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카타의 세 사람
메가 마줌다르 지음, 이수영 옮김 / 북하우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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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카타의 세 사람


 

-누가 완벽할 수 있을까.

 


작가의 이름이 무척이나 생경스럽다. 메가 마줌다르. 작가의 이름이다. 그의 독특한 이름에서 느껴지듯 인도 출신 미국작가라는 소개가 눈길을 끈다. 사실은 이렇다. 인도 출신의 미국작가여서라기 보다는 이 작품이 그의 첫 처녀작이라는 데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지는지도 모른다.

번역의 과정을 거친 문장이지만 늘어짐 없이 단백하다. 애초의 이 작가의 글이 어떤 색일지, 어떤 성격의 그림들을 실어 왔을지 느낌이 온다. 그는 아마도 가늘고 긴 것보다는 굵고 짧은 문체와 더불어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그 어떤 것들을 좋아할 것만 같다.

 


메가 마줌다르. 그가 내놓은 첫 번째 작품은 ‘콜카타의 세 사람’이다. 작품은 뭐랄까.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하는 글이었다. 소설은 우리가 잊고 있었던 어떤 정의로움과 이와 대조적으로 세상에 이미 만연해져있는 부조리에 대해 다시 집요하게 붙들고 있어야만 할 것 같은 야속한 순간순간을 보여주고 있다.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 세 사람의 이야기부터 하는 게 좋을까. 아니면 내 잡다한 생각들을 먼저 풀어내는 게 좋을까. 고민이 이어진다.

 


세 사람은 한 명씩 독립된 주인공인 동시에 서로 연결고리로 이어진다. 어려운 집안 환경으로 학교를 다 마치지 못하고 중간에 취업전선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어린 여학생 지반, 이 학생을 눈여겨보며 살폈던 체육 선생, 그리고 지반에게서 영어를 배웠던 트랜스 여성(히즈라) 러블리가 바로 세 사람으로 등장한다. 사건은 기차역 폭발 사건으로 인해 지반이 범인으로 몰리며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되면서 이어진다.

 


조금 더 자세하게 살펴보자. 각각의 인물들은 상징성을 내포한다. 특히 체육 선생의 존재감은 이 세 명의 주인공 중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특별한 것 없이 그저 그렇고 그런 평범한 체육 과목의 선생님일 뿐이다. 그랬던 그가 정치와 정당에 발을 디디는 순간부터 그의 삶에서 정체성의 혼란과 변화가 오기 시작한다. 이 인물은 이를 개혁과 점진적 발전이라고 생각했었을까. 그러나 사실 체육선생은 대중의 군중심리와 정치적 술수에 빠져 이용당하는 인물로 비춰진다. 정의를 위해서 거짓 증언을 하고, 아무 죄 없는 사람을 그저 정황만으로 감옥에 보내기 위해 가짜 증인으로 나서기를 반복하는 그는 꼭두각시 인형처럼 불안해 보인다.

 


러블리는 어떨까. 러블리는 남자이지만 여자의 삶을 선택하며 살아간다. 사회적 편견과 멸시를 극복해가며, 자신만의 꿈꾸는 삶도 가치가 있다는 신념을 갖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녀는(그는) 배우의 꿈을 품고 연기 수업을 받는다. 언젠가 화려한 무대 위에 서게 될 것을 고대하며 이상을 갖고 사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그리고 가장 불운한 주인공 지반은 어떤가. 정부에 의해 사는 집에서 쫒겨나고 열악한 환경에 아버지는 몸을 다쳐 더 이상 경제적 도움을 줄 입장이 되지 못한다. 야밤에 물건을 떼어와 파는 어머니와 아픈 아버지를 보면서 학교를 그만둘 결심을 하게 되는 지반은 사회적 경제적 약자의 대표적인 인물로 등장한다.

 


소설을 읽으면서 묘하게도 나는 성경의 한두 장면을 연상했었다. 테러리스트로 낙인찍힌 지반을 위해 러블리와 체육선생의 첫 번째 선택은 비교적 옳은 선택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사회적 편견과 정치적 압력으로 인해 자신의 신념을 져버리고 정의를 외면하게 된다. 대중의 심리적 압력과 정치적 입지에 따른 거대한 압박이 개개인의 신념을 너무나 가볍게 흔들어버린다는 의미가 담긴 이 작품에서,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예수를 세 번이나 부인했던 성경 속 인물 베드로와 예수에게 사형을 언도한 빌라도를 떠올린다.


