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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ge의 의미론

 

 소박한 의미론의 두 가지 문제

 

소박한 의미론의 기본 원리는 다음과 같다:

 

(NP1) 모든 언어표현의 의미는 그 지시체이다.

 

이번 장의 주제인 Frege의 이론을 살펴보기에 앞서이 절에서는 위 원리를 구성하는 다음 두 하위 원리를 먼저 고찰해보고자 한다:

 

(NP2) 단칭용어의 의미는 그 지시체이다.

(NP3) 1항 술어의 의미는 그것이 나타내는 속성이다. 2항 술어의 의미는 그것이 나타내는 2항 관계이다. 3 이상의 n항 술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Gottlob Frege는 초기 저술들에서 소박한 의미론과 유사한 관점을 견지하였다하지만 1890년대 이후의 저작들에서 그는 NP2 및 NP3에 반대할 만한 심각한 결점을 지적하고 이를 해결하고자 소박한 의미론보다 좀 더 복잡한 이론을 고안해낸다그 이론은 전반적인 대칭성을 보여주는바 매우 큰 설득력을 지니고 있으며그 핵심 착상은 언어철학뿐만 아니라 심리철학 및 인식론 분야에도 엄청난 영향을 끼쳐왔다이번 장에서는 Frege로 하여금 새로운 의미론을 정립하게끔 추동한 소박한 의미론의 몇몇 문제들을 먼저 살펴본 뒤Frege주의 의미론Fregean semantic이라 칭해지는 Frege 고유의 이론을 살펴볼 것이다.1)


1) (原註) Frege 이론에 숙달된 독자라면 이번 장에서 제시되는 Frege의 이론이 원래 것에서 상당히 단순화된 형태이거나 그 일부만이 제시되었음을 알아차릴 것이다일부 Frege 학자들은 그의 이론이 자연언어natural language를 위한 의미론으로 기도된 것이 아니라 생각하며다만 Frege의 관심사는 개념표기법Begriffsschrift에 제시된 바와 같은 인공적인 기호언어artificial symbolic language를 설명하는 것뿐이었다고 주장한다내가 생각하기에 Frege는 사고thought 즉 명제proposition가 자연언어에서 표현되는 다소 모호한 방식을 자신의 개념표기법을 통해 개선함으로써 명제를 더욱 명료한 형식언어로 표현해내고자 하였던 듯하다. [즉 자연언어의 의미론과 인공언어의 창안 둘 중 하나에만 배타적으로 관심한 것이 아니라후자를 통해 전자를 개선한다는 복합적인 과업을 겨냥한 듯하다.]

 

인지적 가치의 문제

 

Frege가 직접 제시한 유명한 예를 보자개밥바라기The Evening Star는 샛별The Morning Star과 같은 별이다(각각 Hesperus와 Phosphorus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일몰 직후 서녘 하늘에서 밝게 빛나는 천체는 일출 직전 동녘 하늘에 나타나는 천체와 동일한 대상 즉 금성Venus이다정확히 하나의 대상이 다른 시점에 다른 공간에서 나타나는 것이다따라서 다음 문장은 참이다:

 

(1) 샛별 개밥바라기.

 

그런데 소박한 의미론에 따르면 의미는 곧 지시이다특히 NP2에 따르면 단칭용어의 의미는 그것의 지시체 즉 그것이 나타내는stand for 대상이다이에 따라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2) ‘샛별의 의미 = ‘개밥바라기의 의미.

 

이것이 정말 참인가좀 더 생각해보자구성성 원리에 따르면 문장의 의미는 그 문장을 구성하는 부분표현들의 의미 및 부분표현들이 결합되는 방식에 의해 결정된다이에 따르면 임의의 두 문장이 동일한 구조를 갖고 있고한 문장 내부에 나타나는 부분표현들이 다른 문장에서 그에 대응하는 부분표현들과 동일한 의미를 갖고 있을 경우두 문장은 동일한 것을 의미한다즉 두 문장은 동일한 명제를 표현한다(문장의 의미란 명제임을 기억하라). 이러한 구성성 원리와 소박한 의미론을 받아들이면다음 두 문장이 동일한 것을 의미한다는즉 동일한 명제를 표현한다는 귀결이 (1)로부터 도출된다:

 

(3) 샛별은 행성이다.

(4) 개밥바라기는 행성이다.

 

따라서 소박한 의미론에 따르면 다음 역시 참이다:

 

(5) ‘샛별은 행성이다에 의해 표현되는 명제 = ‘개밥바라기는 행성이다에 의해 표현되는 명제.

 

하지만 직관적으로 이는 분명 옳지 않은 듯하다. (3)과 (4)는 정확히 동일한 것을 말하고 있지는 않은 듯하며 따라서 (5)는 거짓이다즉 두 명제는 동일하지 않다이 점이 조금이라도 의심스럽다면 緖論 장에서 살펴보았듯이 명제란 믿음과 같은 명제적 태도의 대상이 된다는 점을 떠올려보라만약 (5)가 참이라면샛별이 행성이라는 믿음은 개밥바라기가 행성이라는 믿음과 정확히 동일한 믿음인 셈이다.2) 하지만 두 믿음은 분명 동일하지 않다둘 중 하나만 믿으면서도 나머지 하나를 믿지 않는 것이 논리적으로 가능하기 때문이다천문학이 발달하기 이전 시대의 사람들처럼 샛별과 개밥바라기가 동일한 천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라든가 그러한 사실을 아예 부정하는 사람이라면분명 (3)과 (4) 중 하나만 믿을 수 있으며 그러한 믿음을 갖는 데에는 아무런 일관성도 없다이렇듯 임의의 두 명제 중 하나만 믿는 일이 가능하다면 그 두 명제는 동일한 것일 수 없다이는 내가 X를 발로 찼지만 Y를 발로 차지는 않았다면 X와 Y가 동일한 대상일 수 없는 것과 같다.3)


2) 믿음에 대한 동일성 식별 기준이 믿음의 대상 즉 믿음의 내용인 명제라는 점이 전제되어 있다여기서 말해지는 믿음은 유형으로서의 믿음이다. Sally와 Jones가 샛별이 개밥바라기라고 믿는다면 두 사람 각각의 믿음-개항은 별개이지만 그 믿음-유형은 동일하다따라서 좀 더 정확히 말해 명제의 동일성은 믿음-유형의 동일성에 대한 식별 기준이다.

3) 동일자 식별불가능성 원리의 대우가 취해져 활용되고 있다임의의 x와 y에 대해, x와 y가 식별가능하다면 양자는 동일하지 않다두 명제가 한 명제적 태도의 대상이 되는지 여부의 측면에서 차이를 보인다면 두 명제는 동일하지 않다.


이러한 문제는 다음 두 문장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6) 샛별 개밥바라기.

(7) 샛별 샛별.

 

Frege가 지적하였듯이 (7)은 선험적으로 알려질 수 있다즉 아무런 천문학적인 탐구가 없이도 알려질 수 있다따라서 (7)은 사소하게trivially 참인바 우리의 지식을 확장extend시켜주지 않는다반면에 (6)은 사소한 참도 아니며 선험적으로 알려질 수도 없다. (6)이 참임을 알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탐구가 실제로 수행되어야 하며 그러한 탐구 결과는 우리의 지식을 확장한다. Frege의 용어를 활용하여 말해보자면 (6)과 (7)의 인지적 가치cognitive value는 다르다두 문장의 유일한 차이는 한 문장에 샛별이 나타나는 반면 다른 문장에 개밥바라기가 나타난다는 점뿐이므로두 문장의 인지적 가치의 차이는 그 두 단칭용어의 차이에서 기인할 수밖에 없다그런데 그차이가 두 단칭용어의 지시의 차이일 수는 없다양자는 동일한 사물을 지시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Frege가 드러낸 소박한 의미론의 첫 번째 문제는소박한 의미론이 의미와 지시를 동일시하기 때문에언어표현들이 동일한 지시체를 가짐에도 각기 다른 인지적 가치를 갖는 이유를 적절히 설명해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지금까지의 예시는 복합 단칭용어complex singular term와 관련된 것이었을 뿐단순simple 단칭용어 즉 일반적인 의미의 고유명과 연관된 사례는 아니었다.4) 하지만 고유명의 경우에도 인지적 가치의 차이 문제가 발생한다고대 바빌로니아인들은 샛별과 개밥바라기를 각각 Phosphorus와 Hesperus라는 고유명으로 불렀다따라서 고대 바빌로니아인들은 (8)이 참임을 알았겠지만 (9)가 참임은 몰랐을 것이다:

 

(8) Hesperus = Phosphorus.

(9) Phosphorus = Phosphorus.


4) 앞서 병기된 영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샛별과 개밥바라기는 각각 ‘The Morning Star’와 ‘The Evening Star’의 역어이다영단어는 여러 낱말들이 결합된 복합 단칭용어이지만 한국어 역어는 형태상 단순 단칭용어이다다만 각각을 새벽에 뜨는 별과 개가 저녁밥을 먹으며 올려다보는 별의 준말이라 한다면 이 역시 복합 단칭용어라 할 수 있겠다또한 영단어는 고유명이 아니라 일반용어들이 결합된 단칭용어인 반면 한국어 단어는 고유명이라는 차이점도 있다이 역시 마찬가지로 줄임말 이전의 한국어 명사구는 일반용어들이 결합된 단칭용어라 할 수 있겠다.

 

공허한 단칭용어의 문제

 

공허한 단칭용어empty singular term란 지시체가 없는 단칭용어이다또 다시 한 가지 예를 들어 살펴보자. 19세기 말 프랑스의 수학자 Le Verrier는 수성과 태양 사이에 작은 행성이 있어서그 행성의 중력장이 수성의 공전궤도에서 관찰되는 작은 섭동(攝動)현상[(태양계의 천체가 다른 행성의 인력의 영향을 받아 타원 궤도에 변화를 일으키는 일)]의 원인이라 추측하였으며이는 당대 많은 천문학자들에게 받아들여졌다. Le Verrier는 추정된 그 행성을 Vulcan이라 명명하였다수성은 태양과 가까워 매우 뜨겁기 때문에 Le Verrier는 다음 문장에 의해 표현되는 명제를 믿었을 것이다:


(10) Vulcan은 뜨겁다.

 

그런데 소박한 의미론에 따르면 이 문장에 의해 표현되는 명제란 존재하지 않는다. 20세기 초엽 수성의 공전궤도에서 관찰되는 섭동현상이 Einstein의 상대성 이론에 의해 설명됨에 따라, Vulcan과 같은 행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그러한 행성이 없다면 단칭용어 ‘Vulcan’은 지시체를 갖지 않으며지시와 의미가 동일하다는 소박한 의미론의 기본 원리(특히 단칭용어의 의미가 그 지시체라는 NP2)에 따르면 아무런 의미마저 없는 셈이다. [이에 ‘Vulcan’을 포함하고 있는 문장 (10) 역시 아무런 의미 즉 명제를 표현하지 않는다.] 하지만 존재하지도 않는 명제가 어떻게 믿어질 수 있는가? Vulcan이 뜨겁다는 명제는 분명 믿어졌다믿어질 수 있는 아무런 명제도 존재하지 않을진대 어떻게 명제를 믿을 수 있는가분명 믿음은 그 대상이 되는 내용으로서의 특정 명제를 지니고 있어야만 한다. Le Verrier가 처한 상황은 먹을 게 아무것도 없는데도 무언가를 먹으려는 사람의 처지와 같다.

이것이 조금이라도 의심스럽다면 (10)을 다음 문장과 비교해보자:

 

(11) Nessie는 뜨겁다.

 

여기서 ‘Nessie’는 Nessthe Loch Ness에 산다고 믿어진 괴수의 이름이다그 괴물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보자. ‘Nessie’는 지시체가 없는 단칭용어이다따라서 소박한 의미론에 의하면 그 단어는 무의미하다meaningless그러므로 (10)과 (11)은 정확히 동일한 의미를 지녀야만 한다두 문장 모두 무의미한 단칭용어를 1항 술어 ‘𝛼는 뜨겁다에 삽입하여 얻어진 원자문장이기 때문이다하지만 두 문장이 정확히 동일한 바를 의미한다는 것은 분명 잘못된 듯하다. [이렇듯 Frege가 드러낸 소박한 의미론의 두 번째 문제는소박한 의미론이 의미와 지시를 동일시하기 때문에언어표현이 지시를 결여함에도 유의미한 이유를 적절히 설명해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 -지시 구분

 

이러한 두 문제로 인해 Frege는 단칭용어에는 지시만이 아니라 다른 무엇 역시 연계되어있다고 결론지었으며 그것을 sense이라 칭하였다동일한 지시를 갖는 단칭용어들간략히 말해 -지시적인co-referential 단칭용어들은 각기 다른 뜻을 표현한다.

하지만 이는 문제를 그저 다르게 이름 붙인 데 지나지 않는다우리가 원하는 것은 문제가 되는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를 설명해주고 예측할 수 있게 해줄 하나의 이론이다그러한 이론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다음 질문이 먼저 답해져야 한다단칭용어의 뜻이란 무엇인가?

Frege는 뜻을 다음과 같이 두 가지 방식으로 정의한다이 중 그의 유명한 논문 뜻과 지시에 관하여On sense and Reference에서 등장하는 것은 첫 번째이다:


단칭용어의 뜻은 그 지시체가 현상(現象)하는(제시되는방식mode of presentation이다.

단칭용어의 뜻은 그 지시체를 결정하는 규칙rule for determining이다.

 

에 따르면 뜻은 사물에 대한 하나의 관점과 같은 것으로서사물이 우리에게 현상하는 방식 내지 우리가 사물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착상은 Kant의 인식론을 떠올리게 한다. Kant에 따르면 우리는 사물을 직접적으로directly 지각perceive하거나 생각할 수 없고오로지 특정 방식manner, way에 따라서만 대상을 파악할 수 있다.) 반면 뜻에 따르면 뜻은 우리가 사물을 찾아내는 방식과 같은 것으로서대상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방식이라기보다는 우리가 대상으로 향하는 방식이다이러한 두 가지 뜻은 동일한 하나의 대상으로 이끄는 두 가지 방식즉 단칭용어가 나타내는 하나의 지시체에 이르는 두 가지 다른 경로로서한 장소에 도달하기 위한 각기 다른 경로를 보여주는 두 지도에 비유할 수 있다하지만 두 정의는 다음과 같이 합쳐질 수도 있다대상이 하나의 방식으로 현상 가능한 것은 대상으로 향하는 탐구절차를 밟은 결과이다뜻은 규칙에 의해 결정된 바로서의 대상을 제시한다The sense present the object as that which is determined by the rule.

그렇다면 뜻은 지시와 어떤 관계에 있는가일견 그 관계를 다음 도식 2.1에 제시된 것처럼 떠올리기 쉽다:

 

단칭용어

묶음 개체입니다.

 

 

지시

도식 2.1 뜻과 지시

 

이 도식은 단칭용어의 의미가 뜻과 지시라는 별개의 두 종류 내지 두 차원으로 구분되는 것처럼 표상하고 있다이것이 문자 그대로 반드시 잘못된 생각은 아니지만뜻과 지시의 관계에 해 Frege가 지녔던 생각을 놓치게 할 우려가 있다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단칭용어는 그것이 표현하는 뜻으로 인해by virtue of 지시체를 갖는다즉 단칭용어는 한 대상을 짚어내는 하나의 규칙을 표현하는바대상이 단칭용어의 지시체가 될 수 있는 이유는 그 규칙이 그 대상을 짚어내기 때문이다이러한 사항이 반영되도록 뜻과 지시의 관계를 좀 더 정확히 묘사하자면 도식 2.2와 같다:

 

지시함

(null)

 

단칭용어

개체 연결선입니다.

개체 연결선입니다.

지시체(대상)

 

표현함

 

표현함

 

도식 2.2 뜻과 지시의 관계

 

이러한 도식에 따르면 지시란 단어와 사물 간의 관계이되다음과 같이 복합적인 관계complex relation이다: x를 지시한다는 것은 x를 결정하는determine 뜻을 표현한다는 것과 같다이는 x는 y의 외할아버지임이라는 관계가x는 y의 어머니의 아버지임이라는 복합관계로 정의되는 것과 같다위 도식에서 곡선으로 표상되는 관계는 아래 화살표들이 표상하는바 단칭용어가 지시체를 결정하는 뜻을 표현한다는 복합관계와 구분되는 별개의 것으로 여겨져서는 안된다.

이렇게 뜻과 지시를 구분하긴 하였는데그렇다면 의미meaning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단칭용어의 의미는 그것의 뜻인가아니면 지시인가둘 다인가아니면 둘 중 아무것도 아닌 제3의 것인가안타깝게도 Frege의 전문용어들에 대한 번역실정은 이 문제에 혼란을 가중한다우리가 지시라 칭해온 단어는 Frege가 사용한 독일어 Bedeutung의 역어인데이 독일어 단어는 역자에 따라 의미로 번역되기도 하고 지시로 번역되기도 한다(간혹 외연denotation’, ‘지칭designation’, ‘명명된 것nominatum’ 등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반면 우리가 이라 칭해온 것은 Sinn의 역어인데이를 의미로 번역하는 것도 자연스러울 듯하다. [이렇다보니 초심자는 의미가 Bedeutung과 Sinn’ 중 어느 것의 역어인지 혼란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항들은 단지 단어선택에 관한 문제일 뿐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니다. Frege에 관한 논의에서는 의미를 피하고 과 지시만을 사용하는 편이 낫다굳이 의미를 고려하고 싶다면일상적으로 느슨하게 사용되는 의미 개념을 뜻과 지시로 세분하는 것이 Frege의 의도였다고 생각하는 편도 좋을 것이다.

전술했듯 Bedeutung의 역어로는 의미와 지시’ 양자가 쓰인다반면 다행히도 Sinn의 경우 의미로 번역되지는 않으며 오로지 으로만 번역되는 편이다이 점을 염두에 둔다면 혼란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니, Frege에 관한 저서를 읽을 때 의미를 마주친다면 지시로 이해하는 편이 유용할 것이다.

 

 

 -지시 구분의 확장

 

Frege는 뜻-지시 구분을 모든 언어표현으로 확장한다(그 이유는 차후에 살펴볼 것이다). 단칭용어에 관한 구분은 이미 살펴보았으므로술어 및 원자문장의 뜻-지시 구분을 살펴보도록 하자.

 

문장

구성성 원리를 다시 떠올려보자문장의 의미는 문장을 구성하는 부분표현들의 의미 및 부분표현들이 결합되는 방식에 의해 결정된다앞서 우리는 두 문장 (3) ‘샛별은 행성이다와 (4) ‘개밥바라기는 행성이다가 각기 다른 명제를 표현한다는 점을 받아들였다그런데 두 문장에서 상호 대응하는 부분들은 모두 동일한 지시체를 갖고 있다따라서 문장의 의미 즉 문장에 의해 표현되는 명제를 결정하는 것은 문장을 구성하는 부분들의 지시체가 아니다문장에 의해 표현되는 명제를 결정하는 것은 (문장이 구성되는 방식 및부분표현들의 이다. Frege는 문장에 의해 표현되는 명제를 사고(思考)thought/: Gedanke라 칭하였다. Frege에 따르면 문장의 이란 문장이 표현하는 사고이다다만 혼란을 피하기 위해 우리는 후술되는 논의에서도 명제라는 용어를 여전히 고수할 것이다그러므로 문장의 뜻은 명제이다문장은 뜻뿐만 아니라 지시도 갖고 있는가물론 그렇다이에 대해서는 다음 절에서 살펴볼 것이다.

 

술어

 

술어에 관한 Frege의 관점은 실제로는 약간 미묘한 데가 있다우선은 다루기 쉬우면서도 Frege의 핵심적인 착상이 반영된 다소 단순화된 도식을 통해 술어의 뜻-지시 구분을 살펴보고자 한다술어의 지시는 그 외연이다. 1항 술어의 지시체는 그 술어의 외연즉 술어가 적용되는 사물들의 부류class 내지 집합set이다. 1항 술어의 경우 일테면 은 현명하다의 지시는 그 술어가 적용되는 사물들을 원소로 갖는 집합즉 현명한 것들의 집합이다이를 다르게 말하면 그 술어를 참이게 하는혹은 그 술어를 만족하는satisfy 사물들의 집합이다관계적 술어 즉 2항 술어의 경우 그 지시체가 되는 외연은 순서쌍들의 집합set of ordered pairs이다일테면 술어 ‘𝛼는 𝛽를 사랑한다의 외연은 다음과 같이 x가 y를 사랑하는 모든 순서쌍들 x, y의 집합이다:

 

‘𝛼는 𝛽를 사랑한다의 지시 = {Victoria, DavidDavid, VictoriaCharles, CamillaCamilla, Charles〉 }.

 

이러한 순서쌍들 집합은 외연--관계relation-in-extension라 칭해지기도 하는바하나의 외연(즉 대상들의 집합)이 1항 술어와 연계되듯이 순서쌍 집합은 2항 관계적 술어와 연계되는 또 하나의 대상이기 때문이다단순성을 위해 우리는 1항이든 2항이든 술어의 지시를 그 외연이라 규정할 것이다.

 

 

 구성성 再考문장의 지시

 

단칭용어의 뜻은 한 대상이 단칭용어의 지시체가 되기 위해 만족해야 하는 조건condition이다술어의 뜻은 술어의 지시체인 외연을 결정하는 조건이다두 경우 모두 뜻은 지시-결정조건reference-determining condition이다이는 문장에 대해서도 성립하는가그렇다앞서 살펴보았듯이 문장의 뜻을 결정하는 것은 부분표현들의 지시체가 아니다하지만 단칭용어의 지시가 대상이고 술어의 지시가 외연이기 때문에문장을 구성하는 이러한 부분표현들의 지시체에 의해 결정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그것은 바로 문장의 진리치이다즉 문장의 지시체는 진리치이다.

緖論 장에서 언급하였듯이 문장이 무언가를 지시한다는 것조차 기이하게 여겨지는데그 지시체가 진리치라는 것은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듯하다다음과 같이 생각해보면 이 의문점은 해소된다단칭용어 ‘a’의 지시체가 특정 대상 O라 가정해보자. O가 술어 ‘𝛼는 F이다의 외연에 속한다면 폐쇄문 ‘a는 F이다는 참이고, O가 그 외연에 속하지 않는다면 그 문장은 거짓이다이를 일반화하자면한 원자문장에서 단칭용어의 지시체가 술어의 외연에 속할 경우 문장 전체는 참이며그렇지 않을 경우 문장은 거짓이다예컨대 다음 원자문장을 보자:

 

Socrates는 현명하다.

 

이 원자문장은 Socrates가 현명한 것들의 집합에 속하는 경우 그리고 오직 그 경우에 참이다이렇듯 문장을 구성하는 부분표현들의 지시체와 문장의 진리치 간에는 모종의 체계적인 연관이 있는바부분표현들의 지시체에 따라 문장의 진리치가 결정된다이를 이해한다면 문장의 지시체가 진리치라는 생각을 무리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문장 구성표현의 지시체와 문장의 진리치 간 체계적인 관계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도 드러난다한 문장에 나타나는 단칭용어를 그와 동일한 지시체를 갖는 여타 단칭용어로 대체(치환)replace하여도문장 전체의 진리치에는 변함이 없다마찬가지로 한 문장에 나타나는 술어를 그와 동일한 지시시체(즉 동일환 외연)을 갖는 여타 술어로 대체하여도문장 전체의 진리치에는 변함이 없다. 2항 이상의 관계술어가 나타나는 문장 역시 마찬가지이다예컨대 위 문장에서 ‘Socrates’를 그와 -지시적 표현인 ‘Platon의 스승으로 대체하여도 문장 전체의 진리치는 유지된다.

따라서 문장 구성표현의 지시체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문장의 진리치이며이에 근거하여 Frege는 진리치가 문장의 지시체라고 결론지었다이에 따라 구성성 원리는 다음과 같은 두 개의 원리로 나뉘게 된다:

 

지시의 구성성compositionality of reference문장의 진리치는 (문장이 구성되는 방식 및문장을 구성하는 부분표현들의 지시체에 의해 결정된다.

뜻의 구성성compositionality of sense문장이 표현하는 사고(명제)는 (문장이 구성되는 방식 및문장을 구성하는 부분표현들의 뜻에 의해 결정된다.

 

이에 따라 결국 모든 언어표현의 뜻이 지시-결정조건임을 알 수 있다주목할 만한 사항은 문장의 뜻이 진리-조건이라는 점이다문장의 진리-조건이 만족되면 문장은 참이다. [단칭용어와 술어의 뜻이 만족될 경우 양자는 그 지시체로서 각각 대상과 외연을 지시하듯이문장의 뜻 즉 진리조건이 만족될 경우 문장은 그 지시체로서 참을 지시한다.]

추가적으로 다음과 같은 세 번째 구성성 원리가 있다:

 

구문론적 구성성compositionality of syntax문장은 그것을 구성하는 부분표현들의 구문론적 속성syntactical property 및 부분표현들이 결합되는 방식에 의해 결정된다.

 

이러한 Frege의 이론은 도식 2.3에서 보이듯이 이론을 구성하는 부분들이 대칭적인 상호 의존성을 띰으로써 모종의 건축술적인 특성을 보여주는바많은 사람들에게 설득력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구문론적 구성성

 

단칭용어

+

술어

문장

 

 

표 현

(null)

 

표 현

(null)

 

표 현

(null)

뜻의 구성성

 

단칭용어의 뜻

+

술어의 뜻

명제

 

 

결 정

(null)

 

결 정

(null)

 

결 정

(null)

지시의 구성성

 

대상

+

외연

진리치

도식 2.3 1항 원자문장에 대한 Frege 의미론

 

이 도식의 핵심을 간추리자면유의미한 문장이 발화될 때 문장을 구성하는 부분표현들의 뜻에 의해 결정되는 명제가 표현되며그 명제는 부분표현들의 지시체에 따라 참이거나 거짓이 된다.

예시를 통해 이 도식을 이해해보자어떤 사람이 ‘Mikhail Gorbachev는 용감하다고 말한다단칭용어 ‘Mikhail Gorbachev’는 특정 대상을 결정하는 지시-결정조건을 표현하는바이 경우 그 조건은 소련의 마지막 수상이었던 인물 Gorbachev를 결정한다술어 ‘𝛼는 용감하다는 한 대상이 특정 외연의 원소가 되는 조건을 표현하는바이 경우 그 조건은 용감한 사물들의 집합을 결정한다이러한 두 가지 뜻이 결합되어 Mikhail Gorbachev는 용감하다는 명제(즉 문장 ‘Mikhail Gorbachev는 용감하다에 의해 표현되는 명제)가 형성된다이 명제는 Mikhail Gorbachev가 용감한 사물들로 이뤄진 집합의 원소인 경우 그리고 오직 그 경우에 참이다따라서 ‘Mikhail Gorbachev는 용감하다의 진리-조건은 Mikhail Gorbachev가 용감하다는 것이다.

 

 

 이론의 적용

 

-지시 구분은 인지적 가치의 문제와 공허한 단칭용어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

먼저 인지적 가치의 문제를 살펴보자. ‘샛별과 개밥바라기’ 같은 -지시적인 단칭용어 쌍은 각기 다른 뜻을 지닐 수 있다따라서 두 문장 (3) ‘샛별은 행성이다와 (4) ‘개밥바라기는 행성이다는 (1) ‘샛별 개밥바라기에 의해 동일한 진리치를 갖긴 하지만그렇다고 하여 반드시 동일한 사고를 표현할 필요는 없다마찬가지로 (6) ‘샛별 개밥바라기와 (7) ‘샛별 샛별’ 역시 동일한 사고를 표현하지 않는다사고 즉 명제는 명제적 태도의 대상이므로 (7)을 믿으면서도 (6)을 믿지 않는 일이 가능하다. [정리하자면-지시적 언어표현들이 드러내는 인지적 가치의 차이는 언어표현의 지시가 아니라 뜻에 기인하는 것으로 설명될 수 있다.]

다음으로 공허한 단칭용어의 문제를 살펴보자어떤 단칭용어는 특정 대상을 짚어내는 데에 실패할 수 있다예를 들어 가장 큰 자연수나 현재 프랑스의 국왕은 분명 지시-결정조건을 표현하지만 [지시체가 존재하기 않기 때문에그 조건은 특정 대상을 결정하는 데에 실패한다앞서 예시로 들었던 ‘Vulcan’ 역시 마찬가지이다. ‘Vulcan’은 분명 뜻 즉 지시-결정조건을 표현하는바 그 조건을 만족하는 대상은 수성의 공전궤도 내에서 태양을 공전하는 행성이다.5) 다만 그러한 대상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Vulcan’의 뜻은 지시체를 결정하는 데에만 실패할 뿐이다따라서 (10) ‘Vulcan은 뜨겁다가 표현하는 명제는 분명 존재하며 Le Verrier는 그 명제를 믿을 수 있었던 것이다마찬가지로 (11) ‘Nessie는 뜨겁다가 표현하는 명제 역시 존재하며, ‘Nessie’의 뜻이 ‘Vulcan’의 뜻과 다르기 때문에 (11)이 표현하는 명제 역시 (10)과 다르다이는 두 문장의 의미가 다르다는 우리의 직관에 부합한다. [정리하자면지시체를 결여하는 언어표현의 유의미성은 언어표현의 뜻에 의존하는 것으로 설명될 수 있다.]


