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 안녕을 - 판타스틱 픽션 BLACK 14-1 탐정 링컨 페리 시리즈 1
마이클 코리타 지음, 김하락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조가 방을 가로질러 와서 내 옆에 무릎 꿇고 앉아 녹색 크레용으로 어린애가 갈겨쓴 일기의 한 대목을 읽었다.

'오늘밤 나는 작별을 했다'. p.84

(Joe crossed the room and knelt beside me, then read the diary entry, written in a child's scrawl with a green crayon:

Tonite I said goodby. * 어린애가 썼기에 일부러 작가가 오타로 쓴 것.)

 

모든 것이 '오늘밤 나는 작별을 했다'라는 문장에서 자라났다. 17살때, 부모님집의 잔디를 깎으면서 그 네 단어가 내 머리속을 떠다녔다. 책 전체가 바로 그 4단어 (Tonight I said goodbye)로 부터 나왔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아이디어가 그 타이틀에서 나왔다."

-마이클 코리타

*코리타는 퍼뜩 머리에 떠오르는 선명한 시각적 이미지에 이끌려 글을 쓴다고 한다. 이야기를 시작하는 강력한 장소로서의 이미지말이다. 이 작품의 경우는, 어린아이가 크레용으로 쓴 "오늘밤 나는 작별을 했다"라는 문장과 이미지가 모든 이야기의 시작점이었다. 수레의 바퀴살처럼 그것을 중심축으로 이야기가 뻗어 나온셈이랄까.

 

 

 

 

 

좌(左)데니스 루헤인, 우(右) 마이클 코넬리

막 첫번째 소설을 끝낸 문청(文靑)시절의 코리타는 장르소설계의 거장인 데니스 루헤인(Dennis Lehane)에게 자신의 이메일 주소가 포함된 팬 레터를 보내게 된다. 뜻밖에도 이 새파랗게 젊은 작가 지망생은 루헤인에게서 즉각적인 답신을 받는다. 코리타가 범죄 소설 작가의 꿈을 콘크리트처럼 구체적으로 갖게 된것은 16살때에 루헤인의 [가라,아이야 가라]를 읽고 난 후였다. 자신의 문학적 영웅에게 답장을 받은 코리타는 짝사랑하던 여자에게 데이트 신청을 허락받은 사람처럼 기뻐했고, 그 뒤로 몇년간 코리타는 르헤인과 서신왕래를 지속하며 그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코리타는 만족할 수 없었고, 에커드(Eckerd)대학에서 데니스 루헤인이 주관하는 소설작법 강의를 통해 그를 멘토로 삼고 개인적 친분을 두텁게 한다. (고등학생 시절 몸담았던 신문사(Bloomington Herald Times)의 스포츠섹션 편집장이었던 밥 하멜(Bob Hammel)에게서 신문 글쓰기에 대한 가르침은 충분히 받았지만, 창의적 글쓰기에 대해 제대로 배운적이 없기에 이 시기의 배움은 그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고 술회한다.)

크라임 소설계의 또다른 거장, 마이클 코넬리(Michael Connelly)와는 2004년 자신의 첫번째 소설 [오늘밤 안녕을(Tonight I said goodbye)]이 출간된 이후로 친하게 지내고 있는데, 코리타에 따르면 하루에 1500단어씩 꾸준히 쓰려고 노력하는 것도 코넬리의 영향이라고 한다. 마이클 코넬리가 작가 지망생에게 종종 주는 충고인,"머리를 쳐박고, 한명의 독자를 위해 써라 (Keep your head down and write for an audience of 1)"를 금과옥조로 여기고 있는 셈. 코리타는 시리즈 탐정물이나 형사물의 주인공 중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로 '해리 보슈'라고 주저없이 꼽을 정도로 코넬리의 영향력을 감추지 않고있고, 요즘은 코넬리와 주말에 야구를 보러가거나 정기적인 골프 파트너의 역할도 하고 있다고 한다.

장르소설계에서 최강의 원투 펀치라 불리울만한 '마이클 코넬리'와' 데니스 루헤인'이 이 젊은 작가를 지지하고, 보통 이상의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었을때, 나는 던적스럽게도 코리타가 '윗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처세술'에 대한 책을 썼어도 그것은 분명 베스트셀러가 되었을거라고 생각했었다. 심지어 젊은 친구가 힘있는사람 비위를 잘 맞추어 주는 천부적인 재주가 있다는 건 부러운 일이군,이라고 까지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그저 내마음속에서 이 재능있는 젊은 작가에게 헤살을 부리고 싶다는 뒤틀린 질투심에서 나왔던 것이다.

