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셀러 - 소설 쓰는 여자와 소설 읽는 남자의 반짝이는 사랑고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3
아리카와 히로 지음, 문승준 옮김 / 비채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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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간의 사랑을 살짝 들춰 보여준다.)

 

아리카와 히로 –[스토리셀러]를 읽다.

 

‘성인을 위한 라이트 노벨’이라는 장르에서 확고부동한 인기를 획득하고 있다는 아리카와 히로(有川浩)의 [스토리셀러]를 읽었다. 라이트 노벨은 소년, 소녀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가벼운 문체로 쓰여지게 되는데, 그래서인지 이 책도 빠른 속도로 읽힌다. 그러나 문체가 가볍다고 해서 내용도 가벼운 것은 아니다. 리듬감있는 문체로 진중한 내용을 속도감 있게 그려 나갔다. (네 문장, 읽는 리듬이 상당히 좋거든.그래서 도중에 멈추고 싶지 않아.(p.149)) 알아보니, 이 책은 기존의 아리카와 히로 스타일에서 살짝 작풍을 바꿔서 쓴 작품으로 새로운 맛을 준다고 한다. 그러나 본 작 이전에 이 작가의 책을 읽은 것은 [백수 알바 내집 장만기]가 유일했기 때문에, 그녀의 작풍의 변화를 감지하기는 힘들었다. 일렁이는 궁금증에 검색해보니, 예상보다 많은 책(18권)이 국내에 번역 출간되어 내심 놀랐다. SF와 밀러터리가 가미된 소설뿐만 아니라, 코믹요소가 가미된 로맨틱 소설도 잘 써서 일본에선 연애소설의 여왕으로 많은 팬 층을 확보하고 있는 ‘여성 작가’라고 한다. ‘여성작가’를 강조해서 쓴 이유는 이 책이 여성 전업 작가를 둘러싼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여담인데, 그녀의 필명 ‘아리카와 히로(有川浩)’는 꽤나 남성적인 이름으로 들려 혼동을 주는 모양이다. 그녀에 대한 정보 없이 이름만 보고 ‘여성의 섬세한 필치를 지닌 남성작가’로 오해한 일본 독자들이 꽤 있었다. 작가는 서점에서 책이 놓여질 때 ‘아’로 시작하는 이름이라면 선반 앞쪽에 놓여질 것이라 생각하고 작명을 했다고 한다. ‘호(浩)’는 본명에서 한 글자를 가져온 것이다.)  

 

 

이 책은 예전에 즐겨 듣던 LP나 카세트 테이프처럼, Side A와 Side B로 구성되어 있어 독자들의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자극한다.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Side A와 Side B로 나누어진 구성은 ‘이누이 구루미’의 [이니시에이션 러브]와 국내작가로는 박민규의 [더블(Double)] 이후 세 번째 만남이다.

Side A에는 글 쓰는 부인의 이야기를 하는 남편의 시선에서 이야기가 전개되고, Side B는 글쓰는 부인이 남편에 대해 서술하는 이야기다. 책을 읽기 전에는 둘이 같은 주인공일 것이라는 예상을 했는데, 짐작했던 것과는 달리 다른 등장인물들이 나온다. 이 작품은 Side A를 먼저 잡지에 발표한 작가가 단행본을 출판하기 위해 같은 테마로 Side B를 추후에 썼다고 보는 편이 온당하다.(이것에 대해서 작가는 이렇게 전후 사정을 설명한다. “단편이라기보다 중편 분량이잖아. 그거 한편이 책 반 정도를 잡아먹어버리거든. 그렇게 되면 책 구성에 균형이 깨진다면서 항상 제외됐어. 그리고 담당 편집자가 그 이야기에 정말 애착을 갖고 있어. 소설의 느낌을 잘 살려서 만들고 싶다면서 같은 분량에 내용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나 더 써달라고..말하자면 그게 책이 되려면 중편 하나가 더 필요한 거야.(p.151) * 실제로도 Side A는 소설신초 2008년 5월호 별책으로 공개되었던 작품이다.)

 

 

두 이야기 모두 사랑하는 이를 병으로 잃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Side A는 작가 아내를 뇌를 쓰면 쓸수록 노화되는 희귀병으로, Side B는 남편을 췌장암으로 잃는다.) 여성 작가가 등장한다는 점도 데칼코마니처럼 똑같다. 

