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도라의 움직이는 말,
머무르는 몸
프로이트가
도라를 다그칠 때 억장이 무너졌다.
도라가 당당하게 맞설 때조차
그녀의 어깨가 쪼글아들어 있었을 걸 생각하면 목울대를
치는 에너지가 느껴졌다.
언어가 '가능성'
을 불러내는 행위라고 하면 그
순간 프로이트는 도라의 적이었다.
프로이트가 자주 비판받던 주제
중 하나가 성차별적 진단인데,
그 주장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분석자 프로이트가 도라 위에 군림하던 순간을 잊기
어렵다.
도라는
아버지에게 이끌려 프로이트에게 분석치료를 받게
되었다.
발작적인 기침과 실신,
우울증,
그리고 주기적으로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증상에 시달리고 있던 도라에게서 프로이트는
(여성)
히스테리를 포착해 낸다.
이후 도라의 '억압된
욕망의 기원'을
읽을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
당시
18세였던
도라는 빅토리아 시대의 전형적인 멜로드라마 속에
있었다.
도라는 어머니와는 불편한 관계였으나,
아버지와는 가까운 편이었고,
이웃인 K부인과도
친밀하게 지냈다.
도라의 아버지는 K부인과
불륜 관계였는데,
K씨는 도라에게 성적 접근을 했고,
도라는 이를 거부했다.
도라가 프로이트에게 전한 내용에 따르면
그녀는 아버지와 K부인이
자신을 K씨에게
제공함으로써 그를 진정시키려고 했다고 느꼈다.
~ 도라의 아버지는 K씨의
즐거움을 위해 도라를 내줄 의향이 있었다는 그런
의미다.
도라가 14세에서
16세
사이에 이 모든 사건을 겪었다는 점을 들자면… 굉장히
지저분한 이야기임이 틀림없다.
프로이트의 기록에는 도라가 프로이트의
해석에 동의하지 않는 여러 순간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 중 가장 중요한 예로 간주되는
것은, 프로이트가
도라에게 실제로 K씨와
사랑에 빠졌으며 그녀의 히스테리는 부분적으로 K씨를
향한 바로 이 억압된 감정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했을
때이다.
도라는 최종적으로 프로이트의
해석에 굴복하고 말았지만,
상당한 시간 동안 그의 해석을
부인하려는 노력을 계속했는데,
치료 과정의 대부분이 프로이트와
도라의 의지 싸움처럼 보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프로이트
콤플렉스』)
도라는
K씨의
강제 키스가 혐오스러웠다고 말하지만 프로이트는
그렇게 느끼는 일이 “이미 전적으로 완벽하게 히스테릭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도라가 자신의 욕망에 불안을 느껴
정반대로 반응했다는 말이다.
도라가 돌연 치료거부를 선언했기
때문에 프로이트는 치료에 실패한다.
그런데 이 실패는 상담치료의
실패일 뿐이었다.
그러니까 피분석자 도라의 저항을
통해서 '전이'라는
정신분석의 중요 개념이 창발되었기 때문이다.
도라가
쉽게 잊혀지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도라는 말하고 있었다.
신경증은 신체에 머무른다.
그리고 신체는 움직이는 말을
생산해잰다.
도라의 말은 프로이트의 의식을
지나쳐 무의식을 통과해서 다시 도라에게로 이른다.
프로이트는 다만 의식에 머무르는
말로 도라를 분석한 것은 아니었을까.)
도라가 무의식의 욕망으로 인해
고통스러워했을까는 여전한 의문이다.
프로이트의 기록에 따르면 도라의
가장 깊은 분노는 아버지가 그것을 믿어주지 않은 데서
비롯되었다.
도라의 아버지는 호숫가에서의 장면을 도라의
상상력의 산물로 곧바로 간주해버렸는데,
그의 행동들 중 이것만큼 도라를
실망시킨 것은 없었다.
