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로맹 가리 지음, 김남주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평점 :

오늘 새벽에 <새페죽>을 다 읽고 나서 리뷰를 쓰려고 내가 이 책을 언제 샀나 싶어서 기록을 검색해 보다 놀라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그러니까 내가 이 책을 두 번 산 것이었다. 아니 이미 알고 샀었나. 그전에 개정판으로 한 번, 이번 양장 특별판으로 한 번 구매했던 것이었다. 같은 책을 두 번이나 사다니. 어쨌든 만날 표제작만 읽다가 이번에는 드디어 다 읽는데 성공했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지난 주에 도서관에 빌린 로맹 가리의 인터뷰집 <내 삶의 의미>를 읽기 시작했는데, 천상 드골 주의자였던 레지스탕스 출신 전쟁영웅이자 (프랑스) 영토 해방 전사였던 영원한 이방인 로맹 가리의 삶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됐다. 러시아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나, 폴란드로 이주했다가 결국 꿈에 그리던 프랑스 니스에 안착해서 프랑스인이라는 정체성으로 살 수 있었던 남자. 나중에는 외교관으로 미국 LA 총영사로 한 10여년을 미국에서 살았다고 했던가. 지금 같이 읽고 있는 중인 <흰 개>에서는 뜨거웠던 1968년 혁명시절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접할 수 있었다.
자긍심 강한 이 레지스탕스 영웅의 페르소나는 소설 곳곳에 무시로 등장한다. 표제작 <새페죽>에서는 속세를 떠나 페루의 어느 바닷가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화자로 등장하기도 하고, 작가로 분신한 페르소나는 아이티 바닷가에서 서구 영웅 신화를 재현하기 위해 상어가 득실거리는 작살총 하나만 달랑 들고 뛰어 들기도 한다. 고향을 떠나 이발사로 죽은 탐험가는 고향의 옛사랑에게 줄기차게 세계 곳곳의 진귀한 우표가 붙은 엽서들을 발송하는데, 알고 보니 그가 보낸 엽서의 우표들은 고스란히 옛 사랑의 현재 남편의 우표 컬렉션이 되었더라는 웃기 못한 현실과 마주하기도 한다. 결국 우리 인간들이란 우리가 보고 싶어하는 현실만 보면서 살게 되더라는 그런 말인가.
자신의 외교관 경험을 녹여낸 <류트>에서는 이스탄불 바자의 매력적인 골동품 시장을 누비는 멋쟁이 현직 외교관의 풍류를 읽을 수가 있었다. 절대 돈을 아끼는 것이 아니라, 예술적 가치 혹은 아우라를 지닌 진품에 대한 강렬한 욕망이 앞서는 주인공은 외교관 나리의 품위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잠시 망각했던 모양이다. 물건은 사지도 않으면서, 내내 그렇게 아이쇼핑만 해댔으니 말이다. 어쩌면 자신의 딸이 지적한 대로 만들어진 예술품에 대한 감상이 주는 만족보다 자신이 직접 무언가를 창조해내는 그런 캐릭터가 되어야 하는 게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는 잘 아는 상인에게 선물로 받은 ‘류트’를 연주하게 되었더라는 그런 설정. 왠지 트란 안 훙 감독의 <그린 파파야>에 나오는 그런 끈쩍끈쩍하면서도 관음적인 느낌이 스물스물 피어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이 이야기를 트란 안 훙이 연출해 낸다면 어떤 식의 영화가 될지 문득 궁금해지기도 했다.
<몰락>에서는 미국의 전설적인 노조지도자의 복귀를 앞두고 그의 옛 동지들은 시멘트에 공구리쳐서 바다에 수장시킨 이들이 몇 톤이나 되고, 산 사람을 진짜 “그리스” 조각으로 만들 정도로 깡다구로 무장한 호보켄의 거인 마이크 사파티에 대해 로마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갑론을박이 끊이지 않는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 동료들이 다시 만난 사파티는 진짜 행위예술가가 되어 있는 게 아닌가. 그들은 눈물을 머금고 권총의 방아쇠를 당기고, 사파티를 소재로 해서 또다른 작품을 창조해 내기에 이른다. 진짜 무시무시하면서도 가치 전복적인 구성이 아닌가. 소설집 <새페죽>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에 하나였다.
진짜와 가짜 예술품을 판별해 내는 주인공에게 놀라울 정도로 센 어퍼컷을 먹이는 <가짜>는 또 어떠한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품은 더 이상,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는 예술품으로서의 고유한 가치보다 금전적으로 매겨지는 자산이 되어 버렸다. 그런 산업에 중심에는 범람하는 위작을 진품으로부터 구별해내는 감별사(왜 난 여기서 갑자기 병아리 감별사가 떠오른 거지?)가 반드시 필요해졌다. 주인공은 절대 가품을 진품으로 판별해 달라는 요청을 들어주지 않는 예술산업 종사자로서의 품위를 지킨다. 그러자 그에게 앙심을 품은 의뢰자는 그가 가장 아끼는 보물이 ‘가짜’임을 증명하는 사진을 그에게 배달한다. 그가 사랑하는 아름다움이 사실은 철저하게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그에게 폭로해 버린 것이다. 복수라는 치졸함 뒤에 숨은 행위와 우리 눈에 보이는 미추의 구별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가에 대해 다시 한 번 사유하게 만들어주는 수작이었다.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어온 가치가 전복되는 기가 막힌 순간에 대한 또다른 포착은 <도대체 순수는 어디에>에 등장한다. 자본주의 광풍에 휘말려 원시적 순수함을 모두 상실해 버린 타히티 파페에테에서 주인공을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좀 더 순수함이 고갈되지 않은 마르키즈 제도의 타라토라에 정착했다고 했던가. 문제는 한 때 마르키즈 제도의 여러 섬을 지배했다는 추장의 딸 타라통가가 선의로 호두과자를 싼 천을 보내오면서 시작된다. 바로 그 천이 폴 고갱의 그림이라는 걸 확신한 내레이터는 자신만이 그 가치를 알아본다고 생각하고, 추장의 딸에게서 거금 70만 프랑을 들여 1억 프랑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천들을 사들였다. 막판에 그를 기다리고 있던 건, 타라통가가 탁월한 모작 화가라는 사실이었다. 누가 봐도 명백한 사기극이었지만, 추장의 딸이 그에게 천조각들을 사달라고 했던가? 화자 혼자 판단해서 그런 투자를 한 게 아니었던가. 이 단편에서는 지난주에 한국을 강타했던 러시아 보물선 돈스코이 호 인양에 뛰어든 수많은 개인 투자자들의 모습이 오버랩됐다. 그렇지, 어디에 순수가 존재한다고. 순수를 원하는 이들은 그저 타라통가 같은 선수들의 좋은 사냥감일 뿐.
<새페죽>에서 내가 주목한 주제는 바로 “전복의 미학”이었다. 일상대로 흐르는 이야기 속에서 묵직한 한 방을 준비한 로맹 가리의 기술에 감탄했다. 작가는 이미 자신의 삶을 통해 로맹 가리 그리고 에밀 아자르라는 구도로 당대 비평가들을 충격과 공포에 빠뜨리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렇게 다채로우면서도 전복적인 이야기들을 구술하려면 도대체 얼마만큼의 개인적 체험과 독서편력이 필요했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나의 로맹 가리 읽기는 순항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