나는 그의 처녀작 [오늘밤 안녕을]을 읽고 난 이후에, 쟁쟁한 거장들이 그의 작품을 앞다투어 칭찬하고 기꺼이 그와 가깝게 지내는 이유를 어렵지않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의 재능이었다.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재능.

 

 

 

맞춤인생 :작가가 되기 위해 살다

코리타의 인생은 이쪽 계통(크라임소설)의 글을 쓰기 위해 고도로 계획되고 집중시킨 삶처럼 보인다.

마치 어떤 부위의 근육을 발달시키기 위해 무엇을 먹고 어떤 운동을 반복적으로 해야 효과적인지 아는 사람처럼, 자신의 삶을 작가가 되는 방향으로 집요하고 효율적으로 몰고갔다.

코리타는 18살의 어린 나이에 사설 탐정 잡지 'PI (Private Investigator) Magazine'의 편집자였던 돈 존슨(Don Johnson)밑에서 사립탐정 조수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는데,전업작가가 되기 전까지 8년간 보험사기부터 부당한 죽음조사에 이르는 다양한 사립탐정일을 하게 된다.

이때의 경험은 금전적으로 환산할 수없을 만큼 소중한 것이었다. 특히 사립탐정이 주인공인 링컨 페리시리즈의 세부 묘사에 있어서 엄청난 힘을 발휘하게 된다. 소위 "글로 키스를 배운사람"에게 "실제 경험자"가 갖게 되는 우월함이 그의 글에는 훈장처럼 빛나며 박혀 있다. 탐정 분야에 대해서는 자신의 손바닥을 들여다 보듯 잘 알기에, 추측이나 책을 읽어 간접적으로 아는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진짜다움을 획득하게 되었다고 할까. 거친 비유를 하자면, 진품이기에 짝퉁제품에서 보여지는 디테일의 조잡함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그가 어린나이에도 불구하고 기성 크라임소설계에 힘차게 파고 들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원체험을 바탕으로 한 사실성 때문이었다.

그는 또한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블루밍턴 헤럴드 타임즈(Bloomington Herald Times)라는 지역신문의 신문기자로도 활약했었는데, 이때의 경험을 통해 마감일에 맞춰 글쓰는 법과 명쾌하고 간결하게 쓰는 방식을 배웠다. 그리고 기사때문에 자신이 만났던 다양한 군상들이 그의 소설에서 살아있는 캐릭터가 되었다.(특히 이무렵, 그의 글쓰기를 지도했던 신문사 편집장인 밥 하멜(Bob Hammel)은 코리타를 세인트 마틴 출판사와 연결시켜주었고, 여기에서 출판사 편집장인 피터 울버튼(Peter Wolverton)이 그의 작품을 눈여겨 보게된다. 데뷔작 [오늘밤 안녕을]의 헌제에 코리타가 밥 하멜을 언급하며 고마움을 표현한 이유는, 그가 코리타에게 있어서 일생의 은인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또한 인디애나 대학에서 형사 사법학(Criminal Justice)을 전공한 것은, 그가 얼마나 철두철미하게 이 분야의 책을 쓰려고 벼르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로써 법과 경찰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의 글에 권위의 입김을 불어넣을 수 있게 된것이다. 보는 바와 같이 그의 이력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식으로 용의주도 했다는 느낌이다.

 

 

 

 

 

오늘밤 안녕을

코리타는 인디애나 출신이지만, 그의 부모님이 클리브랜드에서 태어나고 자랐기에 (그도 어린시절 이곳에서 보냈다) 이 지역을 어떤 도시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망설임없이 링컨 페리 시리즈의 무대를 이곳으로 상정하게 된다. 그의 말에 따르면, 클리브랜드는 매우 블루칼라(육체 노동자)적인 색채를 띠고있는 도시고, 제조분야의 직업들이 점점 사라져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도시라는 것. 이런 사실이 느와르적인 세계의 분위기와 퍽 잘어울린다는 것이다.

클리브랜드의 유명 사립탐정인 웨인 웨스턴이 자살을 하고, 그의 아내와 딸이 실종된다. 웨스턴의 아버지 존은 며느리 줄리와 손녀 딸 베시를 찾아달라고 탐정인 링컨 페리와 그의 나이많은 동료 조 프리처드에게 의뢰하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링컨과 조는 탐문조사를 해나가던 중, 웨스턴의 죽음이 단순 자살이 아니라, 러시아계 마피아와 지역의 거부와 복잡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알게된다.

