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일”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예를 들자면 영화 ≪위플래쉬≫에서 드러머 앤드류가 무대 중앙에 앉아 있는 장면을 상상해 보자. 주변은 칠흑같이 어둡고 앤드류 머리 위로 내리쬐는 푸르스름한 조명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내뿜는다. 앤드류는 신들린 듯 연주를 한다. 이 무대의 주인공은 나야 나! 날개가 달린 타악기의 공명음이 휘돌아간다. “전율” 속의 연주다. 오직 한 지점으로만 향하게 하는 힘이다. 등신 새끼라 욕먹던 순간도, 피 묻은 드럼 스틱 위로 떨어지던 눈물도 기억나지 않는다.


앤드류는 '대단한' 드러머가 되고 싶은 청년이다. 그래서 플래처 선생이 관심을 가져주었을 때 누구보다 기뻐했다. 그러나 플래처는 폭군이었고 앤드류가 발버둥을 칠수록 냉담한 심판관이 되곤 했다. 영화 후반에 이르면 앤드류가 플래처와의 대결에서 승리한 듯 보이지만, 이미 무대 위에서 연주하는 앤드류에게 플래처는 없다.


관객들은 하나같이 후반부 앤드류의 연주에 전율했다고 말한다. 영화 제작자의 의도에 휘말렸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냥 떠오르는 대로 말해보자면 이렇다. '전율'은 좀 희안한 감이 있다. 채찍질한 악인 플래처의 개과천심이나 앤드류의 고난과 성장 때문이라기에는, 도대체 이 '전율'이 연결되기 힘들다.


모두를 한 지점으로 모을 수 있는 역동, '위대한 일'에 대해 생각한다


위대한 일 하나는 천재성이다. 고난을 뚫고 기어이 만들어내고야 마는 광기어린 열정이다


위대한 일 두 번째는 인격적 위치를 조정하는 이성과 합리성이다. 플래처와 앤드류,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사회(구조)에 대한 통찰을 끌어낼 수 있는 시선의 힘이다.


위대한 일 세 번째는 인류의 빛이다. 드럼 연주는 앤드류가 만들어내고 있지만, 그 음악에 전율하는 것은 무대 밑과 뒤, 옆의 칠흑 속에서 응시하는 '인류'라는 공식이다.


위대한 폭력의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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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움직이는 힘이 어디에서 올까. 알 수도 없고 안다고 해도 별일도 없을 지경이지만, 가끔 '자신'이라는 쓸데없음이 북풍처럼 몰아칠 때 그 질문은 시작되었다가 아무 생각없이 햇살을 보고 두 팔을 벌리는 순간에 사라지곤 한다. 나를 들여다보는 일이 모질고 슬픈 정서라면, 변함 없는 자연에 두 손 들어 투항하는 행위는 기쁨의 감정일테다. 완전히 감은 눈 안에서 혹시 있을지 모른 자신을 찾으려 하지만 어떻게 찾을 수 있겠는가. 실눈 사이로 보이는 눈부심이 눈두덩을 뜨끈하게 데울 즈음에야 존재는 스스럼없이 출현한다. 시작점에 감겼던 눈이 끝점에서는 더 '힘껏' 찡그리게 된다.


존재라, 태생적으로 외로운 물건이군요. , 외롭게 태어난 물건입니다. 우리만 외롭게 태어난 게 아니었군요.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기기 고장이 아닙니다./ 장시간 인공존재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을 경우 사회성이 손상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 본 제품은 스스로 존재하며 존재를 활성화하거나 유지, 증명하는 데에는 안정적인 전원 공급 외에 어떤 도움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 돌멩이로 오인 받을 수 있습니다. 분해했을 때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불량품이 아닙니다. / , 그럼 그 외로운 인공존재를 우주로 내보내도 될까요?/ 존재 폭발이었다. 존재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 힘으로 스스로를 증명했다.( 『안녕, 인공 존재』에서)