아리카와 히로 자신이 여성 작가이기에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친숙한 사실들을 펼쳐놓은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실제로 아리카와 히로의 남편은 무차별적인 독서광에다, 그녀가 작가로 데뷔하기 전부터 ‘넌 언젠가 프로가 된다’며 끊임없이 격려했다고 한다.(‘세상이 변덕스럽게 어쩌다 그녀를 날지 못하게 할지라도, 원래라면 그녀가 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자신이 그녀의 소설에 흥미를 잃을 리 없다’(p.65)는 말은 다름아닌 실제 남편이 작가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을까.) 아리카와보다도 그녀가 작가가 되는 것을 믿었던 듬직한 남편. 그래서 어찌 보면 이 소설(특히 side A)은 일본 특유의 소설 형식중 하나인 ‘사소설(私小說- 자신의 경험을 허구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써나가는 소설)적인 느낌이 날 만큼 개인적인 삶이 작품에 고여있는 듯하다. 하지만, 소설이란 허구만으로도 사실만으로도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니, 어디까지가 진실이냐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 할 듯 싶다.(작가 스스로도 ‘이 이야기는…어디까지 사실인가요?라는 질문에 ‘어디까지라고 생각하세요? 그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것이다.(p.228)라고 작품 속의 여성작가의 말을 빌어 일축한다.) 

두 이야기의 접점을 작가는, “전에는 여성 작가가 죽는 이야기였잖아? 이번에는 작가의 남편이 죽는 이야기를 쓰면 어때?(p.123)”라는 말을 집어 넣어 마련해 놓았다. 이 말을 읽으면, 혹자는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떠올려 두 이야기 모두 비극적인 이야기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결국 인생은 유한(有限)하다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기에 우리는 언제고 사랑하는 이와 함께 살 수는 없는 것이다. 작품 속에서 두 배우자 모두 변질되지 않는 사랑의 확인 속에서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목도하기에 나는 두 이야기가 비극으로 점철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Side A와 Side B, 두 이야기 모두 결국은 따지고 보면 두 젊은 부부의 이야기인데 (오히려 이야기의 하중은 연애 시절보다는 결혼 후 생활에 더 실려 있다), 두 부부에게는 자녀가 없고, 부모와 친척과는 그리 사이가 좋지 않다,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렇게 상정한 것은 아무래도 남편과 부인이 둘만을 바라보며 살고 있다는 점을 주지시키려는 작가의 계산된 의도인 듯 싶다. 일반적인 자녀를 둔 가정과는 다르게, 서로를 위하는 마음과 애정이 다른 곳으로 분산되지 않고 고스란히 서로를 향한다.) 앞서서도 말했지만, 두 작품 모두 이야기가 만남에서 결혼,(이야기의 중핵은 물론 부인의 저술 활동이다) 배우자중 한 명이 세상을 뜨면서 이야기가 종결된다. 이 작품엔 흔한 연애 소설에서 보여지는 연애의 위기나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이 배제되어 있다. 작가는 시종 담담하고 간결한 문체로 실제 있을 법한 이야기를 담아냈다. 개인적으로는 감정의 잉여나, 감상적인 과장이 깃들어 있지 않아서 좋았다. 설탕이 듬뿍 들어간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되는 동화풍의 이야기가 아닌 점은 이 책의 미덕이라 확실히 말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녀의 책을 모두 통람하지 않아서 일본독자의 말을 차용하면, 해피 엔드로 끝나지 않는 그녀의 소설은 이 작품이 이례적이라고 한다.)

[백수 알바 내 집 장만기]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는데, 이것이 아리카와 히로가 내는 고유한 발성법이라해도 좋을 것 같다. 어쩌면 말랑말랑한 사랑의 밀어(密語)로 그득한 연애 소설을 기대한 독자들은 이 작품에 대해 볼멘소리를 낼 수도 있을지 모른다. 이 책에는 연애소설에서 상투적으로 등장하는 두 연인의 안타까운 엇갈림이나, 매력적이고 낭만적인 훈남이나 미녀도 등장하지 않으니.

아리카와 히로는 보통 사람들의 사랑을 수수하게 그려냄으로써, 범용한 독자들을 어느새 그 풍경의 일부가 되었다는 느낌을 들게 한다.(이 작품 속에는 등장인물의 이름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주인공의 이름조차 ‘나’와 ‘그녀’ 혹은 ‘그’로 설정했다. 이것은 철저하게 작가의 의도라 할 수 있다. 특정한 이름 없이 등장하는 ‘나’와 ‘그녀’에게 책 밖의 독자들은 감정이입이 더 수월하다.) 우리는 그 친근한 풍경 속에서 등장인물에게 자연스레 우리를 투사하게 된다. 이러한 전폭적인 동감의 유도는 독자로 하여금 상실되는 대상에 대한 아쉬움을 일깨우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공감하겠지만, 배우자를 잃는 장면이 등장하는 Side A와 Side B의 후반부를 읽다 보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작가가 시선을 두는 곳에 마음이 가닿으면, 독자는 자신에게 닥칠지 모르는 (혹은 이미 경험한) 그 상실의 안타까움에 공명하게 되는 것이다. 아리카와 히로가 넌지시 이 책을 통해 알려주려고 하는 것을 이성복 시인은 ‘사라진 것들에 대한 사랑은 사라질 것들에 대한 사랑을 부른다’라는 말로 이야기하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내가 사랑하고 의지하는 사람이 내 옆에 영원히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충실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인생이 결국은 시한부라는 것을 자주 잊는 까닭이다. 아니, 잊는다기보다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외면하고 싶은 진실일 것이다. 이 작품을 읽으니 후회하지 않기 위해선 소중한 사람에게 기회가 있을 때, 옆에 있을 때, 마음을 자주 보여주어야 한다는 다짐이 가슴 속에서 움터난다.