5) 이에서 추측할 수 있듯이 Frege주의 의미론은 고유명을 포함한 모든 단칭용어들이 뜻을 표현한다고 간주한다. ‘가장 큰 자연수와 같이 일반용어들이 결합된 단칭용어뿐만 아니라 ‘Vulcan’이나 ‘Gottlob Frege’ 같은 고유명 역시 모종의 뜻을 표현한다는 것이다그리고 고유명의 뜻은 그 지시체의 일부 속성들 내지 지시체와 결부된 사항들을 기술하는describe 표현과 동등한 것으로 간주된다예컨대 ‘Vulcan’이라는 명칭은 로마 신화의 대장장이 신 Vulcanus(그리스 신화에서의 Hephaistos)에서 유래한 것으로서태양과 가깝기에 매우 뜨거운 행성일 것이란 추측 하에 붙여진 이름이다지시체가 지닐 법한 속성이 반영된 이름인 것이다. ‘Gottlob Frege’와 같은 인명의 경우엔 예컨대 뜻과 지시에 관하여를 저술한 19세기 수학자이자 철학자’ 등과 같이그 지시체와 결부된 사항들을 기술하는 명사구를 뜻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이렇게 모든 단칭용어 특히 고유명이 대상의 속성을 기술하는 모종의 기술구(記述句)description와 의미론적으로 동등하다고 간주하는 관점을 기술주의적 패러다임descriptive paradigme이라 한다. 4장에서 살펴볼 Russell비록 Frege의 뜻 개념을 거부하긴 하지만 고유명이 기술구와 의미론적으로 동등하다는 점은 받아들이는바 그 역시 고유명에 대한 기술주의적 관점을 견지한다반면 1장에서 살펴본 형태의 소박한 의미론은 기술주의적 패러다임과 정반대의 입장이며특히 5장에서 살펴볼 Kripke의 직접 지시론direct reference theory은 고유명에 대한 기술주의 관점을 비판하고 소박한 의미론과 같이 지시 자체를 고유명의 의미와 동일시한다.


(10)과 같은 문장은 공허한 단칭용어를 포함하기에 지시에 실패reference-failure하긴 하지만 어쨌든 유의미하다meaningful즉 명제를 표현한다그런데 그 명제는 참인가 거짓인가? Frege의 대답은 둘 다 아니라는 것이다. ‘Vulcan’의 뜻이 그 지시체인 대상을 결정하는 데에 실패함에 따라문장 (10)이 표현하는 뜻(명제역시 그 지시체인 진리치를 결정하는 데에 실패한다. [(지시의 구성성 원리에 따르자면 문장을 구성하는 부분표현의 지시체가 결여됨에 따라 문장 전체의 지시체 역시 구성되지 못하는 것이다.)] 다만 Frege가 소박한 의미론에 대해 문제 삼았던 바는 (10)과 같은 문장이 진리치를 갖지 못한다고 판정하는 점이 아니라다만 그러한 문장의 명백한 유의미성을 설명해내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Frege의 이론은 이를 해결해낸다. (10)은 명제 즉 문장의 뜻을 표현하기에 유의미하게 주장될asserted 수 있으며 그 명제는 믿어질 수도 있고 의심될 수도 있다. [요컨대 Frege는 지시체를 결여하는 언어표현을 포함하고 있는 문장에 대해진리치 공백truth-value gap을 받아들이는 대가로 유의미성을 확보한 셈이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가 남아있다. Frege의 의미론은 소위 단칭존재부정문negative singular existential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다음 문장을 보자:

 

(12) Vulcan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문장은 명제를 표현하기만 할 뿐만 아니라 그 명제는 분명 참이다. Vulcan은 존재하기 않기에 Vulcan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제는 참이다하지만 Frege에 따르면 단칭용어의 지시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용어가 나타나는 문장이 진리치를 결여한다lack는 것을 보여줄 뿐그 문장이 참임을 보여줄 수는 없다. [즉 (12)와 같은 문장이 표현하는 명제는 애초에 진리치를 갖지 않기에 참일 수조자 없는 것이다이는 (12)가 명백히 참이라는 우리의 직관에 반한다.] Frege의 의미론이 지시하는 절차에 따라 (12)의 진리치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Vulcan을 찾아내어 그것이 술어 ‘𝛼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만족하는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하지만 그러한 술어를 만족하는 대상은 찾아질 수조차 없다.

이러한 문제는 단칭존재부정문에서만 발생할 뿐 일반존재부정문negative existential in general에서는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단칭용어 ‘Vulcan’이 나타나는 (12)와 달리예를 들어 일반용어가 나타나는 용은 존재하지 않는다를 보자이 문장은 모든 x에 대해 (x는 용이 아니다) [(x)Dx]’와 동치이다.6) 이 문장의 진리치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대상예컨대 에펠탑이라든가 당신의 좌측 팔꿈치 등을 모두 취하여 그것들이 용인지 여부를 조사하면 된다조사 결과 그 어떤 대상도 용이 아니라는 것즉 용이 된다는 기준을 만족하는 대상이 없다는 것이 밝혀짐에 따라 이 문장에 참값이 매겨질 것이다.


6) 자연언어 양화문 용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존재 양화문이 부정된 부정그러한 x가 있다 (x는 용이다)’로 번역되며 기호화하자면 (x)Dx’이다부정 연산자와 보편/존재 양화사가 결합된 문장의 진리-함수적 동치에 따라 이 문장은 내부 개방문에 부정 연산자가 결합된 보편 양화문 ‘(x)Dx’와 동치이다. (부정 연산자와 보편/존재 양화사가 결합된 문장의 진리-함수적 동치에 대해서는 장의 각주 참조.)


사실 Frege는 어떤 대상이 존재한다는 것은 ‘𝛼는 존재한다𝛼 exists와 같은 통상적인 술어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러한 x가 존재한다와 같은 양화사에 의해 표현된다고 주장하였다예를 들어 돌고래가 존재한다와 같이 일반용어의 경우 그것을 만족하는 대상이 존재함을 말하고자 한다면, ‘𝛼는 존재한다’ 형태의 통상적인 술어를 사용할 것이 아니라일반용어를 술어의 일부로 통합시키고 변항과 양화사를 사용하여 그러한 x가 있다 (x는 돌고래이다) [(x)Dx]’와 같이 표기해야 한다전문적으로 설명하자면, Frege의 도식에서 양화사는 2개념second-order concept 즉 개념에 적용되는 개념concept of concept을 표현한다따라서 사례로 든 문장은 정확히 말해 돌고래에 속하는 어떤 대상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게 아니라 돌고래라는 개념에 대해 말하고 있는 문장으로서, 1first-order개념인 돌고래임being dolphin이라는 개념이 2차개념인 공집합이 아님being non-empty이라는 개념을 만족한다고 말하고 있는 셈이다다르게 말해 돌고래라는 개념이 사례를 갖는다는 것돌고래라는 개념을 충족하는fulfil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일반용어가 나타내는 개념을 만족하는 대상의 존재가 아니라 예컨대 목성과 같은 개별 대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주장하고자 한다면동일성 기호로 단칭용어와 변항을 결합시킨 뒤 양화사를 사용하여 그러한 x가 있다 (x = 목성) [(x)x=j]’와 같이 표기해야 한다여기서 충족된다고 말해지고 있는 개념은 목성과 동일함being identical with Jupiter이라는 개념이다. [이렇듯 존재함이라는 개념 자체가 술어에 의해 나타내어지는 1차개념에만 적용될 수 있는 2차개념인 까닭에단칭용어의 지시체에 대해서 존재주장을 할 때에도 단칭용어를 동일성 술어의 일부로 통합시키는 절차가 필수적이다그렇지 않고 단칭용어를 그대로 사용한 그러한 x가 있다 (목성) [(x)j]’은 구문론적으로 -적형ill-formed이다.]

따라서 Vulcan에 존재nonexistence를 귀속시키고자 하는 문장은 다음과 같이 표기되어야 한다:

 

(13) 부정그러한 x가 있다 (x = Vulcan). [(x)x=v]

 

하지만 이렇게 표기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13)이 참이라는 우리의 직관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다음 개방문:

 

(14) x = Vulcan

 

이 모든 x에 대해 거짓이며[(즉 (14)를 만족하는 논항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에 따라 존재 양화문 그러한 x가 있다 (x = Vulcan)’가 거짓이고최종적으로 그 부정문인 (13)이 참인 것으로 드러나야 한다. Frege에 따르면 (14)에는 지시체를 결여하는 단칭용어 ‘Vulcan’이 여전히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x’의 논항으로 그 어떤 것이 선택되더라도 (14)는 진리치를 결여하는바 참도 거짓도 아니다. ‘x = 에펠탑’, ‘x = 나의 왼쪽 팔꿈치’ 등등은 전부 참도 거짓도 아닌 것이다따라서 존재 양화문 그러한 x가 있다 (x = Vulcan)’ 역시 진리치를 결여하며이에 부정 연산자가 결합된 (13) 역시 참도 거짓도 아니다이는 여전히 우리의 직관에 반하는 귀결이다비유적으로 말하자면 Frege의 도식에서 의미론적 모터semantic motor는 그에 투입될 수 있는 대상[(즉 언어표현의 지시체)]이 없이는 애초에 가동될 수조차 없는 셈이다. [언어표현의 지시체가 없다면 그를 토대로 언어표현의 논리적 의미를 진리-함수적으로 결정하는 절차가 시작될 수조차 없다.]7)


7) (原註) Frege 자신은 탁월한 저서 산수의 근본법칙Basic Laws of Arithmetic에서, Vulcan 사례와 같이 공허한 단칭용어는 사실상 공집합을 지시체로 갖는다고 약정함으로써 단칭존재부정문의 문제를 해소하고자 한다하지만 Frege 자신도 수긍하였듯이 이는 매우 작위적이다직관적으로 우리는 Vulcan이 공집합과 같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며이러한 Frege의 해결책에 따르면 Vulcan과 마찬가지로 공집합인일테면 현재 프랑스의 국왕이 Vulcan과 같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이러한 상황은 마치, Frege에 의해 지적된바 소박한 의미론이 공허한 단칭용어를 포함하는 문장들 간 의미 차이를 설명해내지 못한다는 문제와 유사한 문제에 도리어 Frege가 직면한 것처럼 보인다.]



단칭존재부정문의 문제와는 별개로존재개념을 양화사에 의해서만 표현될 수 있는 2차개념으로 간주하는 Frege의 전략은God의 존재에 대한 존재론적 논증ontological argument의 부당성을 날카롭게 파헤치는 수단이 될 수 있다이는 Frege보다 앞서 Kant가 제시한바 존재는 술어가 아니라 계사(繫辭)copula[(주어와 주격 보어를 연결해주는 동사)]일 뿐이라는 비판과 유사하면서도 그보다 더욱 강력하고 체계적이다신존재에 관한 존재론적 논증은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신은 존재한다는 이라는 단어 자체의 의미에 의해by meaning 참인 진술로서 이를 부정하면 모순contradiction에 빠진다여기서 은 다음 세 가지 술어를 만족하는 대상으로 정의되기 때문이다:

 

𝛼는 全知하다omniscient

𝛼는 全能하다omnipotent

𝛼는 존재한다

 

에는 정의상 세 번째 술어가 귀속되기 때문에 신이 존재함을 부정하는 진술은 자체모순이다이는 사각형이 네 변을 갖는다는 것을 부정하면 자동적으로 모순에 빠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따라서 신은 존재한다.

하지만 Frege의 관점에 따르면 존재개념은 ‘1’ 술어에 의해서가 아니라 양화사에 의해서만 표현될 수 있기에 세 번째 술어는 -적형이다ill-formed신이 존재한다는 진술은 다음과 같이 표기되어야 한다:

 

(13) 그러한 것이 있다 (x는 전지하다 & x는 전능하다). [(x)(SxPx)]

 

이 문장을 부정한다고 해서 모순이 귀결되지는 않는다.

 

단칭존재부정문에 관한 문제 및 양화사에 관한 논의는 Russell에 관한 4장에서 다시 살펴보게 될 것이다.

 

 

 구성성과 외연성

 

앞서 구성성 再考문장의 지시’ 절에서 살펴보았듯이 Frege는 구성성 원리를 두 가지로 나누었다지시의 구성성에 따르면 문장 S의 한 부분을 그와 동일한 지시를 갖는 표현으로 대체(치환)replace 하여 얻어진 문장은 S와 동일한 진리치를 갖는다이를 정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대체성(치환성)의 원리the principle of substitutivity임의의 범주에 속하는 언어표현 S가 그 부분으로서 언어표현 e를 포함하고 있고, e와 e의 지시체가 동일하며, S에서 e를 e로 대체하여 S가 얻어진다면, S와 S의 지시체는 동일하다.

 

만약 S와 S가 진리치를 지시체로 갖는 문장이라면각 문장에서 -지시적인 부분표현들을 대체하여도 문장 전체의 진리치는 변하지 않는다즉 -지시적 표현들의 대체는 진리치를 유지시키며이를 진리치 보존적salva veritate이라 칭하기도 한다이러한 대체성 원리는 언어에 대한 우리의 이해방식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다음 세 문장을 보자:

 

(16) Hesperus는 행성이다.

(17) 금성 = Hesperus

(18) 금성은 행성이다.

 

(17)이 참이라는 사실은 금성과 ‘Hesperus’가 -지시적이라는 점즉 금성과 Hesperus가 동일한 대상이라는 점을 보여준다따라서 (16)과 (18)은 동일한 대상에 대해 동일한 것을 말하고 있으며그렇기에 양자의 진리치는 다를 수 없다두 문장은 동일한 사물에 대해 ‘𝛼는 행성이다에 의해 표현되는 것을 말하고 있으며그렇게 말해지는 대상은 Hesperus로도 알려진 금성이다대체성의 원리는 대상에 대해 말한다는 것즉 지시체 자체에 관해 말한다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그 핵심을 포착하고 있는 듯하다대상에 대해 참인 무언가를 말하고자 하는 바에야그 대상을 어떤 방식으로 지시하거나 짚어내느냐 하는 문제는 중요한 사안이 아니다중요한 것은 실제 대상이 여차여차하다고 말해진 바대로 존재하는지 여부이다말해진 내용대로 실제 대상이 존재한다면 말해진 바는 참이며그렇지 않다면 거짓이다.

앞 단락에서 진리치 보존적인 상호대체 가능성을 예시하기 위해 취해진 사례는 -지시적인 단칭용어들에 관한 것이었다하지만 대체성의 원리는 임의의 범주에 속하는 모든 언어표현에 적용된다술어를 생각해보자어느 날 밤 한 숙박업소 건물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졌는데공교롭게도 사건 당일 밤 동안 그 업소에 묵었던 손님들은 모두 한 동호회의 회원들 그리고 오직 그 사람들 뿐이었다따라서 Smith가 그 동호회의 회원이라면이로부터 Smith는 살인사건이 발생한 날 밤 그 건물에 묵었던 사람이라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마찬가지로 Jones가 살인사건이 발생한 날 밤 그 건물에 묵지 않았다면이로부터 Jones는 그 동호회 회원이 아니라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대체성의 원리를 활용하여 말해보자면이 사례에서 ‘𝛼는 그 동호회의 회원이다와 ‘𝛼는 살인사건이 발생한 날 밤 그 건물에 묵었다는 -외연적인co-extensive 술어쌍으로서, Smith가 그 중 한 술어를 만족한다는 사실은 그가 다른 술어 역시 만족한다는 사실을 함축하며반대로 Jones가 그 중 한 술어를 만족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가 다른 술어 역시 만족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함축한다.

-외연적 술어들은 원자문장이 아닌 여타 맥락에서도 상호 교체될 수 있다예들 들어 다음 두 술어가 -외연적이라 가정해보자:

 

𝛼는 박쥐이다.

𝛼는 날 수 있는 포유류이다.

 

(박쥐 이외에 날다람쥐도 있지 않느냐 반문하고 싶겠지만날다람쥐는 정확히 말해 나는 게 아니라 활공한다.) 두 술어가 -외연적이라는 사실은 다음 문장이 참임을 함축한다:

 

모든 x에 대해 (x는 박쥐이다 ↔ x는 날 수 있는 포유류이다).

 

즉 어떤 것이 날 수 있는 포유류인 경우 그리고 오직 그 경우에 그것은 박쥐이다그리고 다음 문장은 참이다:

 

모든 x에 대해 (x는 박쥐이다 → x는 음파탐지기관을 갖고 있다).

 

즉 모든 박쥐는 음파탐지기관을 갖고 있다대체성 원리에 따르면 은 박쥐이다를 포함하고 있는 그 어떤 참인 문장에서든 그 술어를 은 날 수 있는 포유류이다로 대체할 수 있으며 그렇게 얻어진 문장 역시 참이다이에 따라 다음 문장을 얻을 수 있으며 이 역시 참이다:

 

모든 x에 대해 (x는 날 수 있는 포유류이다 → x는 음파탐지기관을 갖고 있다).

 

즉 모든 날 수 있는 포유류는 음파탐지기관을 갖고 있다.

대체성 원리가 일반적으로 성립하는 언어는 외연적 언어extensional language라 칭해진다반면 때에 따라 대체성 원리가 성립하지 않는 언어는 -외연적non-extensional[(내포적intensional)] 언어라 칭해진다.

 

 

 명제적 태도 분석

 

대체성 원리는 직관적으로 매우 자명해axiomatic보인다하지만 이에 대한 반례가 있는 듯하다다음 두 문장을 보자:

 

(19) Sally는 금성이 행성이라고 믿는다believe that Venus is a planet.

(20) Sally는 개밥바라기가 행성이라고 믿는다.

 

만약 Sally가 상식이 좀 부족해서 금성과 개밥바라기가 동일한 천체임을 정말로 모른다면, (19)가 참이면서 (20)은 거짓일 수 있다금성이 행성이라고 믿으면서 개밥바라기는 그렇지 않다고 믿는 것이 적어도 비합리적이라거나 비논리적인 것은 아니다하지만 금성과 개밥바라기는 -지시적인바대체성 원리가 참이라면 (19)와 (20)의 진리치가 어떻게 다를 수 있겠는가일견 두 문장은 동일한 하나의 사물 금성에 관해 동일한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즉 그 대상이 Sally에 의해 행성이라고 믿어진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도 양자의 진리치가 왜 다를 수 있는가?]

이 문제를 Frege 이론을 통해 다뤄보자면, (19)와 (20)은 Sally에 관해 말하고 있는 문장이긴 하되 금성에 대해 말하고 있는 문장은 아니다. ‘Sally는 𝛼가 행성이라고 믿는다라는 술어는 그리스 문자에 삽입되는 용어의 지시체에 관한 것이 아니다그러니 이 술어에 의해 형성된 문장 전체의 진리치는 술어의 공란에 어떤 단칭용어가 삽입되든 그 지시체와 무관하다설사 개밥바라기가 아무것도 지시하지 않는다 해도 (20)이 참일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이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다. ‘개밥바라기라 일컬어지는 그러한 행성이 실제로는 없다고 가정해보라이에 단칭용어 개밥바라기에 의해 표현되는 지시-결정규칙이 아무런 대상을 짚어내지 못한다 해도문장 개밥바라기는 행성이다는 하나의 사고[(즉 명제)]를 표현하며 Sally는 이를 믿을 수 있다이는 앞서 살펴본 19세기 프랑스의 천문학자 Le Verrier와 그가 실존한다고 믿었던 Vulcan의 사례와 정확히 동일한 경우이다.

따라서 (19)는 금성과 Sally에 관해서가 아니라금성이 행성이라는 명제와 Sally에 관해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문장이며 (20) 역시 마찬가지이다이러한 상황은 다음 두 언어표현의 차이에 기인한다:

 

(21) 금성은 행성이다.

(22) 금성이 행성이라는 것that Venus is a planet.

 

문장 (21)은 분명 어떤 명제를 표현한다반면 명사절 (22)는 (21)이 표현하는 그 명제를 지시한다(22)는 (21)에 의해 표현되는 명제를 지시하는 하나의 단칭용어인 셈이다. Frege는 이를 일반화하여 다음과 같이 정식화한다:


명사절의 원리principle of that-clauses임의의 서술문 S에 접미사 라는 것이 결합된 표현은 S의 뜻을 지시체로 갖는 단칭용어이다.

 

이 원리에 따르면 (19)는 Sally가 특정 명제(Frege의 용어로는 사고)에 대해 특정 관계를 맺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여기서 그 관계는 믿음believing이라는 관계이다분석의 첫 단계에서 문장 (19)는 Sally를 나타내는 단칭용어와 ‘𝛼는 𝛽를 믿는다는 2항 술어그리고 금성이 행성이라는 명제를 나타내는 단칭용어로 구성된 것으로 드러난다이는 ‘Sally는 John에게 키스하였다의 형식과 정확히 동일한 구성이다이러한 분석은 앞서 명제적 태도에 대해 기술된바 믿음이란 믿는 자와 명제 간에 성립하는 특정한 2항 관계라는 정의에 부합한다두려움이나 희망 등 여타 명제적 태도들 역시 이와 마찬가지로 분석된다.

이 문제를 취급하는 한 가지 방식은, (19)가 참이면서 (20)이 거짓일 수 있는 가능성이 대체성 원리의 반례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8) 따라서 문장-연산자sentence-operator 라는 것과 같은 장치를 지닌 언어는 -외연적이다. ‘라는 것에 의해 형성되는 명사절의 지시체는그에 삽입된 문장의 지시체 즉 그 문장의 진리치에 의해서가 아니라그 문장의 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19)와 (20)에서 금성과 개밥바라기는 금성을 지시하는 역할을 하지 않는다언어철학자들이 종종 말하듯이 명사절은 비-외연적인[(즉 내포적인)] 맥락context을 조성한다. [(또는 지시적으로 불투명한 맥락referentially opaque context을 만들어낸다고도 말해진다.)]


8) (原註다른 한 가지 가능한 해석은 Frege가 대체성 원리가 보편적으로 성립한다고 믿었으며 그에 따라 보편적 외연주의extentionalism를 견지하였다는 해석이다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지시란 다음과 같이 맥락에 따라 상대적이다: (21)과 같은 통상적인 맥락에서의 지시체는 직접적direct 지시체인 반면, (22)와 같은 맥락에서의 지시체는 간접적indirect 지시체이다사실상 이 두 번째 해석이 Frege의 생각에 더욱 근접한 듯하며후술되는 절에서 살펴볼 그의 맥락원리context principle와도 잘 부합한다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두 해석 간의 차이는 단지 언어적인 문제일 뿐이며다만 Frege가 지시를 맥락에 따라 상대화했다는 본문의 해석이 학생들이 이해하기엔 더욱 용이할 것이라 판단하였다.


그런데 앞 절에서 제시된 대체성 원리에서 첫 번째로 나타나는 지시체’[(‘e와 e의 지시체가 동일하며’)]를 으로 바꾸면 그와 유사한 다음 원리가 얻어진다:

 

수정된 대체성(치환성)의 원리임의의 범주에 속하는 언어표현 S가 그 부분으로서 언어표현 e를 포함하고 있고, e와 e의 이 동일하며, S에서 e를 e로 대체하여 S가 얻어진다면, S와 S의 지시체는 동일하다.

 

이 원리에 따르면 비-외연적인 맥락에서도 진리치 보존적인 상호대체가 가능하다. ‘𝛼는 크다와 ‘𝛼는 거대하다가 동의어라고 가정해보자즉 두 술어는 동일한 뜻을 표현한다이러한 가정 하에서 위의 수정된 원리에 따르면, ‘Sally는 금성이 크다고 믿는다는 ‘Sally는 금성이 거대하다고 믿는다가 참인 경우 그리고 오직 그 경우에 참이다.9)


9) 수정된 대체성 원리를 예시하기 위해 본문에 제시된 사례는 술어에 관한 것이지만원래의 대체성 원리가 예시될 때처럼 단칭용어가 활용될 수도 있다다만 금성과 같이 고유명인 단칭용어의 경우 동일한 뜻을 지닌 고유명 쌍을 제시하기가 어렵다굳이 단칭용어를 통해 수정된 원리를 예시하자면, ‘Sally의 아버지와 ‘Sally의 부친과 같이 동의적인 일반용어들을 포함하고 있는바 고유명이 아니면서 동의적인 단칭용어 쌍을 활용할 수 있겠다이에 수정된 대체성 원리에 따르면 ‘John은 Sally의 아버지가 엄한 편이라 생각한다와 ‘John은 Sally의 부친이 엄한 편이라 생각한다의 진리치는 동일하다.


전술하였듯 문장 (21) ‘금성은 행성이다의 지시체는 진리치인 반면명사절 (22) ‘금성이 행성이라는 것의 지시체는 절 내부에 삽입된 문장 금성은 행성이다가 표현하는 뜻이다요컨대 한 문장의 뜻은 그 문장에 대응하는 명사절의 지시체가 된다. Frege는 통상적인 맥락[(즉 외연적 맥락)]에 나타나는 문장의 뜻을 그에 대응하는 명사절의 간접 지시체indirect referent라 칭하였다. [그런데 뜻-지시 구분에 따르면 모든 언어표현은 뜻을 통해 지시체를 결정하므로 명사절의 간접 지시체를 결정해주는 뜻 역시 있어야만 한다.] 그렇다면 금성이 행성이라는 것의 은 무엇인가분명 금성은 행성이다의 뜻과 동일할 수는 없다하나의 뜻은 하나의 지시체만을 결정하는데두 표현의 지시체는 분명 다르기 때문이다.10) Frege는 명사절 금성이 행성이라는 것의 뜻을 문장 금성은 행성이다의 간접적 뜻indirect sense이라 칭하였다전자의 뜻은 후자의 뜻에 비해 고차-수준의higher-order 뜻 혹은 2level-two 뜻이다. [물론 후자의 뜻은 통상적ordinary 뜻 혹은 1차 수준의 뜻이다외연적 맥락에서 통상적 뜻은 진리치를 지시체로 결정하는 명제인 반면내포적 맥락에서 간접적 뜻은 외연적 맥락의 명제를 지시체로 결정하는 상위-명제인 셈이다.] 뜻의 이러한 구분은 (19) ‘Sally는 금성이 행성이라고 믿는다와 (20) ‘Sally는 개밥바라기가 행성이라고 믿는다의 의 차이를 설명해주며그에 따라 양자의 지시체 즉 진리치가 다를 수 있는 가능성을 설명해준다.


10) 일반적으로 언어표현의 동의성은 지시체의 동일성을 함축하는 반면 그 역은 아닌 것으로 받아들여진다다르게 말해 내포는 외연을 결정하지만 그 역은 아니다이의 대우를 취하면언어표현이 적용되는 지시체의 상이성은 의미의 상이성을 함축한다.


[조금 복잡하긴 하지만, Frege가 세분한 구성성 원리를 통해 (19)와 (20)의 뜻-지시가 분기하는 과정을 좀 더 자세히 분석해보자두 문장에 나타나는 명사절 금성이 행성이라는 것과 개밥바라기가 행성이라는 것은 각기 다른 간접적 뜻을 표현하는 단칭용어이다두 단칭용어를 ‘tcv’, ‘tce두 간접적 뜻을 ‘ISv와 ‘ISe로 각각 축약하자두 간접적 뜻은 각기 다른 간접 지지체를 결정하는바이는 각각 외연적 맥락에서 금성은 행성이다와 개밥바라기는 행성이다에 의해 표현되는 통상적 뜻 즉 명제이다두 명제를 각각 ‘Pv와 ‘Pe로 축약하자단칭용어 ‘Sally’는 ‘s’, 2항 술어 ‘𝛼는 𝛽를 믿는다를 ‘B𝛼𝛽’문장 전체인 (19)와 (20)에 의해 표현되는 최종 명제를 ‘P19와 ‘P20으로 각각 축약하자이를 활용하여 구성성 원리에 따라 (19)와 (20)의 뜻-지시 구조를 도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19) Sally는 금성이 행성이라고 믿는다.

‘s’

+

‘B𝛼𝛽’

+

‘tcv

‘Bstcv

표 현

(null)

 

표 현

(null)

 

표 현

(null)

 

표 현

(null)

‘s’의 뜻

+

‘B𝛼𝛽’의 뜻

+

ISv

P19

결 정

(null)

 

결 정

(null)

 

결 정

(null)

 

결 정

(null)

Sally

+

𝛼가 𝛽를 믿는 순서쌍

𝛼, 𝛽들의 집합

+

Pv

T, F

(20) Sally는 개밥바라기가 행성이라고 믿는다.

‘s’

+

‘B𝛼𝛽’

+

‘tce

‘Bstce

표 현

(null)

 

표 현

(null)

 

표 현

(null)

 

표 현

(null)

‘s’의 뜻

+

‘B𝛼𝛽’의 뜻

+

ISe

P20

결 정

(null)

 

결 정

(null)

 

결 정

(null)

 

결 정

(null)

Sally

+

𝛼가 𝛽를 믿는 순서쌍

𝛼, 𝛽들의 집합

+

Pe

T, F

 

각 도표의 3열에서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듯이, ‘tcv와 ‘tce가 각각 ISv와 ISe를 표현함에 따라 각기 다른 Pv와 Pe가 결정된다. Sally가 양자와 더불어 형성하는 각 순서쌍이 술어의 외연에 속하는지 여부에 따라 각 도표에서 4열 2행의 P19와 P20이 다르게 구성될 수 있으며그에 따라 최종적으로 우측 하단의 진리치가 각기 다르게 결정될 수 있다.]

명제적 태도 및 이에 의해 형성되는 비-외연적(내포적맥락에 관해서는 8장에서 더욱 상세히 살펴보게 될 것이다.

 

 

 뜻의 객관성

 

지시적 용어의 뜻은 (지시가 존재한다면용어의 지시를 결정하는 규칙인 동시에 지시가 현상하는 방식이다논문 뜻과 지시에 관하여의 한 구절에서 Frege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뜻과 지시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비유적으로 설명해볼 수 있겠다어떤 사람이 망원경으로 달을 관찰한다나는 달 자체를 지시에 비유한다관찰의 대상인 달 자체는 망원경 내부의 대물렌즈에 투영된 실제 이미지와 관찰자의 망막 이미지를 통해 매개된다나는 전자를 뜻에 비유하며 후자를 관념idea 내지 경험experience에 비유한다망원경에 비친 시각적 이미지는 비록 일면적one-sided이고 관찰의 관점standpoint에 의존하긴 하지만복수의 관찰자들에 의해 동일하게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객관적이다, (中略하지만 관찰자들 개인이 갖는 망막 이미지는 각기 다를 것이다.

