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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맹 - 자전적 이야기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백수린 옮김 / 한겨레출판 / 2018년 5월
평점 :

너무 기대를 많이 했나 보다. 지난 주말 도서관에 입고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차까지 몰아 가면서 부리나케 빌려다 읽었다. 헝가리 출신 망명자로, 오스트리아 빈을 거쳐 스위스 뇌샤텔에 둥지를 틀게 되었다. 그게 아마 1956년이었나 보다. 그때만 해도 난민들에 대한 서구인들의 대접은 지금과 너무 달랐다. 21살의 젊은 엄마였던 아고타 크리스토프가 남긴 글을 보면 스위스 사람들은 헝가리 난민들에게 먹을 것과 돈을 쥐었다. 지금은 오로지 증오만이 보일 뿐이다. 심지어 난민 인정비율이 극도로 미미한 동방의 어느 나라에서는 난민을 받아 들였다간 나라가 결단날 거라는 유언비어까지 퍼지고 있는 중이란다. 기가 막히는구나.
헝가리를 떠난 날부터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적국의 언어들을 배우고 익히며 살아야했다. 빈에서는 아이에게 먹일 우유를 얻기 위해, 뇌샤텔에 정착해서는 또 다른 언어인 프랑스어를 배워야했다. 조국이 독일과 소련에게 점령당했을 때는 역시나 그 나라 말들을 배워야했다. 모국어 대신 다른 나라 말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은, 더더군다나 미래의 시인 혹은 희곡작가, 소설가를 꿈꾸는 사람에게 그건 어쩌면 사형선고에 가까운 게 아니었을까.
1953년 스탈린이 죽었다. 그리고 동방의 나라에서는 3년간 치열하게 전개되던 전쟁이 끝났다. 아마 동구의 소국 헝가리에서도 독재자의 죽음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던 모양이다. 학교에서 선생들은 학생들에게 위대한 지도자 동지의 죽음을 강압적으로 애도할 것을 주문했다. 다만, 애도의 시간이 쓰레기 치우는 사이렌이 울리는 시간과 겹쳐졌던가. 역설적으로 보면 스탈린의 죽음이 쓰레기 치우는 시간으로 연결되는 지점에서 모두가 숨이 막힐 정도로 웃음을 터뜨렸다니. 진정한 해방의 시간이었으리라.
수년을 스위스에서 살면서 능숙하게 프랑스어를 구사했지만, 저자는 읽지 못하고 쓸 줄 모르는 문맹이었노라고 고백한다. 아니 네 살때부터 모국어를 읽은 천재에 가까운 사람에게 그건 모욕이 아니었을까. 자신을 둘러싼 적대적 환경과의 화해와 융합은 어쩌면 내가 아무 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부터 풀리게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러기 전까지 겪어야 하는 수모에 대해서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난민 혹은 이민자들이 겪어야 하는 흔한 풍경일 테니 말이다.
조국의 정치적 박해를 피해, 소련군 경비대에게 언제 총을 맞아 죽을 지도 모를 그런 위협을 무릅쓰며 젖먹이 아이를 업고 국경을 넘는 엄마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이미 우리는 신문 지상과 미디어를 통해 지중해 연안에서 벌어지는 숱한 비극을 목격하고 있지 않은가. 단지 그들이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면 점만 고려하더라도 물설고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려는 이들을 응원해야 하는 게 아닐까. 반세기도 전 있었던 난민사태와 현재의 그것을 비교해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해주게 만드는 그런 책이었다.
아, 그리고 분량이 너무 적어서 아쉬웠다. 20분에 아마 다 읽었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