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선인간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8월
평점 :
절판


 


찬호께이. 처음 들어보는 작가의 이름이다. 홍콩 출신의 컴퓨터 프로그래머였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에 추리소설 작가로 변신해서 작가 활동 중이라는 프로필 소개를 읽는다. 찬호께이의 한자 이름을 읽어보니 진호기로구나. 진호기 씨의 <풍선인간>에는 모두 네 편의 단편들이 실려있다. 그리고 주인공은 초능력을 가진 킬러다. 딱히 그를 지칭하는 이름은 없다, 세간에 알려진 코드명 풍선인간 뿐.

 

탁월한 실적을 자랑하는 킬러 풍선인간은 어떤 점에서 보면 안티히어로다. 아니, 갑자기 덱스터 생각이 나는 거지. 악당들을 죽이는 연쇄살인마 덱스터를 악당의 범주에 넣어야 했던가. 선과 악의 구분조차 헷갈리는 21세기 문학판에 풍선인간이라는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했다. 일단 이 킬러는 접촉만으로도 상대방을 심근경색으로 죽일 수 있다. 어쩔 땐 그야말로 산산조각을 내기도 한다. 영화 엑소시스트에 나오는 그 유명한 장면처럼 피해자의 목을 360도 회전시켜 죽이기도 한다. 더 놀라운 건, 죽는 시간도 타이머처럼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흠, 정말 놀라운 능력의 소유자로군.

 

평소에 보면 보통 이하의 체력을 가진 남자지만, 풍선인간은 이런 자신만의 고유한 기술을 이용해서 업계에서 나름 이름을 날리고 있다. 그의 서식지는 교외의 외딴 단독주택이다. 집주인 할아버지에게는 재택근무를 한다는 말로 적당이 둘러친다. 문제는 이웃에 동업자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선수는 선수를 알아본다고, 바로 경계모드에 돌입한 풍선인간은 그야말로 끝내주는 솜씨를 총기를 사용하는 이웃을 가볍게 제압한다.

 

아, 그전에 원래 풍선인간의 탄생을 다룬 작품도 마땅히 이 책에 실렸어야 했지만 그놈의 저작권 문제 때문에 싣지 못했다고 한다. 그건 마치 마블 태생의 스파이더맨이 소니 픽처스에 영화 판권이 팔려 그동안 어벤저스에 합류하지 못하다, 소니의 양해를 얻어 다시 돌아온 것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

 

두 번째 이야기는 비몽사몽 간에 졸면서 읽어서 무슨 내용이었더라 싶다. 이래서 모름지기 책은 맑은 정신에 읽어야 하는 법인데. 거싱이 형사와 대결하는 장면이었는데 좀 인상적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패스!

 

3번과 4번 소설에서 진호기 씨는 자신이 가진 단편소설 역량의 최대치를 보여준다. 이 작가는 무수한 떡밥을 사전에 깔아둔다. 장편도 제법 쓰는 모양인데, 군더더기를 제거하고 정확하게 타겟을 공략하는 단편쓰기를 선호한다지 아마. 풍선인간의 사건 의뢰는 재벌가의 세 번째 부인이자 글래머 여자스타 출신 딩제원으로부터 제안된 것이다. 자신의 남편이 아무래도 자기보다 전처 소생의 십대소녀 궈치란을 더 사랑하는 것 같은데, 그녀를 제거해 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풍선인간은 그전에 이미 사건을 하나 의뢰받았다는 밑밥을 좍 깔아둔다. 아무래도 후반의 반전을 도모하는 낌새가 느껴진다.

 

남편이 암으로 곧 죽을 처지인데, 남편의 사랑이 딸이 아닌 자신에게 온전하게 돌아와야 한다며 그야말로 사랑에 목숨을 건다. 물론 남편이 죽은 다음에 스텝도터와 나누어 가져야 할 막대한 유산은 보너스다. 그런데 풍선인간은 기묘하게도, 대개의 경우 킬러들이 요구하는 선금이나 보수 대신, 딩제원과 하룻밤을 자고 싶단다. 이런 응큼한 킬러 같으니라구. 결국 너도 다른 놈들과 다를 게 없었구나. 딩제원은 수치심을 느끼면서도, 예전에 영화계 스타가 되기 위해 썼던 방법을 수용한다. 자자, 그렇게 흥분하시진 말고 이야기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한 번 읽어 보시라. 대단히 재밌으니.

 

마지막에 배치된 <마지막 파티>는 타임테이블을 교묘하게 꾸민 진호기 씨의 능청맞은 작법이 그야말로 독자의 뒤통수에 묵직한 한 방을 날린다. 임대업으로 은퇴 후, 소일하는 할아버지네 집을 찾은 귀여운 손녀손자 전전과 샤오바오는 바로 이웃집에 사는 새로운 도시전설 풍선인간과 조우하게 된다. 그의 본명이 아청이었던가. 눈 빠른 독자라면 그가 자신의 업계에서 통용되는 실명을 집주인 어르신에게 공개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정도는 알 수 있겠지. 예상대로 탐정놀이에 흠뻑 빠진 두 꼬맹이와 집주인 어르신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냉혹한 킬러 풍선인간은 세 가족을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해치울 것인가.

 

대머리 아저씨의 골치 아픈 신자유주의 전쟁을 읽다 만난 저지 코진스키의 <정원사 챈스의 외출>과 진호기 씨의 <풍선인간>은 그야말로 한 사발의 청량음료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지 항상 독서가 진지근엄으로 가야 하는 건 아니니까. 때로는 요렇게 가볍고 발랄한 스타일의 책들도 읽어 주어야 독서라는 장거리 달리기가 훨씬 더 즐겁고 뭐 그런 게 아니겠는가 말이다. 일단 무엇보다 재밌으니 한 번 읽어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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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나무 2018-08-29 13: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빨간책방 팟캐스트를 통해 이 작가를 알게 되었네요.
저자의 <13.67>이란 소설로 이다혜 기자가 골라온 책으로 기억하는데 엄청 칭찬을 하더라구요.
두꺼워서 읽을 엄두는 내지 못하고 찜만 해두었는데... 이런 단편집이 있다니... 요것부터 읽어봐야겠어요. :)

레삭매냐 2018-08-29 13:46   좋아요 1 | URL
오호 그렇군요.

전 어제 받아서 바로 다 읽었는데 상당히
갠춘하더라구요. 요런 스탈 아주 마음에
듭니다.

발라프 아저씨 책 읽으면서 신자유주의
만행에 대해 분노하다가 읽으니 상큼한
그런 느낌이랄까요.

빨책은 요즘 거의 안 들어요. 너무 수다가
많아서리. 예전에 즐겨 들었었는데 말이죠.
책 이야기에 좀 집중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