(뜻과 지시에 관하여, Frege 1997, 155번역 일부 수정[원저자])

 

또 다른 글 사고논리적 탐구The Thought: A Logical Inquiry에서 Frege는 뜻이 정신적mental인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문장의 뜻인 思考(우리의 용어법으로는 명제)는 그 명칭에서 암시되는 바와 달리 정신적인 무언가가 아니라는 것이다그렇다고 경험적인 것도심리적인psychological 것도 아니며 관념과 같은 종류의 것도 아니다緖論 장에서 규정했듯이 명제란 (A) 문장의 객관적인 의미이고, (B) 믿음이나 희망 등 명제적 태도의 대상 혹은 내용이며, (C) 참이나 거짓이라 말해질 수 있는 것 즉 진리치의 직접적인 담지자이다. Frege에 따르면 이러한 사실로부터 명제란 정신적이거나 심리적인 실체가 아니라는 점이 귀결된다.

정신적 실체즉 Locke를 위시한 근대철학자들이 말한 바로서의 관념이란 정확히 무엇인가한 예로 우리가 무언가를 상상하거나 꿈꿀 때 떠올리게 되는 심적(정신적이미지mental image 같은 것을 들 수 있겠다많은 철학자들이 지적했듯이 그러한 이미지는 사적이다private내가 (아직 돌아가시지 않은우리 할머니를 상상하고 있다 해보자내 정신 속에는 할머니에 대한 생생한 심적 이미지가 있다나는 이 이미지가 어떠한지 상세하게 기술함으로써 당신으로 하여금 나의 것과 유사한 이미지를 형성하도록 만들 수 있다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당신이 나의 심적 이미지를 지각perceive할 수는 없다내 할머니에 대해 나와 당신이 각각 떠올리는 이미지가 서로 동일한지 여부는 원리적으로in principle 검증 불가능하다심적 이미지란 것은 사적인 것이기에오직 나만이 나의 심적 이미지를 지각하거나 경험할 수 있으며마찬가지로 오직 당신만이 당신의 심적 이미지를 지각할 수 있다이렇듯 심적 이미지란좀 더 일반적으로 말해 모든 종류의 정신적 실체들이란정신 내에in the mind 존재한다는 의미에서 정신적이다mental비유컨대 심적 이미지가 갖는 현금가치는 사적인 것인바 필연적으로 그것이 존재하는 정신 내에서만 통용될 수 있다.

정신적 실체의 이러한 사밀성(私密性)을 염두에 둔 채문장의 의미가 모종의 정신적 실체즉 Locke가 말한 관념이라든가 앞 단락에서 예시로 들었던 심적 이미지라고 가정해보자내가 볼로냐는 플로렌스의 북쪽에 있다고 말한다이 말로써 내가 의미한 바는 나에게 사적이며 내 마음 속으로만 한정된다당신은 나의 말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당신은 내가 의미한 바what I mean를 어떻게 파악grasp할 수 있겠는가물론 내가 말한 단어들은 당신의 마음 속에 모종의 심적 이미지를 불러일으킬 것이다하지만 그렇게 형성된 당신의 이미지가 나의 것과 조금이라도 통하는 데가 있는지를 당신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양자가 유사한지 여부를 무엇에 근거해서 판정할 수 있겠는가이를 위해 당신이 갖는 심적 이미지를 당신 나름대로 기술해볼 수는 있을 것이다하지만 이 과정은 또 다른 말만을 만들어낼 뿐이다당신의 심적 이미지를 기술하기 위해 사용되는 말에는 당신 자신만의 심적 이미지들이 결부되며그 말을 들은 나의 정신 속에는 또 다시 나만의 심적 이미지들이 야기된다이 과정에서 형성되는 이러한 모든 이미지들이 상동(相同)인지 여부를 도대체 어떻게 판가름할 수 있겠는가이는 분명 불가능하다그저 새로운 말과 그에 따른 사적인 이미지가 계속 만들어지는 동일한 과정만이 되풀이될 뿐나의 사고내용과 당신의 것이 조금이라도 유사한지에 대해서는 여하한 결론도 날 수가 없다. Frege가 강조했듯이 이러한 모델에 입각한 언어는 상호이해mutual understanding에 도달할 수 없다언어에 대한 이러한 그림에서 우리가 행하는 발화utterance여하한 의미도 적절하게 표현해내지 못한 채 그저 심적 상태mental state들에 의해 야기되는 것으로 전락할 뿐이다.

이러한 고찰에서 알 수 있듯이도대체 의사소통이라는 것이 어떻게든 가능하기 위해서는 의미란 어떤 식으로든 밖에’ 있는 그 무엇이어야만 한다즉 각 개인만이 배타적으로 소유하는 사적인 것이 아니라 공적인public 그 무엇이어야 한다물론 정신적 상태들일테면 생각하는 행위와 같이 심리적 과정이라 할 수 있는 그 무언가가 분명 존재한다그러니 우리가 말하는 행위를 통해 무언가를 의미할 때에도 모종의 정신적 과정들이 계속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하지만 그러한 심적 상태와 무관하게 볼로냐는 플로렌스의 북쪽에 있다는 문장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공적인 의미를 갖는다통상적인 맥락에서 그 문장이 발화될 때특정 도시가 다른 한 도시에 대해 지형학적으로 여차여차한 관계에 있다는 의미를 결정하는 언어적 규칙linguistic rule이 적용된다그 발화를 들은 사람은구성적 규칙에 따라 그 문장이 표현하는 명제를 인지함으로써 그 발화를 이해할 수 있으며반대로 이러한 이해에 실패할 수도 있다.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해주는이러한 사안은 심지어 사적인 내적 상태inner state에 관한 대화에도 적용된다. Sally가 나 배고파’ 하고 말한다우리가 이해하고 준수하는 언어적 규칙에 따르면발화가 이뤄진 시점에 화자가 특정한 생리적인 상태에 처해 있는 경우 그리고 오직 그 경우에 그 문장은 참이다. Sally가 나 너무 슬퍼’ 하고 말한다면발화가 이뤄진 시점에 화자가 특정 심리적 상태에 처해 있는 경우 그리고 오직 그 경우에 그 문장은 참이다요컨대 Sally가 발화한 문장들은 심적 상태에 관한 것이긴 하지만그 문장들의 은 정신적이지 않다.

따라서 Frege주의적인 뜻Fregean sense은 정신적이거나 심리적인 것이 아니다당연히 물리적인physical 것도 아니다緖論 장에서 살펴보았듯이 명제는 물리적인 대상이 아닌바이 명제가 바로 Frege에게는 문장의 뜻에 해당하기 때문이다뜻은 언어표현과 연계된 지시-결정 규칙이다이렇게 볼 때 Frege가 말하는 뜻이란 추상적abstract 세계에 속하는 기이한 대상인 듯하다수학적 대상들처럼 뜻은 인과적 힘causal power을 갖지 않는 -공간적인 대상이다.

한 가지 주의할 사항이 있다. Frege의 전문용어로서의 sense은 시각이나 청각과 같은 감각작용(지각작용)sense과는 무관하다또한 Russell과 같은 경험주의 철학자들이 지각의 직접적인 대상이라 간주하였던 감각-자료sense-data와도 무관하다. Frege의 도식에서 어떤 단어가 뜻을 표현하기 위해 감각 가능한sensible 그 무엇과 반드시 연계되어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예를 들어 ‘2+2=4’는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감각될 수 있는 사물들과는 일절 무관한 문장이지만 분명 뜻을 표현한다.

뜻이 구체적인 감각과는 무관한 추상성을 띤다는 Frege의 생각은우리가 일상적으로 문장의 에 관해 말하기도 하며 무의미한meaningless 말을 헛소리(난센스)nonsense라 일축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감안해보면 일견 일리가 있다.11)


11) 언어표현이 적절한 뜻을 표현하는지 여부가 구체적인 감각과 무관하다는 생각은 우리의 언어적 직관에 이미 반영되어 있다는 것이다. Le Verrier가 수성의 공전궤도에서 관찰되는 섭동현상의 원인이 되는 천체가 존재할 것이다라고 말한다천문학적 지식이나 소양을 다소 갖춘 사람이라면설사 수성의 공전궤도에서 발생하는 섭동현상을 천문대의 관측장치로 관찰한 적이 없더라도혹은 심지어 우주로 나가 그런 천체가 있는지를 직접 탐사해볼 방도가 전무하더라도, Le Verrier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할 것이다요컨대 감각작용 내지 감각-자료는 언어표현의 유의미성에 대한 필요조건이 아니다이번엔 Chomsky가 내 초록색 관념들이 사납게 잠자고 있다라고 말한다우리는 초록색에 대한 감각지각이 어떠한 느낌인지관념을 갖는다는 정신적 상태가 어떠한 상태인지사납다는 수식어가 나타내는 모양새가 어떠하고 잠잔다는 신체적 행동이 무엇인지 등 이 모든 언어 외적 사항들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다하지만 그것들을 한데 결합시켜 표현한 Chomsky의 말을 듣는다면문학적인 맥락이 아닌 바에야 일상적이고 진지한 맥락에서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전연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요컨대 감각작용 내지 감각-자료는 언어표현의 유의미성에 대한 충분조건도 아니다.
이렇듯 적절한 뜻을 지닌 말과 무의미한 헛소리를 구분해내는 의미론적인 문제와언어 외적인 것으로서 세계의 사태가 어떠한지를 식별해내는 인식론적 내지 심리적인 문제는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독립적인 사안이다본문에서 간략하게 암시된 이 논제는 후술되는 추가적인 논의맥락원리와도 연관되는 바가 있다해당 절의 각주참조.

 

 

 술어의 지시와 말 개념 문제

 

술어의 에 대한 Frege의 관점은 직관적이다예컨대 술어 ‘𝛼는 말이다의 뜻을 이해한다는 것은그 술어가 임의의 사물에 적용되는지 여부에 대한 규칙 내지 기준을 이해한다는 것과 같다이 술어의 뜻과 단칭용어 ‘Red Rum’의 뜻을 파악한다면문장 ‘Red Rum은 말이다가 표현하는 명제 역시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술어의 지시는 또 다른 문제이다앞서 논의를 단순화하기 위해 가정된 바에 따르면 Frege는 술어의 지시를 술어의 외연 즉 술어가 적용되는 사물들을 원소로 갖는 집합으로 규정하였다하지만 술어의 지시에 관한 Frege의 실제 생각은 이보다 훨씬 복잡미묘한 편이다(술어의 지시에 관한 Frege의 대표적인 관점은 논문 개념과 대상에 관하여On Concept and Object에 개진되어 있다).

다음 문장을 예시로 생각해보자:

 

(23) Red Rum은 말이다.

 

‘𝛼는 말이다의 지시체가 말들의 집합이라고 단언할 수만은 없다그 집합 역시 하나의 대상으로서 말들의 집합과 같은 단칭용어에 의해서도 명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혹여 술어의 지시체가 집합이라 하더라도굳이 그러한 특수한 대상을 술어의 적절한 지시체로 만들어주는 요인은 무엇인가술어의 지시체로서 집합은 되면서도 가령 수나 연필은 왜 안되는가뿐만 아니라 집합으로 하여금 적절하게 명제를 형성할 수 있게끔 만들어주는 요인은 무엇인가누군가 ‘Red Rum, 내 연필!’ 하고 말한다면이는 단지 사물들을 열거한 것일 뿐 여하한 명제도 표현하지 않는다. ‘Red Rum, 말들의 집합!’ 역시 마찬가지이다. [즉 임의의 술어 ‘𝛼는 F하다의 지시체와 단칭용어 ‘F한 것들의 집합의 지시체가 동일하게 F한 것들의 집합이라면전자는 적형문을 형성하도록 결합되어 적절한 명제를 표현하는 반면 후자는 그렇지 않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3)이 실지로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어야 한다고 가정해보자:

 

(24) Red Rum은 말들의 집합의 원소이다is a member of.

 

[즉 원래의 술어표현 ‘𝛼는 F하다가 ‘𝛼는 F한 것들의 집합의 원소이다와 같이 집합표현 및 원소관계 표현으로 환원된다고 가정해보자.] 이러한 방책은 다음과 같이 무한퇴행infinite regress에 빠진다: (24)는 Red Rum과 말들의 집합을 언급하는 표현뿐만 아니라 은 의 원소이다라는 단어 어 역시 포함하고 있다앞서 원래의 술어 ‘𝛼는 말이다가 집합을 지시한다고 가정하였던 바와 마찬가지로이제 2항 술어 은 의 원소이다’ 역시 [(순서쌍ordered pair들의)] 집합을 지시한다고 가정하면앞서와 동일한 문제가 발생하는바 다음과 같은 말도 안 되는 문장을 얻게 된다:

 

(25) Red Rum 전자가 후자의 원소인 순서쌍들의 집합 말들의 집합.

 

이 역시 적절한 문장이 아니라 단지 사물들이 나열된 목록일 뿐이다이 문제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적절한 문장이 형성되는 데에는 대상을 단지 지시하는 역할 이상의 것을 수행하는 무언가가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Frege는 술어가 집합과 같은 통상적인 대상을 지시한다는 생각을 철회하고 함수(函數)function를 지칭한다는 생각을 개진한다함수는 통상적인 대상과는 그 존재방식을 상당히 달리하는 특별한 종류의 실체이다. ‘𝛼+2’에 의해 지칭되는 수학적 함수가 수 3에 적용되었을 때 그 함수값이 5인 것처럼, ‘𝛼의 어머니에 의해 지칭되는 언어적 함수가 특정한 사람에 적용되었을 때 그 함수값은 그 사람의 어머니이다마찬가지로 ‘𝛼는 말이다에 의해 지칭되는 함수가 Red Rum에 대해 갖는 값은, Red Rum이 말인지 여부에 따라 결정되는 두 가지 진리값 중 하나이다실제로 Red Rum이 말이었기 때문에그 문장의 진리치 [즉 ‘𝛼는 말이다에 ‘Red Rum’이 투입되었을 때의 산출값]는 참이다.

Frege는 진리치를 산출값으로 취하는 부류의 함수를 개념concept이라고 불렀다이러한 Frege의 용어법은 조금 부적절해보인다탁월한 Frege 연구가인 Alonzo Church가 지적하였듯이 개념이라는 용어는 술어의 을 칭하는 데에 더 적합한 듯하기 때문이다하지만 이 문제는 차치한 채 이 장의 나머지 부분에서 우리는 Frege의 용어법을 고수하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Frege가 말하는 개념과 함수는 대상이 아니며 따라서 단칭용어에 의해 지시될 수 없다통상적인 대상은 1-수준first-level 실체인 반면 개념과 함수는 ‘2-수준second-level’ 실체이다.12) 1차 수준 실체에 적용apply될 수 있는 실체가 바로 2차 수준 실체이다. ‘x+2’와 같이 개념이 아닌 종류의 함수를 차치하고 말해보자면, 1-수준 실체인 대상이 2-수준 실체인 개념에 투입됨으로써 진치리가 산출된다비유컨대 함수는 한 실체로부터 다른 실체를 향하는 화살과 같다그 중 개념이라는 함수는 특별한 사례로서참 또는 거짓 두 가지의 진리치라는 특별한 종류의 실체를 겨냥하는 화살이다다음 술어들 역시 개념을 지시하는 함수들이다:

 

𝛼는 초록색이다

𝛼는 Dalai Lama의 친구이다

𝛼 + 2 = 7


12) (原註) 3-수준, 4-수준 등등의 실체 역시 존재한다양화사는 2-수준 실체인 개념을 논항으로 취하는바 3차 -수준 실체이다. ‘𝛼는 개념-𝜙 하에 속한다fall under와 같은 복합-수준mixed-level 실체도 있다.

 

그러나 술어의 지시를 함수로 규정하여도 문제는 남는다우선 Frege를 따라 다음 술어

 

(26) 𝛼는 말이다

 

의 지시체가 개념이라는 점을 받아들이자이제 다음을 생각해보라:

 

(27) ‘𝛼는 말이다는 말 개념the concept horse을 지시한다.

(28) ‘말 개념은 말 개념을 지시한다.

 

Frege의 관점을 받아들였으므로 (27)은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그리고 (28)은 반드시 참일 수밖에 없는 듯하다문장 “‘A’는 A를 지시한다는 ‘A’에 그 어떤 용어가 삽입되든 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따라서 두 용어 ‘𝛼는 말이다와 말 개념은 동일한 실체를 지시하는 -지시적 표현으로 간주되어야 한다그러므로 적어도 외연적 맥락에서라면 두 용어는 [진리치 보존적으로상호대체 가능하다intersubstitutable즉 둘 중 하나가 (외연적으로나타날 경우 그것을 다른 하나로 바꾸어도 두 용어가 나타나는 문장 전체의 진리치는 변하지 않는다.

이러한 사항들을 염두에 둔 채경험적으로 참인 다음 문장으로 계속 진행해보자:

 

(29) Red Rum은 말이다.

 

바로 앞 단락에서 받아들였듯이 ‘𝛼는 말이다와 말 개념은 [-지시적이기에상호대체 가능하다. [그리고 (29)에서 전자는 명제적 태도 표현이라든가 명사절 접미사와 같은 내포적 연산자가 없는 외연적 맥락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 사항과 (29)로부터 다음을 추론할 수 있다:

 

(30) Red Rum 말 개념.

 

분명 참인 전제들로부터 올바른 규칙에 의해 도출되었음에도, (30)은 참도 아닐뿐더러 적형문조차 못되는 헛소리nonsense이다. (25)와 마찬가지로 (30)은 문장이 아니라 사물들이 열거된 목록일 뿐이다.

Frege의 관점에서 보자면 문제는 말 개념이라는 명사구에 있다우리가 받아들였던 바와 다르게, (27)은 참이 아니다. ‘𝛼는 말이다에는 그리스 문자에 의해 표시되는 공란이 있는 반면 말 개념은 그렇지 않다후자는 술어 역할을 할 수 있는 종류의 언어표현이 아닌 것이다. Frege의 용어를 사용해 말해보자면술어는 반드시 불완전하다incomplete 혹은 불포화되어있다unsaturated그리고 본질적으로 개념은 완전한포화된saturated공란 없는 용어에 의해서는 지시될 수 없다.

(27)에 있는 공란에 무엇을 적어 넣어야 할까아무것도 없다. Frege에 따르면 술어는 온전한 문장 내에서 통상적인 역할을 수행할 경우에만 무언가를 지시할 수 있다사정이 이럴진대 술어의 지시에 관해 말하는 것은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는 듯하다문법적으로 볼 때 ‘A는 를 지시한다에 있는 공란은 단칭용어에 의해서만 채워질 수 있는바단칭용어는 2-수준 실체인 개념이 아니라 1-수준 실체인 대상만을 지시하기 때문이다.

술어의 지시에 관한 이러한 문제는 매우 역설적인 것처럼 받아들여졌기에 이를 해결하고자 많은 시도가 이루어졌다. Frege 역시 이 문제를 의식하고 있긴 하였지만자신의 말을 다소 에누리하여grain of salt’ 들어줄 것을 호소하였다.

 

 

 추가적인 논의맥락원리

 

산수의 기초Foundation of Arithmetic의 한 유명한 구절에서 Frege는 자신이 철저히 준수하고자 하는 방법론적 원칙 세 가지를 제시한다그 중 두 번째는 맥락원리principle of context라 알려진 것으로서 다음과 같다:

 

단어의 의미를 고립적으로in isolation 묻지 말고 언제나 명제의 맥락context 내에서 물어야 한다.

(Frege, 19741884緖論)

 

(여기서 말해지는 맥락이란발화가 이뤄지는 시점장소화자의 정체성 등와 같이 6장에서 살펴볼 개념인 발화맥락context of utterance이 아니라단순히 문장 내의 한 자리location를 의미한다.) 이 원칙이 제시된 시점은 뜻-지시 구분이 이뤄지기 이전이다그렇기에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지시 구분에 대응하게끔 이 원칙을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겠다: (i) 단어의 지시는 고립적으로가 아니라 문장 전체가 갖는 진리치의 맥락 내에서 물어져야 한다, (ii) 단어의 뜻은 고립적으로가 아니라 문장 전체가 표현하는 뜻의 맥락 내에서 물어져야 한다문장 전체의 뜻이란 Frege의 용어법에 따르면 사고이며 우리의 용어법에 따르면 명제이다. (Frege가 말하는 명제는 다소 거칠게 말하자면 뜻있는 문장significant sentence과 동등하다.)

(ii)에 초점을 맞춰보자문장이 표현하는 명제를 명시하는 것은 곧 문장의 진리-조건을 명시하는 것과 같다고 해보자일테면 눈은 하얗다의 진리-조건은 눈이 하얗다는 것이[며 이는 그 문장이 표현하는 명제와 같]이러한 가정 하에서 맥락원리에 따르면가령 단칭용어의 뜻은 단칭용어가 문장 전체의 진리-조건에 미치는 영향과 따로 떼어져서는 파악될 수 없다거꾸로 말해단칭용어가 나타나는 문장 전체의 뜻이 일단 결정되면 개별 단칭용어의 뜻에 관해서는 더 이상 물을 것이 없다단칭용어의 뜻은 (만약 지시가 존재한다면그 용어의 지시를 결정하기 때문에언어적 관점에서는 단칭용어의 지시를 결정하기 위해 더 이상 물어질 사안이 없는 것이다나머지 해야 할 일은 언어 외적인extra-linguistic 사실들이 언어 내적인 사안들에 따라 실제로 성립하고 있는지 여부를 조사하는 것뿐이다.13) 이는 Vulcan이 실존한다고 믿었던 Le Verrier의 사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분명 특정 진리-조건을 표현하는 명제를 믿긴 하였으되다만 그 명제는 Vulcan이 존재하지 않기에 세계의 존재방식과 다른 진리-조건을 표현하는 거짓 명제였을 뿐이다.]


13) 소박한 의미론이 실패하는 총괄적인 이유를 Frege의 관점에서 조금 다르게 말해보자면 맥락원리를 무시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지시 구분의 실패가 맥락원리의 도외시를 함축하기 때문이다소박한 의미론은 언어표현과 세계 간 직접적으로 성립한다고 간주된 지시관계만을 통해 의미를 설명하기에 언어표현의 의미를 문장의 맥락 내에서 물어야 한다는 맥락원리를 무시할 수밖에 없다그에 따라 언어 내적인 의미론적 사안과 언어 외적인 사안을 혼동하기에적절치 못해 보이는 의미론적 분석을 내놓게 된 것이다. ‘Vulcan은 수성의 공전궤도에서 관찰되는 섭동현상을 야기한다는 문장을 보자소박한 의미론에 따르면 ‘Vulcan’의 지시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 문장은 무의미하다하지만 천문학적 지식을 다소 갖춘 사람이라면 비록 Vulcan에 대해 들어본 바가 없더라도 이 문장이 특정 천체에 관해 무언가를 말하고 있으며 그 천체가 존재하는지 여부에 따라 참이거나 거짓일 것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즉 개별표현 ‘Vulcan’의 의미 혹은 지시체를 모르더라도그 표현이 문장의 맥락 내에서 문장 전체의 진리-조건에 의미론적으로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지를 언어 내적인 사항들만으로도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연후에 해야 할 일은 그 표현의 지시체가 실존하는지 여부를 경험적으로 조사하는 일이며 이는 의미론과는 무관한 언어 외적인 사안이다맥락원리를 무시하는 소박한 의미론은 두 사안을 구분하지 못한 채지시체를 결여함에도 문장 전체의 진리-조건에 기여하는 바가 있는 언어표현을 무의미한 것으로 규정하며그에 따라 직관적으로 유의미한(즉 진리-조건을 표현하는문장을 무의미한 문장으로 치부한다.
양자의 혼동으로 인한 실수는 이의 역방향에서도 일어난다. ‘초록색 관념들이 사납게 잠자고 있다는 문장을 보자우리는 ‘𝛼는 초록색이다’, ‘관념’, ‘𝛼는 사납다’, ‘𝛼는 잠자고 있다’ 등의 언어표현들을 무리 없이 이해하고 있으며 그 표현들의 지시체라 할 만한 것들을 나름대로 파악하고 있다따라서 소박한 의미론에 따르면 이 문장은 유의미하다하지만 이 표현들이 결합된 위 문장은 아무런 진리-조건도 표현하지 않는바우리는 이 문장을 참이나 거짓이 되게 하는 사태가 과연 무엇일지를 떠올릴 수 없다문장 전체가 아무런 진리-조건도 표현하지 않기에 개별표현들의 의미가 의미론적으로 기여할 진리-조건 자체가 없으며그렇기에 각 표현들의 의미 내지 지시를 이해한다고 해서 문장 전체를 이해하는 데에 충분하지 못한 것이다맥락원리를 무시하는 소박한 의미론은 두 사안을 구분하지 못한 채지시체를 갖긴 하지만 진리-조건이 적절히 표현되지 않는 맥락에서 나타나는 언어표현들을 여전히 유의미한 것으로 규정하며그에 따라 직관적으로 무의미한(즉 진리-조건을 결여하는문장을 유의미한 문장으로 판가름한다.


(ii)를 지지할 만한 이유는 이외에도 많다예컨대 당신이 누군가에게 어떤 단어를 알려주고자 한다면그 단어가 포함된 온전한 문장들을 예시로 들어가면서그 단어가 문장 전체 내에서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가르치고자 할 것이다물론 그 단어가 적용되는 대상을 신체적으로 가리키는 방법이 동원될 수도 있겠으나그 경우 실제로 전달되는 정보는 가르치고자 하는 단어 ‘A’가 나타나는 저것가리키며이 바로 A이다라는 형식의 문장인 셈이다이러한 점은 실질적으로 가리켜질 수 없는 사물들 즉 추상적인 대상들을 지시하는 단어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예컨대 수()가 그러한 대상으로서, Frege가 산수의 기초에서 우선적으로 관심하였던 바가 바로 이것이다). 이러한 현실적인 근거 이외의 철학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ii)(그리고 (i) 역시앞서 술어의 지시와 말 개념 문제’ 절에서 살펴본 술어는 온전한 문장 내에서 통상적인 역할을 수행할 경우에만 무언가를 지시한다는 논제와도 부합한다술어는 문장 전체의 뜻에 기여하는contribute 한에서만 자신의 뜻을 갖기 때문이다(일부 학자들은 이러한 점이 단칭용어에 대해서도 성립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ii)는 다소 기이한 점을 함축하기도 한다. (ii)에 따르면 상당량의 언어표현들에 이미 숙달해있지 않은 이상 언어를 사용하여 무언가를 지시하는 일(언어적 지시)lingustic reference은 불가능한 것처럼 여겨진다예를 들어 매우 적은 수의 단어들을 개별적으로만 사용할 줄 알 뿐그 단어들을 적절히 조합하여 온전한 문장의 형태로 발화할 줄은 모르는 어린아이를 생각해보자이 아이는 자기네 집에서 기르는 개의 이름 ‘Fido’를 알고 있다맥락원리에 따르면 이 아이가 ‘Fido’를 사용하여 Fido를 지시하는 일이란 엄밀히 말해 불가능하다문장이 아니라 개별 단어들만을 말함으로써 대상을 지시하는 원초-지시proto-refer를 한다고는 말할 수 있겠지만이는 맥락원리에 따르면 진정한 언어적 지시작용은 아니다하지만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 아이가 도대체 어떻게 언어를 습득할 수 있겠는가문장들은 당연히 단어들로 구성되어있는데문장 사용에 이미 숙달해있지 않은 이상 여하한 개별 단어도 배울 수 없다면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요컨대 Frege가 견지하는 다음 두 원리는 상충하는 듯하다:

 

구성성 원리: 문장 전체의 뜻은 문장을 구성하는 개별 단어들의 뜻 및 그것들이 결합되는 방식에 의해 결정된다.

맥락원리: 개별 단어의 뜻은 그 단어들이 나타나는 문장 전체의 뜻에 의해 결정된다.

 

하지만 이러한 충돌은 피상적인 데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언어습득의 초기 단계에서라면 단어의 온전한 뜻을 익혀야만 다음 단계로 진행할 수 있는 식으로 낱낱의 단어들을 단번에 배우지는 않겠지만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진적이면서도 동시적으로 상당량의 언어가 하나의 전체로서 명확히 파악되는 단계에 이를 것이다언어를 습득한다는 것은 단어들을 단숨에 직접적으로 배우는 일이라기보다는비유컨대 차근차근 게걸음을 걷듯이또는 여러 갈고리를 이용해 조금씩 암벽을 등반하듯이 이뤄지는 과정인 것이다.

 

 

 역사적 사항

 

Frege는 생전에는 물론이요 세상을 떠난 1925년 이후에도 긴 기간 동안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학자였다. Bertrand Russell, Rudolf Carnap, Ludwig Wittgenstein 등 소수의 몇몇 철학자들만이 생전의 그를 잘 알고 있었다독일의 수학자이자 현상학자 Edmund Husserl순수 수학자로서는 당대 수학계를 선도하던 Giuseppe Peano와 David Hilbert 등은 Frege와 몇 편의 서신을 교환한 바 있다.

이렇듯 생전에도 사후 오랜 기간에도 좀체 주목받지 못했긴 하였지만현재에는 대부분의 학자들이 Frege가 관계relation가 포함된 추론을 다루는 현대 기호논리학symbolic logic의 숨겨진 창시자라는 데에 동의한다관계가 포함된 추론이란 예컨대 모든 연체동물은 동물이다따라서 연체동물을 먹는 모든 사람은 동물을 먹는 사람이다와 같은 추론을 일컫는다. [전통적인 Aristoteles의 정언논리에서는 형식화가 불가능했던이러한 추론을 다룰 수 있도록 논리학을 쇄신하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Frege의 작업은, 1장 말미에서 간략히 살펴보았듯이 문장논리sentential logic[(명제논리propositional logic)]에 변항술어양화사를 도입함으로써 술어논리predicate logic(양화논리quantificational logic)를 창안한 것이었다이는 작금에 이르기까지도 표준적인 논리학으로 정립되어있다이러한 혁신적인 착상은 1879년의 저서 개념표기법Begriffsschrift에서 조심스러우면서도 확고한 어조로 표명되었다. [(이렇듯 획기적인 착상이긴 하였으나 그 저서에서 Frege가 창안한 기호표기체계가 워낙 난해했기에 당시에는 수학자들로부터도 철학자들로부터도 큰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이 책을 읽고 Frege의 새로운 논리학의 진가를 알아본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가 Russell이다.)]

