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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매화
미치오 슈스케 지음, 한성례 옮김 / 씨엘북스 / 2012년 11월
평점 :
품절
(기다렸던 미치오 슈스케의 [광매화]를 읽었습니다. 행복의 이데올로기를 유포하는 이 세상에서 자신을 소외시킨 자들의 이야기가 작가의 섬세한 필치로 묘파되어 있는 걸작입니다. )
'씨엘북스'에서 나온 미치오 슈스케의 [광매화]를 읽었습니다. 책이 도착하자마자 읽기 시작해서 두어 시간만에 숨가쁘게 읽어버렸습니다. '미치오 슈스케'라는 작가에 대해 관심이 많기 때문에 출간전부터 관심을 가졌던 책이었네요. 저는 슈스케의 국내 출간된 전작을 읽으면서 그의 작품에 대한 확실한 호불호를 표현해왔는데, 이 작품의 경우 '만족'과 '불만족'의 저울에 달아보면, 확실히 '만족'쪽으로 추가 기웁니다. 세렝게티 초원의 허기진 맹수처럼 돌격하여 단박에 끝냈을 정도로 빨리 읽힌 작품이었습니다. 기존의 슈스케 팬에게도 불평의 여지 없는 매력적인 작품이지만, 슈스케의 특성들이 골고루 균형있게 작품마다 음각되어 있어, 처음 미치오 슈스케를 접하시는 분에겐 매우 적절하다고 느꼈습니다.
제1장 '숨바꼭질', 제2장 '벌레쫓기',그리고 제3장 '겨울나비'는 [구체의 뱀]에서 보여주었던 어두운 분위기와 생채기들을 연상시켰고, 그 이후의 장들은 타자의 아픔에 대한 감응, 그리고 희망에 대한 이야기들을 전해줘서 앞장들에 비해 확실히 밝은 톤을 보여줍니다.
차갑고 서늘한 분위기의 앞장들에 비해, 4장부터는 확실히 느껴지는 체감온도가 4~5도 정도 올라갈 정도로 따스한 분위기기로 변합니다. 기술적으로는 4장 '겨울 나비'엔 슈스케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는 말장난(언어유희)을 통한 간단한 트릭이 등장해 [까마귀의 엄지]를 떠올리게 하고, 5장 풍매화의 경우는 소소한 반전이 담겨있어, 전반적인 분위기가 [가사사기의 수상한 중고매장]이 연상되기도 합니다. 다양한 느낌의 슈스케를 맛보고 싶다면, 선뜻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을 정도로 균형감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1장부터 3장까지의 이야기는 어두운 슈스케를, 4장부터 6장까지는 밝은 슈스케를 만날 수 있습니다. 작가에 따르면, 처음에는 철저하게 비통하고 어두운 느낌으로 여섯작품을 쓰려고 했다고 합니다. 그랬다면, 슈스케가 최초로 썼던 단편집 [술래의 발소리]와 매우 비슷한 풍이 되었겠지요. 사실 저는 3장까지 읽었을 때는 앞으로 전개될 연작의 전체적 분위기도 그러하겠지라고 미리 속단하고 말았지요. 하지만 슬픔과 괴로움이 최대치였던 3장 '겨울 나비'에서 4장 '봄나비'로 바뀌면서 '구원'에의 의지가 스며있는 따스한 쪽으로 방향을 전환하게 됩니다. 그런면에서 '겨울'과 '봄'처럼 온도감을 확연히 느낄 수 있는 계절적인 제목이 의미심장할 수 밖에 없습니다. )
(나비는 이 작품에서 상당히 중요한 상징도구입니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각 장마다 나비를 공들여 새겨넣었습니다.)
