이 지휘하는 토벌의 성공을 바란다. 과거의 적이 이제는 동지로 변하는 기묘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스코틀랜드 출신 골상학자 갈릴레오 갈은 소설 <세상 종말 전쟁>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1871년 파리 코뮌에도 참가하고, 에스파냐에서도 혁명운동에 나섰다가 부르주아들에게 부상을 당하고 사형선고까지 받았지만 불사조처럼 살아남아 이번에는 신대륙으로 건너가 자신이 평생 꿈꿔온 이상적 공동체가 카누도스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으로 향한다. 도중에 에파미논다스가 파견한 자객에게 죽을 뻔한 위기도 넘기기도 한다. 그 와중에 길잡이 루피노의 아내를 범했다가, 원한은 산 최고의 추격자에게 추격을 당하기도 한다. 자신이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다가 죽고 싶다는 혁명가의 말에 전율이 일었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가 구사하는 차원이 다른 다층적인 이야기의 근원에는 속죄와 구원에 대한 강렬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은 자신이 믿는 이상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투사한다. 믿음을 위해서라면 죽음도 불사한다. 그렇게 카누도스의 야군소들은 선한 예수님의 보살핌과 부활의 확신을 가지고 압도적인 적 앞에서 조금도 굴하지 않고 초개 같이 목숨을 내던질 수 있었던 것이다. 칼룸비를 파괴하기 전에 카냐브라바 남작에게 떠나라고 말하는 조앙 아바데의 부관 파헤우에게 전에는 살인자이자 약탈자가 아니었냐는 남작에 말에 다 지나간 일이라며 게릴라 전사는 당당하게 말한다. 구원의 확신을 얻은 자만이 그렇게 말할 수 있으리라. 꿈을 실현시키겠다고 마음 먹은 이상주의자들은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다는 갈과 남작의 대화는 또 어떤가. 우리 주변에 그런 이상주의자들이 아직도 존재하는지 나는 문득 묻고 싶어졌다. 자본의 위력에 순치된 겁먹은 어린양들만 보일 따름이다.

내가 보기에 광신적 쇼비니스트인 모레이라 세사르 대령 역시 마찬가지다. 조국 근대화라는 이상주의를 앞세운 대령은 공화국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을 악으로 규정하고 일소해야 한다는 믿음으로 항복한 포로에게도 일말의 자비도 베풀지 않는다. 그에게는 오로지 독재공화국만이 선일 뿐이다. 선지자 안토니오처럼 그 역시 가난한 민중에게 뜨거운 애정을 느끼고 있다는 점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렇다면 모든 종류의 광신은 서로 일맥상통하는 게 아닐까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다만 자신이 바라보는 지향점이 다를 뿐.

장장 519쪽에 달하는 <세상 종말 전쟁> 1편은 모레이라 세사르 대령의 3차 토벌을 앞두고 아쉽게도 끝이 난다. 위키피디아와 구글 검색으로 통해 조사한 카누도스 전쟁사에 따르면 세사르 대령의 위풍당당한 3차 토벌 역시 야군소들의 승리로 끝난다고 기록되어 있다. 선지자 안토니오는 이미 네 차례의 토벌이 있을 거라는 예언을 했고, 첫 세 번은 무사히 넘길 수 있다고 말한다. 마지막은 오로지 신의 뜻에 달렸다고 했던가. 역사는 마지막 토벌에 나선 정부군이 최종 승리를 거두고 3만 명에 달하는 카누도스 민중들의 절반에 달하는 15,000명 가량을 학살했다고 전한다. 모든 전쟁 중에 종교전쟁이 가장 잔혹한 형태로 진행되었다는 것을 고려해 볼 때, 전쟁에 참가한 정부군이나 야군소들 모두 어떠한 태도를 가졌을 지 짐작해 볼 수 있다. 어서 2편도 읽어야겠다.


[뱀다리] 그나저나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신간은 왜 더 이상 나오지 않는 건지 궁금할 따름이다. 2010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뒤에도 요사가 책을 세 권이나 더 썼는데도 말이다. 아마 한국 출판시장에서 요사가 그만큼 영향력이 없다는 게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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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19-06-28 13: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재미있게 읽은 책이라 깊히 공감하게 되네요. ^^

레삭매냐 2019-06-28 21:15   좋아요 0 | URL
다해서 천쪽이나 되는 대작이라
수년 전부터 미루다가 드디어 도전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명불허전입니다.

겨울호랑이 2019-06-28 18: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맹목적인 신념이 얼마나 무서운지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레삭매냐님의 글을 읽으면서 거의 같은 시기의 동학농민혁명이 떠오릅니다...

레삭매냐 2019-06-28 21:18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일찍이 에라스무스가 모든 종류
의 맹신에 대한 경고를 했더랬죠.

겨울호랑이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동시대
의 동학혁명도 있었네요. 문득 외국인이
우리 동학혁명에 대한 글을 쓴다면 어떤
느낌일 지 궁금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