여느 탐정소설처럼 '실종된 사람찾기'로 시작하고, 우여곡절 끝에 가리워졌던 사건의 진상에 바투 다가선다는 이야기.(그 사이사이에 총격전도 있고, 깜짝 놀라게 만드는 반전도 있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장르의 규칙에 충실한 정통 하드보일드 탐정소설로 볼 수도 있고, 나쁘게 보면 '하늘 아래 새로울것이 없는' 진부한 스타일로 볼 수 도 있다. 개인적으로 장르의 규칙을 따르려고 한 것은 다분히 영민한 작가의 의도라고 느껴진다. 그때문에 젊은 작가다운 파격적인 신선한 시도는 책에서 찾을 순 없었지만, 더할나위 없는 안정적인 느낌으로 레이몬드 챈들러나 대실 해밋을 좋아했던 향수를 자극하여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에 빠져들게 했다. 실제로 필립 말로나 샘 스페이드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이책을 구입한 미국 독자들이 꽤 있었다.

사실 코리타는 대학교 1학년때 링컨 페리시리즈의 첫편(비공식적 작품, 당연히 출판되지 않았다)을 이미 썼고, 세인트 마틴(St. Martin) 출판사에 보내지만 -약간 설익었기 때문이었을까- 출판을 거절당한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 그의 재능을 눈여겨 보았던 편집장 피터 울버튼(Peter Wolverton)은 코리타가 앞으로 어떤 작품을 쓰더라도 기꺼이 읽어주겠다는 약속을 한다. 코리타가 본작 [오늘밤 안녕을]을 완성했을 때, 세인트 마틴 출판사의 피터 울버튼과 사립탐정 소설 경쟁부분(Private eye novel contest) 두군데에 보내게 된다.

피터 울버튼은 만약 콘테스트에서 수상하지 못해도 책의 판권을 사고 싶다고 이야기했을 정도로 이 작품을 높게 평가했었다. 뚜껑을 열어보니 코리타는 최우수 사립탐정 소설 신인상을 수상했고, 당당히 책을 계약하게 되었다. 요컨데 이 이야기의 핵심은, 편집자가 콘테스트의 수상 여부와 상관없이, 그리고 그의 어린 나이도 신경쓰지 않고, 무조건 출판하고 싶을 정도로 이 작품은 완성도가 높다는 점이다.

 

양날의 검-나이 (그가 대머리끼가 없었더라면 난 그를 미워했을 것이다.)

 

말이 나온김에 언급하자면, 마이클 코리타와 관련하여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는 바로 '나이'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그와 관련된 이야기중 금붕어의 똥처럼 끈질기게 따라붙어 코리타 자신도 널더리를 낼 정도다. 그가 만약 국내 작가였다면, 그래서 국내 검색엔진에서 그의 이름을 찾는다면 '코리타 몇살'이나 '코리타 데뷔 나이'같은 연관 검색어가 뜨지 않았을까.

데니스 루헤인이 최초로 작품을 쓴 것이 서른살이었지만, 그때 당시 이 분야에서 가장 어린축에 들었던 것을 생각하면, [오늘밤 안녕을]로 신인상을 수상할 당시 그의 나이(음주를 할 수 없는 21세가 되지 않은 나이였다)가 얼마나 화제가 될만한 것인지를 알수 있다. 심지어 데니스 루헤인은 그의 나이를 언급하면서 '만약 코리타의 머리가 빠지기 시작하는 대머리의 징후마저 없다면, 나는 정말로 그를 싫어할 것이다 (코리타는 젊은 나이지만, 숱이 상당히 없는 편인데, 이 정도의 재능있는 젊은이가 젊어보이기까지 하면 그를 미워했을거라는 루헤인식 유머.)'라는 말까지 했을 정도다.

그의 나이는 양날의 검과 같다. 독자들은 그의 나이에 흥미를 갖기도 하고, 한편으론 무시하기도 한다. 코리타가 진정 걱정하는 것은 자신의 작품이 내용이 아니라 나이에 의해서 평가받는 것이다. 나 역시도 이 작품을 읽으면서 '그의 어린 나이'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었다.