일단 6개의 단편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모두 상처 속에서 살아가는데, 그 상처의 내역들은 모두 다르지만, 과거의 상흔이 현재 삶의 발목을 붙들고 있다는 점에선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을 가두고 있는 유폐에서 벗어나 한걸음씩 걸어나오는 모습을 슈스케류의 서정으로 섬세하게 표현해 냈습니다. 이제는 '마치 미치오 슈스케의 소설 속에서 빠져나온 인물같다'라는 표현이 가능할 정도로 작가 특유의 색깔로 채색된 세계가 구축되어진 느낌입니다. 특히 첫번째 이야기는(사실 이 작품만을 단발로 쓰려고 했다고 합니다) 연상의 여성과의 사랑이 비극적으로 그려져 있는데다, 아버지의 인간적 결함을 발견하고 그를 타자화 함으로서 비로소 어른이 된다는 성장소설적 설정때문에 [구체의 뱀(2009)]과의 친연성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일까요, 자극적인 소재로 인해, 이 이야기가 독자들의 머릿속에서 강렬하고 충격적인 영상으로 각인되는 것은 불가피합니다. ( 슈스케는 연상의 나이의 여자에 농락당하는 소년이나 청년이 나오는 작품들에 깊은 애정을 느낀다고 하네요. 가령 라디게의 "육체의 악마(열여섯살 소년과 전방에 나간 군인의 아내의 열애를 다룬 이야기)"나 B.콩스탕의 "아돌프(청년 아돌프가 연상의 유부녀 엘레노르와의 사랑을 다룬 자전체 소설)"같은 작품들 말입니다.)
작가의 미스터리적인 경향은 초기작들과 비교할 때 눈에 띄게 지워진 듯한 느낌은 있지만, 두번째 세번째 이야기를 연거퍼 읽다보면, 그가 추구하는 소설의 본령에 미스터리가 완전히 소거된 것은 아니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됩니다.
미치오 슈스케가 한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진실이 밝혀져 독자가 그것에 타격을 받을 때, 독자는 미스터리한 느낌을 받는다고 합니다. ("경찰이나 범죄자가 이야기에 등장한다고 해서 미스터리인 것은 아닙니다. 그것보단 오히려 이야기의 진실이 까발려지는 순간 때문에 사람들이 미스터리라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미치오 슈스케)
그런 의미에서, 제2장과 제3장은 이 작품집에서 가장 미스터리적인 분위기를 풍긴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초창기의 강렬한 미스터리성은 많이 희석되었고, 좀더 순수문학적인 자리로 옮아가려는 작가의 욕망은 이 작품도 예외는 아닙니다. 이미 먼저 출간된 [달과 게]나 [물의 관]을 읽어보신 독자들은 작가가 바라보는 방향성을 어렵지 않게 추측하실 듯 싶네요.
재미있는 것은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각 단편이야기의 인물들이 조금씩 -마치 십자말 풀이처럼-연결되어 있는 점입니다. 앞 장에서 다뤄진 인물이 후일담처럼 뒷장에 그 인물의 뒷이야기가 펼쳐지기도 해서 독자는 그 확장된 이야기가 반갑습니다. 가령 첫번째 장에서 주인공이 창밖을 통해 바라보던 술래잡기 하던 노란색 티셔츠의 소년이 두번째 장에서 바통을 받아 "술래가 찾아 오지 않았다'라는 말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릴레이 하듯 이어지는 등장인물은 뭐랄까요, 좀 더 정이 들어서 감정이입이 수월해지는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하면, 제 1장의 조연이, 제2장의 주인공이되고, 제 2장의 조연이, 제3장의 주연으로 되는 방식인데, 이 방식을 택한 이유는, 작가가 연결성이 없는 오합지졸의 단편집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작가는 각 장마다 연결된 느낌을 주기 위해 각 장의 제목들 조차 3글자로 엄격하게 제한하여 정했습니다. 한국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글자수마저 맞춰서 옮기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일본어 제목은 보시다시피, 3글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隠れ鬼-虫送り-冬の蝶-春の蝶-風媒花-遠い光)
따지고 보니 이 단편집외의 다른 단편집인 [술래의 발소리](2009)나 [가사사기의 수상한 중고매장](2011)에서도 단편들이라 할지라도 같은 색깔로 묶을 수 있는 연결성을 볼 수 있었지요.
