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 1956. 1968.

 

난수표가 아니다. 가게 창립일이다. 1939는 경주 황남빵, 1956은 대전 성심당, 1968은 위 사진의 가게. 모두 한 세기 전에 시작한 가게들이니 결코 짧지 않은 세월동안 유지된 가게들이다. 가게를 내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가게가 오래유지되길 원할 것이다. 그러나 요즘처럼 조변석개하는 시대에 그런 바램은 무망하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지속되는 가게가 있다는 것은 정말 기적같은 일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전쟁이 벌어지던 춘추전국 시대, 시대를 진단하는 방식이 전혀 다른 두 사상가 집단이 있었다. 법가와 유가. 법가는 시대가 변했다는 것은 전통이 무력해졌다는 증거인만큼 변화한 시대에 맞는 새로운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며 과감한 개혁을 주장했다. 유가는 시대가 변했다는 것은 전통을 상실했기 때문인만큼 옛 전통을 되살려야 한다며 위정자의 도덕적 자각을 주장했다. 

 

춘추전국 시대를 서로 다르게 진단했던 두 사상가 집단의 승부는 법가의 승리로 끝났다. 법가를 채택했던 진(秦)이 천하통일의 대미를 장식했기 때문. 개혁의 승리라고 할 만했다. 그러나 진은 천하통일 후 2대 만에 망했다. 그리고 들어선 한(漢)은 유가의 사상을 국시로 삼았다. 전통의 승리라고 할 만했다. 그렇다면 최종 승자는 유가일까? 확답하기 어렵다. 비록 표면으로는 유가를 중시했지만 이면으로는 법가를 중시했기 때문이다. 한 선제는 독존유술(獨尊儒術)을 주장하는 태자를 질책하며 이런 말을 했다. "장차 한을 어지럽힐 자, 태자로다." 법가를 중시했다는 반증이다.

 

보수와 개혁은 갈등 관계이다. 조화를 이루는게 가장 좋지만 쉽지 않다. 근본적인 입장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보수는 지키려는 쪽이고, 개혁은 바꾸려는 쪽이다. 입장이 상반되니 조화를 이루기가 어려운 것이다. 저 지난 세기에 창립했던 가게들이 아직도 명맥을 유지하며 여전히 호응받고 있는 것은 이 어려운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비록 한 가게에 불과하지만 이들의 성공 사례는 한 국가를 운영하는데도 많은 시사점을 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의 한자는 '황원당우알당(黃元堂牛軋堂)'이라고 읽는다. '황원당'은 상호명이다. 정확한 의미는 모르겠다. '황씨가 만드는 최고의 (펑리수) 가게' 란 뜻이 아닐까 싶다(황원당은 파이애플 과자인 펑리수로 유명하다). '우알'은 누가(Nougat, 사탕의 일종)의 가차 표기이다. 중국음으로는 '뉴야'라고 읽는다. 당은 사탕이란 뜻이다. 결국 이런 의미가 되겠다. 황원당에서 만든 누가 캔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표기 밑에 영어로 표기된 것은 누가 캔디에 관한 표기가 아니고 펑리수 표기란 점이다. 비록 펑리수로 유명한 가게이지만 상호에 나타난 것은 누가 캔디이니 거기에 맞게 영어 표기를 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왼쪽의 한자는 '연첨면밀(軟甛綿密)'이라고 읽는다. '부드럽고 달콤하며 조밀하다'란 뜻이다. 오른쪽의 한자는 '첨이불이(甛而不膩)'라고 읽는다. '달달하지만 느끼하지 않다'는 뜻이다. 실제 먹어보니 설명과 크게 틀리지 않았다. 황원당우알당 아래 있는 한자는 '하문 자호(廈門 字號)'라고 읽는다. 하문(중국음으로는 샤먼)은 지역이름이고, 자호는 상호(商號)와 같은 뜻이다. 아들 아이 친구가 이곳을 여행하고 선물로 사온 것을 찍은 것이다.

 

낯선 한자를 서너 자 자세히 살펴보자.

 

軋은 車(수레 차)와 乙(새 을)의 합자이다. 삐걱거린다는 뜻이다. 車로 뜻을 표현했다. 乙은 음(을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乙은 본래 초목의 싹이 비뚤비뚤한 모습을 그린 것이다. 여기서는 그같이 수레가 지나가고 나면 지면이 울퉁불퉁해진다는 의미로 사용됐고, 이 의미로 삐걱거린다는 본뜻의 의미를 보충한다. 삐걱거릴 알. 軋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軋轢(알력), 알알(軋軋, 수레바퀴가 구르는 소리) 등을 들 수 있겠다.

 

軟은 거(수레 차)와 欠(빠질 결)의 합자이다. 수레가 부실하다는 의미이다. 車로 뜻을 표현했다. 欠은 음(결연)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결함이 있기에 수레가 부실하다는 의미로. 연하다는 뜻으로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이다.연할 연. 軟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軟弱(연약), 柔軟(유연) 등을 들 수 있겠다.

 

甛은 舌(혀 설)과 甘(달 감)의 합자이다. 혀가 느끼는 특별한 맛[달콤함]이란 의미이다. 舌로 뜻을 표현했다. 甘은 음(감첨)을 담당하면서 본뜻을 보충한다. 달 첨. 甛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甛瓜(첨과, 참외), 甛言蜜語(첨언밀어, 남을 꾀기 위한 달콤한 말) 등을 들 수 있겠다.

 

膩는 月(肉의 변형, 고기 육)과 貳(두 이)의 합자이다. 기름[비계]이라는 뜻이다. 月으로 뜻을 표현했다. 貳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貳는 거듭되다란 의미도 있다. 기름[비계]이란 그같이 살에 덧보태져 있는 부분이란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기름 이.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膩理(이리, 살결이 곱고 반들반들함), 膩脂(이지, 비계) 등을 들 수 있겠다.

 

황원당은 창업한지 반백년이 넘었다. 다시 언급하지만, 정말 쉽지 않은 일을 해낸 가게다. 앞으로도 계속 잘 유지되었으면 싶다. 단순히 한 과자 가게로서가 아니라 보수와 개혁의 조화로운 모습을 보여준 한 표본으로서! 우리의 황남빵이나 성심당도 그렇기를!! 우리 정치도 그렇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