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일구
시마다 소지 지음, 현정수 옮김 / 블루엘리펀트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시마다 소지-[최후의 일구]를 읽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마구]에서 조금 실망했던 기억이 있었기에, 야구와 추리소설의 접목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읽었다. 폭염때문에 순도 높은 집중력도 보장할 수 없는 몸 상태였다.

그러나 웬걸, 이 작품은 내 예상을 깨고, 압도적인 재미를 선사했다. '재미'라는 단어를 느슨하게 사용하지 않고, 깐깐하게 사용하더라도 이 책의 재밌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나는 꼼짝 없이 몇시간을 이 책에 달라 붙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헤롤드 블룸은 시간은 관용을 베풀지 않기 때문에, 나이를 먹을 수록 헛된 독서를 원치 않게 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런 책이라면, 당신의 소중한 시간을 마음 놓고 내맡길 수 있다.

 

 

 

 

 

 

이 책은 탐정 미타라이가 등장하는 1장과 다케타니의 야구 인생이 펼쳐지는 2장, 두 매듭으로 이루어져 있다.

개인적으로는 2장의 몰입도가 올해 읽은 책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좋았다. '가독성'이란 잣대를 들이댈때, 후한 점수를 줄 수 밖에 없다.2류투수인 다케타니를 진심으로 응원하며 글을 읽다보니 어느새 마지막 장까지 빠르게 주파하게 되었다. 후반부가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수기라서 쉽게 주인공에 동화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시마다 소지가 그려낸 작중 인물이 피와 살이 있는것 처럼 생생하게 그려졌기 때문 일것이다.

개인적으로 야구라는 스포츠에 매력을 느끼고 있기도 했고, 실제로 경기를 보는 듯한 박진감 넘치는 경기 묘사도 훌륭했다.

이렇게 써내려 가면, 도무지 다음 장을 안 읽고 저항하기란 어렵다.

이 작품은 장르를 쉽게 규정하기 조금 어려운 면도 있다. 추리물이면서도 스포츠물이고, 또 어찌보면 한 청년의 청춘의 방황과 시련을 새겨 넣은 청춘 소설로도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다케타니의 개인사에 초점을 맞춰도 재미가 있고, 다케타니와 다케치의 우정에 초점을 맞춰도 흥미롭다. 하나의 소설이 다양한 시각으로 해석될 수 있도록 다채로운 이야기를 껴안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어느 쪽도 만족시키지 못해 표면에서 겉돌며, 공회전하는 부류의 소설은 아니다. 이 작품을 어느 장르에 수납할 지는, 각각의 독자가  어떤 부분에 크게 공명하느냐에 전적으로 달려있다. 

 

 

 

 

 

 

이 작품의 또다른 매력은 작가가 단순히 스포츠와 결부된 추리물을 가공해 낸것이 아니라, 일본 사회에 만연해있는 대부업체 문제를 작품 속에 녹여냈다는 점일 것이다. 현실의 총체상을 직시하여, 사채의 횡포를 다루었던 사회파 추리물로는 미치오 슈스케의  [까마귀의 엄지],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 우타노 쇼고의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등이 떠오르는데, 이제는 시마다 소지의 [최후의 일구]도 그 리스트에서 기억되어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러 작가들이 앞다투어 다루었기에 일면 진부할 수도 있던 주제를 야구라는 뜻밖의 소재와 결부시켜 다양성을 열어젖힌 작가의 시도가 놀랍고, 또 그 결과는 대단히 성공적이다. 비슷한 주제를 따분한 시각으로 그려내서, 고만고만한 느낌을 자아내지 않았다는 것이 내가 받은 느낌이었다. 이 작품은, 읽어본 독자는 공감하겠지만, 작가의 개성있는 육성이 담겨 있어 여타 다른 작품들과는 다른 질감의 변별성을 보인다. 시마다 소지는 사채업의 병폐뿐만아니라, 승부조작이라는 스포츠계의 뿌리 깊은 암종도 고발한다. (20세기 초에 야구도박에 의한 승부조작은 미국 야구의 역사와 함께 했을 정도로 문제거리였다고 한다.) 승부조작은 얼마 전 우리 스포츠계를  드리웠던 어두운 그림자였기에 이 책에 묘사된 것들이 한 걸음 더 가깝게 다가온다. 스포츠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승부조작과 야구를 사랑하는 젊은이의 열정이 묘하게 대비되는 점 또한 인상적이었다.

사회파 추리소설의 특징을 띄고 있는 작품답게 트릭과 반전에 무게를 두기보다는 전반적인 얼개와 이야기에 중심을 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작품 말미에 부드럽게 파고 드는 감동은 아무래도 이러한 수수께끼의 해답보다는 드라마에 중심을 둔 작품의 속성때문인 듯 싶다.

어떤 일본 독자는 서평에서 '피가 통하는 미스터리'라는 말을 했다고 하는데, 끝부분에 다다르면 그 말이 충분히 이해된다.

종장에서 맛보게 되는 뜨거운 감동은 야구에 대한 젊은이의 가열찬 열정과 그가 가닿으려 했던 목표에 대한 끈질김에서 나온다.

 

 

 

 

 

 

 

시마다 소지의 [점성술 살인사건], [기울어진 저택의 범죄],[이방의 기사]를 인상깊게 읽은 독자라면, 반가워할 콤비인 미타라이 기요시와 이시오카 가즈미의 등장만으로 이 책을 펼치고 싶어질 것이다. 이 둘의 등장은 [이방의 기사(2010년 국내 출간)]이후 2년만이라 오랜만에 친구라도 만난 듯이 반갑다. 비록 이 둘의 활약이 작품 내에서는 주조음이라기 보다는 배음에 가까워서 아쉬워하는 독자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작품의 짜임새를 보았을 때, 딱 이정도가 적당하다고 보았고, 작가도 둘의 역할을 부각 시키는 데 큰 욕심을 내지 않은 것 같다.

 

 

 

 

 

(응원하고 싶은 청춘의 이야기와 야구의 매력, 사회파 추리소설의 깊이를 한곳에 녹여낸 역작이다.)

 

 

 

 

 

보통 일본 신본격 미스터리의 대부라는 수식을 거느리는 시마다 소지는 이번에 야구라는 매력적인 소재에 날카로운 현실인식을 용해시켜 찾아왔다. 그동안 시마다 소지가 보여주었던 방향과는 사뭇 다른 방향이다. 모든 방향 변화가 바람직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이번 것은 분명 좋은 방향이라 장담할 수 있다. 우리가 스포츠에 매료되는 한가지 이유가, 예상치 못한 전개와 의외성 때문이기도 한데, 이 작품은 그 장점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독자는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 전개 될지 종잡을 수 없어, 계속해서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작가 스스로 '자신의 대표작중 하나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좋아하는 작품'이라고 말하고 있으니, 시마다 소지의 이 말을 믿고 읽어도 후회는 없을 듯 싶다. 특히 작품 말미에 차오르는 감동이 허툰 감상성에 견인되어지는 것이 아니라서  마음에 든다. 이제 아직 읽지 않은 독자들은 주인공이 던지는 '최후의 일구'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인 하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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