Frege가 창안한 새로운 논리학은 기존의 그 어떤 논리학보다도 강력한 것이었으며특히 산수(算數)arithmetic가 논리학으로 환원된다는 소위 논리주의Logicism 논제에 설득력을 실어주었다이 논제는 1884년 저서 산수의 기초Foundation of Arithmetic에서 비형식적으로 구상되었고엄밀한 증명은 1893년과 1903년의 저서 산수의 근본법칙Basic Laws of Arithmetic에서 시도되었다. Frege의 증명은 단 한 가지 세부사항만을 제외하면 흠잡을 데가 없었다모든 술어가 하나의 외연집합류를 결정한다는 공리가 그의 체계에 비일관성을 야기한다는 점이 밝혀진 것이다근본법칙』 2권이 이제 막 출간되려던 즈음하여 Russell은 Frege에게 보낸 유명한 편지에서 이 사항을 알려주었다. Frege는 스스로 말하길 Russell이 전해준 소식에 충격을 받았으며 그 충격에서 쉽사리 헤어나오지 못하였다. [Frege만큼이나 수학의 기초를 공고히 다지고자 했던] Russell은 이 난관에 굴하지 않고 Alfred North Whitehead와의 공저 수학원리Principia Mathematica(1911)에서수학의 논리학으로의 환원 가능성을 Frege의 체계보다 더욱 복잡한 방식으로 증명하고자 하였다논리주의 논제 및 Russell이 Frege 체계에서 발견한 모순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다면 4장 초입을 참조하길 바란다.

논리학 및 수학기초론foundations of mathematics에 대한 Frege의 작업과 그의 언어철학적 착상들 간의 관계가 정확히 어떠한가 하는 문제는 다소 논란거리이다다만 뜻-지시 구분이 1892년의 논문 뜻과 지시에 관하여On Sense and Reference에서 처음 제시되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지시 구분에 근거하여 Frege는 순수수학이 논리적으로 참인 동일성 문장들로 이뤄져 있음에도 세계에 관한 참된 지식genuine knowledge을 전달한다는 주장을 견지할 수 있었다이에 못지않게 Frege의 입장에서 중요한 글은 같은 해에 나온 개념과 대상에 관하여On Concept and Object였다이 논문에 개진된 핵심 착상은 늦게 잡아도 1884년부터 구상된 것으로 추정되긴 하지만그러한 추상적인 주제에 관한 Frege의 분석은 그 강력함과 정밀함에서 선례가 없는 것이었다. 1903년 이후 Frege는 긴 기간 동안 별다른 저술 활동을 하지 않다가 1918년에 사고논리적 탐구라는 논문을 내놓는다거기서 그는 소위 3의 영역third realm에 대한 생각을 개진하면서 명제적 내용의 객관성과 추상적 본성을 주장한다.

Russell은 Frege의 뜻-지시 구분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이 점에 대해서는 Wittgenstein도 Russell에 동의하긴 하지만그의 초기작 논리-철학 논고Tractatus Logico-Philosophicus는 Frege로부터 받은 영향이 다분하다(Wittgenstein은 Russell의 권고로 1912년 Frege를 방문했을 때 그가 자신을 완전히 참패시켰다고 술회한 바 있다). 1910년대 초 Frege의 강의를 수강한 적 있는 Carnap은 이후 의미론 서설Introduction to Semantics(1942) 및 의미와 필연성Meaning and Necessity(19561947)에서 Frege주의적인 이론을 발전시켰다. Michael Dummett(1925-2011)은 Frege: 언어철학Frege: Philosophy of Language(1973)을 위시하여 Frege에 관해 연구한 일련의 탁월한 저서들을 통해, Frege의 이름을 분석철학계의 정점에 올려놓는 데 가장 크게 공헌하였다.

 

 

 이번 장의 요약

 

Frege는 단칭용어의 의미가 지시체라는 NP2에 초점을 맞춰 소박한 의미론의 문제를 다음 두 가지로 대별한다:


1. 첫 번째 문제는 -지시적인 단칭용어와 관련된다예를 들어 샛별 개밥바라기이기 때문첫에소박한 의미론에 따르면 샛별의 의미 = ‘개밥바라기의 의미이다하지만 이는 두 문장 샛별은 행성이다와 개밥바라기는 행성이다의 의미가 문명 다르다는 사실과 상충한다. Frege가 말하였듯이 두 문장의 인지적 가치는 다른바둘 중 하나가 참임을 아는 것은 나머지 하나가 참임을 아는 것과 다르다이러한 문제는 샛별 샛별이 선험적인 데 반해 샛별 개밥바라기가 후험적이라는 사실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요컨대 소박한 의미론은 동일한 대상을 -지시하는 두 단칭용어의 인지적 가치의 차이를 설명하지 못한다.]

 

2. 두 번째 문제는 ‘Vulcan’, ‘Ness호 괴물과 같이 아무것도 지시하지 않는 단칭용어와 관련된다소박한 의미론에 따르면 단칭용어가 지시체를 결여한다는 것은 의미 역시 결여한다는 것을 함축한다하지만 이는 ‘Vulcan은 뜨겁다와 ‘Nessie는 뜨겁다의 의미가 명백히 다르다는 사실과 상충할 뿐만 아니라전자의 내용을 믿으면서도 후자의 내용을 믿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과도 상충한다. [요컨대 소박한 의미론은 지시체를 결여하는 두 단칭용어의 의미 차이를 설명하지 못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Frege는 모든 유의미한 언어표현이 뜻을 표현하며뜻은 언어표현의 지시체가 존재할 경우 그 지시체를 결정하는 규칙이라고 상정하였다지시체를 적절히 결정해줄 경우의 뜻은 그 지시체가 현상하는 방식으로 기능한다. Frege는 이러한 구분을 다음과 같이 언어표현 전반으로 확대하여 적용한다단칭용어가 표현하는 뜻은 그 지시체로서 대상을 결정한다. 1항 술어가 표현하는 뜻은 그 지시체로서 외연(실제로는 함수)을 결정하며이는 2항 이상의 관계술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문장이 표현하는 뜻(명제, Frege의 용어로는 사고)은 그 지시체로서 진리치를 결정한다이러한 구분에 따라 구성성 원리 역시 뜻과 지시에 각각 대응하여 두 가지로 나뉘게 된다(구문론과 연관되는 세 번째 구성성 원리 역시 존재한다).

-지시 구분에 근거하여 Frege는 소박한 의미론의 두 가지 문제를 다음과 같이 해결한다: (1) ‘샛별은 행성이다와 개밥바라기는 행성이다는 동일한 대상에 대해 동일한 것을 말하고 있긴 하지만 각기 다른 뜻을 표현한다또한 ‘Sally는 샛별이 행성이라고 믿는다와 ‘Sally는 개밥바라기가 행성이라고 믿는다는 Sally를 각기 다른 명제와 연관시키고 있기 때문에 두 문장의 진리치가 반드시 동일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요컨대 -지시적 언어표현들이 드러내는 인지적 가치의 차이는 뜻의 차이에 기인하는 것으로 설명된다.] (2) Vulcan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Vulcan은 행성이다는 참도 거짓도 아니다이렇듯 지시체를 결여하는 언어표현이 포함된 문장은 진리치를 결여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어떤 명제를 표현한다따라서 ‘Le Verrier은 Vulcan이 뜨겁다고 믿는다는 진리치를 갖는다. [요컨대 지시체를 결여하는 언어표현의 유의미성은 그것이 표현하는 뜻에 기인하는 것으로 설명된다.]

하지만 Frege의 뜻-지시 구분은 단칭존재부정문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한계를 갖는다명백히 참인 문장 ‘Vulcan은 존재하지 않는다가 참인 이유를 임의적이지 않게 설명할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지시체를 결여하는 단칭용어가 포함된 모든 단칭존재부정문은 Frege주의 의미론의 관점에서 볼 때 참도 거짓도 아니다.

Frege는 뜻의 객관성을 강조하여 명제란 개개인의 마음 속에 있는 정신적인 실체가 아니라 공적이면서도 추상적인 실체라고 주장한다.

Frege는 그가 개념이라 부른 불포화된 실체를 술어의 지시체라고 간주하였다모든 문장에는 포화된 혹은 완전한 실체(즉 대상)를 지칭하는 언어표현뿐만 아니라 불포화된 혹은 불완전한 실체(즉 개념)를 지칭하는 언어표현 역시 나타나야 하는바포화된 실체를 지시하는 언어표현들만으로는 온전한 문장이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대상들이 나열된 목록이 얻어질 뿐이기 때문이다예컨대 ‘Jane은 흡연한다, ‘Jane’의 포화된 지시체인 대상 Jane만을 지시하는 게 아니라 ‘𝛼는 흡연한다의 불포화된 지시체로서 Frege주의적인 개념 역시 지시하는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개념은 Frege에 따르면 일종의 함수로서 진리치를 산출값으로 갖는 특별한 종류의 함수이다예시문 ‘Jane은 흡연한다는 함수 ‘𝛼는 흡연한다에 논항 ‘Jane’이 투입되어 얻어진 것으로서, Jane이 흡연할 경우 그 값으로서 참값이 취해지며 그렇지 않을 경우 거짓값이 취해진다.

말 개념과 연관된 Frege의 퍼즐은 다음과 같이 명백히 참인 진술로부터명제를 적절히 표현하지 못하는 언어표현들이 추론되는 과정에서 드러난다: Red Rum은 말이다(이를 참이라 가정하자). ‘𝛼는 말이다는 말 개념을 지시한다따라서 Red Rum 말 개념다소 기이한 Frege의 진단에 따르면 첫 번째 전제 “‘𝛼는 말이다는 말 개념을 지시한다는 참이 아니다그 전제에 나타나는 말 개념은 공란을 갖지 않는 포화된 표현으로서 대상만을 지시할 수 있을 뿐불포화된 실체인 개념을 지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Frege는 단어의 의미는 고립적으로가 아니라 명제의 맥락 내에서 물어져야 한다는 소위 맥락원리를 지지한다이 원리에 대한 해석에는 다소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우리가 (수와 같은추상적 대상을 지시한다는 논제를 옹호하기 위해 Frege가 그 원리에 호소하였다는 점만은 명확하다맥락원리는 Frege의 구성성 원리와 상충하는 것으로 종종 여겨지기도 한다피상적으로 보자면 맥락원리는 문장-의미가 단어-의미에 선행한다고 말하는 반면구성성 원리는 역으로 단어-의미가 문장-의미에 선행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 탐구문제

 

1. Johnny가 진지하게 다음을 주장한다고 해보자: ‘백화점 안에 Santa Claus가 있어!’ 실제로 백화점 안에 Santa Claus 복장을 한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Johnny의 말은 참인가거짓인가? Jonny는 백화점 안에 Santa Claus가 있다고 잘못 믿고 있는 것인가? Frege주의 의미론의 관점에서 ‘Santa Claus’의 의미는 무엇인가?

2. Frege에 따르면 언어표현이 지시체를 결정하는 데 실패하는 경우를 제외하면뜻은 지시체의 현상방식이다이를 받아들일 경우생각하기와 같은 심리적 행위는 반드시 뜻에만 연관될 뿐 지시체와는 무관하다고 할 수 있는가? [왜냐하면 Pegasus와 같이 실존하지 않는 대상에 관해서도 우리는 모종의 심리적인 행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을지각perception의 내용이 단순한 대상이 아니라 다음 둘 중 하나라는 생각과 비교해보라: (a) 특정-관점에서-from-aaparticular-point-of-view 대상, (b) 설사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 환상의 경우라 할지라도 대상이 존재하는 경우와 동일하게 지각되는 감각-자료sense-data의 집합체collection.

3. ‘사다와 구매하다는 동의어라 할 수 있겠다즉 두 술어는 동일한 뜻을 표현한다그렇다면 다음 논증은 타당한가부당한가타당하거나 부당하다면 왜 그러한가?:

Sam은 순무를 샀다.
따라서 Sam은 순무를 구매했다.

다음 논증은 어떠한가?:

Susie는 Sam이 순무를 샀다고 믿는다.
따라서 Susie는 Sam이 순무를 구매했다고 믿는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 두 어구의 관계를 논하라:

Sam이 순무를 샀다는 것
‘Sam이 순무를 샀다의 뜻

4. Frege의 용어법에서 [임의의 표현에 대한개념적 분석conceptual analysis이란 가령 다음 형식의 진술을 정립하는 것을 말한다:

(a) x가 p를 안다know는 것은 x가 정당화된 참인 믿음justified true belief p를 갖는 경우 그리
고 오직 그 경우이다.

이 진술은 이탤릭체로 표기된 단어들이 동일한 뜻을 표현함을 말하고 있다이러한 분석이 성공적이라면 이는 분명 다음 진술과 정확히 동일한 셈이다:

(b) x가 p를 안다는 것은 x가 p를 아는 경우 그리고 오직 그 경우이다.

하지만 (b)는 사소하게 참인 문장으로서 우리의 지식을 확장해주지 않는다반면 (a)는 성공적인 분석이면서도 사소하게 참이지는 않다이것이 소위 분석의 역설paradox of analysis이라 알려진 문제이다. Frege의 입장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는가?

5. Frege주의 의미론 내에서 단칭존재부정문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다음 전략은 성공적이라 할 수 있겠는가?: 명제 P가 참임을 말하고 있는 ‘P라는 것은 참이다라는 표현을 도입하자이 표현의 진리-조건은 다음과 같다: P가 참이라면 참값을 산출하고, P가 거짓이거나 또는 참도 거짓도 아닌 식으로 결함이 있다면defective 거짓값을 산출한다이제 단칭존재부정문의 진리치를 올바르게 산출하기 위해가령 ‘Vulcan은 존재하지 않는다를 위 연산자 및 부정 연산자와 결합하여 부정다음은 참이다 (그러한 x가 있다 (x = Vulcan))’와 같이 분석한다. [이 문장에서 우리가 도입한 연산자의 ‘P’자리를 차지하는 명제는 그러한 x가 있다 (x = Vulcan)’이다. Frege주의 의미론에 따르면 이 명제는 참도 거짓도 아니므로 다음은 참이다 (그러한 x가 있다 (x = Vulcan))’는 거짓이다이에 부정 연산자가 결합된 최종 문장은 참인 것으로 판명된다이는 분석되기 이전의 단칭존재부정문이 참이라는 우리의 직관에 부합한다.]

6. 단어는 어떻게 뜻을 획득하게 되는가아무런 언어-사용자가 존재하지 않게 되더라도 뜻은 여전히 존재하는가?

7. Frege에 따르면 개념은 함수의 부분집합이다(Frege주의적인 언어체계에서 개념은 술어의 뜻이 아니라 지시체임을 기억하라). 함수 ‘𝛼+5’는 논항 2에 대해 함수값 ‘7’을 산출하는바이를 다르게 말하면 ‘2+5’는 7을 지칭하는 단칭용어인 셈이다마찬가지로 개념 ‘𝛼는 하얗다는 논항 []’에 대해 진리치 참값을 산출하는바이를 다르게 말하면 눈은 하얗다는 참을 지칭하는 단칭용어인 셈이다그렇다면 모든 참인 문장들은 참값을 지칭하는 단칭용어인 것인가진리치란 것은 Eiffel탑과 같은 하나의 대상이란 말인가이러한 생각에 따르면 문장과 단칭용어 간에는 아무런 논리적 차이도 없어지게 되는 것 아닌가그렇다면 !’이라든가 ‘Eiffel!’이라고 말함으로써 무언가를 주장할 수도 있다는 것인가이것이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왜 그러한가?

 

 

 주요 읽을거리

 

Frege의 이론을 공부하는 데에 필요한 모든 자료는 Micheal Beany가 편집한 Frege 읽기Frege Reader(1997)에 실려있다거기 실린 글들 중 중요한 것들로는 뜻과 지시에 관하여On Sens and Reference/Über Sinn und Bedeutung(1892), 개념과 대상에 관하여On Cooncept and Object/Über Begriff und Gegenstand(1892), 사고Thought/Gedanke(1918)를 들 수 있다그 다음으로 읽어두면 좋은 자료로는 함수와 개념Function and Concept/Funktion und Begriff(1891), Husserl에게 보낸 서한, 1892.05.24.「「뜻과 지시에 관하여에 대한 논평Comments on Sense and Reference「『산수의 근본법칙Basic Laws of Arithmetic/Grundgesetze der Arithmetik1(1893): 발췌Russell에게 보낸 서한, 1904.11.13.매우 탁월한 글인 Jourdain에게 보낸 서한, 1914.01」 등이 있다Frege 읽기Frege Reader에 포함된 일련의 글들에서 Beany는 현명하게도 독일어 단어 Bedeutung을 지시와 ’ 어느 쪽으로도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둠으로써, Frege의 전문용어를 번역하는 까다로운 문제를 교묘하게 잘 피하였다.

추가적으로산수의 기초Foundation of Arithmetic/Grundlagen der Arithmetik는 비록 뜻-지시 구분을 정립하기 이전에 쓰이긴 했지만이번 장에서 살펴본 Frege의 언어철학과는 무관하게 그 자체로 읽을 가치가 충분한 걸작이다.

 

 

 추가적인 읽을거리

 

Frege에 관한 저서들은 많이 출간되어 있지만실질적으로 가장 유용한 것은 M. Dummett, Frege: 언어철학Frege: Philosophy of Language2(1993)이다매우 뛰어난 책이긴 하나이에 앞서 Dummett 選集인 진리와 다른 수수께끼Truth and Other Enigmas(1978)에 실려 있는 두 편의 소론 Frege의 철학Frege’s Philosophy과 Frege의 뜻과 지시 구분Frege’s Distinction Between Sense and Reference을 먼저 읽는 것도 추천한다.

Dummett의 저작보다 짧고 평이한 것으로는 H. Noonan, Frege: 비판적 입문Frege: A Critical Introduction(2001)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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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의미론과 논리학의 언어

 

언어란 매우 복잡한 현상이다. 여타 많은 복잡한 현상들이 그러하듯이, 언어가 지닌 다양한 측면들을 포괄하는 복잡한 이론을 단숨에 숙달한다는 것은 교육적으로 극히 어려운 일이다. 물리학과 비교하여 생각해보자. 물리학에서 학생들은 예컨대 평면을 굴러가는 공에 대한 설명모델을 배운다. 그때 공과 평면의 마찰이라든가 공기의 압력과 저항, 공과 평면 표면의 현실적인 결함 등은 이론상 무시된다. [하지만 그러한 추상적인 모델을 숙지하고 나면 여러 변수가 적용된 현실의 현상을 설명하는 데에 그 이론을 활용할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언어라는 현상에 대해] 우리는 현실적인 사태의 복잡다단함을 굳이 고려하지 않고도, 그 현상을 설명하고자 하는 다양한 모델들을 먼저 배우고 그 주요 특징들을 파악해낼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언어가 기능하는 방식에 관한 상식적인 생각에 토대를 둔 단순한 언어이론을 살펴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 이론은 바로 소박한 의미론naive semantics이다. 일단 이 이론을 잘 파악하고 나면 우리는 그 이론을 적절하게 조정해볼 수도 있고 그보다 더욱 진전된 관점에서 언어현상을 전적으로 새롭게 설명하고자 시도해볼 만한 지점에 서게 될 수도 있다. 사실상 작금에 많은 철학자들은 소박한 의미론이 전적으로 틀린completely wrong 이론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소박한 의미론이 잘못된 이론이라면, Newton의 고전 물리학이 잘못된 이론이라는 그러한 의미에서 잘못되었다고 해야 한다. 소박한 의미론은 분명 많은 측면에서 직관적으로 만족스러운 설명을 제공하는바 적절한 이론적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도대채 왜 소박한 의미론만으로는 부족하며 그 외의 이론이 요구되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소박한 의미론이 실패하는 지점을 살펴볼 가치가 있다. 그럼으로써 그 이론보다 더욱 정교한 Frege-Russell 식 이론의 개요를 파악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기초를 다질 수 있을 것이다. 두 인물의 이론은 작금에 고전적 의미론classical semantics 내지 고전적 의미이론classical theory of meaning이라 칭해진다. 이는 각각 2장과 3장의 주제이다.

독자들이 느끼기에 이번 장은 철학적 측면에서는 그다지 특별할 것 없이 무미건조할 뿐만 아니라 [언어현상을 설명한다는 목적에 비추었을 때] 그 결실이 매우 적다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이 장에서 도입되는 주요 전문용어들 및 핵심 개념들은 이후 이어지는 장들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하면서 논의의 기초를 이루는 것들이기에, 이 점을 염두에 두면서 이 장을 읽어나가길 바란다. 그리 길지 않을 것이다.

 

 

소박한 의미론: 단칭용어, 술어, 지시

 

문장은 단어word들로 만들어진다. 단어들은 여러 문법적 유형grammatical type/calss들 즉 구문론적 범주syntactical category들로 나뉘며, 이에는 각기 다른 의미 범주들 즉 의미론적 범주semantical category들이 대응한다. 전통적인 문법 분류에 따르면 구문론적 범주들로는 고유명사, 명사, 대명사, 동사, 형용사, 정관사와 부정관사, 부사, 전치사, 양화사 등등이 있다. 작금에 현대 언어학에서 이러한 전통적인 분류법들은 일부 대체되었다. 그러한 분류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현대의 언어학이 더욱 잘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주된 관심사인 언어철학적 목적에서는 전통적인 것이든 현대적인 것이든 이러한 문법적인 분류들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언어를 그와는 다소 다른 방식으로, 어떤 측면에서는 상당히 간략한 방식으로 다룰 것인바, 문장의 진리-조건thruth-condition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지 여부를 우선적인 기준으로 삼아 언어표현들을 구분하고자 한다. 뿐만 아니라 개별 단어들은 그 자체 고립된 표현으로서 다뤄지기보다는, 의미를 지닌 언어표현의 일부로서(소위 공의어(共意語)적인(범주적인)syncategorematic것으로서) 다뤄지는 편이 언어철학적으로 더욱 적합한 경우가 많다. 이러한 사안들이 의미하는 바는 논의가 진행됨에 따라 더욱 명확히 이해될 것이다.

 

단칭용어

 

다음 두 문장을 보자:

 

(1) 화성은 붉다.

(2) 화성은 태양을 공전한다.

 

두 문장 모두 이름name 화성을 포함하고 있다. 언어표현 화성은 행성 화성의 이름 즉 고유명(固有名)proper name이다. 이를 다르게 말하면 전자는 후자를 나타내고stand for, 명명(命名)하고name, 짚어내고pick out, 외포(外包)하고denote, 지칭한다designate. 緖論 장에서 우리는 이 모든 관계를 지시refer로 통일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따라서 붉은 먼지로 뒤덮인 현실의 구체적인 행성 화성은 화성지시체referen, 화성이 지시하는 사물이다. 통상적으로 화성과 같은 단어들은 단칭용어(單稱用語)singular term라 칭해진다. 이에 소박한 의미론의 원리2naive principle 2를 다음과 같이 정식화할 수 있겠다(원리1은 곧이어 도입될 것이다):

 

(NP2) 단칭용어의 의미는 그 지시체이다.

 

여기서 단칭용어를 명확히 정의하고자 하지는 않겠다. 이는 너무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다음과 같은 직관적인 분류만으로도 단칭용어를 이해하는 데에 충분하다: 우리는 단어들이 사람, 도시, 행성 등과 같은 대상object 즉 특정 개별자(個別者)individual를 나타내는 역할role 내지 기능function을 지닌다고 단순하게 생각한다(언급된 사물들은 다소 확장된 의미에서긴 하지만 어쨌든 대상의 표준적인 철학적 의미에서 모두 대상이다). 반면 는 특정한 하나의 개가 아니라 여러 개들을 나타내기 때문에 단칭용어가 아니다.

이러한 기준에 따르면 (2)에 나타나는 태양역시 태양을 지시하는 단칭용어이다. 다음과 같은 표현들 역시 단칭용어에 속한다:

 

(3) 목성

(4) Charles 왕자의 어머니

(5) 프라하를 관통하는 강

(6) 가장 빠른 포유류

 

이 중 (3)은 고유명이지만 (4)(5)(고유명을 그 부분으로 갖고 있긴 하더라도) 고유명이 아니다. 이 예들에서 알 수 있듯이 단칭용어는 (3)과 같이 단순simple할 수도 있고(즉 아무런 개별 표현도 그 부분으로서 갖지 않을 수도 있고) (5)와 같이 복합적complex일 수도 있다.

 

술어: 구문론

 

문장 (1)(2)로부터 단칭용어 화성을 제거하면 다음을 얻는다:

 

(7) 은 붉다.

(8) 은 태양을 공전한다.

 

이러한 표현들은 논리적 의미에서 술어(述語)predicate이다. 일반화하자면 문장에서 단칭용어를 제외한 나머지 언어표현이 술어이다. 이는 술어에 대한 구문론syntax적인 정의로서, 술어의 의미 내지 의미론semantics에 관해서는 아직 아무것도 언급되지 않았다.

(7)(8)을 표기할 때 단칭용어가 제거되고 남은 자리로서 공란(空欄)을 나타내기 위해 밑줄표시가 사용되었다. 이를 대신하여 다음과 같이 그리스 문자를 사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9) α는 붉다.

(10) β는 태양을 공전한다.

 

그리스 문자는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논리학에서 양화문을 표현할 때 사용되는 변항(變項)variable이라든가, ‘2(x+y=2x+2y)’에서처럼 대수학에서 특정되지 않은 값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는 변수(變數)variable도 아니다. 그리스 문자는 단지 이름이 삽입될 수 있는 공란을 표시할 뿐이다(논리학 강의에서라면 이러한 술어표현과 개방문(開放文)open sentence을 엄밀하게 구분해야 한다. 개방문이란 술어처럼 그리스 문자 내지 영문 알파벳으로 표시되는 공란을 포함하고 있는 일련의 언어표현으로서, 그 공란이 적절한 언어표현들로 채워지면 폐쇄문(閉鎖文)closed sentence이 얻어진다). 이렇게 문장에서 단칭용어를 제거함으로써 술어를 얻는 절차를 술어추출predicate extraction이라 칭한다.

(9)(10) 같은 술어에는 그 어떤 단칭용어든지 채워질 수 있으며 그 결과 온전한 문장이 얻어진다. 즉 술어표현에 나타나는 그리스 문자를 단칭용어로 대체하면 온전한 문장이 얻어진다. 예컨대 단칭용어 (4)를 술어표현 (10)에 삽입하면 다음 문장이 얻어진다:

 

(11) Charles 왕자의 어머니는 태양을 공전한다.

 

이런 기이한 문장을 진지하게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어쨌든 (11)은 구문론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온전한 문장이다.

눈치 빠른 독자는 알아차렸겠지만 술어 (10)은 여전히 단칭용어를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단칭용어 화성을 제거하여 술어 (10)을 추출해냈던 문장 (2)에는 애초에 두 개의 단칭용어가 나타나고 있었던 셈이다. 이제 (10)에 남아있는 나머지 단칭용어마저 제거하고 그 빈자리를 다른 그리스 문자로 표시하면 다음과 같은 술어가 추출된다:

 

(12) αβ를 공전한다.

 

이 표현 역시 술어이다. 다만 (9)1-술어one-place predicate 또는 단항(單項)술어monadic predicate인 반면 (10)2-항 술어two-place predicate 내지 양항(兩項)술어binary predicate이다.

(12)로부터 문장을 구성하기 위해 그리스 문자를 단칭용어들로 채울 수 있다(두 개의 다른 단칭용어로 채워질 수도 있고 동일한 단칭용어가 두 번 사용될 수도 있다). 다음과 같은 3항 술어 역시 가능하다:

 

(13) αβγ에게 주었다.

 

일반화하여 말하자면, n이 얼마나 크든 상관없이 임의의 유한한 수 n에 대해 n항술어n places predicate가 원리적으로in principle 가능하다.

(10)과 다르게 (12)(13)에는, 제거됨으로써 그 이상의 술어가 추출될 수 있는 여타 단칭용어가 없다. 양자는 순수술어pure predicate이다. 순수술어란 단칭용어를 더이상 포함하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후 논리적 구문론과 논리적 연산자절에서 도입될 그리고’, ‘또는등과 같은 문장 연결사sentential connective라든가 어떤’, ‘모든등과 같은 양화사quantifier를 포함하고 있지 않은 언어표현이다. 추가적인 언급사항으로, 술어에 관한 우리의 논의에서는 빠르게등과 같은 부사 역시 도외시될 것이다(물론 어떤 술어표현에 부사가 나타난다는 점으로 인해 순수술어로서의 자격이 박탈되는 것은 아니지만 [부사와 연관된 언어철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문제들은 작금의 당면 목적과는 무관하기 때문이다]).

술어에서 그리스 문자가 사용되는 방식에 대해 다음과 같은 규칙을 채택할 필요가 있다: 온전한 문장을 형성하기 위해 술어표현의 그리스 문자를 이름들로 대체할 때(또는 이후 절에서 드러나듯이 변항으로 대체할 때), 각각의 그리스 문자들은 동일한 이름들(변항들)로 대체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다음 두 술어는 각기 다른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αβ를 죽였다.

αα를 죽였다.

