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증거 범죄 추리의 왕
쯔진천 지음, 최정숙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4월
평점 :
절판




세상에 완전 범죄란 존재할까? 범죄수사학의 획기적인 기술적 진보로 예전과 달리 미세한 범죄의 흔적이라도 현장에서 채취할 수 있게 되면서 완전범죄의 로망은 이제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천재 법의학자가 동원이 된다면? 바로 그 지점에서 쯔진천의 <무증거 범죄>는 시작된다.

 

모든 일은 8년 전, 모녀 실종사건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사건의 공간적 배경은 중국의 항저우다. 워낙 인구도 많고, 이러저러한 사람들이 섞여 살다 보니 어지간한 사건쯤은 세간의 주목을 끌 수도 없을 지경이다. 살인사건도 마찬가지. 문제는 비슷한 행적을 그리는 연쇄살인이 5번이나 반복되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사건의 해결을 맡은 경찰, 공안의 발등이 불이 떨어지지 않았을까.

 

범행도구는 줄넘기 그리고 피해자의 입에 리췬 담배를 물려 놓고, 자신을 잡아 보라는 글을 대문짝하게 남겨 놓는 범인의 자신감에 경찰을 당황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게다가 범인인 현장에 아무런 증거도 남겨 두지 않았다. 바로 이 점이 경찰을 대혼란 속으로 몰아넣고, 오로지 대대적인 지문 식별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다. 그리고 이 점이 바로 킬포(killing point). 그러니까 범인은 경찰로 하여금 무언가를 강제한 것이다.

 

여기에 중국 스릴러의 대가라는 쯔진천 작가는 의외의 사건 하나를 추가하고, 두 명의 천재들을 배치한다. 하나는 동네 깡패인 노랑머리 쉬톈딩에게 거의 추행에 가까운 집적거림을 당하는 충칭 국숫집 아가씨 주후이루가 우발적으로 그를 죽인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전직 법의학자 러원과 역시 전직 경찰로 지금은 저장대 교수로 활동 중인 옌량이다.

 

일선 경찰들은 사건의 초동수사 단계에서 주후이루와 궈위의 완벽한 진술에 오히려 의심을 갖는다. 하지만 천재 법의학자 러원의 증거 조작 설계는 경찰의 역량을 훨씬 뛰어넘는다. 상상을 초월하는 고차방정식을 접하게 되는 범죄 논리학자 옌량은 기존의 방식으로는 도저히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직시한다. 범죄 수사의 일반 방식인 연역이 아닌 귀납적 방식으로, 그리고 특정한 해를 대입해서 무증거 범죄 해결에 도전한다는 설정이다. 그리고 옌량이 고른 해는 바로 러원이었다. 과연 러원이 설계한 완전 범죄는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인가? 그리고 러원이 수년 동안 추적해 온 실종된 아내와 딸의 행방은 어떤 식으로 해결될 것인지.

 

<무증거 범죄>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모두 천재들이다. 일반인이 범접하기 어려운 아우라를 내뿜으면서 마치 제갈량과 사마의처럼 자웅을 겨룬다. 이에 반발해서 어떤 작가들은 지극히 평범한 경찰을 전면에 내세우기도 하지만 쯔진천 작가의 경우에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주인공들이 격전장에서 치열한 두뇌싸움을 벌인다는 느낌을 받았다. 소설에서는 옌량이 공격수이고, 러원이 수비수 역이다. 옌량이 예리한 창 혹은 칼로 상대방을 찌르면, 러원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능수능란하게 방어에 나선다. 마지막에 가서는 러원이 옌량이 준비한 함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신의 한수를 제공한다. 전개에 비하면, 엔딩은 조금은 클리셰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더라.

 

사건 초반, 해결에 경찰들은 피해자들이 하나 같이 전과자라는 점에서 정의의 사도를 자처하는 자가 범인이 아닐까라는 추론을 펼친다. 과연 어떤 의미에서는 러원의 범죄가 그런 점도 없지 않다. 동기가 어떻든 간에 모든 범죄는 부끄러운 일이라는 평소 러원의 지론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직접 범죄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장면이 주는 모순은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

 

중국 추리소설계의 대신(大神)이라는 별명이 무색하지 않게 쯔진천은 <무증거 범죄>에서 자신의 능력을 만개해 보였다. 작년에 출간된 사회파 추리소설이라는 <동트기 힘든 밤>도 한 번 읽어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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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9-05-12 19: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의 리뷰 읽으니 <무중력 범죄>도 괜찮은 것 같은데요.^^
저는 얼마 전에 이 책 찾아보다가 <동트기 힘든 밤>을 샀어요.
그 쪽이 출간일자가 앞서서요.
이 책도 괜찮은 모양이네요. 다음에 저도 읽어봐야겠습니다.
리뷰 잘 읽었어요.
레삭매냐님, 즐거운 휴일 보내세요.^^

레삭매냐 2019-05-13 09:16   좋아요 1 | URL
저는 지난 주에 걸린 감기 몸살로
주말 내내 앓았네요...

그러면서도 손에서 책을 떼지 못했다는...

쯔진천 작가의 책, 호기심이 동하네요.

서니데이님도 기운찬 월요일 되시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