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수사의 기초는 범인이 남긴 흔적이다. 수사의 발달사는 흔적의 추적사라고해도 무방하다. 흔적을 통해 전체를 파악하려는 것은 비단 수사만이 아니다. 많은 연구가 그러하다. 이른바 '분석'이라는 이름을 단 연구물들이 그것. 영화 분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영화에 사용된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그 영화를 평가/파악하려 하니까. 


사진은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기생충」의 초반부 한 장면이다. 기우(최우식 분)가 유투브에서 피자 박스 빨리 접는 영상을 찾아 가족들에게 소개하러 가는 장면이다. 그런데 왼쪽 벽면에 한문 액자가 눈에 띈다. 「기생충」을 감독한 봉준호 감독은 디테일에 강해 별명이 '봉테일'이라고 한다. 문득 그의 디테일을 저 액자를 통해 확인하고 싶어진다. 특히나 요즘은 한문을 모르는 이들이 많으니 더더욱 그런 마음이 생긴다. '어차피 사람들이 모를텐데 아무거나 붙여 놓아도…'라는 마음으로 영화와 무관한 액자를 사용했다면 '봉테일'이란 별명은, 적어도내게는, 동의하기 어려운 별명이다. 한문 액자를 통해서도 이 영화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을까?


액자의 내용은 이렇다(○ 부분은 사진에서도 영화에서도 글자 판독이 어려웠다).


忠孝大節 충효대절   충효의 큰 절개를 지닌다.

好學不倦 호학불권   배움을 좋아하고 남을 가르침에 게으르지 않는다.

忠○心○ 충○심○   성실한 마음으로 ○하고 ○한다. 

公先私後 공선사후   공을 앞세우고 사를 뒤로 한다.


요즘은 벽면에 장식물을 많이 걸어두지 않는다. 걸어 논다 해도 글자류 보다는 그림이나 사진류를 걸어 놓는다. 설령 벽면에 글자가 들어있는 장식물을 걸어놓는다 해도 고가의 운치있는 내용의 액자나 족자를 걸어놓지 구호성 내용의 액자나 족자는 걸어놓지 않는다. 기택(송강호 분)의 집과 대비되는 박 사장(이선균 분)네 거실에는 박 사장 가족의 대형 사진과 다송(정현준 분)의 그림만 걸려있다. 기택네 액자 속에 들어있는 내용은 다분히 구호성 내용이고 시대와 동떨어져 보인다. 한마디로 저 액자는 기택네가 시대의 주류에 뒤떨어져 있거나 현실에서 낙오됐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기택네는 반지하 집이고, 가족은 전부 실직 상태이며, 욕설이 상투어이고, 사기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벽면의 한문 액자는 섬세하게 마련한 소품이라 평가할 만하다. 소품을 통해서도 이 영화의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기 때문.「기생충」이 많은 이들에게 호평을 받는 것은 극적 재미에 보태 세심하게 배치된 상징적 장면 때문인데, 섬세하게 마련한 소품도 한 몫 하는 것 같다(기택네가 박 사장 집을 점령하고(?) 벌인 파티에서 한 스페인산 고급 감자칩 통이 나오는데, 이 또한 그런 한 예이다). 역시, '봉테일'이다.


節과 倦이 낯설어 보인다. 자세히 살펴보자.


節은 竹(대 죽)과 卽(가까이할 즉)의 합자이다. 대나무 줄기의 중간중간에 생긴 마디란 의미이다. 마디는 윗 줄기와 아랫 줄기가 서로 가까이 만난 곳에 형성된다. 하여 竹과 卽을 합쳐 '마디'란 뜻을 표현했다. 마디 절. '절개'란 뜻으로도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이다. 마디처럼 한계를 짓는 명분있는 행동과 마음이란 의미로 사용한 것이다. 절개 절. 節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節氣(절기), 忠節(충절) 등을 들 수 있겠다.


倦은 亻(사람 인)과 卷(굽을 권)의 합자이다. 피로하다란 의미이다. 亻으로 뜻을 표현했다.  卷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일을 대충대충[卷] 해야 할 정도로 피로하다는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게으르다란 뜻으로도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이다. 피로할(게으를) 권. 倦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倦色(권색, 피곤한 기색), 倦怠(권태) 등을 들 수 있겠다.


기택네 집에 건 액자와 같은 것을 걸어 둔 가정이 있을 것이다(우리 형님 집에도 있다). 그분들이 혹 이 글을 읽고 분개하지 않으셨으면 한다. 그분들을 얕잡아 보려고 쓴 것이 아니다(내가 어떻게 우리 형님을 얕잡아 보겠는가!). 다만 일반적 현실의 모습을 기술했을 뿐이다(우리 형님네도 살림이 매우 곤궁하다). 봉준호 감독은「기생충」을 통해 빈부의 양극화 현실을 정면으로 응시했다고 말한다.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현실 직시가 우선이어야 할 것 같아서 그랬다는 것. 형편이 어려운 이가 이 영화를 보고 느끼는 생각과 형편이 넉넉한 이가 이 영화를 보고 느끼는 생각 그리고 이 양자의 중간에 있는 이가 보고 느끼는 생각은 분명 차이가 있을 것 같다. 뭔지는 모르지만 그 생각의 공통 분모가 양극화 문제의 해결 혹은 해결의 출발점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기생충」, 정말 좋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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