 

따라서 ‘JonesJones를 죽였다는 위의 두 술어 모두로부터 얻어질 수 있지만, ‘JonesSmith를 죽였다는 첫 번째 술어로부터만 얻어질 수 있다. [우리가 도입한 규칙에 따르면 전자의 αβ에는 각기 다른 두 단칭용어가 채워질 수도 있고 동일한 단칭용어가 두 번 채워질 수 있으나, 후자의 α에는 동일한 단칭용어만이 채워져야 한다.] 이러한 사항에는 자살의 개념의 죽인다는 개념에 의해 정의될 수 있는 반면, 죽인다는 개념이 자살의 개념에 의해서는 정의될 수 없다는 점이 반영되어 있다. [자살을 표현하는 술어 αα를 죽인다는 살해를 표현하는 술어 αβ를 죽인다를 함축하지만 그 역은 아니다.]

(1), (2), (11)은 가장 단순한 문장들이다: 즉 하나의 순수술어 및 그 순수술어에 나타나는 그리스 문자 개수만큼의 단칭용어들만을 포함하고 있을 뿐, 그 외의 종류에 속하는 언어표현들은 나타나지 않는다. 간단히 말해 그러한 종류의 문장들은 단 하나의 술어만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종류의 문장들은 원자문장atomic sentence이라 칭해진다.

원자문장이란 하나의 n-항 술어와 n개의 단칭용어로 구성된 문장이다.

 

동사란 무엇인가?

 

통상적으로 전통 문법에서는 모든 문장이 하나의 동사(動詞)verb를 가져야 한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동사라는 개념은 언어철학적 논의에서는 도무지 무용한 개념이다. 동사란 대체 무엇인가? 예컨대 학교 문법시간에 우리는 (1)에 나타나는 이다is가 동사라고 배웠다. 하지만 그러한 분류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동사란 무엇인가? ‘이다라는 단어는 공전한다라는 단어와 다르게 문자적으로literally행위 동사action verb가 아니다. ‘눈은 하얗다Snow is white에서는 그 어떤 행위도 나타내어지지 않는다. 그럴진대 이다動詞라고 규정하는 데에 여하한 의미가 있겠는가?적어도 우리의 관점에서 이러한 질문들은 요점을 벗어난다. 다만 분명 것은, 다음과 같이 단칭용어들만으로는 온전한 문장이 형성될 수 없다는 것이다:

 

(14) 화성 Charles 왕자의 어머니

 

또한 술어들만으로도 문장이 형성될 수는 없다:

 

(15) 붉다 공전한다 붉다

 

(14)(15)에 나타나는 단어들은 적절하게 결합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들로 인해 우리는 동사에 대한 문법학적 관점을 차치하고, 앞선 규정에 따라 순수술어의 그리스 문자를 단칭용어들로 올바르게 대체한 일련의 표현들 그리고 오직 그러한 표현들만이 원자문장이라는 관점을 채택한다.

 

술어: 의미론

 

단칭용어에 대한 직관적인 생각은 무언가를 나타내는 표현이라는 것이다. 단칭용어는 하나의 대상, 하나의 특정 개별자를 지시함으로써 유의미해진다. 이에 비해 술어의 의미에 대한 우리의 직관적인 생각은 그보다 덜 분명하고 훨씬 다양하다. 다만 다음은 분명한 듯하다: 단칭용어의 의미 즉 대상이란 그것에 관해 무언가가 말해지는 어떤 것what we say things about인 반면, 술어의 의미란 대상에 관해 말해지는 그 무엇what we say about이다. 이는 앞서 제시된 술어의 구문론에도 잘 부합한다: 구문론적으로 말해 (1-) 술어란 문장에서 하나의 단칭용어가 제거된 뒤 남는 표현이다. 이에 상응하여, 의미론적으로 말해 (1-) 술어의 의미란 임의의 대상에 유의미하게 귀속될ascribed to 수 있는 어떤 것이다.

언급할 사항이 있다. 문장 ‘Mars is red’는 하나의 단칭용어와 하나의 술어로 구성된 문장이다. 즉 이 문장에서 ‘red’[외견상 문법적으로는 명사처럼 보이지만] ‘Mars’와 다르게 단칭용어가 아닌바 하나의 대상을 나타내거나 하나의 개별자를 지시하는 역할을 하지 않는다. 이 문장에서 ‘red’의 의미론적 역할은, ‘is’와 결합하여 하나의 술어를 형성하고, 개별자 Mars가 여차여차한 대상인지를 그 술어를 통해 말해주는 것이다.1) 이러한 표현을 일반용어general term라 한다. John Stuart Mill의 용어법에 따라 말해보자면, 단칭용어는 그 의미인 대상을 외포(外包)denote하는 반면 일반용어는 대상에 귀속될ascribed to 수 있는 어떤 것을 내포(內包)한다connote[(대상에 귀속될 수 있는 그 어떤 것이란 정확히 무엇인지는 곧이어 탐구될 것이다)]. 이러한 일반용어들로는 ’, ‘배고프다’, ‘짖다등을 들 수 있다(각각 문법적으로는 명사, 형용사, 동사이다). 우리의 논의에서 일반용어라는 범주 자체는 그다지 큰 관심사가 아니며, 다만 술어의 부분으로서만 취급될 것이다.


1) 영어에서 ‘red’의 경우 문법적구문론적으로 동일한 형태의 언어표현이 명사와 형용사 양자로 쓰일 수 있다. 본 단락에서 저자는 이러한 문법적 외양으로 인해 그 단어를 술어가 아닌 단칭용어로 혼동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주의시키고 있는 셈이다. ‘Mars is red’를 보거나 듣는 능숙한 영어 화자는 (특이한 맥락이 아닌 바에야) 그것을 화성이 붉다는 의미로 받아들이지 화성이 붉음 내지 붉은 색과 동일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는다(서론 장에서 도입된 ‘is’에 대한 구분법에 따라 말하자면, 이 문장에서 ‘is’는 동일성 표현의 역할이 아니라, ‘red’와 결합하여 술어가 되는 술어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앞서 도입된 술어추출 방식을 따르자면, 이 문장에서 추출될 순수술어는 α is β가 아니라 α is red’이다. 요지는 언어표현의 구문론적 외양과 의미론적 역할이 다를 수 있으며, 후자에 근거해서 전자의 범주를 결정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예시된 문장을 한국어 문장 화성은 붉다로 번역해버리면, 우리말에서 붉다가 외견상으로 술어라는 점이 명확하기에, 저자가 지적하고자 하는 이러한 구문론(또는 문법)-의미론 간 분기 현상을 적절히 보여주기 어렵다. 이를 보여줄 수 있는 우리말 문장을 들자면, 본문에서 뒤에 나오는 가 나타나는 뚜뚜는 개다를 들 수 있겠다. ‘는 문법적으로는 명사이지만, 이 문장에서 그 의미론적 역할은 이다와 결합하여 술어가 되는 것인바, 그에 따라 구문론적으로 단칭용어가 아니라 술어표현의 일부라 해야 한다.


술어의 의미론과 연관되는 몇몇 용어법들이 있다. 다시 (1) ‘화성은 붉다를 예시로 들어보자. 단칭용어 화성은 화성을 지시하는 반면 술어 α는 붉다는 화성에 적용된다apply. 실제 사물 화성이 붉기 때문이다. 이를 다음과 같이 다른 방식으로 말할 수 있다: 술어 α는 붉다는 대상 화성에 대해 참이다is true of[(역으로 그 대상은 그 술어를 참이게 한다)]. 또는 대상 화성은 술어 α는 붉다만족한다satisfy[(역으로 그 술어는 대상에 의해 만족된다)].2)


2) 이에서 알 수 있듯이 참관계와 만족관계는 상호 관계이다. 술어 F와 대상 a에 대해, Fa에 대해 참인 경우 그리고 오직 그 경우에 aF를 만족한다. 역으로 aF를 참이게 하는 경우 그리고 오직 그 경우에 Fa에 의해 만족된다.


그렇다면 대상에 적용되는 그 어떤 것이란 정확히 무엇인가? 분명 다른 대상은 아니다. ‘화성은 붉다가 참이라 하더라도 α는 붉다의 의미가 행성 화성일 수는 없다. 만약 술어의 의미 역시 대상이라면 단칭용어 화성과 술어 α는 붉다는 동의어가 되어버리는바, ‘화성은 붉다’, ‘은 붉다는 붉다’, ‘화성 화성등의 표현에는 아무런 의미론적 차이가 없게 되어버린다. 이는 분명 받아들여질 수 없다. 게다가 화성은 단 하나의 대상만을 명명하는 반면 α은 붉다는 화성 이외의 여러 사물들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차이가 있다. 더욱 중요한 문제로서, 어떤 술어들은 동일한 사물에 적용되면서도 각기 다른 의미를 지닌다. 예컨대 α는 아프리카보다 큰 대륙이다α는 중국을 포함하는 대륙이다는 정확히 한 대상인 아시아에 적용되지만 두 표현의 의미는 분명 다르다. 따라서 사물에 적용되는 것과 사물을 명명하는 것은 명확히 구분되어야 한다. 단칭용어와 술어는 완연히 다른 종류의 의미, 각각 다른 의미론적 역할을 지니는 것이다.

술어의 의미로 제시되었던 전통적인 하나의 후보는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마음 속에 떠오느를 관념(觀念)idea이다. 17세기 철학자 John Locke가 이러한 관점을 피력한 바 있다. 하지만 작금에 이러한 생각을 견지하는 철학자는 거의 없다. 우선 하나의 이유를 들자면 관념이라는 것이 단순히 정신적인 그림 내지 이미지()image일 수만은 없다는 점이다. ‘α는 난해하다와 같이 우리가 그에 대한 어떤 정신적인 이미지를 갖는다고 보기 어려운 술어들이 많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 술어들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설사 한걸음 양보해서 그러한 술어들에 대해서도 어떤 식으로든 모종의 관념을 갖고 있다는 점을 받아들인다 해도, 술어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정신적 이미지들이 각기 다르다는 더 큰 문제점이 있다. 개에 대해 당신이 갖는 관념은 프렌치 불독의 이미지이고 나의 것은 아일랜드 울프하운드일 수 있다. 하지만 술어 α는 개다는 당신의 말에서든 내 말에서든 동일한 것을 의미한다. 즉 우리 각자가 개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 술어 α는 개다에 해당되는 대상들을 결정하는 기준이 변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그 술어는 누구에 의해 사용되든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 요는 관념이라는 것이 필연적으로 사적(私的)private이고 주관적subjective인 데 반해, 우리가 의사소통하는바 단어의 의미라는 것은 어떤 점에서 공적(公的)public이고 객관적objective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사안이 술어에 대해 의심스럽다면 상대적으로 단순한 단칭용어의 경우를 생각해보라. 물론 단칭용어는 우리의 마음 속에서 주관적이고 사적인 특정 관념과 연관되어 있을 수도 있다. 나는 파리Paris에 대해 특정 관념을 갖고 있다. 하지만 단칭용어는 객관적 대상인 그 지시체와도 연관되어 있다. 내가 파리에 대해 무슨 이미지를 갖고 있든 파리는 그 지시체인 도시 파리 자체와 연관되어 있다. 술어 역시 마찬가지이다. 더 나아가 문장의 경우도 그것을 구성하는 단칭용어와 술어에 각각 대응하는 공적인 부분들에 의해 특정한 의미를 표현한다. 언어의 주요 기능 중 하나인 의사소통이라는 현상을 설명해낼 수 있으려면, 모든 언어표현의 의미는 관념 같은 사적인 것일 수 없다.

소위 공공성 요건requirement of publicity이라는 이러한 요건에 저촉되지 않을 법한 다른 후보로서 사물들의 집합set of things을 들 수 있다. 일반화하여 말하자면 1항 술어의 의미는 술어를 만족하는 사물들을 원소로 갖는 집합이다. 논리학 및 의미론 내지 의미이론에서는 이러한 집합을 술어의 외연(外延)extension이라 칭한다. 이에 따라 다음과 같이 추정해보자:

 

(NP3) 술어의 의미는 그 외연이다.

 

여기에 별표가 붙은 이유는 이것이 소박한 의미론을 구성하는 원리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NP3)을 거부할 주된 이유는 차후에 밝혀지겠지만, 여기서는 다음 두 가지만을 언급하는 정도로 충분하다: (1) 전술하였듯 어떤 술어들은 정확히 동일한 집합에 의해 만족되면서도 각기 다른 의미를 갖는다. 앞서 든 예시인 α는 아프리카보다 큰 대륙이다α는 중국을 포함하는 대륙이다가 그러하다. 뿐만 아니라 α는 둥근 사각형이다α는 에펠탑보다 큰 사람이다처럼, 집합empty/null set을 외연으로 갖는 술어들은 전부 동일한 외연을 갖지만 그 의미는 분명 다르다. (2) 통상적인 술어들의 외연은 늘 변하지만 그에 따라 술어의 의미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지금도 매 순간 붉지 않았던 사물이 붉어지거나 붉었던 사물이 그렇지 않게 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사용하는 α는 붉다의 의미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따라서 (NP3)은 다음과 같이 수정되어야 한다.

 

(NP3) 1항 술어의 의미는 그것이 나타내는 속성property이다. 2항 술어의 의미는 그것이 나타내는 관계relation이다. 그 이상의 n항 술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예컨대 α는 붉다가 나타내는 속성property(특성attribute, 특질quality)붉음redness이다. 이러한 원리는 술어의 의미론에 관해 앞서 요구되어온 사항들을 만족하는가?: ‘α는 붉다가 다른 속성을 나타내게 된다면 그 술어의 의미 역시 달라진 셈이라 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 ‘α는 붉다가 붉음을 나타낸다는 것을 아는 경우에만 그 술어를 이해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 속성은 사적이지 않고 공적인 것이라 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

여기서 속성이라는 용어는 통상적인 쓰임에 비해 다소 유연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숙지해야 한다. 대체로 속성딱딱함이라든가 유연성 등과 같이 과학적 관심의 대상이 되는 성질feature들을 의미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 어떤 것이든 임의의 1항 술어의 의미를 속성이라고 간주한다. ‘α는 일찍 잠자리에 든다역시 하나의 속성을 나타낸다. 간단히 말해 속성은 사물이 존재할 수 있는 임의의 방식any way that a thing can be이다.

이제 αβ를 공전한다와 같은 2항 술어의 경우를 살펴보자. 2(양항) 술어는 관계relation를 나타낸다. 관계는 속성과 마찬가지로 보편자(普遍者)universal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술어의 의미는 보편자이다. 예컨대 하얌whiteness과 사랑함은 둘 다 보편자이지만, [전자는 α는 하얗다의 의미인 속성이라는 보편자인 반면] 후자는 αβ를 사랑한다의 의미인 관계라는 보편자이다.

따라서 소박한 의미론에 따르면 속성과 관계, 즉 보편자는 술어의 지시체이다. 앞서 정식화한 (NP2)를 부가하면, 단칭용어 술어의 의미는 모두 그것의 지시체이다. 전자의 의미는 대상이고 후자의 의미는 속성 또는 관계이다. 아직 모든 유형의 언어표현을 탐구한 것은 아니지만, 다음과 같은 원리를 정식화하기에는 충분한 단계에 도달한 것 같다:

 

(NP1) 소박한 의미론의 기본원리: 모든 언어표현의 의미는 그 지시체이다.

 

이 원리의 핵심 착상은 언어표현의 의미란 곧 언어표현이 나타내는 것이라는 발상이다. 간단히 말해 의미와 지시는 동일하다(의미=지시). 언어표현이 무언가를 의미한다는 것은 그 무언가를 지시한다는 것이다. 언어표현이 유의미해지는 것은 무언가를 지시하기 때문이다.

 

 

원자문장의 참과 의미

 

(A) 원자명제

 

緖論에서 규정한 바에 따르면 문장의 의미는 (발화의 맥락에 따라) 문장이 표현하는 명제proposition이다. 이러한 생각과 소박한 의미론의 기본원리인 NP1을 결합하면 명제란 문장의 지시체이다. 문장이 무언가를 지시한다는 생각은 약간 기이하게 여겨진다. 하지만 소박하게 말하자면 참인 문장의 지시체란 하나의 사실fact이라 할 수 있다. 일단 사실이 곧 참인 명제라는 점을 받아들이면 NP1이 그리 기이하게 여겨지지는 않을 것이다.

원자문장atomic sentence 역시 문장이므로 원자문장의 의미 역시 명제이다. 이를 원자명제atomic proposition(또는 요소명제elementary proposition’)라 칭하기로 한다. 그런데 구성성의 원리principle of compositionality에 따르면 문장의 의미는 문장을 구성하는 부분들의 의미 및 그 부분들이 결합되는 구조에 의해 결정된다. 그렇다면 구성성 원리를 받아들인 채 소박한 의미론을 따르자면, 원자문장을 구성하는 부분표현들의 의미는 문장 전체의 의미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 답은 간단하다: 원자문장의 의미 즉 원자문장이 표현하는 명제는, 원자문장을 구성하는 부분표현들의 의미에 의해 구성된다composed. 원자명제란 문장의 의미들을 성분으로 갖는 하나의 구성적(복합적)인 대상composite object이다. 따라서 원자문장에 의해 표현되는 명제는 원자문장에 나타나는 부분표현들의 지시체들로 구성되고 만들어진다. 이를 정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NP4) 원자문장에 대한 소박한 의미론: n개의 단칭용어로 구성된 원자문장에 의해 표현되는 명제는 문장을 구성하는 술어의 지시체 및 단칭용어들이 지시하는 n개의 지시체들로 구성된다.

 

원자문장과 그 의미인 원자명제 간의 이러한 관계를 도식화하여 이해해볼 수도 있다. 예컨대 화성은 태양을 공전한다에 의해 표현되는 명제는 도식 1.1과 같은 형태로 나타내어질 수 있다

 

화성은 태양을 공전한다

묶음 개체입니다.

화성

αβ를 공전한다는 관계

태양

도식 1.1 화성은 태양을 공전한다에 의해 표현되는 명제

 

이는 모종의 추상적인 구조이다. 명제가 구성되는 방식은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추상적이다. 하지만 이를 물리적 구조와 유사한 것처럼 유비적으로 생각해볼 수도 있다. 예컨대 술어는 콩의 겉껍질과 같고 단칭용어의 지시체는 그 내부의 콩알과 같다.

 

(B) 원자문장의 참

 

緖論에서 규정한 바에 따르면 명제는 진리치의 담지자이다. ‘은 참/거짓이다라는 술어가 직접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은 문장 자체가 아니라 문장에 의해 표현되는 명제이다.

이에 소박한 의미론에 따를 때 원자명제가 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의하고자 한다. 논의를 단순화하기 위해 속성 또는 2항 관계만을 포함하는 원자명제에만 국한하여 이를 각각 1- 원자명제와 2- 원자명제로 칭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참truth이라는 개념은 실재와의 대응correspondence with reality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a) 화성은 붉다는 명제는 다음의 경우 그리고 오직 그 경우에 참이다: 대상 화성이 속성 붉음을 지니고 있다possess. 즉 그 대상이 그러한 속성을 실제로 갖고 있다actullay have(또는 그러한 속성을 예화한다exemplify, instantiate).

(b) 화성이 태양을 공전한다는 명제는 다음의 경우 그리고 오직 그 경우에 참이다: 대상 화성과 태양이 αβ를 공전한다에 의해 지칭되는 관계를 맺고 있다stand in the relation. 즉 화성이 태양에 대해 그러한 관계를 갖는다bear the relation to.

 

이를 일반화하여 정식화하자면 다음과 같다:

 

(NP5) 원자명제의 참에 대한 소박한 정의: 원자명제는 다음의 경우 그리고 오직 그 경우에 참이다: (i) 대상 o와 속성 P로 구성된 1항 원자명제이고, oP를 지니고 있는 경우. (ii) 대상 o1o2 및 관계 R로 구성된 2항 원자명제이고, 대상 o1o2가 관계 R을 맺고 있는 경우.3)

 

3) (原註) 이 정의에서 원자명제의 내적 구조 즉 명제의 구성 요소들이 이루고 있는 순서order는 아직 고려되지 않고 있다. 이 원리에 의해서는 예컨대 명제 MaryJohn에게 키스했다JohnMary에게 키스했다의 차이가 식별될 수 없다. 이와 관련된 사항들은 4장에서 더욱 상세히 논의될 것이다.


이 원리는 문장sentence, 발화utterance, 진술statement, 믿음belief 등에도 적용될 수 있다. 즉 명제 이외의 그 네 가지도 은 참이다라는 술어가 적용될 수 있는 성질의 것들로서, 그 진리-조건 역시 위의 원리에 의존하여 정의될 수 있다: 문장, 발화, 진술은 그것이 표현하는 명제가 참인 경우 그리고 오직 그 경우에 참이다라고 말해질 수 있다. 이러한 방식에 따르면 어떤 문장이 참이라 말하는 것은 그 문장이 표현하는 명제가 참이라는 것을 축약하여 말하는 셈이다. 믿음 역시 마찬가지로서, 한 믿음은 믿어지고 있는 명제가 참인 경우 그리고 오직 그 경우에 참이다.

 

 

논리적 구문론과 논리적 연산자

 

지금까지 우리는 언어에 관해 다소 모호하게 말해왔으며, 언어에 관한 논지를 예시하는 데에 한국어를 사용해왔다. 그런데 우리가 겨냥한 논지에 따르면 모든 언어에 원자문장이 존재하며 따라서 단칭용어와 술어 역시 모든 언어에 존재한다. 소박한 의미론도 엄연한 이론으로서 기도된바, 언어로서의 적절한 자격을 갖춘 모든 언어는 그러한 장치들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세계 자체가 속성을 갖는 사물들 및 관계를 맺는 사물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단칭용어와 술어를 갖추지 못한 언어는 그러한 세계의 구조를 반영할 수 없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세계를 표상하거나 세계에 관해 말할 수 없다. 위대한 논리학자 Alfred Tarski가 말했듯이, 의미론적 범주에 관한 생각은 언어에 대한 우리의 직관에 매우 뿌리 깊게 박혀 있기에, 그러한 범주를 적절히 갖추지 못한 언어란 과연 어떠한 모습일지를 상상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그러니 이제껏 우리는 모든 언어가 갖는 이러한 일반성4)을 단지 예시하기 위해 한국어를 사용했을 뿐이었던 셈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논의가 계속 한국어로 진행되더라도, 우리는 언어에 관한 일반적인 이론화를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한국어 자체는 우리의 실질적인 주제가 아니다.


4) (原註) 여기서 말해지고 있는 일반성을, 저명한 언어학자 Noam Chomsky가 주창한(예를 들면 Chonsky, 1965) 심층구조Deep Structure 또는 보편문법Universal Grammar 개념과 혼동하지 않아야 한다. 이 사안에 관한 Chomsky 고유의 관점은, 보편문법의 가능성을 인간 정신에 갖춰진 심층적인 언어 구조에 관한 경험적인 가설로서 취급하고자 할 뿐, 언어 자체의 가능성에 관한 형이상학적인 가설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Chomsky는 모종의 형이상학적인 것으로서의 언어가 아니라 다만 인간이 지닌 것으로서의 언어를 일반화하는 것에 관심한다. 작금에 Chomsky의 이론, 특히 인간의 언어습득 능력이 가능한 이유가 선천적인(즉 유전적으로 결정된) 언어구조라는 실재가 두뇌에 구현되어있기 때문이라는 그의 주장은, 경험적 연구에 의해 일부 입증된 바 있다. 이는 인류가 지닌 언어들이 보여주는 풍부한 다양성의 기저에 동일한 일반적 구조가 있다는 매우 놀라운 사실을 보여준다.

 

이번 절에서는 -원자문장 즉 분자문장‘molecular’ sentence에 관해 논의한다. 문제는, 논의가 원자문장 수준을 넘어서기 시작하면 우리의 자연언어natural language가 매우 복잡하고 혼란스러워진다는 점이다. 이에 당분간은 우리의 언어를 다소 단순화된 버전의 한국어로 국한하여, 논리학 강의에서 배우는 논리적 연산자logical operator(논리상항(常項)logical constant)들인 문장-연결사sentence-connective 양화사(量化詞)quantifier(한량사, 한정사, 수량사)에 대응하는 소수의 언어적 장치들을 도입하고자 한다. 다만 모든 독자들이 논리학을 수강하지는 않았을 것이기에, 여기서 설명될 논리학적 사안들은 꽤 단순할 것이다. [심화된 내용 내지 보충적인 설명을 원한다면 대괄호 안의 내용 및 譯註를 참고하기 바람.]

 

문장-연결사

 

우리는 가 아니다’, ‘또는’, ‘그리고등의 표현을 표준적인 기초 논리학적 방식으로 사용할 것이다. 즉 이러한 표현들을 진리-함수적truth-functional인 것으로 가정한다. 이 문장-연결사들의 의미를 진리-함수적으로 정의하면 다음과 같다: 임의의 두 문장 pq에 대해

 

연언(連言)conjunction

: ‘pq’pq 양자가 참인 경우 참이며, 그 이외에는 거짓이다.

선언(選言)disjunction

: ‘pq’pq 양자가 거짓인 경우 거짓이며, 그 이외에는 참이다.

부정(否定)negation

: ‘p’p가 참인 경우 그리고 오직 그 경우에 거짓이다.


[이 정의는 임의의 두 문장 pq에 대해 성립하므로, 문장-연결사들에 의해 결합되는 각 부분 문장들은 원자적일 수도 있고 복합적일 수도 있다. 연언과 선언 연결사에 의해 결합되는 문장들을 각각 연언지(連言枝)conjunct와 선언지(選言枝)disjunct라 한다. 이 용어를 활용하여 두 연결사의 진리조건을 기술하자면, 연언문은 두 연언지 모두 참인 경우 그리고 오직 그 경우에 참이고, 선언문은 두 선언지 모두 거짓인 경우 그리고 오직 그 경우에 거짓이다. 연언문과 선언문에 비해] 자연언어에서 부정문이 표현되는 방식은 다양하다. 단순성을 기하기 위해 우리는 부정 연산자를 인 것은 아니다It is not the case that로 통일한다. 이것마저 너무 길다면 부정: 과 같이 표기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목성이 해왕성을 공전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는 다음과 같이 표기될 수 있다:

 

부정: 목성은 해왕성을 공전한다.

 

[부정 연산자는 (복합적이든 원자적이든) 하나의 문장에 결합되기에 이를 문장-연결사라 칭하는 것이 의아하게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부정 표현이 결합되면 문장 전체의 논리적 의미 즉 진리치가 변하는 논리적 연산이 행해지므로 엄연한 논리적 연산자이다(이로 인해 부정 연산자를 단항(單項) 연산자라 칭하기도 한다).]

다음으로, 조건문을 형성하는 조건 연산자 라면 이다if-then5)가 자연언어에서 진리-함수적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5) 자연언어에서 조건문이 표기되는 방식 역시 다양하다. 다음은 모두 동일한 조건문이다:


p이면 q이다.
p인 경우 q이다.
p이기 위해서는 q여야 한다.
오직 q인 경우 p이다p only if q.

마지막 것은 한국어에서 전후건의 순서가 바뀐다.


당분간은 이러한 복잡한 사안을 도외시한 채 조건 연산자를 진리-함수적인 것으로 취급하기로 한다. 형식논리학formal logic에서 조건 연산자는 화살표 기호 로 표기된다. 예를 들어 ‘Charles가 뚱뚱하다면 Andrew는 뚱뚱하다는 다음과 같이 표기된다:

 

Charles는 뚱뚱하다 Andrew는 뚱뚱하다.

 

[여기서 화살표 기호 좌측 문장을 전건(前件)antecedent, 우측 문장을 후건(後件)consequent이라 한다.]

조건 연산자의 의미에 대한 진리-함수적인 정의는 다음과 같다:

 

조건(條件)conditionality

: ‘pq’p가 참이고 q가 거짓인 경우 거짓이며, 그 이외에는 참

 

이다.

 

앞선 예시에서 일단 Charles가 뚱뚱하다면, Andrew가 뚱뚱한 경우 조건문 전체는 참이며 Andrew가 뚱뚱하지 않은 경우 조건문 전체는 거짓이다. 일단 Charles가 뚱뚱하지 않다면, Andrew가 뚱뚱하든 그렇지 않든 조건문 전체는 참이다. [앞서 소개된 명칭으로 조건문의 진리조건을 기술하자면, 전건이 참이고 후건이 거짓인 경우 그리고 오직 그 경우에 조건문 전체는 거짓이다. 이를 다르게 말하면 전건이 거짓이거나 후건이 참인 경우 그리고 오직 그 경우에 조건문 전체는 참이다.6) 따라서 일단 전건이 거짓이라면 후건의 진리치와 무관하게 조건문은 참이며, 일단 후건이 참이라면 전건의 진리치와 무관하게 조건문은 참이다. 조건문이 진리-함수적인지 여부에 대해 논란이 이는 이유는 진리-함수적 정의가 지닌 이러한 직관성 때문이다.]


6) 조건문은 전건이 참이면서 후건이 거짓(즉 참이 아님)인 것은 아니다라는 의미이다. ‘전건이 참이다후건이 참이다를 각각 ‘p’‘q’로 놓으면, 자연언어로 기술된 그 정의는 (p&∼q)’로 표기된다. 이는 De Morgan의 법칙에 따라 pq’와 논리적 동치이며, 이를 자연언어로 다시 번역하면 전건이 거짓이거나 후건이 참이다이다. 이에서 알 수 있듯이 조건문 ‘pq’, 연언문 (p&∼q)’, 선언문 pq’는 전부 논리적 동치이다.