요즘 자주 다니게 된 가게가 있다. 생협인데 회원가입비도 3천 원으로 부담 없고, 비교적 저렴한 식품을 살 수 있어 단골이 되었다. 그 가게에서 누군가 아는 기척을 했다. 경쾌하고 두려움이라고는 모를 목소리로, 어디에서 대학을 다닌 몇 학번이시죠 한다. 누굴까 모르겠다. 그런데요라고 수긍하자, 이름이 모모씨 인가? 한다. 몰라봐서 미안하다는 내게 당연히 모를 거라고 한다. 요즘 뭐하냐고 묻는다. 집에서 논다고 했다. 그녀는 더 호탕하게 좋은 팔자라고 했다. 맵시 있는 차림새와 당당한 어투는 그녀가 잘 살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나는 약간 기가 꺽인 상태가 되었는데, '정상적'으로 굴라고 스스로를 채근하는 압박감에 그녀에게 언제 차 한 잔 하자고 했다. 그녀는 망설임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이 상냥한 목소리로,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것 같다고 거절했다. 그럼 안녕히 가세요 하고는 가게 귀퉁이에서 그녀가 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이데올로기는 개인들을 주체로서 호명한다.”는 말이 있다. 알튀세르가 말하는 이데올로기는 내가 딛고 있는 실재조건에 대해 갖고 있는 표상이다. 이 시대는, 아니 우리 사회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적합한 주체성을 또렷하게 제시하고 있지만, 그렇게 적응된/성공한/발전하는 주체를 부르고 있지만, 나와 같이 그 응답에서 누락되는 사람이 있다. 아니 역설적이게도 나와 같은 탈락되는 주체들로 인해 이데올로기는 영원한 것이다. 이데올로기는 외부 조건들- 물질, 타인으로 야기되는 내 변용의 관념들이다.


나를 부를 적당한 이름을 알지 못했다. 집에서 논다고 말하다니, 베짱이라도 된 것처럼 말했지 뭔가. 그녀가 나를 기억하는 것은 신문사에서 운동을 했다는 점 때문이었단다. 그래서 친구는 아니지만 나를 알고 있으므로 악수라도 한번 하자고 했다. 악수를 하는 순간 내가 위축되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보드라운 손은 반짝이는 매니큐어 색깔로 더 생기있어 보였고, 그 위에 겹쳐지는 내 손은 메마르고 쪼그라들어 보였기 때문이었을까. 손톱 주변에 손가시가 일어나 있어 허옇게 튼 손의 영양가 없는 몰골이 창피하기라도 했던 것일까. 개미였다면 좋았을까. 아버지와 오빠가 그랬던 것처럼 노동일을 당당하게 말하는 법을 깨우쳤다면 괜찮았을까.

일에 내물리고 사회를 지탱하는 주체들에게 죄를 짓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녀 표현대로라면 나는 운동권이지만, 난 운동을 한 기억이 없다. 불려지던 이름과 나 사이에는 커다란 공백들이 있다. 신문사 편집장 임명 문제로 마찰이 있었다. 동료들에 의해 선출된 나를 학교에서는 인정하지 않았고, 발행이 중단된 상태에서 대자보를 몇 장 붙인 것이 내 행적의 전부였었다. 방학 동안 주간 교수는 내 동기를 임명하고 개강과 동시에 신문을 발행하게 했을 때도 아무 말도 못했는데, 내가 무슨 운동권인가. 이런 일도 있었구나. 동기들에게서도 엉뚱한 이야기를 들었다. 선배들이 쟤는 PD니까 가까이 하지 말라고 했단다. 어이없는 일이었다. 나는 어떤 조직활동도 하지 않았다. 내가 작성한 몇 개의 기사가 나를 규정하고, 어느 쪽에서도 반기지 않는 존재가 되게 했다. NL 선배들이 보기에 나는 반대 진영의 선동꾼이었고, 교수가 보기에 나는 중립을 지킬 수 없는 극단적인 운동권 학생이었으며, 다른 학우둘에게는 전투적인 튀는 얘였다. 내 생각으로는 그들의 부름에 네 저예요라고 대답할 내가 있지 않다. 그러나 그렇게 불려진 나는 그곳에 있었다.


이데올로기는 상상이라는 오해 속에서 사건화되는 단절된 면을 통해 드러난다. 어느 새 나도 모르게 내가 개미인지 베짱이인지 '김지영'인지를 따져묻고 있는 것이다. 부모 말에 순종하는 효녀라면 했어야 할 행동들을 멀리했으며, 학교에서는 모범생이었던 적이 없었고, 직장에서도 모나게 행동한다고 배척을 많이 받았었다. 출산과 육아를 하지도 않았고, 여느 동시대인이 겪고 있어야 할 부양의 의무, 사회적 책임들에 소홀했다.