(이 세계가 나와 타자간의 관계 속에서 이기적 욕망때문에 서로를 생채기 내는 공간이라는 슈스케적인 주제에 대한 천착은 여전하지만, 암울한 절망감보다는 희망과 구원의 손을 내미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어느새 구원과 희망은 슈스케에게 있어서 중요한 테마로 자리잡은 듯 합니다.)
창밖에서
하얀 나비 한 마리가 춤을 춘다. 여름 햇살을 즐기는 듯한 날갯짓. 어쩌면 친구를 찾는 것일지도. (제1장 숨바꼭질-p.46)
하얀 나비가 천천히 우리 앞을 가로 지르며 강변 어둠 속으로 날아들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새하얀 날개를 나풀나풀 움직이다가 머지 않아 눈 녹듯 사라졌다. (제2장 벌레쫓기-p.90)
작고 하얀 무엇이 어룽어룽 움직인다. 나비다.
하얀 나비 한 마리가 텐트 안에서 날개를 쉬고 있다. 손을 뻗자 나비가 가볍게 날갯짓을 했따. 날개 끝으로 내 손가락을 사뿐히 스치며 팔랑팔랑 텐트 안을 날아다닌다. 의지할 데 없는 아이가 남긴 낙서 같은 하얀 궤적이 텐트에 둘러친 돗자리 틈새로 불어드는 바람에 밀려 옆으로 흔들린다. (제3장 겨울 나비-p.96)
그때
하얀 무언가가 시야를 가로질렀다.
나비 한 마리 가 외로이 너울너울 흔들리며 석양을 향해 빨려 들어가듯 날고 있었다. 나비는 매일 정해진 길을 날아 원래의 장소로 돌아가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제4장 봄나비-p.162)
하얀 나비 한마리가 맑은 초여름 공기를 즐기듯 날개를 팔랑이며 멀리 가슴을 활짝 편 소나기 구름쪽으로 사라졌다. (제5장 풍매화-p. 237)
하얀 나비는 도망치듯이 혹은 장난치듯이 어둠 속에서도 날개를 반짝이며 팔랑팔랑 높이 날아올랐다. 나비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다 보니 어느새 두 눈에 가로등 불빛이 눈부시게 쏟아져 내렸다. 다시 나비를 찾았지만 나비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나비가 사라진 허공 끝에 시선을 고정하고 멈춰섰다. 아사요도 내 앞에서 발을 멈추고 묵묵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제6장 아득한 빛-p.303)
보다시피, 전 장에 걸쳐서 '하얀 나비'가 등장합니다. 처음 읽을 때는 제목에 꽃(광매화)이 들어가서 그런가? 나비가 자주 등장하네..라고만 생각했었는데, 다시 읽으면서 확인해보니 작가의 철저한 계산에 의해서 '하얀 나비'를 집어 넣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작품에 낙관을 찍듯 '나비'를 등장시킨 이유는, 앞서 말한 것 처럼 각각의 단편이 하나의 테마아래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연결고리로서 기능한다고 느껴집니다. 이 전 단편집인 [술래의 발소리 (2009)]의 경우에 "S"라는 인물을 각 단편마다 등장시켰던 것과 비슷합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하얀 나비"인가, 라는 질문이 자연스레 나옵니다.우선 '나비'는 대표적인 꽃가루 매개자이기에 '꽃'과는 원심분리해 내기 힘듭니다. 치약과 칫솔처럼 표리일체의 느낌이지요. 제목이 '광매화'라는 것. 풍매화, 충매화라는 말은 있지만, 광매화는 사전에는 없습니다. 작가의 조어(造語)이기 때문입니다. 아래의 힌트를 통해 '광매화'라는 제목이 갖는 의미를 독자가 추측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풍매라는 한자를 풀면 바람 풍(風)에다가 중매하다 할때의 매(媒)를 쓰거든. 바람으로 꽃가루를 운반하는 꽃이야. 풍매화는 화려한 외관을 가질 필요가 없어. 왜냐하면 일부러 자신을 꾸며서 곤충을 불러 모으지 않아도 되니까. 바람이 화려한 색깔이나 눈에 띄는 모습에 이끌려서 불지는 않잖니.
