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워 문 - 거대한 부패와 비열한 폭력, 그리고 FBI의 탄생
데이비드 그랜 지음, 김승욱 옮김 / 프시케의숲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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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건국부터 폭력으로 점철된 나라였다. 독립전쟁으로 영국제국의 아메리카 식민지는 민주공화국이 되었다. 그 이후의 역사도 서부개척이라는 미명 아래 전개된 인디언들의 학살 그리고 남과 북으로 갈려 내전까지 치른 찬란한 역사를 자랑한다. <플라워 문>의 저자 데이비드 그랜은 명실상부한 세계의 패자가 된 미국의 흥청거리던 1920년대 오클라호마 오세이지 카운티에서 벌어진 기묘한 연쇄살인을 <플라워 문>에서 다룬다.

 

초반부터 흥을 깨기는 그렇지만, 그랜 저자의 <플라워 문>은 내 예상보다 못했다. 무언가 강력한 한 방을 기대했는데, 검은 황금이 터진 오클라호마 오세이지 카운티에서 광물자원으로 벼락부자가 된 오세이지 인디언들을 죽이고 각종 이권을 차지한 백인들의 이야기는 색다를 것도 없었다. 미국을 사실상 지배해온 백인들은 캔자스에서 대대로 살아오던 오세이지 부족을 강제로 불모의 오클라호마로 추방하다시피 해서 내쫓지 않았던가. 훗날 검은 황금이라는 석유가 오세이지 부족이 새롭게 뿌리를 내린 영토에서 솟아 나오자, 그들의 자원을 빼앗기 위한 치열한 암투가 벌어진 것이다.

 

근 100년이 지나 모두의 기억에서 사라진 사건을 저자는 새로운 시각에서 추적한다. 애나 브라운의 충격적 죽음에서 비롯된 연쇄살인 사건의 배후에는 파렴치한 백인 피후견인들의 음모가 도사리고 있었다. 문제는 유력한 용의자이자 ‘오세이지 힐스의 제왕’이란 별명을 가진 윌리엄 헤일이 오클라호마의 유력자들을 포섭해서 사건의 진상을 밝히려는 이들의 노력을 무산시켰다는 점이다. 애나 브라운의 두개골을 뚫은 총탄의 부재부터 시작해서, 거의 모든 이들을 뇌물과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서 사건에 대한 수사를 방해했다. 연방정부로 사건을 가져 가려는 의로운 변호사부터 시작해서, 많은 이들의 헤일이 고용한 불한당 출신 킬러들에게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사실 당시만 하더라도, 연방국가 미국에서는 주 경계를 초월한 연방수사국/경찰권에 대한 공포가 존재했던 모양이다. 에드가 후버가 이끄는 수사국이 FBI로 변신해 가는 과정을 그린 점도 흥미롭다. 그전까지만 해도 ‘카우보이’ 스타일의 치안관이나 보안관이 무법자들을 상대하는 게 서부의 일상이었다. 하지만, 체계적인 정식 수사교육을 받고 소위 엘리트 수사관들의 시대가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후버라는 인물 자체가 문제긴 했다. 어쨌든 후버는 톰 화이트라는 걸출한 수사관을 오세이지 카운티에 파견해서 사건 해결에 나선다.

 

오세이지의 진짜 악당 빌 헤일의 파렴치한 행동은 확실히 도를 넘었다. 검은 황금으로 막대한 부를 마련한 오세이지 인디언들을 상대로 살인교사, 독살 그리고 다이너마이트까지 동원한 폭살에 이르기까지 상상을 초월하는 범죄가 난무했다. 그런데 어떤 면에서 보면, 검은 황금은 몰리 버크하트 자매를 비롯한 오세이지 부족들에게 횡재가 아니라 재앙이 아니었던가. 미국은 아메리카 대륙에 원래 살던 인디언들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석유 시추로 막대한 재산을 얻게 된 그들이 재산권을 행사할 만한 지능과 판단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생각한 정부는 피후견인 제도를 도입했다. 자신의 후견인들의 재산에만 눈독을 들인 그들은 그야말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세이지 부족을 죽이는데 혈안이 되었다. 나중에 톰 화이트 수사단은 마침내 빌 헤일이 연쇄살인사건이 주범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뒤에도, 배심원 재판에 나설 백인 남성을 구하는데 애를 먹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인디언들을 위한 정의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처럼 지문이나 사건현장 검증 같은 과학수사가 일반화되었다면 빌 헤일 무리의 사법농단을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만 하더라도, 열차강도가 출몰하던 그런 시절이 아니었던가. 마지막 3부에서는 억울하게 죽어간 오세이지 조상들의 신원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후손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오세이지 인디언을 상대로 가공할 범죄를 저지른 빌 헤일을 비롯한 악당들은 일급살인죄를 면하고, 결국 가석방되지 않았던가. 저자는 “역사는 무자비한 판관”이라고 썼는데, 과연 그 무자비한 판관이 억울하게 죽어간 24명의 사람들과 그들의 후손이 납득할 만한 재판결과를 내놓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역사는 언제나 승자와 기득권층의 편이 아니었던가.

 


개인적으로 이 논픽션에서 가장 경이로운 장면 중의 하나는 정부가 사람들에게 인디언들에게 사들인 선착순으로 땅을 나눠 준다는 말에 말과 마차를 타고 질풍노도처럼 사람들이 광활한 대지를 달리는 장면이었다. 그 와중에 벌어진 불상사는 그야말로 지옥도였다. 그리고 오세이지 인디언들의 귀중한 재산을 갈취하기 위해, 배심원들을 매수하고 지역 여론을 유리하게 조성하기 위해 빌 헤일을 비롯한 악당들이 저지른 사법방해는 상상을 초월했다. 기레기급의 언론들까지 가세해서 인디언 살해를 ‘동물학대’라고 표현한 선정보도 앞에서는 정말 할 말을 잃었다. 연방수사에 필요한 자금을 일부 오세이지 사람들이 부담한 점도 이해할 수가 없다. 언제부터 공공의 질서를 해치는 범죄에 대한 수사를 피해자들이 부담했단 말인가. 세계에서 가장 민주정과 인권이 발전했다는 미국에서도 지난 세기에 이런 말도 되지 않는 일들이 무시로 벌어졌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플라워 문>을 읽는 도중에 얻은 소득 중의 하나다.

 

데이비드 그랜이 쓴 <플라워 문>의 영화 판권은 500만 달러에 팔렸다고 한다. 이렇게 매혹적인 폭력의 역사를 할리우드가 그냥 둘 리가 있나.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각색으로 오스카상을 받은 에릭 로스가 작업 중이라고 한다. 마틴 스코시즈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내년 봄부터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그랜의 논픽션이 영화에서는 어떻게 그려질 지 자못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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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득 2018-10-20 00: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잃어버린 도시 Z‘의 작가가 쓴 책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흥미 있었던 윌리엄 킹 헤일의 사건을 다루고 있어서 저도 꼭 한 번 읽어봐야지 했던 책인데 벌써 읽으셨군요^^

레삭매냐 2018-10-20 21:39   좋아요 0 | URL
기대를 좀 했는데, 생각보다는 별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