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 유령 이야기
아룬다티 로이 지음, 김지선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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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인도를 민주주의 국가로 부를 수 있을까? 내가 아룬다티 로이의 <자본주의: 유령 이야기>를 다 읽고 난 뒤에 든 생각이었다. 누가 뭐래도 인도 국가 발전의 장애 요소는 바로 카스트 제도다. 그 카스트 제도에도 들지 못하는 80%에 달하는 달리트 계급의 이익은 그런데 도대체 누가 보장해 주는가? 한국에서도 소득의 양극화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 때문에 말이 많지만, 인도의 경우는 스케일이 다르다.

 

인도에서처럼 한국에서도 재벌이 만들어낸 소비의 카르텔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삶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가 재벌이 만들어낸 소비재 없이 살 수 있을까? 재벌이 만든 휴대폰과 통신망으로 쇼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소비하고, 그들이 만든 영화를 그들의 상영관에서 끊임없이 소비하고 있지 않은가. 물론 영화값을 능가하는 팝콘과 음료수는 물론이고. 모든 소비재의 영역에서 우리는 재벌의 세밀하게 엮어 놓은 그물망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아룬다티 로이가 지적하는 인도의 경우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몇몇 재벌이 정치와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그물망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촘촘하고 교묘하게 구성되어 있다. 인도 정부는 공공의 이익을 도모하는 핑계로, 공공재를 재벌 그룹에게 넘겨주고 정권 연장을 획책한다. 뭐 그런 방식은 신자유주의 시스템이 작동하는 어디서고 유효하다. 문제는 사람이 생명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물, 전기 에너지 그리고 거주까지도 모두 통째로 사회 기득권층의 손아귀에게 달려 있다는 점이다.

 

25만 명에 달하는 인도 농부들이 그렇게 자랑스럽게 떠들어낸 마이크로 금융의 덫에 사로 잡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자본이란 큰 돈이건 작은 돈이건, 빌리는 순간부터 채무노예를 양산해 낸다는 걸 그들은 미처 몰랐을까. 댐을 만들면서 삶의 터전을 잃은 수백만명의 사람들의 경우는 또 어떤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개발이라는 명목 아래 진행되는 홍보전을 위해, 선진국에서 만들어진 비영리재단 혹은 비정부기구라는 해괴한 단체들(주로 거대기업의 후원 아래 조직되었고,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는지 철저하게 비밀에 쌓여 있다)이 앞장서서 특정한 프로파간다를 만들어낸다고 저자는 냉혹하게 지적한다. 그들이 정말 일반 대중의 복리증진을 위해 그런 선전을 하고 있는 걸까?

 

아룬다티 로이가 냉정하게 비판하는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핵심은 바로 소비와 전쟁이다. 자본주의 3.0이라는 해괴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구호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자본주의 시스템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무언가를 맹목적으로 소비하라고 부추긴다.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인지 아닌지는 알고 싶지도, 알 필요도 없다고 말한다. 멀쩡한 휴대폰을 2년 약정 주기에 맞춰 노예계약을 갱신하는 것이 쿨한 것이고, 자동차 역시 장기 할부기간이 끝나기 전에 번쩍이는 광택을 내는 새 자동차로 바꾸라고 텔레비전 CF를 통해 세뇌한다. 고화질 소니 텔레비전이 가장 좋았던 시절은 구석기 시대의 이야기가 되었다. HD 텔레비전은 물렀거라, 새로운 UHD 텔레비전이 나왔으니 어서 돈을 털어 새로운 모델을 집에 설치할지라. 그런데 그렇게 감당도 되지 않는 고화질 텔레비전을 구입해서 고작 해봐야 먹방이나 걸그룹의 군무를 보는 것으로 내 삶의 질이 획기적으로 향상될지 나는 궁금하다.

