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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괴수 무벰베를 찾아라 - 와세다 대학 탐험부 특명 프로젝트
다카노 히데유키 지음, 강병혁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딱 10년 만에 다카노 히데유키의 <환상의 괴수 무벰베를 찾아서>를 다시 읽었다. 그리고 일본 인문학의 위력을 실감할 수가 있었다. 동양에서 가장 먼저 서구 문물을 받아 들여 개화에 나선 일본은 메이지 시대 지식인들이 나서서 서구의 문화를 받아들이는데 앞장섰다. 탈아입구라는 당대의 구호는 훗날 제국주의 침략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어쨌든 우리 역시 일본 인문학의 세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태다.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는 낭만주의 같은 어휘만 하더라도 전적으로 일본에서 번역된 말이 아니던가.
다카노 히데유키의 콩고 드래곤 프로젝트(CDP)의 모험을 다룬 <환상의 괴수 무벰베를 찾아서>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다 또 삼천포로 빠졌다. 와세다 대학 탐험 동아리 멤버들은 콩고 텔레호에 출몰한다는 모켈레 무벰베라는 괴수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11인조 대원들이 팀을 꾸려 머나먼 콩고로 출발한다. 그런데 이 모험이 무려 30년 전에 이루어진 일이라고 한다. 가기 전에 비디오 카메라 같은 괴수의 존재를 확인하게 되면 촬영할 각종 기자재들을 일본 굴지의 기업들로부터 협찬 받았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이윤창출에 혈안이 된 기업들이 콩고에 가서 이름도 해괴한 모켈레 무벰베라는 괴수를 찾는 프로젝트에 소중한 자산을 기증한다고? 갑질과 부동산 투자로 불로소득이 일상화된 2018년 대한민국에서는 씨도 먹히지 않을 이야기다. 그런 무모한 계획을 세운 일단의 이십대 청년들의 패기도 그렇지만, 그런 청년들의 모험을 후원한 기업들의 미래에 대한 투자가 나에게는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두 개 팀으로 나뉘어 파리와 나이로비를 거쳐 콩고의 이웃 자이르의 킨샤사에 집결한 탐험 대원들은 콩고의 수도 브라자빌에서 정부 관리들을 상대로 장기 체류와 탐험 허가를 받는데 수일을 소요한다. 사회주의 독재국가의 관료 시스템에 대한 다카노 히데유키의 냉철한 분석이 돋보이는 서술이 이어진다. 젊은 나이에 콩고를 대표하는 학자가 된 아냐냐 박사(이후 닥터로 통칭한다)와 삼림청 직원에게 일당을 지급한다는 조건으로 마침내 허가를 받는데 성공한 일행은 임폰도와 에페나 그리고 텔레 호수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로 알려진 보아에 도착한다. 수상쩍은 일본인 탐험대로부터 돈을 뜯기 위한 프로젝트에는 정부 관리 뿐, 아니라 보아 마을의 사람들도 가담한다. 우여곡절 끝에 모켈레 무벰베가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진 텔레 호수에 도착한 탐험대. 고난과 역경 그리고 사기로 점철된 여정을 뒤로 하고, 감격에 젖기도 전에 바로 24시간 감시 체제를 돌리기 시작한다.
텔레 호수를 찾은 와세다 대학 CDP팀의 실패는 사실 처음부터 예고된 실패였다. 우선 식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에베레스트에 도전하는 산악가들이 현지인 셰르파들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것처럼, CDP팀 역시 현지 보아 마을 출신 가이드와 포터들에게 의존해야만 했다. 수달, 침팬지 그리고 고릴라까지 잡아먹는 투혼을 보여준다. 열대 지방에 적응되지 않은 대원들에게 말라리아는 치명적이었다. 어느 대원은 탐험 기간 내내 말라리아에 걸려 누워 있기도 하지 않았던가. 가네코 씨는 텔레 호수에서 철수한 뒤, 케냐에서 말라리아 때문에 사경을 헤매기도 했다. 결국 경험을 통해 리더 다카노가 깨닫게 된 것이지만, 모켈레 무벰베 혹은 디조노라 불리는 미확인 괴수의 실체는 인근 부족의 전승 혹은 신화에 기인한 게 아니었나 하는 점이다. 인근 피그미족이 모켈레 무벰베의 고기를 먹고 모두 전멸했다는 확인되지 않은 전승 속에 현대인들로서는 알 수 없는 비밀이 숨어 있던 건 아니었을까.
사실 40일간의 정글생활을 하는 동안 CDP 대원들을 가장 괴롭혔던 건, 고질적인 식량부족이나 치명적인 말라리아가 아니라 모켈레 무벰베를 찾을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불확실성과 24시간 괴수를 추적해야 하는 무려와 권태였다. 전자의 경우야 처음부터 예고된 사실이었지만 후자는 정글 라이프에 적응하지 못한 현대인들의 실존적 문제가 아니었을까.
자, 다음은 다카노 씨의 콩고 탐험기가 품은 비유와 상징에 대해 생각해 보자. CDP는 확실히 처음부터 황당한 계획이었다. 하지만 일단의 와세다 대학 출신 청년들은 그런 황당한 계획이 세워지자 기대 이상의 촘촘하면서 세부적인 계획을 수립했고, 실천에 옮겼다. 1980년대는 태평양전쟁 패전의 잿더미에서 불사조처럼 일어나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의 기적을 이룬 국가 일본이 승전국 미국과 소위 경제전쟁의 방식으로 맞짱을 뜬 시대였다. 플라자 합의로 장기간의 불황의 서막이 막 시작되려던 순간이긴 했지만, 우리 민족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라는 정신적 자신감이 일단의 청년들로 하여금 콩고 탐험에 나서게 된 든든한 뒷배경이 아닐까 싶다. 일단 국가 차원의 어젠다가 세워지면 거의 맹목적으로 벌떼처럼 달려들어 이룩해낸 일본의 저력이 엿보였다. 하지만 고도 경제성장 이후, 국가가 지향하는 방향성을 상실하고 오늘날까지 표류하고 있지 않은가. 다카노 일행이 확인하려고 했던 모켈레 무벰베처럼 말이다.
그런 복잡한 셈법을 차치하고서라도, 다카노 히데유키의 모켈레 무벰베 탐험기는 충분히 유쾌했다. 젊은 날에 잡을 수 없는 무지개를 찾아 그런 황당무계해 보이는 탐험이라도 하지 않았다면 그것 또한 아쉬운 일이 아니겠는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