마지막으로 쌍조건문을 형성하는 쌍조건 연산자 인 경우 그리고 오직 그 경우에 이다if and only if가 있다. 종종 ‘iff’로 축약되며 기호로는 가 사용된다. 쌍조건 연산자의 의미에 대한 진리-함수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쌍조건(雙條件)

: ‘pq’‘pq’‘qp’ 양자가 참인 경우 참이며, 그 이외에는 거짓이

biconditionality

(또는 pq의 진리치가 동일한 경우 참이며, 그 이외에는 거짓이다.7)

 

7) 각주5)에서 조건문에 대한 자연언어 표기로 소개된 것들 중 마지막 것에서 알 수 있듯이, ‘pq’를 자연언어로 표기하면 오직 q인 경우 p이다p only if q이다. 본문의 쌍조건 정의에서 알 수 있듯이 ‘pq’‘(pq)&(qp)’와 논리적 동치이며, 이를 자연언어로 번역하면 오직 q인 경우 p이고 q인 경우 p이다이다. 쌍조건 연산자가 자연언어로 인 경우 그리고 오직 그 경우 이다로 표기되는 데에는 이러한 진리-조건 정의가 반영되어 있다.
다만 두 부분문장이 나타나는 순서가 영어와 한국어에서 다르기 때문에 ‘p iff q’‘q인 경우 그리고 오직 그 경우에 p이다로 번역되어야 한다. 쌍조건문은 결합되는 문장이 (실질적으로든 논리적으로든)동치인 경우에 사용되므로 그다지 중요한 사안은 아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순서를 염두에 두어야 사소한 혼란이 생기지 않는다: 예컨대 어떤 용어나 개념이 쌍조건문 형식으로 정의될 때, 영어에서는 쌍조건 연결사 좌측이 정의항이고 우측이 정의항인 반면 한국어에서는 그 반대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p는 다음의 경우 그리고 오직 그 경우이다: q’ 식의 번역을 주로 채택하였다.


양화사

 

자연언어로 일반성을 표현하는 일은 매우 복잡하고 골치 아픈 일이지만 여기서는 이를 대체로 무시하고자 한다. 우선 외견상 일반성을 포함하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다음 진술을 보자:

 

Fido가 리트리버라면 Fido는 헤엄칠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을 하는 사람은 모종의 일반화를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하며 이는 다음과 같이 여러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

 

모든all 리트리버는 헤엄칠 줄 안다.

그 어떤/임의의any 리트리버든지 헤엄칠 줄 안다.

각각의every 리트리버는 헤엄칠 줄 안다.

 

이러한 일반화 문장들을 통일시켜 형식화하기 위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절차를 밟는다. 우선 위 문장들을 다소 어색하긴 하지만 다음과 같이 고쳐 쓸 수 있다:

 

모든 것에 대해for every thing, 그것it이 리트리버라면 그것은 헤엄칠 줄 안다.

 

이 문장은 모든 것에 대해라는 보편 양화사(전칭 양화사)universal quantifier가 다음과 같은 개방문open sentence 내지 문장틀matrix에 결합된 것이다:

 

그것이 리트리버라면 그것은 헤엄칠 줄 안다.

 

여기서 대명사 그것의 자리에 다음과 같이 변항(變項)variable을 도입한다:

 

x가 리트리버라면 x는 수영할 줄 안다.

 

자연언어로 된 조건문 연산자를 앞서 도입된 기호로 재표기한다:

 

x는 리트리버다 x는 헤엄칠 줄 안다.

 

원래의 일반문에는 모든 것에 대해라는 보편 양화사가 있었다. 양화사에서 의 자리를 변항으로 대체한 뒤 이 개방문에 다시 결합시키고 구분을 위해 괄호를 표기한다;

 

모든 x에 대해 (x는 리트리버다 x는 헤엄칠 줄 안다).

 

이것이 우리가 기도한바 형식화된 보편 양화문(量化文)universal quantification이다. 여기서 보편 양화사가 변항 x속박한다(구속한다)bind고 말해진다. ‘모든 x에 대해이외에도 각각의each x에 대해’, ‘전부의all x에 대해등을 쓸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보편 양화문의 진리-조건이다. 다음과 같은 형식의 보편 양화문에서

 

모든 x에 대해 .

 

의 자리에 나타나는 개방문이 x로 선택되는 모든 개체[(이를 논리학에서는 논항(論項)argument이라 한다)]에 대해 참인 경우 그리고 오직 그 경우에 보편 양화문 전체는 참이다. [즉 적어도 단 하나의 개체가 그 개방문을 만족하지 않는다면 보편 양화문 전체는 거짓이다.]8) 


8) 보편 양화사의 이러한 진리-조건으로 인해 자연언어로 된 전칭 문장 모든 FG이다가 보편 양화문으로 형식화될 때에는, 내부 개방문의 주 연결사로 연언 연산자가 아니라 조건 연산자가 도입된다. 전자가 도입되면 다음과 같이 원래의 자연언어 문장이 의도한 바보다 강한 의미를 갖는 문장이 얻어지기 때문이다: 술어 ‘Fα‘Gα를 본문의 예시처럼 α는 리트리버이다α는 헤엄칠 줄 안다로 해석해보자. 형식화 과정에서 연언 연산자가 도입되면 모든 x에 대해 (FxGx)’라는 문장이 얻어진다. 이 보편 양화문이 참이기 위해서는 보편 양화사의 진리-조건에 따라 개방문 ‘FxGx’x의 모든 논항에 대해 참이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연언문의 진리-조건에 따라 x의 모든 논항에 대해 ‘Fx’‘Gx’ 양자가 참이어야 한다. 이를 자연언어로 풀어서 말하자면, 모든 개체가 리트리버이고 헤엄칠 줄 아는 경우 그리고 오직 그 경우에 양화문은 참이다. 세계엔 리트리버가 아니거나 헤엄칠 줄 모르는 개체가 존재하므로 이 보편 양화문은 사소하게 거짓이며, 이는 원래의 자연언어 문장에서 의도되었던 논리적 의미가 아니다. 원래 문장에서 의도되었던 바는 어떤 것이 F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G이다라는 더욱 약한 의미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안은 보편 양화문이 존재함축existential entailment을 갖지 않는다는 현대 논리학의 관점에 따른 것이다. 어떤 공원 입구에 목줄을 하지 않은 개는 들어올 수 없습니다라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이 문장은 목줄을 하지 않은 특정 개가 실제로 있고 그 개는 들어올 수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개가 되었든 목줄을 하지 않았다면 들어올 수 없음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이렇듯 보편 양화문에서는 개방문을 만족하는 논항에 대한 존재론적 개입ontological commit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그에 대응하도록 연언 연산자에 비해 약한 존재의미를 만들어내는 조건 연산자가 도입되는 것이다. ‘저 집 개가 리트리버라면 수영을 잘 할 것이다저 집 리트리버는 수영을 잘 한다를 비교해보라. 전자는 저 집 개가 리트리버임을 명시적으로 주장하고 있지 않은 반면 후자는 그러하다.


예시에서는 대상 x가 무엇이든 다음과 같은 개방문

 

x는 리트리버다 x는 헤엄칠 줄 안다.

 

이 그 모든 대상에 대해 참이라 말하고 있다. [따라서 양화문 전체는 리트리버인 모든 것들이 헤엄칠 줄 안다면 참이며, 그렇지 않은 리트리버가 하나라도 있다면 거짓이다.] 보편 양화문 모든 x에 대해 (x는 리트리버다 x는 헤엄칠 줄 안다)’는 폐쇄문closed sentence으로서, 이를 다르게 말하면 개방문 ‘x는 리트리버다 x는 헤엄칠 줄 안다에 대한 보편 폐쇄universal closure이다.

유사한 방식으로 다음과 같은 존재 양화사(특칭 양화사)existential quantifier를 도입한다:

 

그러한 x가 있다 There is an x such that

 

다음 문장은 존재 양화문existential quantification이다:

 

그러한 x가 있다 (x는 알비노albino이다 x는 호랑이다).

 

그러한 x가 있다이외에도 그러한 x가 존재한다there exist an x such that’, ‘몇몇 x에 대해for some x등을 쓸 수 있다. 존재 양화문의 진리-조건은 다음과 같다: x로 선택되는 적어도 하나의 개체에 대해 내부 개방문이 참인 경우 존재 양화문 전체는 참이다. [즉 아무런 개체도 그 개방문을 만족하지 않는 경우 그리고 오직 그 경우에 존재 양화문 전체는 거짓이다.]9) 따라서 예시된 존재 양화문은 알비노(선천적 색소 결핍증)이면서 호랑이인 것이 적어도 하나 존재한다면 참이며 그렇지 않다면 거짓이다.


9) 존재 양화사의 이러한 진리-조건으로 인해, 자연언어로 된 특칭 문장 어떤 FG이다가 존재 양화문으로 형식화될 때에는, 내부 개방문의 주 연결사로 조건 연산자가 아니라 연언 연산자가 도입된다. 전자가 도입되면 다음과 같이 원래의 자연언어 문장이 의도한 바보다 약한 의미를 갖는 문장이 얻어지기 때문이다: 술어 ‘Fα‘Gα를 본문의 예시처럼 α는 알비노이다α는 호랑이다로 해석해보자. 형식화 과정에서 조건 연산자가 도입되면 그러한 x가 있다 (FxGx)’라는 문장이 얻어진다. 이 존재 양화문이 참이기 위해서는 존재 양화사의 진리-조건에 따라 개방문 ‘FxGx’가 적어도 하나의 논항에 대해 참이기만 하면 충분하며, 이를 위해서는 조건문의 진리-조건에 따라 적어도 하나의 논항에 대해 ‘Fx’가 거짓이거나 ‘Gx’가 참이기만 하면 충분하다. 이를 자연언어로 풀어서 말하자면, 알비노가 아니거나 호랑이인 적어도 하나의 개체가 존재하는 경우 양화문은 참이다. 세계엔 알비노가 아니거나 호랑이인 개체가 존재하므로 이 존재 양화문은 사소하게 참이며, 이는 원래의 자연언어 문장에서 의도되었던 논리적 의미가 아니다. 원래 문장에서 의도되었던 바는 어떤 것이 F이고 G이다라는 더욱 강한 의미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안 역시 존재 양화문만이 존재함축을 갖는다는 현대 논리학의 관점에 따른 것이다. 어떤 집 마당에 사나운 개 주의라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이 문장은 사나우면서 개인 것이 있으니 그것을 주의하라고 말하고 있다. 집주인이 말하길 자신의 집 마당에는 실제로 개가 없지만 혹여 어디선가 사나운 개가 나타나면 주의하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써두었다고 한다면, 듣는 사람은 주인이 미쳤거나 아니면 적어도 언어를 잘못 사용하고 있다 여길 것이다. 이렇듯 존재 양화문은 개방문을 만족하는 논항에 대해 존재론적으로 개입하기 때문에, 그에 대응하도록 조건 연산자에 비해 강한 존재의미를 만들어내는 연언 연산자가 도입되는 것이다. ‘그 동물원 호랑이는 알비노이다그 동물원에 호랑이가 있다면 알비노일 것이다를 비교해보라. 전자는 그 동물원에 호랑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명시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반면 후자는 그렇지 않다.


때에 따라 ‘x’ 이외에도 ‘y’, ‘z’ 등 복수의 변항이 필요할 때도 있다. 다음과 같은 [대체로 양화사가 둘 이상 나타나는 복합 양화문(다중 양화문)multiple quantification] 경우이다:

 

모든 x에 대해, 그러한 y가 있다 (xy를 사랑한다).

그러한 y가 있다, 모든 x에 대해 (xy를 사랑한다).

 

자연언어로 표기된 모든 사람은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변항에 대입되는 논항의 영역을 사람으로 제한한다면) 위의 두 가지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애매함(양의성(兩意性))ambiguity을 갖고 있다. 이 문장은 전자처럼 모든 사람에겐 저마다 각각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의 의미일 수도 있고, 후자처럼 모든 사람이 사랑하는 단 한 사람이 있다의 의미일 수도 있다. 형식화된 양화사와 변항의 사용은 자연언어의 이러한 결함을 극복하게 해준다. 좀 더 복잡한 어떤 소녀는 모든 소년들에 의해 사랑받는다는 다음과 같이 표기된다:

 

그러한 x가 있다 (x는 소녀이다 모든 y에 대해 (y는 소년이다 yx를 사랑한다)).

 

이러한 사례들에서 알 수 있듯이, 복수의 양화사가 필요할 때에는 일상적인 대명사 대신 변항을 사용하는 것이 여러모로 편리하고 애매함을 제거해주기도 한다.

여기서 도입된 양화사 표기법인 모든 에 대해’, ‘그러한 가 있다등이 번거롭다면, 형식논리학에서 사용되는 두 양화기호 를 사용할 수도 있다.

모든’, ‘임의의’, ‘어떤’, ‘가 있다/존재한다등은 자연언어의 양화사들이다. 뿐만 아니라 더 많은more’, ‘아무것도none’, ‘일곱 개의’, ‘절반의’, ‘적어도 두 개의등과 같이, 사물이 얼마나 혹은 몇 개나 있는지 그 양에 관해 말하는 모든 표현은 자연언어의 양화사라 할 수 있다. 표준적인 관점에 따르면 양화사는 단칭용어가 아니며, ‘α는 녹색이다와 같은 수준의 일반적인 술어도 아니다. 하지만 소박한 의미론을 철저하게 고수한다면, 여타 문장 연결사들과 더불어 양화사 역시, 단칭용어 및 일상적인 술어와는 다르긴 하지만 어쨌든 다른 언어표현들과 마찬가지로 지시적인 표현referring expression이다. 양화사란 정확히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범주에 속하는지는 다소 논쟁적인 주제로서, 이에 대해서는 2, 3, 4장에서 좀 더 상세히 살펴볼 것이다. 예컨대 2장에서 살펴볼 Frege의 이론에 따르면 양화사는 좀 더 고차-수준의 속성, 즉 속성에 적용되는 속성을 지시하는 표현이다.


단칭용어와 술어 수준에서의 일반화

 

때때로 해석되지 않은uninterpreted 단칭용어와 술어를 사용하여 순수하게 도식적형식적으로 추론하고자 하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SocratesPlaton의 스승이었다는 문장을 다루되, 그것을 구성하는 특정 언어표현들 및 그 의미를 도외시한 채, 임의의 두 단칭용어 및 2항 술어로 이뤄진 임의의 문장처럼 취급하는 경우이다. 이를 위해 해석되지 않은 단칭용어로서 ‘a’, ‘b’ 등을 사용하고, 임의의 1항 술어로서 ‘Fα’, ‘Gα, 임의의 2항 술어로서 ‘Rαβ를 사용한다. 그래서 1항 및 2항 원자문장은 각각 다음과 같이 표기된다:

 

Fa

Rab

 

후자는 한 때 ‘aRb’의 형태로 쓰이기도 했지만 작금에 이는 다소 구식으로 여겨진다. 이 표기법에 더해 앞서 언급된 두 양화기호를 활용하여 이번 절의 앞선 예문들을 기호화하면 다음과 같다:

 

(x)(RxSx)

(x)(AxTx)

(x)(x)Lxy

(y)(x)Lxy

(x)(Gx(y)(ByLyx))

 

이러한 표기법들은 수학언어에 모형을 둔 형식논리학의 표준적인 표기법에 따른 것이다.

 

 

역사적 사항

 

이번 장에서 제시된 형태의 소박한 의미론을 진지하게 견지하는 사람은 작금에 아무도 없을 것이다. Platon이나 Aristoteles와 같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 및 스토아 철학자들은 소박한 의미론과 유사한 생각들을 탐구하였다. 중세 철학자들과 인도의 철학자들, 그리고 J. Locke, Gottfied Leibniz, David Hume, George Berkeley 17, 18세기의 소위 근대 철학자들, 언어 및 의미와 얽힌 문제들에 대해 소박한 의미론과 일부 유사한 형태로 사유하였다. 19세기 말엽, 수학이 궁극적으로 논리학으로 환원된다는 논제를 정립하기 위해 논리학에서 상당한 발전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언어철학은 철학 전반에서 이전에 비해 더욱 뚜렷하고 핵심적인 분야로 부상하게 되었다. 특히 Gottlob Frege의 초기 저서 개념표기법Begriffsschrift(1879)Bertrand Russell수학의 원리Principles of Mathematics(1903)(이는 1910년의 수학원리Pricipia Mathematica와 혼동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Ludwig Wittgenstein의 초기 저서 논리-철학 논고Tractatus Logico-Philosophicus(1921) 등에서는 소박한 의미론의 한 형태가 옹호되었다. 우리의 관점에서 다소 흥미로운 선구자는 John Stuart Mill이다. 비록 MillFregeRussell로 하여금 논리학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게끔 추동시킨 획기적인 착상을 갖고 있지는 않았지만(특히 그는 양화문의 특성에 대해 거의 고려하지 않았다), 논리학 체계A System of Logic(1843)에서 그는 고유명이 내포connotation를 갖지 않으며 단지 외연denotation만을 가질 뿐이라는 소박한 의미론의 핵심 착상을 천명하였다. 이는 훨씬 이후인 20세기 중반 Ruth Barcan Marcus에 의해 주장된바 고유명이 그 지시체에 대한 이름표tag역할을 할 뿐이라는 이론을 선취하는 것이었다. 4장에서 살펴보겠지마 Russell은 소박한 의미론의 기본 아이디어를 끝까지 고수하였으며, 이러한 Russell의 입장은 현대에도 충실한 추종자를 거느리고 있다. 이후 소박한 의미론이 지닌 치명적인 결점을 발견한 Frege는 논문 뜻과 지시에 관하여On Sense and Reference(1892)(이는 Frege, 1977에 실려 있다)에서 이를 보완하기 위한 전혀 새로운 방식의 사유를 개진한다.

 

 

이번 장의 요약

 

소박한 의미론에 따르면 가장 기본적인 단위의 문장인 원자문장은 단칭용어와 술어라는 두 범주에 속하는 표현들로 구성된다. 모든 원자문장은 n-항 순수술어와 n개의 단칭용어들로 구성된다. 단칭용어의 의미는 그 지시체 즉 단칭용어가 나타내는 대상이며, 술어의 의미 역시 그 지시체 즉 술어가 나타내는 보편자이다. 1항 술어, 2항 술어, 3항 술어 등에 대응하는 보편자는 각각 속성, 2항 관계, 3항 관계 등이다.

문장의 의미는 문장이 나타내는 명제이다. 원자문장의 의미인 원자명제란 추상적인 복합적 대상으로서, 단칭용어에 대응하는 대상들 및 술어에 대응하는 보편자로 구성된다. 원자문장의 진리치는 문장이 표현하는 명제가 다음과 같이 실재에 대응하는지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 원자문장이 말하는 대로 구성된 사실이 존재하는 경우 원자문장은 참이며, 그러한 사실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 거짓이다.

원자문장 수준 이상의 복합적인 문장들을 다루기 위해 다음 두 가지가 도입되었다: (1) ‘가 아니다’, ‘또는’, ‘그리고’, ‘이면 이다등과 같은 명제논리sentential logic의 장치들. 논의를 단순화하기 위해 이 문장 연결사들의 의미는 표준적인 기초논리학의 진리표truth-table에 따라 진리-함수적으로 정의되었다. (2) ‘모든’, ‘어떤등에 해당하는 술어논리predicate logic의 양화사들.

 

 

탐구문제

 

1. 블타바Vltava = Leo Perutz의 소설 밤에 돌다리 밑에서By Night under the Stone Bridge에 등장하는 강. 이 사실로부터 소박한 의미론에 대해 어떤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겠는가? 단순한 단칭용어와 복합적인 단칭용어 간의 구분은 그 문제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가?

2. 신문이나 잡지를 갖고 다음 작업을 수행해보라: (a) 적절한 형태의 원자문장을 찾아낸다. (b) 술어를 확인한다. (c) 순수술어를 추출하여 공란을 그리스 문자로 표기하고, 이를 다시 다른 단칭용어들로 적절히 대체하여 새로운 문장을 만든다.

3. 소박한 의미론에 따르면 붉음α는 붉다라는 표현 간에는 어떠한 구문론적의미론적 차이가 있는가?

4. 소박한 의미론에 따르면 ‘Jane’Jane을 지시하고 은 흡연한다는 흡연함이라는 속성을 지시한다. 그렇다면 굳이 ‘Jane은 흡연한다고 말함으로써 Jane이 흡연한다는 명제를 표현하는 대신, ‘Jane, 흡연함이라는 속성과 같은 식으로 말함으로써 단지 Jane을 지시하고 흡연함이라는 속성을 지시하면 안 되는가? 이것이 올바르지 않다면 명제가 표현되기 위해 그 이상으로 요구되는 바는 무엇인가?

 

 

주요 읽을거리

 

Frege, G. (1997), 개념표기법Begriffsschrift(1879): 발췌, Frege 選集Frege Reader에 수록.

Mill, J. S. (1963ff), 논리학 체계, 추론과 귀납System of Logic, Rationative and Inductive, 2, 이름에 관하여Of Names, John Stuart Mill 全集, 7-8에 수록.

Russell, B. (1903), 수학의 원리Principles of Mathematics, 4, 고유명, 형용사, 동사Proper Names, Adjectives and Ver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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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 2023-02-02 22: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혹시 출판을 염두에 둔 번역인가요?

depaysment 2023-02-02 22: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헝 아니요 ㅋㅋㅋㅋㅋ

depaysment 2023-02-02 22: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다해놤ㅅ다가 다날라가버려서, 첨부터 다시 시작하면서 에이씨 여기라도 올리자 해서 안전빵으로! ㅋㅋㅋㅋㅋ

depaysment 2023-02-02 22: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누군가에게 도움도 될 겸!

depaysment 2023-02-02 22: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근데 왜 난 비밀그ㄹ링 안됨요

000 2023-02-06 16: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주석까지도 본격적이라 혹시나 했네요ㅎㅎ
실제로 제가 영어가 좀 딸려서 독해가 막히는 부분에서 도움받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원문에 얽매이지 않는 과감한 번역이 흥미롭네요!

2023-02-06 17: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2-06 17: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탈현대 기초 논리학 입문
배선복 지음 / 철학과현실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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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형편없는 책이거나, 아니면 적어도 아주 기이하고 의심스런 책이다 우선 저자가 한국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이 맞는지 의심스러울만큼 문장력이 하냥 형편없다 사소한 오탈자는 그렇다 쳐도, 어처구니없는 비문들이 정말 계속 난무한다 무슨 <의도>로 글을 쓴 건지가 아니라 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글을 썼는지, 생각이라도 해가며 글을 썼는지부터가 도시 궁금할 정도로,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먹을 수 없는 문장 투성이다 ‘짱-의미합성‘ ‘도깨비 이론‘ ‘야 집합 언어‘ 등 학술적으로 공인되지 않은 기이한 명칭을 도입하는 것도 이해를 방해한다 서술적, 학문적이라기보다는 문학적, 현학적 문체를 부적절하고 어울리지 않게 자꾸 뒤섞는 서술방식도 맘에 들지 않는다 내용적으로도 엉망진창인 구석이 많다 명제논리를 도입하는 데에, 현대 논리학에서는 그 그림자도 찾아보기 어려운 구식 철학어인 ‘범주‘를 들먹여가며 아리스토텔레스와 칸트에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굳이 있을가 연습문제와 해답도 갖춘바 일견 논리학 교재인 것처럼 보이나 하고자 하는 낌새를 보면 심층적인 연구서나 해설서 같기도 한데 어느 쪽이든 서술방식이 난삽하여 논지를 도무지 종잡을 수 없고, 표준적인 논리학적 사항들을 소개하면서도 그 제시방식이 엉망진창이고 기이하여 논리학 초심자든 숙달자든 얻을 바가 전무하다

닐 부부의 ˝논리학의 역사˝를 참 열심히도 읽은 바 있는데, 공동 역자들 중 이 저자의 이름을 본 기억이 있다 그 챆 뿐만 아니라 공동저술된 여타 서적에서도, 혹은 한 저서의 인용서지사항에서도 간혹 본 이름이어서, 믿을 만한 학자이겠거니 하고 이 책을 구매하였다 정작 펼쳐보니 도저히 읽어내려가지 못하겠는 모양새이다 너무나 실망스럽고, 왜서 이런 물건을 저술했는지 도통 이해가 가질 않는다 지은이 소개를 보면 출간돨 당시인 2004년에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소속이었다는데,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라는 곳이 뭐하는 곳인지는 모르나 좌우간 여직도 이런 물건을 저술하는 사람들로 대개 구성된 곳이라면, 작금에 대한민국 정신과 문화와 학술연구가 어디로 향할지, 당최 어딘가로나 향하기는 할런지, 무척이나 저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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緖論

 

20세기 이후 서양철학은 명백히 언어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발전하였으며, 암암리에는 더욱 오래 전부터 그래왔다고 할 수 있다. 소위 언어적 전회(轉回)linguistic turn가 이뤄진 시기라 일컬어지는 20세기 초엽 일부 철학자들은 언어철학 자체가 곧 철학이라고 확신하기까지 하였다. 왜 이러한 생각이 대두되었는가? 무엇이 언어와 철학을, 혹은 철학과 언어를 그렇게도 밀접하게 연관시키게 하였는가?

 

언어철학을 추동시킨 몇 가지 예비적인 생각은 다음과 같다:

 

철학자들이 그러하듯이 우리도 종종 정의(正義)란 무엇인가?’, ‘정의의 본질(本質)nature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곤 한다. 그런데 우리는 ‘“정의라는 단어word의 의미meaning는 무엇인가?’ 라고 물을 수도 있다. 사물 내지 실재(實在)reality의 본질에 관한 물음은 의미론semantics 내지 단어의 의미에 관한 물음으로 바뀔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일부 철학자들은 이러한 전환이 철학적 진보라고 생각한다(이와 생각을 달리하는 이들은 이것이 철학을 사소하게 만들어버린다trivialise고 생각한다).

언어는 사고(思考)를 표현한다express thought, 혹은 사고를 반영한다mirror. 언어에 관한 탐구는 사고에 관한 탐구, 즉 사고의 특성, 구조, 사고와 세계 간의 관계 등에 관한 탐구로 가는 하나의 방식이다. Descartes가 생각했듯이, 언어능력을 결여한 존재는 사고의 능력 역시 결여한 존재라 할 수 있을 듯하다. 뿐만 아니라 사고 자체와는 다르게 언어는 [우리의 감관에] 공공연하게 드러나는 것으로서, 사고와는 다른 방식으로 객관적인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언어는 세계를 표상(表象)한다represent world. 언어는 세계를 반영한다. 언어의 일반적추상적 특징에 관한 연구는 세계의 일반적추상적 특징을 드러내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언어에 대한 탐구 자체가 철학적 기획의 일부이다. 물론 언어는 세계에 실재하는 것으로서 과학적 연구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과학적인 언어연구란 어떠해야 하는지, 혹은 그러한 연구를 위한 적절한 자료가 무엇인지는 그다지 명확하지 않다. 따라서 언어를 과학적이고 경험적으로 연구하기 전에, 제기되어야 할 물음이 어떠한 종류의 것일지를 우리는 선험적(先驗的)으로a priori 반성해보아야 한다.

언어에 대한 분석analysis, 특히 논리학의 영향을 받은 의미이론theory of meaning명료성clarity이란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철학을 정의하는 특성defining feature 중 하나가 바로 어렵고 복잡한 생각을 명료화한다는 점인 까닭에, 언어를 분석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철학적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생각들은 부정되기도 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어쨌든 이러한 생각들은 전체로든 개별적으로든 언어에 대한 철학적 탐구를 추동하기에 충분하다.

 

19세기 후반 무렵부터 언어에 대한 이론적인 연구는 크게 다음 세 가지 주요 분야로 나뉘었다: 구문론(構文論)syntax, 의미론(意味論)semantics, 화용론(話用論)pragmatics.

 

구문론(또는 통사론(統辭論))은 상징symbol과 상징 간의 관계 혹은 기호sign와 기호 간의 관계를 다룬다. 기본적으로 문법grammar 내지 문법성grammarity과 연관되는바, 구문론의 목적은 주어진 일련의 기호열()이 올바른 방식으로 형성되었는지be well formed 여부를 결정해주는 기초적인 원리를 탐구하는 것이다.

의미론은 기호와 그것이 의미하는mean , 표현하는express , 관계하는 것be about to 등을 다룬다. 의미론을 정의하는 더욱 근본적인 방식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전통적으로 가장 우세한 관점에 따르자면, 의미론이란 임의의 서술문(敍述文)decalarative sentence진리-조건truth-condition을 결정하는 규칙의 체계를 정식화하는formulate 것이다.

화용론은 아직 그 목적이 다양하다고 여겨지지만, 넓게 말하자면 문장의 사용use과 주로 연관된다. 즉 특정 문장에 대해 특정한 의미론적 속성이 주어질 경우, 실제 의사소통 상황에서 그 문장이 발화utter됨으로써 어떠한 행위가 수행될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

 

이러한 구분이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 셋 중 하나의 하위분야에 대한 고려가 여타의 것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어떤 분야가 나머지보다 더욱 근본적인 것인지, 그 경우 근본적이다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논쟁이 촉발되기도 하였다. 때로는 이러한 3분법의 정당성 자체가 의문에 부쳐지기도 하였다.


위의 점 항목들 중 네번째에서 암시되었듯이 언어학linguistics이라 불리는 과학적 분과가 존재한다. 언어철학과 언어에 대학 과학으로서의 언어학 간의 관계는 어떠한가?

우선 말해둘 것은 양 분야를 깔끔하고 명쾌하게 구분할 수 있는 단일한 방식은 없다는 점이다. 이 구분법은 부분적으로는 종류의 문제라기보다는 정도의 문제이며, 부분적으로는 제도적인 학문분류를 위한 역사적인 문제이다. 일테면 형식논리학이 컴퓨터과학이나 수학이나 철학 모두에서 다뤄질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다만 언어철학의 학문적 성격에 관해 몇 가지 사항을 덧붙일 수 있겠다.

첫째로, 언어학에서 그러한 것보다 더한 정도로 철학은 지식, 형이상학, 윤리학, 정치학, 미학 등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언어와 밀접하게 연관시킨다.

둘째로, 언어학은 철학에 비해 언어의 경험적이고 실제적인 측면에 더욱 관심하는바, 현실에 우연히 존재하는 다양한 언어들을 그것이 지닌 복잡한 모습 그대로 탐구한다. 반면 안락의자 학문이라는 다소 조롱조의 말에서 시사되듯이, 철학은 언어의 선험적인 측면에 더욱 관심하는 경향이 있다.