 

-당신은 예수라 불리는 사람과 함께 있던 사람이 아닙니까?

-아닙니다. 나는 그를 모릅니다.

 베드로는 세 번 예수를 부인했다.

 


사람들이 러블리에게 훌륭한 배우가 되려면 테러리스트와의 관계를 정의롭게? 옳게? 정리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을 때와 체육 선생에게 자신의 제자였으니까 더 잘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라며 압력을 넣었던 순간, 사실 이들에게는 베드로가 질문을 받았을 때처럼 약간의 흔들림이 존재했었다. 그러나 이들의 두 번째 선택은 군중심리가 바라는 대로, 혹은 정치적 입장에 따라 완전히 바뀌게 된다.

특히 체육선생이 윗선의 압력에 결국 자신의 신념과 정의를 포기하고 맹목적인 추종자로서의 삶만을 선택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대목은, 자신의 선택과는 무관하며 대중이 원했던 결과대로 일을 처리했을 뿐이라는 ‘자기 합리화’의 모순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더불어 동시에 유대인들과 빌라도가 주고받았던 이야기가 생각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는 위선의 ‘거대 완장’을 차고 철저하게 거듭나려는 욕망에 빠져간다. 러블리 역시 찬사와 명예, 그리고 인기를 얻고 싶어하는 욕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물론 주변 인물로 등장하는 지반의 변호사도 마찬가지다.


 

결국 희생자는 지반이다. 지반일 수밖에 없다. 그것이 사회가 만들어낸 부조리의 결과이고, 정치적 입지에 의해 달리 해석되는 낡은 결과물이다. 그런 까닭에 이 작품은 더 현실적인 동시에 비판적이지만 사뭇 애잔함을 몰고 온다.

 


우리가 꿈꾸는 모든 것은 결국 허상일까. 우리는 불의 앞에서 매번 용감해질 수 있을까. 선택의 문제는 늘 어렵고 그 결과물은 참담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딴은 누가 과연 러블리와 체육선생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그 어디에도 완벽한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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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1-09-17 05: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수님은 베드로가 배신하게 될지를 알고 계셨잖아요...물론 배신하지 않고 끝까지 예수를 부인하지 않은 제자들도 있었지만,예수님은 어쩌면 평범한 우리들의 모습이 베드로 같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으실가요? 저는 물론 정의를 위해서 목숨까지 희생하며 신념을 지키는 사람들도 위대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인간은 그 자체로 괜찮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비록 실수 하고 배반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존재이고..그렇게 예수는 인간을 수용하고 받아들여주신 분이셨던 것 같아요.

월천예진님은 어떻게 책 고르시나요? 이런 책을 어떻게 선택하시나요? 그리고 리뷰도 여러가지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들어주시고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리뷰입니다. ㅎㅎㅎ

월천예진 2021-09-23 23:47   좋아요 0 | URL
한국은 막 추석연휴가 끝났습니다. 아줌마이고 며느리이고 엄마의 신분이다보니 명절은 늘 분주하네요. 댓글이 너무 늦었습니다. ㅡ.ㅡ
올려주신 내용을 보다보니 저도 생각이 많아지네요. ^^♡ 저 역시 여러가지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하지요.♡♡♡
인간은 그 자체로도 괜찮을 수 있다는 말씀에 갑자기 조르바가 생각이 나네요. 그리스인 조르바~~ 그 사람은 정말 그냥 그 존재 자체로도 괜찮은 사람인듯 해요.

저는 생각할 거리?가 있는 책을 고르려하는데 때론 무심하게 읽고 싶어 다른 유형에 빠지기도 하지요. 그냥 읽어요. ㅎㅎ


월천예진 2021-09-23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계신 곳은 어떠신지. 이제 자연의 위협은 좀 사그라졌을까요? 이곳은 갈수록 하늘이 높아져가는 중입니다. 가을이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