 

 

 

공포는 동일자(同一者)가 갑자기 타자(他者)가 되는 데서 생겨난다. 타자가 동일자가 될 때 사랑이 싹튼다. 타자의 변모는 경이이며 공포다. 타자가 언제나 타자일 때, 그것은 돌이나 풀과 같다.

(김현, 타자의 철학, 행복한 책읽기-p.165)

 

Side A의 초반 부분에는 타자가 동일자가 되는 과정이 묘사되어 있다. 연애 소설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 바로 두 남녀 간에 사랑이 싹트는 장면이라 생각하기에, 특별히 관심을 갖고 읽었다. 화자인 ‘나’가 같은 디자인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그녀’에게서 다른 사람과는 다른 점들을 하나 둘씩 발견하면서 흥미를 느끼고 다가서는 장면은 앞서 말한 ‘타자에게서 나를 발견하는 일’에 다름아니다. 작품에 쓰여 있는 아리카와 히로의 표현을 빌어 이야기 하자면, 사무실에선 유일하게 ‘고양이 가면 벗겨진’ 순간을 본 사람이 된 셈이랄까. 언제나 고양이 가면을 쓰고 있는 상태였다면, 그 둘 사이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돌이나 풀과 같은 존재와 매한가지니까. 그리고 이 둘 사이가 결정적으로 가까워진 이유는, 뭐니뭐니해도 남자 주인공인 ‘나’는 여자 주인공의 글을 읽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그녀가 아직 데뷔하기 전이기에 말하자면, 첫 독자인 것이다. 나는 이 대목에서 기형도 시인의 싯구를 [나를/한번이라도 본 사람은 모두/ 나를 떠나갔다, 나의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누가 나를/ 펼쳐볼 것인가..(오래된 서적)] 떠올렸다. 그렇다. 글을 쓴다는 것은 혼(魂)을 내보이는 것이기에 그것을 펼쳐 읽어보려는 마음은 그 사람을 읽어 보려는 노력인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라. 자신을 진심으로 읽어주려 노력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결국 여자 주인공은 자신의 다른 이야기도 보여주고 싶은 정도로 자신을 열게 된다. 그리고 한쪽은 이야기를 제공하고, 다른 한쪽은 그 이야기를 읽고 감상을 보낸다. 마치 그것들이 러브레터인양 오고 가며,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은 들숨과 날숨처럼 분리할 수 없는 하나가 된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든다. “읽는 사람”은 동시에 “쓰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것. 책을 읽을 때, 그 책이 내 마음에서 다시 나의 버전으로 쓰여지듯(rewriting), 누군가를 읽을 때 그 사람 역시 ‘나’라는 필터를 통과해 고쳐 쓰여진다. 그 고쳐씀의 다른 이름은 ‘오독(誤讀)’이다. 그러나 ‘오독’은 세상의 모든 책 읽기의 필연적인 운명 아닌가. 다만 그 책(사람)이 지닌 본질에 얼마만큼 가까이 다가서려는가 하는 것이 관건인 것이다.  

사랑이란 명시적으로 표현하기 힘든 것이지만, 이 책이 이야기하는 바를 굳이 이야기하자면, 누군가를 읽어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

그 이해의 노력 속에 우리는 누군가를 위한 단 한 명의 작가가 되고, 단 한 명의 독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를 위해 계속해서 살아가게 (써나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해의 빛 속에서 한편이 다른 한편의 마지막 문장을 읽는 (죽음을 옆에서 지켜주는) 독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린 모두 ‘쓰는 사람’이자 ‘읽는 사람’이다. 그렇다. 아리카와 히로는 이 책을 통해 그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마지막까지 응원하고, 응원 받을 사람이 곁에 있다면 그것으로 행복한 것이다.

 

 (비채에서 나온 아리카와 히로의 장편 소설 [백수알바 내 집 장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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