마지막으로, 언어학은 이론적 측면과 응용적 측면으로 나뉠 수 있다. 반면 언어철학은 주로 이론적인 측면과 연관되며 특히 의미이론theory of meaning에 관심을 기울인다. 의미이론이란 거칠게 말해 의미론과 동등한 것으로서 언어학과 언어철학 양자의 공통된 관심사이다. 하지만 철학에서 의미이론이 점하는 범위는 이론적 언어학에서보다 한편으로 더욱 좁고 다른 한편으로 더욱 깊다. 일테면 지시(指示)reference(언어표현이 지닌바 에 관함aboutness, of-ness이라는 속성), 진리()truth, 인지적 내용cognitive content 등은 표준적인 철학적 이론 및 언어학적 이론에서 공통적으로 쓰이는 개념들이지만, 그 개념들의 지위, 정당성, 본성 등에 관한 탐구는 철학 고유의 영역이다.

언어학과 언어철학 간의 관계에 대해 다소 불분명하지만 유용한 비유를 들어보자면, 수학과 수학철학philosophy of mathmatics 간의 관계를 들 수 있겠다. 우리는 수학에서 수, 분수, 함수 등의 개념이라든가, 대수학, 삼각법, 미적분학 등과 같은 수학적 방법을 배운다. 그런데 만약 당신이 대수학의 궁극적인 기초는 무엇일까? , 분수, 함수란 무엇일까? 그것들은 돌멩이나 고양이처럼 실제로 존재하는 것일까?’ 하는 등의 의문을 갖는다면, 당신은 더이상 수학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수학철학의 영역에 발을 내디딘 셈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언어철학은 언어학에 비해 더욱 반성적인reflexive 학문이며, 의미이론에 관해 더욱 메타적인 관점meta-perspective을 취하는 경향이 있다(이런 연유로 언어철학자들은 종종 자신들의 작업을 메타-의미론meta-semantics이라 칭하기도 한다).

 

앞으로의 논의에서 언어학자들이 이해하는 바대로의 순수 구문론은 비교적 덜 다뤄질 것이며, 다만 의미이론에 접근하는 다양한 방식을 탐구하는 데에 필요한 기초적인 사항만을 살펴볼 것이다. 반면 화용론에 대해서는 더욱 많이 살펴보게 될 것이다. 화용론 자체가 철학적으로 흥미로운 특성과 중요성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의미론 내지 의미이론에 대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골치 아픈 문제들이 화용론적 접근에 의해 일정 부분 해결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논의의 개요

 

우리의 논의는 의미에 관한 고전적인 이론을 살펴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는 좀 더 최근에 제기된 의미이론을 살펴보는 데에 참고할 만한 지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여타 분야의 철학자들이 친숙하게 여길 법한 언어철학의 핵심 사항들을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고전적인 의미이론이다. 언어철학 분야의 선구자격 인물로서 Platon이나 J. Locke 등을 들 수도 있겠으나, 언어철학이 비교적 최근에서야 그 원숙기에 도달했다는 점을 감안하였을 때 진정한 선구자격 인물은 Gottlob Frege(1848-1924)Bertrand Russell(1872-1970)이라 할 수 있다. 두 인물의 이론은 각각 2장과 3장에서 다뤄질 것이다.

1장은 상식에 호소하는 상대적으로 단순한 이론을 살펴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우리는 그 이론을 소박한 의미론naive semantics이라 칭할 것이다. 소박한 의미론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단칭용어, 술어, 진리-함수적 연결사 등과 같은 기초적인 논리학적 개념들이 도입될 것이다(논리학에 이미 숙달한 독자라면 이 부분을 건너뛰어도 무방하다). 4장에서는 막대한 영향을 끼친 Ludwig Wittgenstein(1889-1951)前期철학의 대표 저서 논리-철학 논고Tractatus Logico-Philosophicus(1921)에 개진된 이론을 먼저 살펴본다. 연후에 그로부터 영향을 받아 1920년대와 30년대에 뚜렷한 철학적 운동으로 발흥하여 1950년대까지 언어철학에서 주도적인 흐름이었던 소위 논리실증주의혹은 논리경험주의에 초점을 맞추어, 그 운동의 지도적 인물이었던 Rudolf Carnap (1891-1970)Alfred Jules Ayer(1910-80)가 논의될 것이다.

5장에서는 1960년대에서 70년대에 이르는 좀 더 최근의 시기에, FregeRussell의 의미이론뿐만 아니라 논리실증주의에도 반발하여 대두된 대안적인 이론을 살펴본다. 이는 직접지시론dirct reference theory이라 불리는 것으로서 대체로 Saul Kripke가 처음 제시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직접지시론은 철학의 여타 분야에도 큰 파문을 일으켰으며 특히 형이상학과 인식론 분야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6장에서는 1960년대 말경부터 부상하기 시작한 주제로서, ‘, 여기, 지금등과 같은 지표사indexical의 맥락-가변성context-variability에 대해 살펴본다. David Kaplan이 제시한 이론을 활용하여 그 주제에 접근할 것이다.

7장의 주제는 언어의 사용에 관한 이론인 화용론이다. 여기서 우리는 잠정적으로 화용론을 의미론에 부차적인 것 내지는 의미론에 토대를 두고 있는 것으로 가정한다. [따라서 언어표현에 특정한 의미론적 속성이 결정되어있다는 가정하에 그 표현이 사용될 때의 화용론적인 작동방식을 탐구한다.] 8장에서는 주로 FregeRussell의 언어철학에 의해 촉발된 아주 어려운 철학적 퍼즐인 명제적 태도propositional attitude에 관한 의미론을 심층적으로 탐구한다. 명제적 태도 문장이란 특정 믿음을 누군가에게 귀속시키는 언어표현으로서, ‘Darwin은 인류와 고릴라가 공통된 조상을 지닌다고 믿었다와 같은 문장이다. 여기서 살펴볼 문제영역은 매우 난해하지만, 그런 만큼 학습자의 흥미를 고취시킬 것이다.

9장에서는 Donald Davidson(1917-2003)에 의해 제시된 유명한 이론을 살펴본다, 이 이론은 의미와 지시 개념의 기저에 있는 특성을 기술하고자 하되, 그 개념들에 의존함이 없이 그 과업을 달성하고자 하는 하나의 철학적 기획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Davidson의 의미이론은 의미와 지시 개념을 정의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한 언어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다는 가정이 없이도 임의의 언어-사용자에게 적용될 수 있는 명시적인 설명을 제공하고자 한다. [즉 의미라는 개념의 도움 없이도, 한 언어의 의미를 이해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해낼 수 있는 그러한 의미이론을 고안해내는 방법 일반에 관한 논의가 Davidson의 핵심적인 구상이다.] 이러한 설명을 고안해내는 절차를 Davidson원초적 해석radical interpretation이라 칭하였다.

반면 어떤 이론가들은 의미이론을 정식화한다는 생각 자체에 회의적인 태도를 견지한다. 10장의 주제인 Willard Van Orman Quine(1908-2000)은 단어들 및 문장의 의미에 대한 그 어떤 설명도 과학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다고 주장한다. 11장의 주제인 後期 Wittgenstein의 대표작 철학적 탐구Philosophical Investigation(1953)에 개진된 관점 역시 어느 정도는 Quine의 생각과 합치한다. 그에 따르면 의미에 관한 엄밀한 이론을 고안하고자 하는 모든 기도는 근본적으로 오도적인바, 그 대신 우리는 매우 다른 방식으로 언어현상에 접근해야 하며 그에 따라 의미에 얽힌 철학적 문제는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사라지게 된다.

마지막 12장은 최근에 주목받는 다음 다섯 가지 주제를 다룬다: 주장assertion, 허구적 대상fictional object, 맥락-상대성context-relativity, 추론주의inferentialism, 슬러slur.

 

각 장에는 장별 요약, 역사적 사항(12장 제외), 더 읽을거리 목록(주요 읽을거리 및 추가적인 읽을거리), 심화된 탐구를 위한 연습문제 등이 제시되어있으며, 마지막 장 뒤에는 주요용어에 대한 해설목록이 기재되어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언어철학에서 유명한 이름들과 이론들, 범형이 되는 논증들과 비판들에 다소 익숙해질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얻은 바를 더욱 공고히 하고자 한다면 주요 읽을거리 목록에 제시된 문헌들에 대한 탐구가 필수적이다. 이에 더해 역사적인 언급사항들 및 추가적인 읽을거리 목록까지 십분 활용한다면, 언어철학에 대한 다소의 소양을 갖추는 데에 손색이 없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언어철학을 본격적으로 탐구하기에 앞서 갖춰야 할 몇몇 기초적인 사항들을 숙지하고 논의에 사용될 특정 전문용어terminology들을 도입한다. 이번 장에서 이하에 제시될 내용들은 다소 논쟁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10장까지 논의되는 주요 인물들 대부분이 많게든 적게든 이러한 사항들을 어떤 의미에서건 받아들이기에, 이를 숙지하는 편이 유용할 것이다.

 

 

8개의 예비사항

 

독자들은 주요 기술적이론적 용어들 몇몇이 이미 앞서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처음 사용될 경우엔 볼드체로 쓰였으며, 이 용어들에 대한 설명은 책 말미의 주요용어해설에 제시되어 있다. 이탤릭체로 쓰인 단어나 문장에도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몇몇 장에는 추가적인 논의라는 절이 포함되어 있다. 철학적으로 흥미롭긴 하지만, 본문의 주된 논의보다 더 어렵거나 혹은 덜 중요한 사항들이 다뤄진다.

유형-개항 구분: 다음 문장은 몇 개의 단어들로 구성되어 있는가?:

네 개가 내 개를 물었다.

일견 5개라고 답하고 싶겠지만 속임수에 주의해야 한다. 답은 문제에서 단어가 의미하는 바에 따라 달라진다. 정확히 말해 이 문장은 라는 단어의 한 유형(類型)type에 속하는 두 개의 개항(個項)token을 포함하고 있다. 이를 다르게 말하자면 단어-유형 가 두 번 나타난다occur.

동일성과 술어화로서의 이다is구분: 유명 블루스 음악가 Ray Charles에 관한 다음 농담을 보자: ‘God is love. Love is blind. Ray Charles is Blind. Therefore Ray Charles is God.’ 설사 Ray Charles가 정말로 신이라 할지라도, 이 추론은 결론을 뒷받침하지 못한다. 오류는 [논증의 구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단어 이다에 대한 해석에 있다. 이 논증에서 나타나는 단어-개항 이다는 전부, 등호 ‘=’와 같다/동일하다와 같은 동일성identity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하지만 세 번째 전제에 나타나는 이다는 동일성을 나타내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The cat is hungry’에서처럼 술어화predicatioln 역할을 하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Ray Charles는 눈이 멀었을blind 뿐 맹목임blindness 자체와 동일하지는 않다.
이러한 분석이 미심쩍어 보인다면, 좀 더 형식적인 방식으로 생각해볼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동일성은 대칭성(對稱性)symmetry과 이행성(移行性)transitivity을 지닌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동일성의 대칭성에 따르면 a=b인 경우 b=a이다. 동일성의 이행성에 따르면 a=b이고 b=c인 경우 a=c이다. 이제 위 논증에서 나타나는 이다를 전부 동일성으로 해석한다면, 세 번째 전제와 ‘Stevie Wonder is blind’로부터 ‘Stevie Wonder is Ray Charles’를 추론할 수 있게 된다. [‘Ray Charles=blind’이므로 동일성의 대칭성에 의해 ‘Blind=Ray Charles’이고, 동일성의 이행성에 의해 ‘Stevie Wonder=Ray Charles’가 도출된다.] 이는 분명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결론이다. 이러한 오류를 피하고자 한다면 동일성으로서의 이다와 술어화로서의 이다를 엄밀하게 구분해야 한다. 앞으로의 논의에서는 동일성을 표현하기 위해 등호 ‘=’만을 사용하고, ‘이다는 별도의 언급이 없는 한 술어로서만 사용될 것이다.

지시개념: 일상언어에서 사용되는 단어들 중 많은 것들이 언어철학에서도 사용되지만, 철학에서는 그 단어들이 일상적으로 쓰일 때와 달리 더욱 명료하고 엄밀한 방식으로 쓰여야 한다. 특히 지시(指示)reference라는 용어가 언어철학에 도입되어 사용되는 방식에 주의해야 한다. 예컨대 보스톤과 보스톤 간의 관계를 생각해보자. 일상언어로 그 관계를 표현하는 방식은 매우 다양하다: 단어 보스톤은 실제 도시 보스톤을 지칭(指稱)한다designate, 이름한다label, 의미한다mean, 외연적(外延的)으로 지시한다(외포(外包)한다)denote, 나타낸다indicate /stand for, 짚어낸다pick out, 언급한다mention, 일컫는다name, (전자가 후자의)이름이 된다is the name of, (전자가 후자를)내용으로 갖는다has content of, 뜻한다signify 등등. 이러한 관계 전부를 통칭하는 전형적인 표현으로서 우리는 지시를 택하기로 한다. 단어 보스톤은 도시 보스톤을 지시한다. 이를 다르게 말하면 보스톤은 보스톤지시체referent이다.

사용-언급 구분: 이미 5항에서 시사된 점으로서, [언어를 사용하여 무언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 자체에 대해 무언가를 말할 때 인용부호quotation mark를 사용해야 한다. 예를 들어 다음 두 문장은 참이다:

(a) 보스톤은 미국 동부 해안가에 있는 도시다.
(b) ’보스톤은 세 글자로 되어있다.

(a)는 실제 도시에 관해 [언어를 사용하여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반면, (b)는 도시의 이름인 단어에 관해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 (a)는 단어 보스톤사용use하고 있고 (b)는 단지 그 단어를 언급mentoion하고 있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해 (b)는 도시 보스톤에 관한 것이 아니며 단지 그 이름에 관한 것이다.
특이한 사례로서, 다음 문장은 단어 보스톤을 언급하는 동시에 사용하고 있다:

(c) ‘보스톤은 보스톤을 지시한다refer.

다음과 같이 인용부호 내부에서 인용부호가 반복적으로 사용될 수도 있다:

(d) ‘“보스톤”’보스톤을 지시한다.

(c)(d)를 비교하자면, 전자는 보스톤을 지시하는 보스톤의 이름에 관해 말하고 있는 반면, 후자는 보스톤의 이름을 지시하는 보스톤의 이름의 이름에 관해 말하고 있다.
사용-언급 구분은 매우 사소해 보이지만, 어떤 경우에는 매우 큰 차이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언어 자체에 관해 무언가를 말하고자 한다면 논의 중인 내용이 세계에 관한 것이 아니라 언어에 관한 것임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반대로 세계에 관한 논의를 언어에 관한 것으로 착각하지 않도록 역시 주의해야 한다. 일견 진지하고 심각해 보이는 철학적 문제들은 종종 이러한 구분에 소홀한 탓에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탁월한 논리학자이자 철학자였던 QuineKurt Gödel은 다름 아닌 Russell이 이 점에 소홀했다고 지적한다).
작은 팁을 주자면, 철학적인 글을 작성할 때 인용부호를 여타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특히 지금 내가 하는 것처럼, 독자의 주의를 환기하고자 인용부호를 강조용 따옴표scare quotes로 사용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 지금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강조용 따옴표이지 강조용 따옴표라는 언어표현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용부호를 자꾸 강조의 목적으로 쓰는 것은 최악의 경우 자신의 말을 얼버무리면서 자신은 그로부터 거리를 둔 채, 독자들로 하여금 글쓴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파악하지 못하게 훼방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진리-조건과 진리치 개념: 앞으로의 논의에서 문장sentence 내지 진술statement진리-조건truth-condition 및 그 진리치(眞理値)truth value에 대해 논의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진리-조건이라는 용어는 이미 앞서도 사용된 바 있다). 먼저 진술의 진리-조건이란 진술이 참이 되는 환경circumstance/환경들의 집합을 의미한다. 예컨대 ‘Spot은 배고프고 Fido는 젖어 있다의 진리-조건은 ‘Spot은 배고프다의 진리-조건을 포함한다. 논리학의 용어를 사용해서 말하자면 전자는 후자를 논리적으로 함축(含蓄)logically entail/imply하고, 후자는 전자에 의해 논리적으로 함축된다. 다음으로 진술의 진리치란 이름 그대로 진술이 참이 되는 값이 아니다. 단순하게 말해 진술이 참true이면 그 진리치는 참truth이며 진술이 거짓false이면 그 진리치는 거짓falsity이다. 진리-조건 및 진리치 개념은 매우 사소해 보이긴 하지만, 언어철학적 논의를 위한 우리의 언어를 훨씬 정밀하고 안정적이게 만들어 주며, 서로의 말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분석-종합 구분: 분석적(分析的) 문장analytic sentence이라는 개념은 이 책에서 논의되는 많은 철학자들에게 호소력이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져 자주 사용되었다. 분석성analyticity 개념의 기본 착상은 다음과 같다: 만약 한 문장이 참임이 그 문장에 나타나는 단어들의 의미에 의해서만 알려질 수 있다면, 그 문장은 분석적으로 참이다analytic truth. 마찬가지로 한 문장이 거짓임이 그러한 방식으로 알려질 수 있다면, 그 문장은 분석적으로 거짓이다analytic falsehood. 이 점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분석성 개념을 이해할 수 없다. 아주 진부한 예시를 들어보자:

(1) 모든 총각은 미혼이다.

(1)을 구성하는 단어들에 익숙하여 이 문장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는 그 누구든, 오로지 단어들 및 문장의 의미에 의해서만 그것이 참임을 이해할 것이다. (1)을 부정하면 자연히 모순contradictory에 빠진다는 것도 이해할 것이다. 결혼한 총각이란 존재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결혼한 총각은 그 용어의 의미에 따라서 모순된다. (1)이 참인지 가려내기 위해 세상의 모든 총각들을 데려다가 미혼인지 여부를 조사할 필요도 없다.
반면 다음은 -분석적인non-analytic , 종합적(綜合的) synthetic truth의 사례들이다:

(2) Charles 왕자는 총각이 아니다.
(3) 모든 총각은 지저분하다.

두 문장의 진리치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거기 포함된 단어들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Charles 왕자와 모든 총각들에 대한 경험적인 정보나 자료가 필요하다.
동의성(同意性)synonymy 개념과 논리적 참의 개념은 밀접하게 연관된다. ‘총각미혼 남성은 동의어synonym로서 같은 것을 의미한다. 둘 중 하나가 나타나는 곳 어디에서든(, 단어가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언급되는 곳은 제외하고) 그것을 다른 하나로 대체하여도 문장 전체의 의미는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1)총각미혼 남성으로 대체하면 다음 문장이 얻어진다:

(1) 모든 미혼 남성은 미혼이다.

이 문장 역시 분석적으로 참이다. 또한 명백히 논리적으로 참이다. 이러한 동의성-논리적 진리-분석성 간의 관계를 일반화하자면 다음과 같다: 한 문장이 동의어를 대체함으로써 논리적으로 참인 문장으로 변환될 수 있다면, 그 문장은 분석적으로 참이다.

 

 

인지적 의미와 표현적 의미

 

다음 두 문장을 보자:

 

Karen의 고양이가 죽었다.

Karen의 야옹이가 세상을 떠나버렸다.

 

두 문장은 같은 것을 의미하는가? 어떤 점에서는 그렇고 어떤 점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두 문장이 공통으로 지닌 것은 인지적(認知的) 의미cognitive meaning라 칭해진다. 일상적인 용어로 말하자면, 두 문장은 고양잇과에 속하는 특정 동물 개체가 죽었다는 동일한 객관적인 사실fact 내지는 동일한 정보information를 전달한다. 두 문장은 동일한 진리-조건을 갖는다: 즉 상상 가능한conceivable 그 어떤 환경에서든 (‘Karen’이 동일인을 지시한다면)두 문장은 동시에 참이거나 동시에 거짓이다. 문장들 간에 있을 수 있는 참/거짓의 차이는 인지적 의미의 차이이다. [어떤 두 문장에 대해 각각의 진리치가 서로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면 두 문장의 인지적 의미는 다른 셈이며, 그 역도 마찬가지이다.]

인지적 의미와 다른 의미의 또 다른 차원은 미사여구와 수사학(修辭學)의 영역이다. 문장이 전달하는 하나의 동일한 정보는, 그 정보를 대하는 주관적인 태도나 감정에 따라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전달될 수 있다. 이는 표현적(表現的) 의미expressive meaning라 칭해진다. 언어의 모든 부분이 동등한 정도로 표현적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위 사례에서 전자는 후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생기 없고 무미건조하다. 학문적인 언어, 특히 수학적인 언어에는 표현적 의미가 최소한이거나 아예 없다.

이후의 논의에서 우리의 주된 관심사는 인지적 의미이다. 인식론이나 형이상학에서 제기되는 철학적인 문제들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것은 바로 인지적 의미이기 때문이다. 혼동의 여지가 없는 한 우리는 의미인지적 의미와 동일한 것으로 간주할 것이다.

 

 

의미와 힘

 

전부는 아니더라도, 언어가 갖는 분명한 목적 중 하나는 바로 의사소통communication이다. 일반적으로 의사소통은 언어적 행위ingustic act 내지는 발화행위speech-act에 의해 달성된다.

몇몇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우리는 보통 온전한 문장complete sentence 내지는 당면 목적상 온전한 문장에 준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언어표현을 발화utter함으로써 발화행위를 수행한다perform. 즉 무언가를 말한다. ‘당신은 학생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라고 답한다면, 이는 온전한 문장은 아니지만 나는 학생입니다와 동등한 것으로 여겨질 것이다. (명백히 예외적인 경우를 들자면 안녕?’과 같은 인사말이라든가 에구구!’와 같은 감탄사일 것이다. [이 말들은 그 어떤 온전한 문장과도 동등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이제 다음 문장들을 생각해보자(이 문장들이 당신에게 말해진 것이라 가정해보라):

 

(5) 너는 회를 먹는다.

(6) 너 회 먹어?

(7) 회 먹어라.

 

(5)서술법declarative mood(직설법indicative mood) 문장, (6)의문법interrogative mood 문장, (7)명령법imperative mood 문장이다. 세 문장 모두 공통적인 무언가를 지니고 있는바 그것은 너는 회를 먹는다는 것that you eat raw fish이다. (5)는 당신이 회를 먹는다는 것을 주장assert하거나 말하기 위해 사용된다. (6)은 당신이 회를 먹는지 여부를 묻기 위해 사용된다. (7)은 당신이 회를 먹도록 권유하거나 명령하거나 행위를 시키기 위해 사용된다.

세 문장이 공통으로 가진 것, 너는 회를 먹는다는 것 이라는 절clause을 통해 표현되는 그것은 과연 무엇인가? 이 공통 요소는 명제(命題)proposition라고 칭해진다. 위의 세 문장이 공통으로 지닌 것은 네가 회를 먹는다는 명제이다. 세 문장 모두 이 명제를 표현하되, (5)는 이 명제가 참이라 주장하고 (6)은 이 명제가 참인지 여부를 묻고, (7)은 이 명제가 참이 되도록 만들 것을 제안한다. 이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겠다: 세 문장은 동일한 명제를 표현하지만, 각각은 그 동일한 명제에 각기 다른 (효력)force을 부여하기 위해 통상적으로 사용된다. (5)주장적 assertoric force, (6)의문적interrogative 힘을, (7)명령적imperative 힘을 그 명제에 부여한다. [다만 이는 통상적인 것일 뿐 반드시 그러한 것은 아니다.] 무대 위의 배우가 대사를 말하는 경우처럼,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으면서도 너는 회를 먹는다라고 발화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문장의 법식은 힘의 충분조건이 아니다.] ‘너 회 먹지라는 평서문을 억양을 조금 다르게 하여 발화함으로써 청자가 회를 먹는지 여부를 물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문장의 법식은 힘의 필요조건도 아니다.] 요컨대 한 명제에 어떤 유형의 힘이 부여되는지 여부는, 발화된 문장의 문법적 형식에만 순전히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나마 화자의 의도라든가 발화가 이뤄지는 주변 맥락context에 따라 결정되기도 한다. 하지만 어쨌든 (5)-(7)에서 예시된 문법적인 법식(法式)grammatical mood들은 대체로 각각에 특유한characteristic 힘을 부여하기 위해 사용된다. 표현된 한 명제에 어떤 힘이 부여되는지는 전형적으로 각 힘에 상응하는 적절한 법식이 사용되었는지에 따라 파악될 수 있다. 법식은 문법적인 특성, 좀 더 기술적으로 말하자면 구문론적인 특성이고, 힘은 화용론적인 특성이다. [(그리고 법식에 의해 힘이 부여되는 명제는 의미론적인 특성이다.)]

앞으로의 논의에서 -서술적 문장은 대체로 차치할 것이다. 따라서 문장은 보통 서술문을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된다.

이 절에서 도입된 명제라는 것의 본성 및 그것이 문장에 대해 갖는 관계 역시 살펴볼 필요가 다. 다음 세 문장을 보자:

 

눈은 하얗다.

Schnee ist weiss.

La neige est blanche.

 

세 서술문은 서로에 대한 올바른 번역translation이라는 점에서 동의적synonymous이다. 세 문장 모두 눈이 하얗다는 동일한 것을 말하고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세 문장이 공통으로 지닌 요소는, 한국어의 눈이 하얗다는 것이라는 절과 같은 그 어떤 특정 단어나 문장이 아니라 명제이다. 세 문장 모두 눈이 하얗다는 명제를 표현한다express. 한 문장의 의미는 그것이 표현하는 명제이다. [세 문장 모두 동일한 명제를 표현하므로 세 문장은 동의적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세 문장은 동일한 내용content을 갖는다.

우리는 의미를 특별한 종류의 실체(實體)entity로 간주하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겠다. 명제는 문장-의미로서, 문장 자체 내지 어절 자체와는 다른 것이다. 한 명제는 동의적인 여러 문장들에 공통적인 어떤 것이다. 이는 마치 수 4가 비틀즈나 클래식 4중주단과 같이 네 개의 원소를 갖는 모든 집합set 내지 모임collection에 공통적인 것과 같다. 앞으로 알게 되겠지만 수나 명제와 같은 추상적 실체abstract entity들이 실재한다고 가정하는 것은 직관적으로 자연스러울 뿐만 아니라 논의에 유익하기도 하다. 10장과 11장에서는 이러한 생각에 대한 회의적인 입장을 살펴보게 될 것이다.

 

 

맥락-의존성

 

명제가 문장의 의미라는 점을 받아들이긴 하였지만 이에 대해 재고할 사항이 있다. 다음 문장을 보자:

 

나는 Julius Caesar의 아버지이다.

 

이 문장의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가 가정한 바에 따라 명제가 문장의 의미라면, 위 문장은 온전한 의미를 갖지 못하는 셈이다. 위 문장의 경우, 동일한 그 문장을 누가(언제) 발화하느냐에 따라 다른 명제가 표현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위 문장에 나타나는 라는 단어가 누구에 의해 발화되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사람을 짚어내거나 지시하기 때문이다. 일반화하자면 는 발화될 때마다 그 화자를 지시한다. 위 문장이 Julius Caesar의 아버지와 Groucho Marx에 의해 발화된다면 각기 다른 명제들이 표현된다. ‘와 같이 이런 특성을 갖는 단어들, 즉 발화가 이뤄지는 시간, 장소, 화자 및 청자의 정체성 등등 발화의 맥락(脈絡)context of utterance에 따라 각기 다른 것을 지시하는 단어들은 매우 많다:

 

여기

발화가 이뤄진 장소를 지시

지금

발화가 이뤄진 시점을 지시

화자에 의해 의도된 청자를 지시

이것, 저것

화자에 의해 가리켜진 대상을 지시

 

이러한 표현들은 지표사(指標詞)indexical(또는 지시적deictic표현)라 칭해진다. 방금 제시된 것들은 다소 단순하고 명백하게 맥락-의존적context-dependent인 지표사들이다. 보다 덜 명백한 사례로는 동사의 시제(時制)를 들 수 있다. 다음 문장을 보자:

 

Octavianus는 로마제국의 황제이다.

 

여기서 지표성indexicality은 현재시제로 쓰인 동사 이다에서 드러난다. Octavianus(Augustus Caesar)가 황제가 된 시점인 기원전 27년 이전이라면 이 문장은 거짓 명제를 표현하며, 그 이후 Octavianus가 황제로 재위한 기간 동안은 참인 명제를 표현한다(그리고 그가 죽은 시점인 기원전 14년 이후부터는 다시 거짓 명제를 표현할 것이다). 현재시제 이다뿐만 아니라 미래시제 일 것이다와 과거시제 였다등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말하는 대부분의 문장은 시제동사를 포함하고 있기에, 우리가 말하는 대부분의 것들이 적어도 발화의 시점이라는 측면에서는 맥락-의존적인 셈이다.

이것이나 저것등의 용어는 다소 특이한 지표사로서 지시사(指示詞)demonstrative라 칭해진다. 지시사가 사용될 때에는 그 지시체를 확정하기 위해 발화의 맥락뿐만 아니라 손가락질과 같은 몸짓gesture이 동반되어야 한다. 그러한 몸짓 내지 그에 준하는 것을 보통 -지시화demonstration라 한다.

맥락-의존성을 띠는 표현들을 감안하였을 때, 명제를 문장 자체의 특성이라 하기 보다는 문장에 대한 (실제적이거나 가능적인)발화의 특성이라고 하는 편이 더욱 정확하다. 명제는 문장이 맥락에 대해 맺는 관계에 따라서, 혹은 맥락 내에서 결정된다. 여기서 맥락이란 발화가 이뤄지는 장소와 시점, 화자 및 청자의 정체성, -지시화에 의해 가리켜진 대상 등으로 구성된 집합이다. 따라서 문장이란 주어진 맥락에서 문장에 의해 표현되는 명제를 결정하는 하나의 규칙 내지는 함수(函數)function와 같다(이와 연관된 개념으로서 진술(陳述)statement이란 주어진 맥락에서 내가 문장을 발화함으로써 만들어진다 [즉 특정 맥락에서 발화된 문장이 진술이다]). 따라서 문장이 명제를 표현하는 전체적인 그림은 다음과 같다:

 

문장 + 맥락 명제

 

당분간은 모든 형태의 맥락-의존성을 대체로 도외시할 것이다. 임의의 한 서술문은 맥락에 상관없이 동일한 하나의 명제를 표현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맥락-의존성과 지표사에 관해서는 6, 7, 12장에서 다시 상세히 논의될 것이다.