도모에 씨는 설명하는 김에 곤충이 꽃가루를 옮기는 꽃을 충매화(蟲媒花)라고 부른다는 사실도 가르쳐주었다. 어쩐지 충매화보다 풍매화 쪽에 호감이 갔다. (p.210)
광매화의 의미
빛이 매개가 되는 꽃. 작품 전반부에 어둠 속(작가는 그것을 '인생의 그림자'라고 표현합니다)을 날던 나비는 눈부시게 빛을 발하는 꽃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것을 희망이라 불러도 좋고, 구원이라도 불러도 좋습니다. 아니면, 우리 각자의 내부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으로 보아도 좋구요. 특히 마지막 장-아득한 빛에서 이런 빛의 이미지가 만재(滿載)합니다. 미치오 슈스케에 따르면, 빛에 의해 연결되어 있는 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인간이라고 밝힙니다. 빛이 눈부시다는 이미지가 있지만, 그림자란 빛이 없다면 존재할 수 없기에 빛이란 결국 가장 어두움에서 가장 밝음까지 모두 포함하는 것인데, 그런 의미에서 빛에 의해 연결되어 있는 꽃이 바로 인간이라는 것이지요.
작품의 분위기도 어두움에서 밝음으로 서서히 바뀌는데, 종장에 이르러서는 모든 것이 수렴되고, 구원됩니다. 어둠에 빠진 인물들을 밝은 쪽으로 끄집어 내주고하는 작가의 의도를 장이 바뀔때마다 느낄 수 있었습니다. 책에 따르면 여자 주인공의 이름인 사치(幸)라는 한자는 원래 양손목을 위아래로 하고 수갑을 채운 모양을 나타내는 상형문자였는데, 나중에는 형벌에서 벗어났다는 의미로 바뀌어서 지금은 행운이라는 뜻을 나타낸다고(p,161) 합니다. 작가는 수갑을 두른 것처럼 어둠 속에서 옥죄어 있는 등장인물들이 형벌에서 벗어나 행복(幸福)과 행운(幸運)의 세계로 나아가도록 인도합니다. 빛을 향해 팔랑거리며 나아가는 나비처럼.
작가는 소설 속에 나비를 심어 놓은 진짜 이유는 6장의 끝부분에 등장합니다.
그 나비는 어떤 풍경을 보았을까? 빛으로 가득 찬 풍경이었을까? 어둡고 슬픈 풍경이었을까? 때로는 그늘을 드리우기도 하는 이 세상을 나도 나비처럼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고 싶다. 모든 것이 한곳으로 흘러 모이면서도 언제나 새로운 이 세상을. 어떤 풍경이 보일까? (p.303)
작가는 한 마리의 나비가 모든 사람을 보고 있다는 이미지를 심어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공작나비나 긴꼬리부전나비,흰점팔랑나비가 아닌 '하얀 나비'로 통일했던 거죠. 고대인들에게 나비는 영혼을 상징하거나 빛의 세계를 지향하는 무의식적 매혹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빛의 세계을 갈망하는 영혼의 암시에 대한 메타포로 나비만한 것이 없을 듯 싶네요. 하얀색은 전통적으로 순수를 의미하고, 단테는 천국을 백색 빛의 나라라고 묘사하기도 했지요. 시인들은 영원의 세계를 묘사할 때 주로 흰색으로 표현하므로, 슈스케의 '하얀 나비'는 매우 적절해 보입니다.
이번 작품을 통해 새삼 느끼게 된 한가지는, 미치오 슈스케는 기억의 어두운 뒤편으로부터 삶의 무늬들을 길어올리는 과정에서 곤충을 상징적 소도구로 이용한다는 것입니다. 슈스케의 작품을 읽어본 독자라면 그의 소설에서 어두운 기억이라는 주제에 대한 편재성과 함께 곤충의 이미지에 대한 의존도가 사뭇 높다는 점에 주목하게 됩니다. 이미 [술래의 발소리]의 방울벌레, [해바라기가 피지않는 여름]의 무당거미, [구체의 뱀]의 꼽등이, [달과 게]의 소라게(곤충은 아니지만 작은 생물이라는 점에서)등을 마치 관찰자나 인격체처럼 묘사했던 것을 목도해 온 저로서는 이번 작품 속에서 곤충채집 하는 장면이나, 곤충학자가 되고 싶어하는 주인공의 등장은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으로 보였습니다. 이젠 이렇게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곤충의 이미지에 의탁하는 방식은 작가의 독특한 표식처럼 낯익습니다.