도라가 그때 어떤 일을 그저 상상했을
뿐이라고 아버지가 생각했다는 바로 그 사실만으로고
그녀는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프로이트
콤플렉스』)
프로이트가
수행한 분석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또다른 열네 살 소녀가 앓고 있는
복통을 시끄러운 히스테리 증상으로 진단하는 바람에
두 달 후 그녀를 죽음에 이르게 한 사실을 떠올리자면,
정신분석은 뭔가 추악한 짓거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이트는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도라의 선언은 그냥 나온 거라기
보다는 프로이트를 통과해서 나온 '움직이는
말'이었으니까.
(도라)
“내가 오늘 마지막으로 여기 온
걸 아세요?”
(프로이트)
“그에 대해 아무 말도 안해 주었는데
내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도라)
“그래요,
난 새해가 될 때까지 참으려고
했어요.
하지만 치료를 위해서라고 해도
이제 더 이상은 못 기다리겠어요.”
(프로이트)
“언제든지 당신이 원하면 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는 것은 당신도 알고 있습니다.
어쨌든 오늘은 치료를 계속해
보도록 하죠.
언제 이런 결정을 내린 것입니까?”
(도라)
“ 2주 전쯤이었어요.”
(프로이트)
“ 2주 전의 통지였군요.
내가 마치 하녀나 가정교사가 된
것 같습니다.”(『프로이트
콤플렉스』)
2.
애거서 크리스티의 움직이는 몸
근대
유럽의 탈주술적 세계로의 진입에 걸맞는 옷이었을
정신분석이,
동양인 여성에게도 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 그렇게 시작했던 글이 있었다. 1) 오래 전 일이지만 그 당시의 문제
의식을 조금 끌어와서 미스 마플과2) 미니멀리즘을 잠시 생각해본다.
프로이트는
주술적 신비에 머물면서도 탈주술적 세계를 배반하지
않는다.
오이디푸스,
사드,
나르시스 등은 문학과 신화에서
차용되어온 판타지인데 전통과 맞서지 않을 뿐 아니라
더 심화시킨다.
… 또 현실 원칙은 훌륭한 자기관리서로
손색이 없다.
동양적 사유의 특색이 흔들리지
않는 인격 수양에서 시작되는 서사인데 프로이트의
출발선과도 잘 어울린다.
반대편에서
볼 때도 프로이트는 꽤 매력적이다.
무엇으로도 설명하기 어려웠던
인간 정신의 구조가 프로이트의 지도로 안정감을
찾았다.
그러나 이는 인간이 만든 억압에
주목하게 하면서 기껏 만들어 놓은 현실 원칙을 불안하게
할 동기를 부여하고 있다.
의식이 아니라 알 수도 없는 무의식이
인간의 행동을 지배한다는 생각은 인간의 왕관을
우습게도 만들기 때문이다.
예측 가능한 과학은 예측 불가능한
뇌-마음의
영역을 합리적으로 통제하려고 기를 쓴다.
인간을
향한 회색의 시선을 유지하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 어떻게 일상생활의 시선이
되었는지를 살펴보기에 적합한 자료다.
애거서의 많은 작품에서는 “아이들이
부모를 사랑하는 동시에 증오”한다거나 “본능은
어떤 종류의 행동을 향한 육체의 강력한 충동”이라는
프로이트의 명제가 그대로 드러난다.
도라의 사례와 비교하며 『0시를
향하여』를 읽어본다.
이 작품의 중심 인물은 네빌,
오드리 … 등으로 배틀 총경의 딸
실비아나 앰프리 교장은 배경 인물에 지나지 않는다.
베틀
총경은 교장 앰프리로부터 딸 실비아가 도난 사건의
범인임을 자백했다는 편지를 받는다.
앰프리 여사는 성공한 교육자이고
'자기
결정'이라는
현대적 개념을 교육에 적용하고 있었다.
먼저 앰프리 교장의 입장을 들어보자.
“중요한 것은 말이지요,
올바른 방식으로 이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건 아이
자신입니다,
배틀 총경님.
실비아 자신이란 말이지요!
가장 중요한 것은 실비아의 인생에
어떤 식으로든 타격이 가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죄책감이라는 짐을 지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 우리가 알아내야 하는 건 실비아가
이런 짓을 하게끔 만든 배후의 이유입니다.
그건 아마도 열등감이 아닐까요?
총경님도 아시겠지만,
실비아는 운동을 잘 못합니다.
