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문제해결의 연속이다
칼 포퍼 지음, 허형은 옮김 / 부글북스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스물아홉 번째 서평

삶은 문제해결의 연속이다.-칼 포퍼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




이따금 삶이란 것에 매달린다. 삶에 대한 해답을 얻었던 적이 한번이라도 있었던가. 가끔은 지금 이 순간이 삶이다, 이것이 정답이다, 라는 우습지 않은 생각에서 우격다짐으로 정리를 끌어내기도 한다. 이십대에 나는 보다 치열함에 스스로를 옭아매고 지냈다. 이를테면 부조리나, 자의식, 세상의 약하고 어둡고 후미진 그 어떤 흐름을, 한통으로 모두 가져다 놓고 잘게잘게 토막을 쳐서 끄집어내는 것이다. 오늘은 이것에 대한 생각, 내일은 저것에 대한 생각 따위 식으로 자잘한 생각은 이어졌다. 그렇다고 내가 철학을 공부한 것은 아니었다. 이십대 끝자락에 섰을 때 나는 삼십대의 관문이라는 삶의 한 고비 앞에서 두려워했다. 어떤 모습으로 살게 될까, 그것이 제일 관건이었다. 그런 고민은 아직도 이어지기에 사십대를 앞두고 여전히 고민 한다. 나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어떤 삶을 추종하며 살게 될 것인가.

칼 포퍼의 책 ‘삶은 문제해결의 연속이다’. 는 제목에 대한 착각과 몰이해에서부터 책에 대한 애착이 생겨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쉽게 말해서 나는 내가 생각했던 내용과는 전혀 다른 이 위대한 노학자의 글 앞에서 어안이 벙벙해져버렸다고 해야 될 듯싶다.

삶에 대한 진솔한 노학자의 이야기를 기대했었다. 그가 누구인지, 무엇을 전공했던지, 얼마나 많은 이론과 책을 저술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나는 그가 삶이란 것에 대한 짤막하지만 심도 있는 지침서 한두개 쯤 내게 쥐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부풀었던 것 같다. 각설하고 이제 책으로 들어가보자.

책은 크게 두 가지 내용으로 나뉘고 있었다. 초반에는 역사와 정치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후반부에는 자연과학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 가득 들어차있다.

책을 번역한 이(허형은)의 이야기 속에는 우리가 칼 포퍼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이 없더라 하더라도 별 어려움이 없이 잘 이해하고 읽어갈 수 있는 책이라 소개한다. 그 말은 반은 맞는 말이고 반은 틀린 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대학과 각종 단체, 그리고 전공자들의 모임에서 했던 강의를 묶어놓은 형식인 이번 책은, 칼 포퍼의 다양하고 깊이 있는 사고의 영역을 포괄적으로 접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던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책을 읽어 가면 갈수록 이해가 더 용이하기 보다는 조금 더 깊은, 아니 조금은 더 다양한 기본 지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 현실적인 책 읽기였다.

책 속에는 칼 포퍼의 뇌리 속에 저장되어 있는 많은 학자들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역사와 정치 편에서 마르크스와 레닌, 엥겔스 등과 함께 그의 작품으로 널리 알려진 ‘열린사회와 그 적들’이 거론된다. 논리와 그에 대등한 논리, 그리고 그 논리를 논박하는 또 다른 새로운 논리. 그 과정에서 칼 포퍼는 과학자이면서 동시에 철학자의 면모를 보인다. 그는 때때로 낙관주의자가 되기도 하고, 실재주의, 무엇보다도 경험주의 이론에 충실한 학자로 그려진다.

정치와 과학이라는 두 가지 틀에 나뉘어 글을 싣고 있지만 사실 책 한권을 다 읽고 난 후에 와 닿는 결론은 이 모든 내용들이 서로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는 번역자의 의견과도 비슷한 듯 보인다.




다소 많은 분량의 이야기와 다양한 이론들의 갑작스러운 출몰로 인한 현기증이 좀 오래가는 부작용이 속출하기는 했지만, 뜻밖에 깊이 있는 책을 만난 듯 해 아직도 그 깊이의 무게로 허우적거리고 있는 듯하다.




칼 포퍼가 항상 말하던, ‘아무것도 모른다.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라는 개념이 냉전시대의 정치와 이데올로기를 풀어나가며, 다소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주제들의 결합인 ‘과학과 인간의 내면의식의 전반적인 관계’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열쇠가 되었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물론 대부분이 그의 가설과 논리로 시작과 끝을 맺고 있다. 책을 읽는 동안 칼 포퍼의 새로운(과학과 인간의 내면심리를 결합해 이론을 이끌어내는 그의 논리를 분명 새로웠다) 또는 밀도 짙은 설득에 온 몸을 저지당하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




인간은 완벽하지 못하다. 그래서 끊임없이 좌절하고 후회하며 낙담한다. 그렇지만 인간은 포기는 할지언정 스스로 자멸하지 않는 의지를 갖는다. 그 또한 칼 포퍼의 이론을 빌려 이야기하자면 경험과 경험이 이끌어주는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완벽하지 않은 인간은 끊임없이 완벽을 위해 노력한다. 그것이 지금에 있는 이론을 논리적으로 논박할 수 있는 타당한 근거가 있는 새로운 논증거리를 찾는 과학자들의 삶의 모습과 어딘지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아메바와 아인슈타인의 차이점에 대해 아는가,’ 라는 질문을 그가 던진다. 이에 대한 답은 가장 쉬운 설명으로 풀이해놓고 있었다.




“아메바는 오류를 싫어할 수밖에 없다, 오류가 제거되면서 함께 사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우리가 오직 실수를 통해서만 학습할 수 있음을 알고 있으며, 새로운 시행으로 새로운 오류를 포착하고 그 오류를 이론에서 제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칼 포퍼, 그의 이야기를 통해 나는 자기비판과 객관적 진리라는 명제에 다시 매달리기 시작한다. 삶은 문제 해결의 연속이라 했던가. 책 내용과 어쩌면 잘 들어맞지 않는 어색한 제목이라고 느꼈던 처음 생각은 달라졌다. 객관적 입장에서 끊임없이 자기비판과 자아를 생각하다보면 저자의 말처럼 크게는 정치와 이념 그리고 과학과 인간정신 따위도 다 같은 테두리 안에 들어앉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 어쩌면 커다랗고 방대하며 그리고 무한하기까지 한, 깊이 있는 우리 각자의 삶의 문제 앞에 다시 서게 되는 것은 아닌가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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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사 2011-03-01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부하지 않은 평 잘 읽었습니다.

월천예진 2011-03-03 09:20   좋아요 0 | URL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베터라이프 2020-06-06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퍼 아저씨 글은 대학때 엄청 가방에만 넣고 다녔더랬죠. ^^;;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은 여러 판본으로 사모으는 재미가 쏠쏠했는데 서가 어디에 쳐박혀 있는지 기억이 안나네요 ㅜㅜ 좋은 서평 잘 읽고 갑니다! 날이 가면갈수록 더워지는데 건강 잘 챙기세요!

월천예진 2020-06-06 23:43   좋아요 0 | URL
아. 오늘은 정말 뜨거웠던것 같아요. ㅡ.ㅡ 전 더위를 잘 안 타는데도 오늘은 쉽게 지치더군요. 포퍼 아저씨의 글을 좋아하셨군요. ^^♡ 저도 시간이 많이 흘러서 다시 보고 싶어져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베터라이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