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검다리→나무와 흙을 사용한 다리→콘크리트 다리→복개.

 

고향 집 앞에는 개울이 흘렀다. 개울을 중심으로 동네가 둘로 나뉘었다. 둘을 이어주는 것은 징검다리였다. 그후 개울이 넓혀지고 둑이 생기면서 정식(?) 다리가 놓이기 시작했고, 결국은 복개로 종결되었다. 나무와 흙을 사용한 다리 까지만 해도 아이들은 개울에서 물고기를 잡았고 물이 많을 때는 헤엄을 치기도 했다. 마을 아주머니들은 빨래를 하고. 살림은 어려웠지만 인심은 순후(淳厚)했다. 콘크리트 다리가 놓이면서 이런 일들이 없어졌다. 아니, 물이 더러워져 할 수 없게 되었다. 살림은 나아졌지만 인심은 각박(刻薄)해졌다. 

 

사진은 '도둔굴(道遁堀)'이라고 읽는다. 일본어로, 일본 발음으로는 '도톤보리'라고 읽는다. '도톤 수로(운하)'라는 의미로, 야스이 도톤(安井道頓)이란 이가 처음 착공했고 후계자가 이어받아 4년간의 공사 끝에 완성한(1615년) 길이 3km의 인공 하천이다. 본래 있던 작은 물줄기들을 연결시킨 것으로, 폭은 그다지 넓지 않다. 통상 이 강을 따라 동서로 500m 가량 이어지는 거리를 도톤보리라고 부른다. 남쪽의 센니치마에와 난바, 북쪽의 신사이바시를 잇는 중심가로 식도락 천국 오사카를 대표하는 거리이다. 사진은 일본에서 찍은 것이 아니다. 서울에 갔다가 찍었다. 다양한 일본 요리를 선보인다는 의미에서 내건 간판명 같았다.

 

간판을 보니 문득 고향집 앞 개울이 떠오르고 부질없는 상념이 오갔다. 도톤보리는 1615년에 만들어졌지만 여전히 건재하다. 고향집 개울은 30년이 채 안되어 본모습을 완전히 잃었다. 도톤보리가 없었다면 도톤보리가 과연 오사카의 명소가 될 수 있었을까? 개울이 복개되고 그 밑으로 썪은 물이 흐르는데 그곳을 과연 고향이라고 찾고 싶을까? 상념은 뜬금없이 엉뚱한 방향으로 튀었다. 이제라도 복개를 걷어내고 원모습을 되살려낼 수는 없을까? 음식보다 고향 집 앞 개울을 생각하게 한 사색적인 간판이었다.

 

遁과 堀이 낯설어 보인다. 자세히 살펴보자.

 

遁은 辶(걸을 착)과 盾(방패 순)의 합자이다. 달아난다는 의미이다. 辶으로 뜻을 표현했다. 盾은 음(순→둔)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상대의 무기로 인해 생길 상처를 피하기 위해 방패를 사용하듯 그같이 어려운 일을 피하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 달아나는 것이라는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달아날 둔. 遁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隱遁(은둔), 遁世(둔세) 등을 들 수 있겠다.

 

堀은 土(흙 토)와 屈(굽을 굴)의 합자이다. 굴이란 의미이다. 土로 뜻을 표현했다. 屈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몸을 반듯이 펴지 못하고 구부정한 상태로 있어야 하는 곳이 굴이란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굴 굴. 堀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洞窟(동굴), 石窟(석굴) 등을 들 수 있겠다.

 

여담. 코로나바이러스 창궐은 인간의 개발 행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한다. 개발 행위로 인해 야생 동물[박쥐] 서식지와 인간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졌고 물류 이동도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나 이 바이러스가 창궐하게 됐다는 것. WHO는 21세기를 '전염병의 시대'로 규정하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잠잠해진 뒤에는 또다른 전염병이 창궐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불교식으로 말하면 업보인지 모른다. 근본적 해법은 예방이나 백신 개발이 아니라 개발 행위의 재고와 복원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 역시 저 사진의 간판이 안겨준 생각. 이래저래 사색적인 간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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