강하긴 하지만 담금질을 아직 하지 않은 칼처럼 부러지기 쉬울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작품을 읽을 수 밖에 없었다. 작품 어딘가에 아직 농익지 않은 젊은이 특유의 치기나 헛점이 분명 몸을 숨기고 있을 거라는 생각. 그것은 어쩌면 세상의 모든 처녀작에 대해 품는 고정관념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일독한후 나의 편견은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이라는 국어사전적 의미에 완전히 부합되는 것임이 판명되었다. 무엇보다 이야기에 속도감이 있었다. 간결한 문체와 짧고 분명한 대화가 시너지효과를 만들어 속도감을 부추기고 있었다.

 

 

문체,시점, 그의 작법

오직 이야기의 흐름에만 집중하며 읽던 어린날의 코리타는 데니스 루헤인의 [가라,아이야 가라]를 읽고 그의 산문(prose) 자체에 매료된다. 루헤인의 문장 자체가 담고있는 힘과 울림에 깊은 영향을 받은 듯한 코리타의 문체. 그래서인지 나는 이 작품에서 보여준 그의 문체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다른 탐정소설의 특징처럼, 장식적이거나 화려하게 미사어구를 쓰지 않고, 간결하고 날렵한 문체를 보여준다. 그의 문체는 군살 한줌 없는, 공들여 단련된 날씬한 몸을 연상케한다. '쓸데없는 말은 모두 생략할것'. 이것이 그의 글쓰기 멘토들이 문체에 대해 주문했던 단 하나의 명제였다. 그 영향일까. 코리타 스스로도 "좋은 글쓰기란 화려한 문체보다는 간결하고 정확한 것"에 있다고 믿고, 그 특징을 그대로 데뷔작에 반영 시켰다. 개인적으로 맘에 들었던 것은 메마른 문체를 지향하면서도 유머를 놓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가령 "내 등의 근육은 지미 헨드릭스가 솔로를 연주한 후의 기타 줄 같이 느껴졌다(p.182)"같은 문장처럼, 재치있는 표현이 책 전체에 산재해 있어 읽는 재미를 제공한다.

이 작품은 전통적인 하드보일드 탐정소설답게 1인칭 시점을 사용했다.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사용은 최초의 스탠드 얼론인 [Envy the Night]을 3인칭 시점으로 쓸때까지 계속된다. 1인칭 시점은 장단점이 뚜렷한 시점인데, 역시 장점이라면, 독자가 주인공에게 자연스런 친근감을 느끼고, 이야기 속으로 뛰어 들기 쉽다는 점이다. 반면에 작가가 서투르게 사용하여, 주인공의 심리묘사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짓 따위를 하면, 이야기의 속도감이 늘어지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이번 데뷔작에서 코리타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나는 또 그의 나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얄미울정도로 노련한 베테랑처럼 1인칭 시점의 장점을 충분히 발휘했다.

코리타는 글을 쓸때 아우트라인(대체적인 줄거리)을 만들지 않고 쓴다고 한다. 스토리 전체를 미리 짜고 쓸것인지 아닌지는 작가 개인의 취사선택이겠지만, 내 생각에 코리타는 스토리자체는 언제나 가변적이고 유동적인체로 놓아주는 것이 좋다고 믿는 스타일인듯 싶다. 아우트라인을 정해놓으면 스토리라인상에서 우왕좌왕할 필요가 없는 장점이 있겠지만, 아무래도 새로운 생각과 방향성에 제한받기 쉽기때문이다. 등장인물을 틀 속에 가두거나 옭아매지 않고, 자유롭게 이야기 속에서 활보할 수 있도록 풀어주는 스타일인 그의 작법에 맞춰 이 책을 읽어나가도 흥미로울 것이다. 코리타는 이야기를 쓰기 시작할때, 끝이 어떻게 될지 작가도 모르고 시작하는 스타일인 셈인데, 실제로 [오늘밤 안녕을]을 쓸 당시, 첫번째 초고에 대한 교정을 하기 전까지 누가 살인을 하는지, 작가자신도 몰랐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쓴 장면에서 오직 한,두장면만 앞을 내다 볼수 있다고 한다.

 

 

 

서스펜스, 긴장감

영화나 소설에서 주인공이 악인보다 너무 강해서 별다른 긴장감을 느끼지 못했던 경험은 누구나 있을것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코리타는 잔인한 러시아 마피아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는 부패한 거부와 같은 강력하고 거대한 악의 축을 설정함으로써 서스펜스를 높였다. 다 아는 이야기라 말하기도 미안하지만, 주인공의 신변에 대한 염려과 걱정은 독자를 다음 페이지를 향해 끊이없이 전진하게 만드는 동력이다. 이런 장르의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이 서스펜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크라임 소설에서 서스펜스가 없다는 것은 폭주족에게 오토바이가 없는 것과 같다고할까.