다른 영역에서 자신을 돋보이고
싶은 막연한 욕구,
자신의 자아를 주장하고 싶은
욕망이 있었던 게 아닐까요?
제가 우선 총경님을 혼자서만
뵙자고 한 것이 바로 그 때문입니다.”
(『0시를
향하여』)
이제
실비아의 얘기를 들어보자.
키가 크고 가무잡잡한 피부에 비쩍
마른 아이가 우울한 얼굴에 눈물 자국이 그대로 인
채로 머뭇거리며 아버지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있다.
“저는 그게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마비된 것 같았어요.
저는 틀린 단어를 답하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아무런 상관이 없는 단어들,
그러니까 다람쥐나 꽃 같은 단어를
생각해 내려고 애썼는데,
앰프리 선생님은 거기 서서 그
나사 송곳 같은 두 눈으로 저를 바라보고 있는 거예요.
아빠도 아실 거예요.
그 파고드는 듯한 눈 말이에요.
그래서 저는 점점 더 긴장했어요.
그러고는 며칠 후 앰프리 선생님이
저에게 아주 상냥하게,
그리고 모든 것을 정말로 잘
이해한다는 듯이 말을 건네오는 거예요.
그래서,
그래서 저는 어쩔 수 없이 제가
그랬다고 말했어요.
아,
아빠,
그러고 나니까 얼마나 마음이
편했는지 몰라요!”(『0시를
향하여』)
배틀
총경은 딸 실비아의 무죄를 밝혀낸 구원자이다.
앰프리 선생은 비언어적,
암시,
연상 등의 심리학적 수사로 실비아를
검거했다고 주장하지만,
날카로운 배틀 총경의 정확한
진단은 진실을 관통한다.
앰프리 교장이 자랑스럽게 검거
과정을 적발했을 때 배틀 총경은 침착하게 얼굴엔
감정이 드러나 있지 않게 “고맙습니다.
선생님.”하며
“선생님이 괜찮으시다면 이제 제 딸을 보고 싶군요.”
라고 답한다.
그리고 실비아에게도 “마음 고생이
심했겠구나,
그렇지?
… 네가 어떤 아이인지 아빠는
줄곧 알고 있었어.
… 너는 긴장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진 거야.
그것도 아주 이상한 방식으로
말이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긴 하다만.”
그렇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배틀 총경은 『0시를
향하여』의 탐정 역할을 맡은 경찰로서,
증거도 없는 사건의 해결을 위해,
그 '아주
이상한 방식'을
이용해 범인 네빌의 자백을 받아내기 때문이다.
사실
이상할 일이 아니다.
예를 들자면 배틀 총경의 다음
말에 주목해 보자.
“이 학교에서 네가 훔친 건 아무것도
없단다. …
너는 아주 드문 유형의 거짓말쟁이일
뿐이지.”
실비아가 자식이라서 물불가리지
않고 믿어준 것은 아니라는 말이고,
그 아주 이상한 방식도 정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음을 보여줄 뿐이다.
어떻게 보면 냉정한 분석가의
진단이다.
바로 프로이트와 같은 분석가의
태도다. 배틀
총경은 시종일관 '네
아빠라서가 아니라 도둑이 어떤 인간들인지 속속들이
알고 있어서'
딸의 무죄를 확신했다는 말이다.
앰프리
교장은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범인을 검거했다.
“ 저는 학생 전원을 소집하고 이 사태에
대해 사실대로 말했습니다.
학생들에게 이야기를 하는 동시에,
저는 조심스럽게 아이들의 표정을
살펴보았지요.
실비아의 얼굴을 보자마자 전 알
수 있었습니다.
죄책감이 어린 혼란스러워하는
표정이었어요.
바로 그 순간에 저는 누가 범인인
줄 알 수 있었던 겁니다.
저는 실비아를 불러다 책임을
추궁하기보다는 실비아가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간단한 테스트를
실비아에게 해보았습니다.
단어 연상 테스트였지요.”(『0시를
향하여』)
3.
미니멀리즘으로 실뜨기하기
결정적인
열쇠가 하나 있다.
실비아는 앰프리 여사가 파악하지
못하는 엉뚱한 유형이었다.
