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값을 치렀으니, 저 문짝 우리 마음대로 해도 되죠! 여보, 가서 때려 부숴요!”

 

전세 재계약을 하러 집주인이 찾아왔다. 그간 집을 어떻게 썼나 확인하겠다며 집을 둘러보다 안방 문 하단에 작은 구멍이 나 있는 것을 발견했다. 주인이 눈을 똥그랗게 뜨며 문 값을 물어내야겠다고 했다. 흠집을 낸 건 사실이기에, 수리비를 낼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런데 주인은 내가 생각하는 이상을 말했다. “저 문은 사람을 사서 맞춘 문이여. 다른 집처럼 그냥 입주할 때 있던 문이 아녀. 문 전체를 갈아야 되겄어.”

 

그간 벽지 교체 등 집수리를 제대로 안 해준 것도 있었지만 그대로 지냈는데 그런 것 좀 감안하고 수리비만 받으면 좋겠다고 완곡히 얘기했지만, 주인은 들은 채 만 체하며 싫으면 나가든가계속 자기주장만 폈다. 당장 전세 재계약을 해야 하는데, 뜻밖의 암초였다. 언제 또 집을 새로 구하고.

 

아내는 옆에서 계속 지켜만 하고 아무 말도 안 했다. 사실 우리 내외는 간밤에 사소한 일로 다퉈 냉전 중이었다. 문의 흠집도 사실은 아내 때문에 화가 나서 물건을 던진 것이 맞아 생긴 흠이었다. 아내는 내가 주인 앞에서 쩔쩔매며 사정하는 것을 보면서도 계속 모른 척하고 있었다.

 

집주인은 계속 다그쳤다. 빨리 결정하셔. , 가야 되니까. 결국, 문짝 값을 주기로 하고 전세 재계약 도장을 찍었다. 도장을 찍고 나자, 갑자기 아내가 집주인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이제 값을 치렀으니, 저 문짝 우리 마음대로 해도 되죠! 여보, 가서 때려 부숴요!”

 

주인도 놀라고 나도 놀랐다. 아내는 두 사람의 시선을 무시한 채 다용도실에 있는 공구함을 가져와 망치를 꺼냈다. 그러더니 나보고 어서 문을 부시라고 했다.

 

문짝 값 냈고 새로 문을 해 달 거니 저 문짝은 이제 쓸모없잖아요. 어서 부숴요!”

 

주인은 갑자기 얼굴색이 하얘지더니, 뭐라 말을 못 했다. 나는 아내에게 망치를 받아들고 문짝 앞으로 갔다. 그때 주인이 말했다.

 

, 처음에 얘기하던 수리비만 받을 테니 그만두세요~” 맥없이 수그러든 모습이었다. 집주인은 찌그러진 얼굴에 억지웃음을 지으며 현관문을 나섰다.

 

그날 속으로 다짐했다. “여보, 앞으로 당신을 위한 일이라면 내 몸이 가루가 되는 한이 있어도 꼭 해줄게.”

 

사진은 공감(共感)’이라고 읽는다. 함께 느낀다는 뜻이다. 간판을 보니 문득 십수 년 전 일이 떠올랐다. 당시 아내는평소엔 그다지 말을 많이 하는 성격도 아니고 겁도 많다 무슨 용기로 그런 말을 한 것일까? 지지 혹은 공감의 힘이 그렇게 한 것은 아닐까?

 

한자를 자세히 살펴보자.

 

(스물 입)(의 약자, 손 맞잡을 공)의 합자이다. 많은 사람이 손을 맞잡고 병렬로 서 있다는 의미이다. 함께 공.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共同(공동), 共和

(공화) 등을 들 수 있겠다.

 

(다 함)(마음 심)의 합자이다. 대상과 주체가 일치될 때 느끼는 마음의 공명이란 의미이다. 느낄 감.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共感(공감), 好感(호감) 등을 들 수 있겠다.

 

여담. “여인은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해 화장하고, 지사는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라는 말이 있다. 자기 이해에 대한 처절한 갈망을 나타낸 말이다. 달리 표현하면, 자신에 대한 절절한 공감 욕구를 나타낸 것이다. 나는 그날 아내에게 절절한 공감을 받았다. 그날 그 사건 이후로 나는 아내에 대한 서운한 감정이 생길 때면 당시의 일을 떠올리며 마음을 추스른다. 그리고 이렇게 다짐한다. “나는 자랑스러운 아내 앞에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인용문은 결코 허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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