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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노동 - 유연해진 노동시장에서 전망 없이, 뼈 빠지게 일하기
귄터 발라프 지음, 이승희 옮김 / 나눔의집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당신은 가난하기 때문에 일찍 죽어야 한다. 신자유주의 시대, 특히 독일에서 하르츠개혁으로 대변되는 ‘성공적’인 임금하락정책 때문에 오늘도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들의 소득증대를 위해 뼈 빠지게 일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보다 언제라도 사회적 빈곤층으로 전락할 수 있는 노동자들에게 절실한 표어는 없을 것 같다.
그저 한숨만 나올 뿐이다. 그동안 윤리적 소비를 하는 호모 컨슈머티쿠스라고 자부해 왔건만, 내가 하는 소비는 윤리적인 것이 전혀 아니었다. 그 좋아하는 책을 인터넷에서 주문해서 배송 받는 과정에서도 택배노동자들에 대한 착취가 숨어 있었다. 싸고 편리하다는 이유 때문에 내가 아닌 누군가의 수고와 노동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귄터 발라프의 <버려진 노동>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깨닫게 됐다.
이미 그 전에 발라프 아저씨가 쓴 두 권의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취재 스타일을 정확하게 알게 됐다. 누구는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글은 쓰지 않는다고 하던데, 이 양반은 자신이 직접 암행취재하지 않은 글은 발표하지 않는다는 것 같다. 물론 이제는 연세도 드시고, 젊은 시절처럼 직접 현장에 잠입해서 취재하는 게 상대적으로 어려워졌고, 얼굴도 많이 팔려서 자본가들의 경계대상이 되어 더 이상은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발라프의 생각에 동조하고 연대하는 이들이 기꺼이 그를 대신해서 암행취재에 나섰다.
시작은 아마존과 잘란도라는 인터넷 쇼핑몰 기업이다. 유통공룡 아마존의 한국 상륙을 오매불망 기다려 왔는데, <버려진 노동>에 등장하는 저임금 노동자에 대한 악랄한 착취 방법을 보고서는 그야말로 오만정이 떨어져 버렸다. 마치 스타벅스처럼 말이다. 비용절감이라는 지상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아마존 역시 다른 기업들과 다를 바가 없이 노동자들을 지독한 속도전에 내몬다. 리시버, 스토워, 피커 그리고 패커로 분류된 물류센터의 직원들은 영화 <모던 타임즈>에 등장하는 초기 자본주의 시대 노동자들처럼 쉴 새 없이 움직여야 한다. 상호감시와 밀고는 기본이다. 별 것도 아닌 타이틀과 수당을 얻기 위해 상호간의 연대를 불가능하게 하는 게 기업의 모토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노동자들의 인권이나 건강 따위는 논외의 문제다. 오로지 수익만이 그들의 목표인 것이다. 때마침 한겨레에 실린 로켓배송으로 유명한 쿠팡맨들의 노조 관계기사를 읽었는데, 새벽배송 서비스 도입이라는 놀라운 시도를 접하게 됐다. 도대체 누굴 잡으려고? 노동자들을 그저 도구로 인식하는 기업경영 방식은 독일이나 한국이나 매한가지구나 싶다.
케인지언 스타일의 수정자본주의를 배격하고, 애덤 스미스 시절의 자유방임주의야말로 만병통치약이라는 신자유주의 물결이 시장을 뒤덮은 뒤, 우리에게 닥친 것은 노동자는 인간이 아니라 고용주들의 돈벌이를 위한 하나의 도구 혹은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냉혹한 현실이었다. 능률과 효율 그리고 무한한 이윤의 증식을 위해, 국경을 초월한 자본은 유럽 같은 선진사회 뿐 아니라 제3세계를 넘나들며 자가 증식을 추구한다. 신자본주의 세례를 받은 소위 자본주의 3.0 시대의 맹렬한 전사들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모든 규제의 철폐를 원한다. 최근 벌어진 사립유치원 비리사태만 보더라도, 2조원에 가까운 정부 보조금을 받은 이들이 왜 그렇게 그들이 감사를 받지 않으려고 갖은 방법을 써서 저항했는지 잘 알 수 있다. 발라프 아저씨가 사는 독일도 마찬가지다. 다임러벤츠 사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하르츠보조금을 받는 다는 걸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전 세계에서 누구나 타고 싶어 하는 최고급 브랜드 자동차를 만드는 노동자들이 가까스로 연명할 수준의 하르츠보조금을 받으면서 일한다는 게 상식적인가 말이다.
인터넷 경제의 활성화로 자유시장 경쟁 시스템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해진 마당에, 고용주/자본가들이 쥐어짜낼 수 있는 이윤의 창구는 역설적이게도 노동자들 밖에는 없다. 비용절감은 세계적 주제가 된지 오래다. 트럭이나 자재비, 창고비 같이 물류산업에 있어 꼭 필요한 고정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도 전력을 투구하지만, 이윤을 극대화하는데 가장 손쉬운 방법인 하청에 재하청, 그리고 개인사업자를 고용한 영업방식을 그들이 마다할 리가 있겠는가. 그나마 법을 준수하면서 그런다면 할 말이 없겠지만, 법을 다 지켜 가면서 그런 놀라운 이윤을 낼 수는 없다. 그 과정에서 당연히 기발한 아이디어가 속출하고, 대기업의 횡포에 저항하는 자영업자들을 도태시키는 건 이제 일상이 되어 버렸다. 우리 노동자들에게 노동은 생존을 위한 유일한 수단인데, 일자리를 빼앗는 건 사회적 사망선고가 아닌가.
자본주의 시스템이 영구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구조상 끊임없이 소비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내가 하는 소비는 과연 필요한 소비인가하는 생각을 해본다. 소셜네트워크란 새로운 마케팅 수단을 장착한 자본주의는 사방에서 항상 새로운 상품을 개발해서 사라는 광고를 메시지에 담아 송출한다. 최근 우리 동네 트레이더스에 품절대란을 빚은 에어프라이어기 열풍을 보니 이해가 갔다. 아니 예전에 에어프라이기가 없던 시절에는 해먹을 게 없었고, 불편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던가? 물론 아니다. 새로운 디바이스의 등장으로 삶이 어느 정도 편해졌을지는 몰라도. 어쨌든 우리 인간은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 팔기 위해 오늘도 과다한 정신노동에 시달린다. 대다수 노동자들은 소비에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 이러저러한 갑질과 갈굼에 시달리고.
귄터 발라프의 <버려진 노동>에 담긴 이야기들은 어쩌면 그렇게 한국의 상황과 빼닮았는지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한국의 기업가들이 이 책을 읽고 벤치마킹을 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이윤추구에 대한 그네들의 공감 능력은 나의 상상을 초월하는가 보다. 폭염이 물러가지 않은 여름의 끝물에서부터 이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찬바람이 드는 계절에 다 읽게 되었다. 그만큼 독서가 쉽지 않았던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언제나 그렇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직시하는 것 만큼 어려운 일도 없을 것이다. 귄터 발라프가 들려주는 독일의 현실을 한국의 그것과 대조해 보면서, 하나도 다를 게 없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노동자도 인간이다. 성경에도 나오듯이,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자. 책 택배가 좀 늦는다고 짜증을 내거나 하지 말아야겠다. 그런데 어제 밤에 주문한 데이비드 그랜의 <플라워 문>은 언제 오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