부정되고 부정당하는, 이름도 없이 흘러다니는, 존재들이 재생산을 가속화시킨다. 바로 나와 같은 존재들이 말이다. 위축되지 말고 사라지지 말고 존재폭발하지 말지어다. 만들어진 존재여, 안녕?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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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치인이 용서를 구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남겼다는 기사를 읽고 난 후 작은 웅덩이 하나가 만들어지고 있음을 느꼈다. “나무에 관해 이야기 하는 것이/ 그 많은 범죄행위에 관해 침묵하는 것을 의미하기에/ 거의 범죄처럼 취급받는 이 시대는 도대체 어떤 시대란 말이냐/~/우연히 나는 해를 입지 않았을 뿐이다./ 사람들은 나에게 말한다. 먹고 마시라고, 네가 그럴 수 있다는 것을 기뻐하라고/ 그러나 내가 먹는 것이 굶주린 자에게서 빼앗은 것이고/ 내가 마시는 물이 목마른 자에게 없는 것이라면/ 어떻게 내가 먹고 마실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나는 먹고 마신다.”( 「후손들에게」, 브레히트)


이웃집 아이가 사라지고 냉기가 감돌던 동네에서는, 나무를 이야기 할 수 없는 도시에서는 고령의 문인이 병들어 있음을 알아채기 어려웠다. 너도나도 병들어 있어서 어딘가 있을 아름다운 풍경만을 찾기 바빴나보다. 뒤늦게라도 병증을 알아챘다고 해서 위기 탈출의 길이 열리는 것도 아니다. 필경 내가 먹고 마시는 토대가 어떻게 구성되는지 낱낱이 알게 될수록 병증은 깊어질 것이다.


불의만 있고 분노가 없을 때는 절망하면서/ 계급의 전쟁을 뚫고 우리는 살아왔다./ 그러면서 우리는 알게 되었다./ 비천함에 대한 증오도/ 표정을 일그러 뜨린다는 것을/ 불의에 대한 분노도/ 목소리를 쉬게 한다는 것을. 아 우리는/ 친절한 우애를 위한 터전을 마련하고자 애썼지만/ 우리 스스로 친절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너희들은, 인간이 인간을 도와주는/ 그런 세상을 맞거든/ 관용하는 마음으로/ 우리를 생각해다오.( 「후손들에게」, 브레히트)


어디서부터 틀어지기 시작했는지 모른다. 브레히트가 꿈꾸는 세상은 아주 단순하게도 서로가 서로에게 작은 도움이 되는 그런 세상이었을게다. 쉰 목소리로 노동 해방을 외치지 않아도 되는, 고문 없는 세상을 염원할 필요도 없는, 배고파 죽는 이웃을 상상하기 어려운 그런 곳 말이다. 뭐가 이렇게 어려운가.


삶이 그렇다고 말하지 말자. 상생과 상극이 있어야 우주라고 떠들지 말자. 지금 당장은 그런 말들이 표정을 일그러뜨리게만 한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내 병증이다. 마트가 두려웠고 버스가 무서웠으며 모든 것들이 불안을 가져왔었다. M이 울고 있을까봐 두려웠으며 영영 복구되지 못할 존재들의 항의가 고통스러웠다

흐르는 물소리를 듣고 내 심장소리에 집중한다. 가슴 속의 불안이 쉬 가라앉지를 않아서 애를 써본다.


26번가와 브로드웨이의 교차로 한 귀퉁이에

겨울철이면 저녁마다 한 남자가 서서

모여드는 무숙자들을 위하여

행인들로부터 동냥을 받아 임시 야간 숙소를 마련해 준다고 한다.


그러한 방법으로는 이 세계가 달라지지 않는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나아지지 않는다.

그러한 방법으로는 착취의 시대가 짧아지지 않는다.

그러나 몇 명의 사내들이 임시 야간 숙소를 얻고

바람은 하룻밤 동안 그들을 비켜가고

그들에게 내리려던 눈은 길 위로 떨어질 것이다.


책을 읽는 친구여, 이 책을 내려놓지 마라.

몇 명의 사내들이 임시 야간 숙소를 얻고

바람은 하룻밤 동안 그들을 비켜가고

그들에게 내리려던 눈은 길 위로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방법으로는 이 세계가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한 방법으로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나아지지 않는다.

그러한 방법으로는 착취의 시대가 짧아지지 않는다.

( 「임시 야간 숙소」)


이 불행한 시절에 브레히트의 시를 읽는다는 행위는 아무 것도 달라지게 하지 않을 것이며, 그런 방법으로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나아지지 않는다. 앎은 특권이다. 특권이 없는 세상을 위해 특권을 가져야만 할까. 병증이 없는 세상은 불가능하지 싶은데, 병증도 몰라본다면 하룻밤 동안 바람을 비껴줄 임시 야간 숙소도 없는 것이 아닐까 싶다. 주억거리며 힘겹게 악한 자의 가면을 쓴다/벗는다.


