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앙 이에 홍 위 알 위에 후아(霜葉紅於二月花, 서리 맞은 단풍 잎 2월의 꽃보다 더 붉구나).


김영삼 대통령 시절 한국을 방문한 중국의 장쩌민 주석이 청와대의 단풍을 구경하며 읊조린 시구이다(중국어로 읊조렸을거라 중국어 음으로 써 보았다). 두목(杜牧, 803-852)의「산행(山行)」마지막 구로, 가을에 널리 회자되는 시구이다. 단순히 "단풍이 아름답군요!"라고 말하는 것 보다 중층 의미를 전하기에 품위있어 보인다. 단풍이 아름답다는 의미는 당연히 들어가 있고, 두목이 감탄했던 그 단풍 못지 않을 것 같다는 의미도 있고, 두목이 봤다면 그 역시 나만큼이나 감탄했을 것 같다는 의미도 들어있기 때문이다.


사진은 사명대사 유정(惟政, 1544∼1610)이 임진왜란 후 강화와 포로 송환 협상을 위해 일본에 건너가 1604년부터 이듬해까지 교토에 머물 당시 남긴 고쇼지(興聖寺) 유묵(遺墨)이다. 최근 국립박물관에서 이 유묵 전시회가 열렸는데, 거기서 찍은 것이다. 활달하고 기운 넘치는 글씨가, 서예에 문외한이 사람이 봐도, 보는 이를 압도한다. 글씨의 내용은 고운 최치원(崔致遠, 857~?)의「등윤주자화사산방(登潤州慈和寺上房)」시의 일부분이다.


畫角聲中朝暮浪 화각성중조모랑   뿔피리 소리 속에 물결 끝없이 일렁이고

靑山影裏古今人 청산영리고금인   푸른산 그늘 속에 명멸(明滅)자취 어른거리네


고저원근(高低遠近)의 풍경이 공감각적 표현을 통해 잘 묘사되었다. 그런데 이 시는 단순한 풍경 묘사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다. 유상한 자연과 무상한 인생의 대비를 통해 삶의 비애를 말하고자 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는 이 시구의 앞 구절 내용을통해서도 방증된다.


登臨蹔隔路岐塵 등림잠격로기진   산에 올라 잠시 잠깐 세상사 거리두고

吟想興亡恨益新 음상흥망한익신   흥망 자취 읊노라니 왠지 모를 서글픔이 새록새록


사명대사는 최치원의 시구 인용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중층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고쇼지가 최치원 선생이 올랐던 자화사같은 풍모를 지니고 있다는 의미가 그 하나이고, 최치원 선생이 느꼈던 삶의 비애를 자신 역시 똑같이 느끼고 있다는 것이 그 하나이다. 한발 더 나아가면 이런 무상한 삶에서 선승이 지녀야 할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반성의 의미도 들어있다고 볼 수 있다. 아무려나 저 해설판의 단순한 설명―고쇼지의 기풍이 자화사처럼 탈속적이라는 뜻을 담아 이 시구를 남긴 듯하다―만으로 이 인용 시구를 이해하는 것은 너무 소박한 이해이다. 타인의 시(구)를 인용한 의사 표현은 확실히 품위있어 보인다.


낯선 한자를 두어 자 자세히 살펴보자.


聲은 耳(귀 이)와 殸(磬의 약자, 경쇠 경)의 합자이다. 경쇠가 울릴 때 나는 것처럼 분명하고 확실하게 귀를 통해 들리는 그 무엇이란 의미이다. 소리 성. 聲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聲樂(성악), 音聲(음성) 등을 들 수 있겠다.


影은 景(볕 경)과 彡(形의 약자, 형상 형)의 합자이다. 빛이 비치는 쪽에 드러나는 형상이란 의미이다. 그림자 영. 影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陰影(음영), 影像(영상) 등을 들 수 있겠다.


裏는 衣(옷 의)와 里(마을 리)의 합자이다. 옷 속이란 의미이다. 衣로 뜻을, 里로 음을 표현했다. 속 리. 裏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裏面(이면), 表裏(표리) 등을 들 수 있겠다.


여담. 장쩌민 주석의 한시 인용 단풍 감상에 그를 초청했던 김영삼 대통령은 아무런 화답을 못했다. 그래서 당시 모 신문에는 김 대통령의 무교양을 탓하는 약간 조롱조의 칼럼이 실렸었다. 당시에는 그 칼럼의 논조에 긍정을 표했는데, 지금은 좀 생각이 다르다. 대통령의 무교양보다 장 주석의 무교양을 되려 탓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은 것이다. 장 주석의 무의식 속에는 아직도 우리나라를 조공국으로, 자신을 천조국으로 보려는 의식이 남아 있었기에 과거와 같은 응구첩대(應口輒對)를 통해 상대(의 원수)를 테스트하려는 언행을 했다고 보는 것. 그가 진정 교양있는 인물이라면 우리나라의 명시를 인용해 단풍 감상을 말했어야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김대통령이 아무런 응대를 못했다면, 그건 정말 조롱받아 마땅한 일이었을 것이다. 당시 칼럼을 쓴 기자도 그의 무의식속에 과거 조공국 의식이 잔존해 있었기에 그런 칼럼을 쓴 것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족자의 낙관은 사명송운(四溟松雲)이라고 읽는다. 사명은 유정의 당호, 송운은 유정의 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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