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 스쿨
토바이어스 울프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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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토바이어스 울프의 책이 출간됐고, 열흘이나 기다린 끝에 받아서 다 읽었다. 아니 영국에 주문한 책도 8-9일이면 도착하는데 이게 웬 일이니 그래. 아마 출판사에서 저자 약력에 대한 치명적인 오류(출생지 표기)를 수정 스티커로 붙이느라 출고를 늦추는 바람에 시간이 걸린 모양이다.

 

내가 어떻게 토바이어스 울프를 알게 되었느냐고? 그건 달궁 독서모임의 옵저버라고 할 수 있는 브랜던 친구를 통해 알게 되었지. 1995년에 발표된 울프의 <Bullet In The Brain>을 가장 좋아하는 단편으로 꼽아서, 원문으로 구해서 읽어 보았다. 원어민이 아니다 보니 이해가 되지 않아 마지막 부분은 나중에 다시 만났을 때 물어 보기도 했다. 그런 다음에 토바이어스 울프 교수님의 팬이 되어 그의 책 수집에 나섰다. 아마 이번에 나온 <올드 스쿨>을 필두로 해서, 단편집 그리고 <디스 보이즈 라이프>도 사 모았지. 물론 미처 다 읽진 못했지만. 어쨌든 토바이어스 울프의 <올드 스쿨>을 필두로 해서 그의 다른 책들도 국내에 소개되길 바란다.

 

항상 그렇지만 서설이 길었다. 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 시간적 배경은 1960년 가을 공화당 출신 꼰대 닉슨을 민주당 투사 케네디가 대선에서 격파한 시절이다. 그런데 영어로 꼰대가 어떤 단어일지 문득 궁금해졌다. 나중에 찾아봐야겠다. 소설의 화자는 앞으로 미국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명문 기숙사 학교의 6학년 졸업반 친구다. 나중에 밝혀지겠지만, 빼어난 문재로 컬럼비아 대학 4년 전액 장학생으로 선발된 경력의 보유자이기도 하다. 이 학교에서는 다른 건 몰라도 글쓰기를 최고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리고 다들 잘난 집 자제들이건만 자신의 힘으로 이룬 것만 인정한다는 암묵적인 동의가 경쟁력 넘치는 수컷들 사이에 존재했다. 자신들이 다니는 학교 자체가 자신들의 능력으로 이룬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바로 이 지점에서 화자가 처음에 지적한 그네들의 ‘속물근성’의 본질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토바이어스 울프의 소설 <올드 스쿨>을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설정은 바로 이 학교에서 초빙작가를 학교로 초대해서 시나 소설 경연에서 뽑힌 미래의 작가와 개인면담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는 점이다. 고도로 발달된 미국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타인의 도움을 받지 않은 자신만의 노력으로 이룬 성취야말로 가장 칭송받을 대상이라는 점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로버트 프로스트, 아인 랜드 그리고 어니스트 헤밍웨이 같이 기라성 같은 작가들이 줄지어 등장한다. 아니 어느 누가 이런 작가들과의 개인 면담을 마다할 수 있단 말인가.

 

성공 아니 성취를 위한 극도의 긴장감과 아드레날린이 무한대로 분출하는 가운데 십대 소년들은 그들만의 글쓰기에 나선다. 내가 즐기는 문학의 본질이 원래 이랬었던가? 그냥 하나의 즐길 거리가 아니었나. 나는 혼란스럽다.

 

화자가 오스트리아 출신 주방장 하르트무트 씨에게 배운 휘파람을 홀로코스트 생존자 게르손 아저씨 앞에서 불었다가 봉변을 당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그게 나치의 행진곡일 줄 누가 알았겠는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한 행동이 아니었기에 충분히 이해가 가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화자도 역시 유대인이었다는 점이다. 자신의 민족적 정체성을 알면서도 그럴 수 있었을까? 다이아스포라 이후 수천 년을 팔레스타인 외의 모든 곳에서 이방인으로 지내면서 배제된 그들의 유전자는 화자의 몸속에 남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함구하고 조용한 가톨릭교도로 사는 선택을 한 모양이다.

 

로버트 프로스트 경연은 화자의 라이벌이자 문학잡지 <트루바두르> 편집장 조지 켈로그가 우승했다. 참고로 화자의 직책은 출판국장이었다. 시의 제목은 노골적 아첨에 가까운 ‘첫 서리(First Frost)’였다나. 다음 주자는 아인 랜드였다. 개인적으로 그녀의 책을 읽어 보지 못해 지금 리뷰를 쓰면서 인터넷으로 그녀에 대한 검색을 해보았다. 소설가이자 경제철학자로 현대 자본주의 비판서라고 할 수 있는 <파운틴헤드>와 <아틀라스>를 썼다고 했던가. 화자는 크리스마스 휴가를 받아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사시는 볼티모어로 떠나는 길에 기차역에서 산 <파운틴헤드>에 빠지는 장면을 보자. 그녀의 인기를 시기하면서 못돼 먹은 인간이라는 점을 비웃어 주겠노라는 화자의 시도는 <파운틴헤드>를 펼치는 순간 사라져 버렸다. 그런 다음 거의 숭배에 가까운 모습으로 전향하게 되는 과정은 개심한 이교도의 모습과 동일하다. 썸을 타는 소녀 레인이 책을 빌려달라는 말도 무시하고 빠져들 정도로 말이다.