작가는 유년시절 작은 생물들을 좋아했다는 것을 밝히면서 눈에 보이지 세계에 대한 스케치가 영상매체와의 차별화라고 잘라 말합니다.
(씨엘북스측은 각 장을 구분하는 페이지에 나비의 이미지를 사용했는데, 이는 작가의 의도나 작품의 내용으로 볼때 매우 자연스럽네요. 각 장마다 나비의 크기와 모양에 조금씩 변화를 주었는데 그것을 확인하는 것도 은근 재밌습니다.)
연재기간 2년. 비교적 길었기 때문일까요. 작가는 장편과 다른 시리즈의 단편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이 작품은 작가 스스로 출입이 가장 많았던 작품이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새로운 단편을 시작할 때, 이전에 썼던 장까지를 다시 음미하고 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요컨데, 이 작품집에 수록된 단편들은 한마디로 급하게 쓴 것들이 아닙니다. 연재기간이 길어지면, 세상과 작가 스스로도 많은 변화가 있게 되지요. 그래서인지 이 작품은 단편집이지만 큰 스펙트럼과 깊이감을 보여줍니다. 청년이나 어린이의 시선만이 아닌, 남녀노소를 아우르는 다양한 주인공들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그리고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색채도 전반부는 어두운 그림자 짙게 드리워져 있고, 후반부는 비교적 밝은 빛의 세계를 지향해서 독자에게 다양한 맛을 선사하지요. 제가 이 책 [광매화]를 슈스케를 미처 접하지 못한 독자들의 첫번째 책으로 꼽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입니다. 전반부가 마음에 들면(사실 저는 이쪽입니다만), [술래의 발소리],[구체의 뱀],[해바라기가 피지않는 여름],[달과게],[용의 손은 붉게 물들고] 같은 작품을 구해서 어두운 느낌의 미치오 슈스케를 더 알아가면 됩니다. 그리고 비교적 밝은 느낌의 후반부가 마음에 든다면, [가사사기의 수상한 중고매장], [까마귀의 엄지], [외눈박이 원숭이]등을 읽으면 좋겠다고 느꼈지요. 그런데 미치오 슈스케도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소설을 접할 첫번째 책으로 바로 이 작품을 선택했다고 했다고 합니다. 물론 제 생각과는 조금 다른 이유입니다. 앞서 말했던 바통을 넘겨주는 식의 구성으로 단편과 장편의 경계를 지우기에, 단편 선호자와 장편 선호자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작가는 장편으로는 할 수 없는, 다시말해 연작 단편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싶었기에 이번 작품집을 썼다고 했는데, 그 시도는 매우 성공적으로 보입니다. 각 단편마다 독자들을 흡입하는 만만치 않는 에너지를 발산하는 작품인데, 그 여운이 다음 장까지도 온기를 잃지 않고 고스란히 이어지니 말입니다.
이 세계가 나와 타자간의 관계 속에서 이기적 욕망때문에 서로를 생채기 내는 공간이라는 슈스케적인 주제에 대한 천착은 여전하지만, 암울한 절망감만을 보여주는 데 몰두하지만 않고, 희망과 구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합니다. 이제 슈스케의 소설들이 배회하고 있는 세계는 힘겹고 어두운 삶의 언저리에서, 이제는 울 이유가 없다고 어깨를 토닥여주는 공간으로 탈바꿈한 듯 보입니다. 작가는 힘주어 말합니다. 울지말자. 울 이유가 없다고. 하얗고 눈부신 세계를 바라보라고.(p.3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