내 방 벽에는 일본제 목제품인

황금색 칠을 한 악마의 가면이 걸려 있다.

그 불거져 나온 이마의 핏줄을 보고 있노라면

악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느낄 수 있을 것만 같다.

(「악한 자의 가면」)


살아남았음을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도 모른 채, 가슴 밑 통증에 매달려 있다. 

지금이 전쟁중이라면 무엇과 누구와 대결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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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달 전에 책방 문을 닫으면서『서점은 죽지 않는다』를 보게 되었다. 왜 죽지 않을까. 죽지 않는 것이 있을까. 내가 열었던 책방은 죽었다. 아니. 혹시 어딘가 다른 형태로 살아 있나.


살다-죽다. 태어나다-죽다. 살다와 태어나다는 같은 위치에 있는 말인가? 살다-죽다는 단선적이며 내부의 문제이며 개체라 할 수 있는데, 태어나다-죽다는 태어나다-죽다-태어나다-죽다-태어나다 … 다수성을 가질 수 있으며 외부적이며 능동과 피동의 사이를 오가는 문제라서 얼마든지 교차와 복선이 가능하다. 그렇지만 죽다-죽다는 같은 위치에 있다. (내맘대로 사전, 12)


책방에는 여러 손님들이 오갔다. 그들에게는 사연이 있었으며, 웃음 뒤켠에 서글픔이물들어 나직하게 흘러나오곤 했었다. 그들은 책방 문을 열듯 세계를 향해 손을 내밀 용기까지 갖고 있었다. 세상을 대하는 법을 터득해 나가고 있던 사람들은, 병들어 있는 내게 여러 요령들을 일러 주기도 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은 어렵지 않았고 때로는 경이로움을 느끼기도 했지만, 내 이야기를 묻는 시선에는 도통 익숙해질 수 없었다. 책방은 사적인 원환(圓環)을 발견 • 극복하는 장소가 될 수 없었다. 아마도 내가 생각하는 책방의 모습은 사적인 원환을 다시 쓰고 직면하는 공간(空間)이었을 것이다.


서점 손실이 누적되고 내 병은 정체될 무렵, 한 손님이 서점을 흥하게 할 수 없어도 망하게는 할 수 있다는 말을 내던졌다. 처음에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신경 써 주셔서 고맙다고 말했다. 그분은 활기차고 인정이 넘치는 사람이였으며, 서점이 성공할 수 있도록 청소년 대상 강좌를 열어보라는 제안을 하는 등의 사업전략을 적극적으로 제안해주셨던 분이었기에 어떤 행간도 읽지 못한 채 그저 고마움만을 내보였었다. 그러다 다른 손님까지 그 말을 인용하며 사업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확실히 하라고 했을 때도 감사함의 인사를 반복했으며, 운영상의 어려움을 내외없이 내뱉었던 내 실수에 영향을 받은 덕담으로 생각했다.

그러다 꽤 여러 명이 모인 모임에서 그분은 다시 그 이야기의 확장판을 웃으며 들려줬는데, 모임이 끝나고 내가 처했던 상황을 조금 더 파악할 수 있는 말을 가까운 지인을 통해 들었다. 망하게 한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기는 어렵다며, “그분은 진심같던데 …”라는 물음표를 훅 던져 주었던 것이다.


이미 그 손님에게 책방은 죽어가고 있었다. 그것이 어떻게 태어났는지 알지 못하지만, 죽었다는 것은 알게 되었다. 그 손님과의 마지막 만남은 좋지 않았고, 나는 그 말에 전염되어 망해가는 서점, 죽어가는 책방을 느끼고 있었다. 망할 것이야 충분히 예상했었지만, 죽는다는 것은 염두에 없었다. 당연히 죽어야지 하는 마음도 들었다. 나에게 책방은 내 원환의 체계가 어떤 모습인지 다시 직면하게 해주었다


그분과 또다른 손님에게는 명확하게 보이는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한방병원에서 만났던 아주머니와의 만남이 다시 반복되고 있었던거다. 그 아주머니는 파란만장했던 그녀의 인생을 긴 시간 동안 성의껏 들려주었었다. 연간 천만 원 이상의 기부자 대열에 설 수 있도록 만들었던 원동력으로 끈기와 근성을 잃지 않았던 점을 강조했었다. 몸에 남은 흉터와 수술 자국도 확인시켜줬고, 자긍심 어린 눈빛도 보여주었다. 내가 앓고 있는 병은 한가하고 게으르며 고상한 척 하는 사람들이 걸리는 거라고, 내게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필요한 목록을 일러줬었다. 그 당시 내게 그 강의는 옳고그름의 선상에 있지 않았고, 살려고 붙들어야 하는 '정상성'의 회복과 관련되어 있었다.