 

아인 랜드를 숭배하던 소년은 그녀의 강연에서 아인 랜드가 소설 속에서 창조한 인물이 현실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그저 허구의 인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깨닫게 되고는 다시 배교의 길을 걷게 된다. 강연장을 떠나는 아인 랜드에게 누군가 절규하듯 도대체 “존 골트”가 누구냐고 묻는 장면은 정말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소년들은 저자가 쓴 소설도 읽지 않은 채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

 

자자, 이제 다음 초빙연사로 등장한 헤밍웨이 이벤트에 비하면 그동안 등장한 이야기들은 그저 몸풀기용 가벼운 워밍업 정도로 보면 될 것 같다. 독자들은 그동안 글 쓰는 기숙학교 소년들의 위선과 허영 그리고 속물근성의 본질을 충분히 파악했을 것이다. 화자가 본격적으로 등판할 순서가 되었다. 무도회마저 마다하고, 글쓰기에 전념하던 가운데 <여름 무도회>라는 타학교 여학생 수전 프리드먼이 5년 전 발표한 글을 읽고 전율한 화자는 동명의 제목을 써서 제출하고, 헤밍웨이 경연의 우승자로 선정되는 영예를 얻게 된다. 꿈이 현실이 된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독자는 어 왜 두 소설의 제목이 같을까라는 당연한 질문을 던진다.

 

그 지점에서 파국의 시작되었다. 타인이 쓴 걸작 소설에 몰입된 소년은 자신의 무슨 행동을 하는 지도 모른 채, 표절을 한 것이다. 그동안 소년이 이룬 모든 것들은 단 한 번의 실수로 물거품이 되었다. 퇴학 조치는 물론이고, 컬럼비아 대학 입학도 물 건너갔다. 소년은 집으로 돌아가는 대신 마성의 도시 뉴욕으로 가서 허랑방탕한 탕자의 생활을 이어간다. 그 다음에는 베트남이었고, 고향으로 돌아와서는 DC 인근에 사는 수전 프리드먼과 만나기도 했다.

 

모교에서 꾸준하게 보내 주는 소식지로 한 때 경쟁자였던 친구들의 소식을 듣던 중, 초빙연사로 모교 강단에 서 달라는 요청도 받게 된다. 자신의 학교에 크나큰 모욕을 안겨준 그에게 그게 과연 가당키나 한 일이었을까. 아마 그는 이제 작가로 어느 정도 명성을 얻게 된 모양이다. 그런 연단의 시간이야말로 작가에게 꼭 필요한 요소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토바이어스 울프 작가는 말미에 화자와 비슷한 시기에 모교를 떠난 또 다른 탕자 학생주임 메이크피스(Makepeace; 이름 한 번 기가 막히지 않는가, 우리는 모두 평화를 원한다) 선생님의 비사를 준비한다.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는 법이지.

 

항상 듣는 말이지만, 작가와 작품은 꼭 분리하라지. 하지만 <올드 스쿨>을 읽으면서도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한 때 탕자였던 토바이어스 울프 작가의 그림자가 도처에서 보이니 말이다. 그게 과연 가능할 지에 대해서도 나는 의문이다. 이러니 우리 책쟁이들이 신성시하는 문학의 본질을 밑바닥까지 꿰뚫은 울프 쌤의 <올드 스쿨>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내가 처음 만난 울프 쌤의 <올드 스쿨>은 ‘old school’다운 저저자의 문학에 대한 고해성사다.

 

[뱀다리] 울프 쌤이 하도 헤밍웨이에 대해 절절하게 분석해 주셔서 도저히 그의 책을 다시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제 다 읽기도 전에 예전에 어디선가 받아서 고이 모셔 두었던 <킬리만자로의 눈>을 찾아서 허겁지겁 읽기 시작했다. 어쩔 수가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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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나무 2019-04-16 11: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안그래도 레삭매냐님의 이런 리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ㅎㅎㅎ
존 가드너의 소설창작 책에서 이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도 들어서 느므 궁금했었거든요.
저는 작가의 단편집을 기다리고 있긴 한데....
이 책도 문학에 대한 소설이라 넘길 수가 없겠네요.

레삭매냐 2019-04-16 13:28   좋아요 1 | URL
아하~ 설해목님은 다른 루트로 울프 쌤
에 대해 알게 되셨군요.

<파라오의 군대> 그리고 <디스 보이즈
라이프>, 단편소설집 등의 출간을 기다
려 BoA요.

이렇게 출간되어 너무나 좋네요...

뒷북소녀 2019-04-28 12: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티커 어떻게 붙여져 있는지 궁금하네요.ㅋ 그걸 깨알같이 발견하시다니요.

레삭매냐 2019-05-10 13:52   좋아요 0 | URL
워낙 티가 나서 책을 보면 바로 알 수가
있답니다 ㅋㅋㅋ

앞의 하나 그리고 뒤에 하나씩 있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