 

그나마 자본주의 한 축인 소비는 이해해 줄만하다. 그런데 다른 하나인 전쟁은? 냉전시대 구 소련의 남하를 막기 위해 미국은 전략 파트너로 파키스탄을 점지했다. 물론 치열한 냉전이 끝나자마자 소용이 다한 파키스탄은 미국에게 버림받았고, 지금은 아프간 게릴라들의 전초기지가 되어 온갖 풍상을 겪고 있는 중이다. 이번 대중국 봉쇄작전의 첨병으로는 인도가 간택을 받았다. 미국이 어디 그렇게 간단한 상대였던가? 바로 옆의 숙적 파키스탄과 핵전쟁의 일보 직전까지 갔던 인도는 미국의 전략적 파트너이자 미국산 무기를 다량으로 구매하는 고객으로 변신했다.

 

인도의 아픈 손가락인 카슈미르의 경우를 보자. 주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무슬림 인구의 분포도를 볼 때, 카슈미르는 극우 힌두 민족주의자들이 목소리를 내는 인도가 아니라 파키스탄으로 귀속을 되어야 했다. 하지만 어디 정치적 현실이 그러하던가. 인도 군인들의 대다수가 배치되어 돌멩이 투석전을 벌이는 카슈미르 주민들과 대치 상태는 어쩌면 인도 정부가 원하는 그림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게 상시적 적대국인 북한이 핵무기로 한국의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면, 인도에게는 항상 불안정한 상태의 카슈미르와 이웃한 무슬림 적국 파키스탄이 있다. 어디서 많이 본 적대적 공생관계가 연상되지 않는가.

 

대규모 학살 사태를 불러일으킨 구자라트 사건의 배후에 무슬림 테러리스트를 후원하는 파키스탄 정부가 있다며 인도 정부는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과거 자신들이 방글라데시 독립전쟁 당시 동벵골 테러리스트를 지원했던 일이나, 스리랑카 내전 당시 타밀일람 해방 호랑이(LTTE)들을 지원했던 일에 대해서는 망각한 모양이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내로남불이 아닐 수 없다. 카슈미르 사태에 대해 합리적인 목소리를 내는 아룬다티 로이에 대한 협박과 위협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수위조절이 가능한 일상적 불안이야말로 공포 마케팅으로 먹고 사는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히트 상품이라는 저자의 일침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아룬다티 로이 역시 대형 출판사로부터 인세를 받아 먹고사는 생활인이라고 작가는 담담한 목소리로 고백한다. 하지만 작가들의 그런 침묵의 카르텔에 동조하는 대신, 당당하게 잘못된 일은 잘못 되었다고 그리고 민중의 연대야말로 그런 카르텔에 저항하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주장하는 저자의 의견에 전적으로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자, 이제 질문의 시간이다. 이게 나라냐? 그렇다면 우리는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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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18-11-16 13: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룬다티 로이의 <작은 것들의 신>을 가슴 절절하게 읽었어요. 그녀의 소설을 더 읽고 싶지만 소설은 딱 1개 더라구요... 서평 읽고 이 책도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글 잘 읽었습니다.

레삭매냐 2018-11-16 14:01   좋아요 0 | URL
아룬다티 로이의 신작 소설이 작년엔가
나왔다고 하던데 국내에서 출간 소식은
아직 요원해 보이네요.

번역이 늦는 걸까요?

coolcat329 2018-11-16 14: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소설이 나왔군요 ~ 기다려 봐야겠어요. 감사합니다.

레삭매냐 2018-11-16 15:35   좋아요 1 | URL
번역서가 얼른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대장물방울 2018-11-16 15: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고, 이 정도일 수가 있나 했어요. 정말 크으.

레삭매냐 2018-11-16 16:11   좋아요 0 | URL
아룬다티 로이가 쓴 <우리가 모르는 인도
그리고 세계> 라는 책도 있다고 하던데...

<자본주의>, <생존의 비용> 이렇게 해서
3부작이 아닌가 싶네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