야물지 못한 일처리와 탐탁치 않은 독서모임의 내용 등 … 그 손님에게는 거친 덕담을 건넸던 한방병원 아주머니처럼 격한 심랑이 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떨림이 멈추지 않고, 무섭기만 하던 때였기에 그 거침은 내게 부드러움 자체였지만, 그런 상황들은 맥없이 현실 곳곳에 반복되곤 했다. 여러 사적 체계들이 섞이지 못하고 교차한 부분도 없이 허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허공이 내 사적 원환에 진동을 준다.


인과적인 분석만큼 원한 감정도 싫어한다. 불쾌했던 순간을 재연하지 않는 것만큼이나 유쾌했던 순간을 지속하는 것도 껄끄럽다. 망한 서점이 무엇/누구 때문이라거나, 병든 내 신체가 불행한 과거 경험때문이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적이 없다. 내 촉은 현재이며 내 감각은 현실이고 내 사유는 세계라는 그것들을 다 담고 있다. 공포와 고통만 느껴지게 하던 내 병증은 내 촉과 감각을 의심하게 했다.


사적 요인들에 떠밀려 쾌락/불쾌의 장면을 강박적 충동적으로 재연하기보다 미래를 향해 주체적, 창의적으로 연기하거나 일매지게 계획하는 능력은 인간의 생산적 활동에 동원될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코드다.(66, 『집중과 영혼』)


이런 구절을 읽을 때면 어김없이 거부감이 들고 의문의 또아리가 커졌었는데, 같은 문맥의 그 손님과 아주머니에게는 말없이 고맙다고 연신 말하며 경청했다. 이제 … '정상성'을 다시 생각하게 하며 애써 찾아본다


아뿔사, 고깝게 멀어지게 하던 차가움을 다시 확인한다. 정말 죽음으로만 끝낼 수 있는 원환의 체계가 있을까봐 무서워진다. 당연하지, 그렇지만 너의 촉과 감각은 허공을 느끼라고 하잖아, 이 멍충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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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8-02-26 19: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서점은 망했으나 봄은 왔으니 셈셈이네요.. ㅎㅎ
 

바람이 세차게 불어도 하늘은 일없이 고대로고, 폭우가 순식간에 물바다를 만들어도 땅은 꺼지지 않더라. 그래, 그렇게 아무 일도 아닌 듯이 살고 싶다.


애써 태연하게 말하지만, 바람이 할퀸 흔적을 지울 수 있을까. 넘친 제방을 타고 떠내려간 생명을 살릴 수 있을까. 장대비가 쏟아지고 난 뒤 대기가 얼마나 깨끗한지 잊지 않고 있다. 태풍이 가라앉고 난 뒤 허공은 왜 그리 고요해지는 알고 있는가. 햇빛으로 달궈진 바람과 폭우는 또 그렇게 햇볕에게 뒤를 맡기고 아무 일도 없는 세계를 만든다.


가끔 내가 가진 생각들을 너른 바위 위에 펼쳐 놓고 햇볕에 꾸덕하게 말리고 싶을 때가 있었다. 수분이 모두 날아간 '사고'뭉치들은 가벼워지겠지. 살며시 ''하고 불면 훌훌 날아가겠지 … . 그리고 아무 일도 아닌 듯이 기지개를 켜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뜀박질하면서 함성을 지르는 거지.


20169월 무렵 난 아프기 시작했다. 두 달 동안 고통에 먹고 마시지도 못하고 흔들리는 시간을 버티며오직 살 궁리만 하고 지냈다. 이비인후과 호흡기내과 류머티즘내과를 거쳐 가정의학과에 갔을 때였다. 담당의는 몇 가지 검사를 제안하며, 어떤 “얼굴”을 하고 다니는지 아느냐고 질책하며 친구는 얼마나 되는가를 물었었다. 공황장애 상태라 부비동염으로 얼굴 통증을 느끼면 곧 호흡곤란 상태로 빠져들곤 했다는 것이다. 나는 죽을병이 아닌 죽을 병에 걸려 있었다.