사실 이 분야의 작가라면 누구나 알고있는 자명한 사실이긴 해도, 서스펜스를 고조시키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은 듯 싶다. 영화라면 불길한 음악이나 거칠고 낮은 조명, 이상한 카메라 앵글따위의 도움을 받으면 되겠지만, 소설은 다르다. 코리타의 이 소설은 링컨 페리를 중심으로 1인칭 '나'로 진행되므로 독자는 자연스레 그의 심리상태에 동화되어 그의 신상을 걱정하게 되지만, 그 캐릭터의 깊이가 없다면 공감이 만들어지기 힘들어서 서스펜스가 담길수 없을 공산이 크다. 읽어본 독자는 알겠지만, 코리타는 그만의 방식으로 주인공에게 입체감을 주었고, 따라서 주인공이 맞게되는 위험에 대해 독자는 자기 일처럼 마음을 졸이게 된다. 게다가 서스펜스를 주어야하는 장면에서 묘사를 최소화하고 행동과 대화로 표현해서 속도감을 높이고, 서스펜스가 늘어지지 않게 만들었다. 후반부는 '시간압박'과 같은 전통적인 도구를 사용하여, 서스펜스와 긴장감을 증폭시켰음은 물론이다.

 

 

 

 

 

총평

하드보일드 장르가 현대사회에서 거세된 수컷의 마초적 성향을 일깨우기에 인기가 있다던가, 이런 장르 소설을 통해 독자는 거대한 악의 세계에 대항하는 영웅에게 자신을 동일시 함으로써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던가,하는 원론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행간에 녹아있는 미국 문화의 어두운 단면에 대한 알레고리라든가 메타포같은 것들은 그런것을 찾아내는데 능숙한 분들이 해주기 바란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이 책이 재밌다'는 간명한 사실이다. 그 말을 하기 위해 에두른 말을 해대며, 먼길을 이렇듯 돌아왔다. 사실 그 한마디면 족하지 않은가. 이런 장르 소설에서 '재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리 차일드가 이 작품에 대해이야기한 "서스펜스, 긴장감, 트릭, 매력..모든 것이 충만한 일급 데뷔작'이란 말은 에누리 없는 사실이다.이 책을 읽어 본 독자는 리 차일드가 세인트 마틴 출판사의 홍보 담당자에게 점심을 얻어먹고 고마운 마음에 마지못해 쓴 빈말이 아니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차릴 것이다. 이 작품을 통해서 진지한 철학척 성찰이나 미학적 아름다움 같은 것을 희구하지 않는다면, 이 책의 선택에 후회없을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코리타의 데뷔작이 느와르 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하거나, 인간 본성에 대한 아픈 물음이나, 미국 사회에 대한 우회적 비판을 뼈저리게 보여준다고는 말 못하겠다. 하지만, 이 작품에는 코리타만의 고유한 지문이 뭍어 있는 점때문에 아껴주고 싶다. 이 작가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풍경이 맘에 들었다. 사설 탐정일에 실제로 몸담고 있어서였을까. 그의 책 속에서 작가가 진심으로 '사설탐정들의 일을 이해하고 존경하며 그들의 삶에서 견뎌야하는 무게를 존중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지막 장에서 보여준 의외의 따스한 느낌도 좋았다. 그것이 작위적인 느낌이 들지 않았기에 그 따스함이 고스란히 내게 전해졌다. 나는 억지로 짜내는 듯한 '감동의 강요'를 합을 맞춘 듯이 딱딱 맞아 떨어지는 무술장면만큼이나 촌스럽다고 여기는 사람인데,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코리타는 선을 넘지 않고 절제한다. 그렇다. 과잉하지 않은 점이 이 데뷔작의 미덕일 수 있겠다.

마이클 코리타의 나이 서른살. 어느덧 이젠 나이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말할 수도 없는 나이가 되었다. 한 대담에서 탐정 시리즈만으로 30권을 내놓는 작가는 결코 되고 싶지 않다고 말한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는 [숨은강]이나 [사이프러스 하우스]같은 호러물로 가지를 뻗어 나가면서 글쓰기의 스펙트럼을 넓혀나가고 있다. 마음 속에 이야기꾼이 있어 글을 쓴다는 마이클 코리타.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더 듣고 싶어져 나는 이 작가 근처를 기웃거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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