애거서의 표현대로 말하자면 “여러
가지 상황이 주어진 시간과 주어진 장소로 총집결되는
최정점”을 이해하지 못했던 인물이다.
배틀 총경이 분석가의 위치를
차지하는 듯 보이지만,
애거서 크리스티가 반영한 그
시대의 프로이트는 포와로다.
탐정들은 모두 신경증을 앓고
있다. 홈즈가
중독자이며 포와로도 그렇게 표현되는데,
프로이트가 분석하는 (남성)
신경증의 전형적인 인물들과
유사하다.
울프맨과 래트맨 연구는 모두 프로이트가
상당한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한 사례 연구들이다.
울프맨과 래트맨을 괴롭혔던
신경증적 문제들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프로이트는
아버지와 같은 염려와 동정심을 드러냈을 뿐만 아니라,
그 두 사람이 병에 맞서면서 보여
준 창조력과 끈기에 감탄을 표하기도 했다.
프로이트가 자신의 남성 환자들의
고통스럽지만 창조적인 질병에 깊은 공감을 느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프로이트 콤플렉스』)
그러나
미스 마플은 좀 다르다.
홈즈가 근대과학의 최신 정보에
능통하고 포와로가 명망 있는 다국적 탐정인 반면
마플은 소설을 읽고 뜨개질을 한다.
세인트 메리미드 마을 밖으로 나가
본 적도 별로 없는 평범한 할머니다.
평범이라고 표현했지만,
현대에서도 그렇지만 나이 많은
여성은 여러 가지 악덕을 갖게 되고,
마플이 그 범주에서 많이 벗어나
있어 보이진 않는다.
그렇지만
내 생각으로는 미스 마플은 애거서 크리스티와 가장
닮았다.
애거서는 셜록 홈즈를 즐겨 읽었지만,
포와로를 탄생시켜 전세계에서
두번 째로 많이 읽힌 작가가 되었다.
포와로는 프로이트가 탄생한
시공간을 그대로 복사하고 있는 전형적인 인물에
가깝다. 그런
포와로를 역전시켜 놓을 인물로 미스 마플이 등장했다고
말하면 어색한가.
미스 마플은 여성 신경증,
히스테리가 없는 탐정이다.
탐정이 아닌 탐정이다.
탐정에
열광하는 일은 말 그대로 미니멀리즘을 맛보는 일과
흡사하다.
(미술 음악 문학 … 암것도 모르지만
회색 뇌세포를 사용해서 추측하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어떤 시간,
모종의 공간이 하나로 모아질 때
놓치지 않고 따라오는 리듬이 있다.
그 리듬을 읽어내고 진단해서 엉킨
실타래를 말끔하게 풀어내는 일을 탐정이 한다.
미니멀리즘은 사전적으로 말하자면
최소한의 표현,
최대한의 일치로 본질을 표현한다.
단조로움은 담백함이다.
도라의 일상은 길고 긴 싸움이었고
추적이었고 긴장이었지만,
히스테리라는 진단 앞에서는
투명해지고 미니멀리즘해진다.
나는
가끔 마플이 하는 말을 따라한다.
인간의 본성은 어디를 가도 대체로
거기서 거기에요,
변화하지 않을 거라는 걸 인정하고
나면 행복해져요,
사람들이 얘기하는 것을 전부
그대로 믿어선 안되죠.
전 뭔가 의심스러운 점이 보이면
아무도 믿지 않아요!
, 저는 늘 스스로 증명하기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어떻게
생각하면 인간의 본성을 잘 안다고 자만하는 탐정의
말로 들릴 수도 있겠다.
그런데 내게는 … 자신을 믿고
자신을 딛고 그리고 타인을 변화시키려는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
최소한의 겸손을 가진,
탐정의 실뜨기로 들린다.
*나는
어제 아팠다.
지금도 아프다,
아마 내일도 아프겠지만,
굳이 내 자신에게 왜 나아지지
않니라고 말하지 않는다.
도라는 내게 말할 필요가 없다.
이미 도라의 말은 내게 들어와
있다. 말하지
않아도 말이 움직인다.
머물러야 하는 말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