그때부터 내 공포감을 삭제해 줄, 살 수 있는 방법, 휘몰아치는 공포에 쪼그라드는 몸을 펴게 해 줄 방법을 찾아 매달렸었다. 십몇 년 동안 연락한 적도 없는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서, 나와 이야기를 나눠 달라고 부탁을 했었다. 한방 병원에서 잠깐 만난 아주머니가 말을 걸어주기라도 하면, 가슴 속에 안도감이 잠깐 들곤 했다. 추운 날도 반소매와 반바지 상태로 해를 따라 걸었으며, 영양실조 상태를 만회하려고 고깃국을 먹었었다. 요가 명상을 하며 긴장감을 풀려고 했고, 길가다가 멈춰서 뻣뻣해진 몸을 움직이며 춤인지 체조인지 모를 몸부림을 하곤 했다. 몇 명의 아는 사람에게는 일거리가 필요하다고 애원하기도 했었다. 살려면 그 모든 것은 잠깐이 아니라 지속이어야만 하는데, 안도의 순간은 짧고 불안은 일상이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어느 날, 두 시간을 넘게 걷다가 집으로 돌아가는데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을 보게 되었었다. 입가에 지은 미소가 몹시 어색해 보였는데, 공포가 가득 찬 눈빛을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더 급해진 나는 억지 미소가 아닌, 진짜 웃음을 찾으려고 연습을 시작했었다. 개그 프로그램을 찾아보며 웃는 장면을 따라하고, 아이들이 낄낄거리는 것을 흉내냈으며, 복식 호흡으로 생기를 끌어올리려고 했다. 음식점에서 한 무리를 청년들이 왁자지껄 걸어나오는데, 마치 그들의 일행인 것처럼 맨 끝자락에 붙어서 걷다가, 누군가 농담을 하고 다함께 웃음이 터질 때 나도 따라 웃었다.


난 무용담을 늘어놓듯이 살기 위해 했던 노력들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아닌듯이 흘려보내려 한다. 지난 해 늦가을부터 한 주에 몇 킬로씩 살이 붙기 시작하더니 통통한 몸으로 돌아왔다. 호흡기도 관절 통증도 나아졌다. 물론 어떤 부작용도 있었다. 염증이 심해질 때까지 '공황 증상'으로 생각하고 '나는 아프지 않다, 지금 내 신경 시스템이 이상반응을 한다'며 참다가 고생도 했었다. 시끄러운 소리가 나면 꼭 '이 소리 들려?'하고 묻게 된다.


가장 거슬리는 후유증은 인과적인 사고 습관이 생기려는 것이다. 나는 목적론이나 기원을 갖는 세계를 싫어했고 인과론적 분석에 알레르기가 있었다. 곰곰 되짚어 보자면 어릴 적부터 시작되었던 같다. 울면 더 맞는다는 엄포를 들었을 때,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잘못을 했기 때문에 매를 맞아야 하며, 거기에 반성하는 자세라면 울어서는 안 된다는 설교에 저절로 더 맞는 쪽을 택했다. 매를 피해 도망치는 때가 늘었었다. 내게는 잘못과 벌은 별개였고, 아버지 없이 컸다는 소리를 듣지 말아야 한다는 강요도 부당했고, 내 행동과 아버지는 별개였다. 맨발로 뛰쳐나와 뚝방에 앉아서 저물어가는 하늘을 보고 있을 때도 슬프거나 비참하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힘이었다.


그런데 공포에 취해서, 내 인간관계가 서툴러서, 내 능력이 모자라서, 내 의지가 약해서, 내가 일을 안해서 … 내 죄가 많아서 … 병에 걸린 것은 아닐까 반성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동안 매를 피한게 아니라 인과적인 상황을 피했었던 것일까.


그러나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몸에 집중했으며, 나라는 존재 자체를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했다. 그대로 …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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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14 2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2-16 2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lavis 2018-02-16 2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랫만이에요 초원님♡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초원 2018-02-26 15:29   좋아요 0 | URL
헤이, 요! 여!
어제 만난 사이처럼 가볍게 인사드리구 싶어요.
점심으로 뭐 맛난 거라도 드셨나요.

식후 졸음과 싸워야 할 봄이 왔군요.
벌써 꾸벅꾸벅하면 안될터인데...
살찐 뱃살이 너무 접혀 소화도 안되겠네요.
좀 걸어야겠어요.
clavis님과 더 가까워질때까지

2018-02-17 14:4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