 

명제의 역할

 

(A) 문장의 의미. 우리의 가정에 따르면 명제는 동물도 광물도 채소도 아니다. 명제는 현미경이나 망원경으로 관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2처럼 명제는 물질적인 대상이 전혀 아니다. 그것은 추상적(抽象的)인 실체abstract entity이다(곧 살펴보겠지만 명제는 정신적인 실체mental entity도 아니다). 이렇듯 명제를 무엇이라고 정의하기란 매우 어렵지만 그것이 하는 역할의 측면 및 명제가 여타의 것과 맺는 관계의 측면에서 특징지어볼 수 있다(이는 마치 수 2를 그 자체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1 뒤에 오고 3에 앞서는 것이라든가, Charles 왕자의 귀의 개수 등이라든가 하는 식으로 규정해보는 것과 비슷하다). 앞서 우리는 눈이 하얗다는 명제가 위의 세 문장의 의미라는 것을 살펴보았다. 이렇듯 명제의 첫 번째 역할은 (특정 발화의 맥락에 따라)문장의 의미가 된다는 것이다.

(B) 명제적 태도의 대상. 명제의 두 번째 역할은 Russell이 칭한바 명제적 태도propositional attitude라는 것과 연관된다. John, Pierre, Hans 세 사람이 있다. 그들은 각각 영어 불어, 독일어만을 할 줄 안다. 세 사람 모두 눈이 하얗다고 믿는다. 즉 다음과 같은 라는 것-that-clause에 대해:

 

눈이 하얗다는 것

 

다음 세 문장은 참이다:

 

(8) John은 눈이 하얗다고 믿는다believes that.

(9) Pierre는 눈이 하얗다고 믿는다.

(10) Hans는 눈이 하얗다고 믿는다.

 

분명 세 사람 모두 동일한 것을 믿고 있다. 다시 말해 JohnPierreHans 모두에 의해 믿어지는 적어도 하나의 것이 있다. 그것이 바로 명제, 눈이 하얗다는 명제이다.

이제 (8)-(10)으로부터 다음을 추론했다고 해보자:

 

(11) John, Pierre, Hans에 의해 믿어지는 무언가가 있다.

 

이 추론은 타당한 듯하다. 이를 받아들인다면, 일상적으로 믿음belief에 관해 추론을 할 때 우리는 명제의 존재에 개입하고commit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러한 추론은 명제가 정신적인 실체일 수 없음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명제는 세 사람 모두에 의해 공통적으로 믿어질 수 있는 것인 반면, 감정, , 고통 등의 정신적인 실체들[(엄밀히 말하면 정신적인 실체-개항)]이 복수의 마음속에 존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각각의 정신적 실체는 오로지 하나의 마음 속에만 존재할 수 있다.

이렇듯 명제란 믿음의 대상이다. 명제를 믿는다는 것은 그 명제에 대해 특정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다. 믿음은 하나의 명제적 태도 즉 명제에 대한 하나의 태도이다. 믿음 외에도 수많은 명제적 태도들이 존재한다: 어떤 사람은 저녁 식사로 나온 생선요리가 신선하다고 믿을 수 있는 반면, 누군가는 그것을 의심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그것이 사실인지 궁금해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그러기를 희망할 수도 있다.

(C) 진리-담지체. 명제의 세 번째 역할은 진리-담지체truth-vehicle로서의 역할이다. 이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잠시 맥락-상대성 개념을 재고해볼 필요가 있단. 다음 대화를 보자:

 

Phocas: 가 로마제국의 적법한 황제이다.

Maurius: 가 로마제국의 적법한 황제이다.

 

두 사람은 서로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당연히 로마제국의 적법한 황제는 오직 한 사람 뿐이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두 사람은 정확히 동일한 문장(동일한 문장-유형의 두 개의 문장-개항)을 말했다. 여기서 의미론적인 차이는, PhocasPhocas가 황제라고 말했다는 점과 MariusMarius가 황제라고 말했다는 점이다. 두 사람이 말한 것은 암묵적으로 상대방의 주장을 부정하고 있다. 역사적 사실에 따르면 Marius의 말이 참이다(Phocas는 부적절한 왕위 찬탈자였다). 둘은 동일한 문장을 말했으나 각기 다른 명제를 표현했다. 동일한 하나의 것이 참인 동시에 거짓일 수는 없다. 그러므로 참이 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문장 자체가 아니라 명제이다. 이 사례에서는 Marius가 로마의 적법한 황제라는 명제만이 참이다. 이는 Marius에 의해 주장된 내용이고 Phocas에 의해서는 부정된 내용이다.

정리하자면 명제란:

(발화의 맥락에 따른) 문장의 의미 내지 내용이다.

명제적 태도의 대상이다.

참과 거짓의 담지체(직접적으로 참이거나 거짓일 수 있는 것)이다.

 

 

구성성, 구조, 이해

 

이제 다시 맥락-의존성으로 되돌아가자. 문장을 이해한다understand는 것은 문장이 의미하는 바를 안다는 것이다. 일단 앞선 논의에 따르면 우리는 이러한 규정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도 무방하다. 문장이 의미하는 바란 문장이 표현하는 명제이기 때문에, 문장을 이해한다는 것은 문장이 표현하는 명제를 안다는 것이다. 그런데 좀 더 생각해보자. 문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안다고 해서 그 문장을 이해했다고 하기에는 충분치 않은 듯하다. 예를 들어 우르두Urdu를 전공한 사람이 우르두어의 특정 문장을 보여주며 그것이 눈이 하얗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하자. 이제 나는 그 문장이 눈이 하얗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내가 우르두어 문장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한 언어의 문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장을 구성하고 있는 개별 단어들의 의미를 알아야 할 뿐만 아니라, 그 단어들이 결합됨으로써 유의미해지는 방식 역시 파악해야 한다. 우르두어까지 갈 필요도 없이 우리말 눈은 하얗다를 생각해보자. 이 문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 ‘이다’, ‘하얗다의 의미를 알고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그 단어들이 그런 식으로 결합되는 방식의 유의미성significance 역시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이번 절의 초입에 말했듯이 발화의 맥락을 차치한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원리를 정식화할 수 있겠다:

구성성(構成性)(조합성)의 원리The principle of compositionality:

문장의 의미는 문장을 구성하고 있는 단어들의 의미 및 문장이 구성된 문법적 구조의 의미론적인 유의미성에 의해 결정된다.

이 정식화에서 첫 번째 조건은 상대적으로 명백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두 번째 조건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다른 예시를 들어보자. 버마Burmese만을 할 줄 하는 언어 사용자는 모든 단어들이 속속들이 번역된 버마어-한국어 사전을 갖고 있다고 해도, 그것만으로는 한국어 문장을 이해할 수 없다. ‘개가 아기를 물었다아기가 개를 물었다는 분명 동일한 단어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단어들이 배열된 순서의 차이가 두 문장의 의미를 완전히 바꿔놓는다. [버마어 사용자가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철저하고 상세한 사전을 참조한다 한들 이러한 차이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한 언어 내에서의 사례를 통해서도 두 번째 조건의 중요성을 고찰해볼 수 있다. 당신이 사용하는 언어에는 당신이 듣도 보도 못했을 문장들이 무한히 많다. 하지만 당신이 당신의 언어에 충분히 숙달해 있는 능숙한 언어 사용자라면, 아무리 새로운 문장을 듣거나 보더라도 그것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당신이 구성성 원리의 두 번째 요건을 충족하는 방식으로 언어를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와 유사한 예시로서, 언어를 사용하는 우리의 능력은 무한하게 창조적이라는 점을 생각해볼 수도 있다. 세상에 존재한 적이 없는 새로운 문장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은, 너무나 비근하고 진부해서 좀처럼 주목되지 않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매우 놀라운 능력이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이는 우리가 구성성의 원리에 따라 언어를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문장을 구성하고 있는 단어들의 의미와 그 문장의 구문론적인 구조가 지닌 의미론적 유의미성을 파악한다면, 아무리 새로운 문장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인간 두뇌가 유한하기에 우리가 실제로 알고 있는 단어들과 문법적 원리 역시 유한하지만, 우리는 유한한 지식만으로도 있을 수 있는 매우 많은 문장들을 이해할 수 있다. 단순한 예시를 들어보자: 능숙한 한국어 화자는 그는 그녀의 아버지이다’, ‘그는 그녀의 아버지의 아버지이다’, ‘그는 그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이다등등의 문장을 무리 없이 이해할 수 있다. 물론 문장이 이런 식으로 엄청나게 길어진다면 문장 전체를 채 파악하기도 전에 집중력을 잃겠지만, 이는 현실적인 제한사항일 뿐이다. 요점은 이런 식으로 계속되는 문장을 이해하는 데에는 의 아버지이다라는 단어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원리적으로in principle 충분하다는 것이다. 언어표현의 이런 작동방식은 회귀적(回歸的)recursive(또는 반복적iterative’)이라고 칭해진다. 새로운 문장을 이해하는 무한하고 창조적인 인간 언어능력의 토대를 이루고 있는 것은 바로 언어의 회귀적 성격이다. 컴퓨터에 비유해보자면, 인간이 지닌 언어능력의 유한성은 단지 하드웨어에 기인하는 것일 뿐, 우리에게 내장된 프로그램 내지 소프트웨어에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

 

언어의 회귀성에 토대를 둔바 인간 언어능력의 이러한 창조성은 인간의 참된 언어능력과 앵무새, 영장류, 돌고래 등이 지닌 유사-언어적 행동language-like behaviour 간의 중요한 차이점으로 여겨지고는 한다. 유사-언어적 행동을 보이는 동물들은 개별적인 단어 내지 기호들을 배열하여 사용하거나 그에 적절하게 반응하는 듯하며, 초보적인 문장에 근사한 형태로 그것들을 조합할 줄 아는 듯하다. 하지만 그러한 동물들이 참된 회귀적 성격에 따라 언어를 사용 및 이해한다고 간주할 수 있는 증거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이와 반대로, 구성성compositionality이 인류가 사용하는 모든 언어에 고유한 특성은 아니라는 점을 입증하고자 하는 학문적인 경향 역시 존재한다. Daniel Everett(2008)에 따르면 아마존 강 유역에 거주하는 Pirahã 부족의 언어는 구성적이지 않다. 몇몇 학자들은 이 사실을 구성적 구조가 인간의 유전형질에 본래적인 부분은 아님을 입증하는 증거로 간주하며, 인간 언어능력이 Noam Chomsky가 주장한 방식대로 보편적생득적이지는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이렇듯 기호 사용의 회귀성구성성이 참된 언어의 필요조건인지 여부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우리가 이러한 논쟁들에까지 휘말려들 필요는 없다. 회귀성 및 구성성은 적어도 우리가 언어철학적으로 관심하는 부류의 언어에 대해서는 필수적인 부분이며, 인간 이외의 동물들의 언어적 능력이라든가 구성적이지 않은 언어의 가능성에 대한 실제 연구결과나 잠재적인 연구 가능성은 이 책에서 관심할 사항이 아니다.

구성성의 원리는 가장 중요한 의미론적 원리라 할 수 있다. 유비컨대 생물학에서 자연선택의 원리가 매우 중요한 원리인 것과 마찬가지이다(둘 다 반례를 허용한다는 점 역시 공통적이다). 모든 언어는 이 원리에 부합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무한한 수의 새로운 문장을 우리가 어떻게 그리 쉽게 이해할 수 있는지는 전연 불가사의한 현상으로 남을 것이다.

구성성 원리를 처음으로 천명했다고 간주되는 인물은 Gottlob Frege이다. 이런 점으로 인해 그 원리는 종종 Frege의 원리Frege’s principle이라 불리기도 한다. 다소 몰역사적인 사항들이 다뤄진 이번 장을, 그의 소론 복합적 사고Compound Thought(1923, 이는 보다 확장된 글인 논리적 탐구Logical Investigations의 일부이다)로부터의 인용문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언어가 할 수 있는 바는 가히 놀랍다. 적은 수의 음절들만으로도 셀 수 없이 많은 생각(사고)thoughts이 표현됨으로써, 인간이 아무리 처음 떠올린 생각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일절 접해본 바 없는 사람 역시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 만일 우리가 문장의 부분들이 사유의 부분들에 대응한다는 것, 그래서 문장의 구조가 사유의 구조를 반영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러한 일이란 불가능할 것이다.

 

(Frege, 1984, 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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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뛰어난 교육적 도구로서 언어철학에 접근하는 첫 발판을 마련하고자 하는 그 누구에게든 유용할 것이다. 이번 두 번째 판에는 핵심 인물과 주요 주제들 및 언어철학 분야에서 이뤄진 최근의 발전 등을 다루는 장들이 추가됨으로써, 이미 훌륭했던 초판보다 더욱 향상된 면모를 보여준다.”

Brett Sherman,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대학교

 

 

이 책은 언어철학 개론 강좌를 위한 표준적인 교재가 될 것이다.”

Ernest Lepore, 미국, 럿거즈대학교

 

 

초판에 대한 찬사:

내가 생각하기에 이 책은 해당 주제에 관한 감각을 익히고자 하는 학부생들에게 최고의 입문서로서, 상급 수준의 기술적인 세부사항으로 인해 어려움에 빠질 염려가 적다. 저자 Gary Kemp는 언어철학 분야의 전통적인 주제들을 망라하여 평이하고 흥미롭게 제시하면서도 학문적으로 엄밀한 스타일을 잃지 않는다. 에는 추가적인 탐구에 유용할 만한 철학사적 사항, 해당 장의 요약, 연습문제, 탐구의 심화를 위한 서지사항과 그에 대한 부가적인 설명 등이 추가되어 있어, 학생과 교사 모두에게 유용하고 완벽한 보조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

Stefano Predelli, 영국, 노팅엄대학교

 

 

“20세기 언어철학에서 다뤄진 고전적 주제들에 대한 쉽고 단계적인 여행.”

François Recanati, 프랑스, Jean Nicod 연구소

 

 

“Kemp는 초심자를 염두에 둔 언어철학 입문서들을 다수 집필해왔다. 이 책에서는 자연언어의 의미라는 사안에 초점을 맞추어, 학생들이 언어적 의미에 관해 지닐 법한 자연스럽고 소박한 관점에서 시작한다. 연후에 그는 탁월한 교사로서의 침착함과 이해심을 유지한 채, 언어철학 분야의 각종 이론들과 그 차이점, 문제와 해결책 등의 발전 과정에 독자의 관심을 집중시켜 이를 세심하게 설명해낸다.”

Michael Lososky, 미국, 콜로라도주립대학교

 

 


 언어철학이란 무엇인가?

  

언어철학은 철학에서 가장 추상적이면서도 근본적인 문제들을 탐구하는 분야이다. 이 분야의 개척자들이라 할 수 있는 Gottlob Frege, Ludwig Wittgenstein, Bertrand Russell, 비교적 최근의 인물들인 Saul Kripke, Hilary Putnam 등이 제시한 핵심적인 착상들은, 작금의 철학적 논쟁에서도 핵심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저자 Gary Kemp는 다음과 같은 주요 주제들을 명료하고 세심하게 설명한다:

 

언어철학의 기초적인 성격과 개념 및 그 역사적 발전 과정

Frege의 뜻과 지시에 관한 이론, Russell의 한정 기술구 이론

Wittgenstein논고, Ayer와 논리실증주의

Kripke, Kaplan, Putnam 등이 제시한 최근의 관점: 필연성, 지표사, 고정 지시어, 자연종 등에 관한 논증

화행, 선제先提(상정), 대화적 함의 개념등을 다루는 언어 화용론

Davidson의 언어이론: “자비의 원칙과 해석의 불확정성

명제적 태도 문장(믿음을 귀속시키는 문장)과 연관된 철학적 퍼즐

Quine의 자연주의와 그 언어철학적 귀결

後期 Wittgenstein에 의해 제기된 문제들

작금의 경향: 주장 개념, 맥락주의, 허구적 대상, 추론주의, 슬러 현상 등에 관한 논의

 

이번 2판은 1판에서 다뤄지지 않은 주제에 관한 새로운 장들이 추가되고 몇몇 세부적인 사항들이 개선됨으로써 전면적으로 개정되었다. 각 장의 요약, 짧은 설명이 달린 추가적인 읽을거리 목록, 주요용어해설 등의 항목들은 언어철학을 교수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언어철학을 처음 접하는 학생들에게도 매우 유용할 것이다.

 

Gart Kemp 영국 글래스고대학 부교수. QuineDavidson: 진리. 지시. 의미등을 비롯하여 언어철학에 관한 다수의 단행본과 논문들을 출간 및 편집해왔다.




이것은 무엇인가? 시리즈

 

Routledge출판사는 학생들로 하여금 철학의 핵심적이고 중요한 제반 분야에 쉽게 입문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에서 『…란 무엇인가?What is this thing called?라는 제하의 간략한 교재 시리즈를 기획하여 출간해왔다. 각 권들은 복잡한 이론 및 개념에 대한 명료한 설명과 평이한 예시를 통해 해당 분야의 핵심 문제들을 탐구하고 있다. 본문 이외에도 각 장의 요약, 연습문제, 추가적인 읽을거리에 대한 서지사항과 용어해설목록 등 학습을 위한 보조적인 도구들이 실려있다.

 

전체 시리즈 목록은 출판사 홈페이지의 하단 목록 중 ‘Our Produtcs’‘book-series’ 항목에서 볼 수 있다.

 

인식론이란 무엇인가? 3

Duuncan Pritchard

 

언어철학이란 무엇인가?

Gary Kemp

 

윤리학이란 무엇인가? 2

Christopher Bennett

 

메타윤리학이란 무엇인가?

Kok-Chor Tan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

Brian Garrett

 

종교철학이란 무엇인가?

Elizabeth Burns

 

언어철학이란 무엇인가? 2

Gary Kemp




序文

 

2판에 부쳐: 이번 판에서는 4(‘판단에 대한 Russell의 이론, 前期 Wittgenstein, 논리실증주의’)12(‘작금의 경향’)이 새로이 추가되었고, 1장과 2장 및 5-8장에 부분적인 수정이 가해졌다.

 

언어철학을 처음 접하는 학생들이 대부분 적잖이 당황하고는 한다. 도덕철학이라든가 정치철학 또는 인식론을 접할 때와는 다른 생경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부분적으로 이는 언어철학에 진입하는 단계 자체가 매우 어렵기 때문으로서, 마치 스키를 처음 배울 때처럼, 초심자들은 이 주제에 접근하는 첫걸음조차 떼기 아주 힘들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러한 어려움은, 언어철학을 기초적으로 다루는 대부분 저서들이 기술적(技術的)techmical인 용어들과 원리들을 독자들이 이미 이해하고 있다고 가정한 채 꽤나 높은 철학적 수준에서 쓰였다는 점으로 인해 더욱 악화된다. 이 책은 이러한 어려움을 피할 수 있게끔 순전한 입문자를 염두에 두고 저술되었다. 훌륭한 교재들이 이미 많이 출간되어 있긴 하지만 그 중 순전한 입문자를 위한 것은 드물다. 예컨대 이 책과 비슷한 수준의 저서로서 William Lycan언어철학: 현대적 입문Philosophy of Language: A Contemporary Introduction(Routledge, 2, 2008)을 들 수 있겠다. 분명 뛰어난 교재이긴 하지만, 그 책과 나의 책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큰 차이점이 있다: Lycan 의 책은 언어철학의 주제에 따라 구성되어있다 보니 해당 주제와 얽힌 수많은 철학자들의 이론과 각종 주의(主義)ism, 철학적 문제들, 그 해결책과 반론들 전부가 압축적이고 빠르게 제시된다. 이런 식의 접근법은 해당 주제에 이미 충분히 숙달해 있어서 비교적 최근의 논의에도 어려움 없이 참여할 수 있는 수준 높은 학생들에게만 효력이 있을 뿐 초심자들에게는 버겁게 느껴진다. 반면 나의 책은 대체로 이론 및 이론가들 위주로 서술되어, 비교적 적은 수의 인물들과 좁은 범위의 문제들이 완만한 속도로 다뤄지기에, 벼리가 되는 중심 주제나 논제에 쉬이 집중할 수 있다. 따라서 책을 읽어나가는 첫 단계에 큰 어려움은 없으며, FregeRussell 등과 같이 적은 수의 핵심적인 이론가들에만 논의를 집중시킴으로써, 학생들로 하여금 이론가들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방식에 익숙해지도록 하고 그들이 왜 그렇게 생각하였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끔 의도되었다.

보다 더 중요한 사항으로서, 나는 학생들이 언어철학과 얽힌 철학사에 대한 다소의 일관된 그림을 파악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렇다고 하여 언어철학사 전체를 속속들이 파고들지는 않고, 초심자들의 흥미를 고취할 법한 큰 줄거리들의 개략적인 소묘 정도를 제시하고자 하였다. 이 책은 한 학기 강의에 적합한 교재를 염두에 두고 쓰였다. 그렇다 보니 약간의 취사선택은 불가피하였던바, T. Burge, A. Curch, M. Dummett, G. Evans, J. Fodor, P. Geach, D. Lewis, R. G. Millikan, R. Mongtague, Schiffer, W. Sellars, R. Stalnaker, A. Tarski 등의 인물들은 언어철학사적으로 중요함에도 다뤄지지 않거나 극히 부분적으로만 소개되었고, L. Carnap, A. J. Ayer, H. P. Grice, J. R. Searle, D. Kaplan 등의 이론은 선별적으로 다뤄졌다. 이론 측면에서는 목적의미론teleosemantics, 진리-형성자 의미론truth-maker semantics, 개념 역할 의미론conceptual role semantics, 상황 의미론situation semantics, 게임이론적 의미론game-theoretic semnatics, 역동적 의미론dynamic semantics의도-기반 의미론intention-based senmatics, 의미론적 최소주의semantical minimalism, 표현주의적 의미론expressive semantics언어철학에서의 실재론realism -실재론anti-realism, 적합성 이론relavance theory 혹은 적합성 진리론relavance theory of truth 등은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학생들이 이 책을 읽고 여기서 다뤄진 인물들의 이론에 충분히 숙달됨으로써, 여기서 다뤄지지 못한 주제들에까지 탐구의 범위를 넓혀갈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이 책에 가해질 만한 비판으로서, 역사적인 측면에 치중하다 보니 지금은 다소 구식으로 여겨지는 내용까지 필요 이상으로 세세하게 소개한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이는 언어철학을 가르치는 방식에 관한 철학적 관점의 차이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언어철학은, 수리논리학이나 기하학처럼 해당 학문의 발전사와 다소 무관하게 가르쳐질 수 있는 표준적인 교수법이 정립된 학문분야들과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앞 문단에서 언급된 다양하고 넓은 범위의 관점이나 이론들에 의해 피력되어왔다는 사실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언어철학은 상당히 논쟁적인 분야이다. 따라서 FregeRussell 등 전통적인 철학자들의 이론적 기초를 충분히 익혀놓는다면, 최근에 다뤄지는 주제나 논쟁들을 조망할 수 있는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쉬워질 것이라 생각한다. 이와 연관된 비판으로서, 최근 몇 년간 언어철학은 구문론syntax 및 화용론prgmatics적인 착상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경험적 언어학empirical linguistics 분야와 밀접하게 연관되는 방향으로 발전하였음에도, 이 책에는 그러한 사실이 반영되어있지 않다는 점이 지적될 수 있겠다. 이에 대한 나의 응답은, 이 책의 주제가 언어학 자체 내지 언어학에 관한 철학이 아니라 백 년 전에 이해된 바로서의 언어철학이라는 것이다: 즉 이 책은 현실의 언어를 상세히 기술함으로써 언어에 관한 경험적인 사실을 이해하고자 도모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와 의미meaning에 기초하여 언어를 반성함으로써 언어에 관한 철학적인 문제들을 탐구하고자 한다.

또 다른 비판으로서, 연습문제를 제외하면 비판적인 관점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 지적될 수 있겠다. 이는 나도 인정하는 바이나 그다지 개의치 않는다. 내가 생각하기에 언어철학이 가르쳐질 때 자주 발생하는 큰 문제점은 논의되는 입장을 교수자가 시시때때로 비판하는 것이다. 개인적인 경험에 의하면, 한 철학자가 특정 입장을 견지하게 된 이론적 근거를 학습자가 충분히 파악하는 데에는 다소의 시간이 걸린다. 그럼에도 만약 교사가 강의의 초입부터 한 관점을 비판하고 들어간다면, 학생들은 시험을 위해서가 아닌 바에야 그것을 굳이 배워야 할 참다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것이며, 한 이론이 그리도 명백한 결점을 지니고 있다면 왜 시간을 들여가며 그것을 배워야 하는지 의문을 가질 것이다. 따라서 내가 지닌바 캘리포니아 사람으로서의 비판정신을 다소 억누른 채, 나는 한 이론에 관한 다소 긍정적인 관점에서 서술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취지에 따라 구성된 각 장의 개관은 다음과 같다: 서론 및 1장에서는 다소 역사적인 기초 사항들을 먼저 숙지한다. 2장과 3장에서는 FregeRussell의 고전적인 이론을 각각 살펴보고, 4장에서 前期 Wittgenstein의 이론 및 그로부터 영향받은 논리실증주의자들 중 Ayer의 초기 이론과 Carnap의 이론 일부를 살펴본다. 5장에서는 필연성/가능성necessity/possibility 등과 같은 양상성modality 개념과 더불어 Kripke가 제시한 가능세계 의미론possible worlds semantics의 기초적인 형태를 살펴보고, 6장에서는 PutnamKaplan의 이론을 중심으로 지표사indexical에 관한 논의들을 알아본다. 7장에서는 언어철학에서 또 다른 큰 줄기인 화용론pragmatics에 집중하면서 Austin, Searle, Grice의 이론을 살펴본다. 8장에서는 FregeQuine에 의해 각각 제기된 문제들을 중심 삼아 소위 명제적 태도propositional attitude라는 주제를 논의한다. 연후에 9장에서는 Davidson의 의미이론을 집중적으로 살펴보고, 10장과 11장에서는 언어와 의미에 관한 Quine後期 Wittgenstein의 입장을 각각 살펴본다. 마지막 12장에서는 최근 몇 년간 언어철학분야에서 이뤄진 발전들 중 뚜렷한 것으로서 주장assersion 개념에 관한 정의의 문제, 언어에서 맥락-상대성context-relativity 개념, 허구적 대상fictional object에 관한 언어철학적 이론들, 추론주의 의미론, slur현상[(경멸적 비속어)]에 관한 논의들 등의 다섯 가지 주제를 살펴본다.

모든 장들을 반드시 순차적으로 읽을 필요는 없다. 오히려 각 장들은 상대적으로 완결성을 갖도록 서술되었기에, 관심하는 바에 따라 특정 장만을 선별하여 읽어도 무방하다. 가능세계 및 지표사 개념이 논의되는 6장 및 명제적 태도 개념이 논의되는 8장은 여타 장들에 비해 다소 어려운 편이다. 너무 어렵게 느껴진다면 건너뛰어도 괜찮을 것이다. 4장은 다수 인물들과 이론들이 소개되기에 여타 장들에 비해 좀 더 역사적인 성격을 띤다. 역사적인 사항을 알아볼 필요가 없다면 이론적인 내용만을 살펴보아도 좋다. 이렇듯 모든 장들을 유기적으로 속속들이 읽을 필요가 없다 보니 선별적으로 읽을 독자를 위해, 몇몇 핵심적인 개념적역사적 사항들에 대한 동일한 설명이 여러 장에 걸쳐 반복되기도 할 것이다.

 

각 장 말미에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항목들이 제시되어있다:

 

역사적인 사항. 대체로 작금의 경향이 다뤄지는 12장에는 이 항목이 없다.

각 장의 요약.

연습문제. 각 장 본문에 제시된 내용만을 토대로 이 문제들에 명확히 답하긴 어렵겠지만, 해결하고자 고심하다 보면 해당 장의 주제에 대한 이해가 심화되고 나름대로의 비판적인 관점이 갖춰질 수 있게끔 고안되었다.

더 읽을거리. 이 목록에 소개되는 문헌들과 더불어 스탠포드 철학 백과사전인터넷 철학 백과사전에 등재된 글들을 활용하기를 추천한다. 제시된 문헌에 대한 부가적인 설명은 꼭 필요하다고 판단한 경우에만 덧붙였다. 예를 들어 2장의 주요 읽을거리항목에서는 Frege 저서에 대해 언급할 만한 사항들을 덧붙였다. 몇몇 장들에는 추가적인 읽을거리항목이 따로 제시되어있다.

 

책 전체의 말미에는 책에서 제시된 주요용어들에 대한 해설목록이 있다.

 

이 책을 제대로 활용하고자 한다면 주요 읽을거리에 제시된 문헌들에 대한 독서가 필수적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그 어떤 교재도 원전을 대체할 수는 없다. 상술하였듯, 화학이나 미적분학처럼 한 학문의 발전사를 연구하는 역사학자들이나 원전에 관심하는 학문 분야들과는 달리, 언어철학은 매우 논쟁적인 분야이기 때문이다. 모쪼록 이 책이 언어철학에 등장하는 이론가들, 주제들, 논증들로 처음 안내하는 간결한 길잡이 역할을 해냄으로써, 독자들이 이에서 더 나아가 주요 읽을거리 목록에 제시된 1차 문헌들에도 도전하는 데에 이바지하길 바란다.

 

Gary Kemp

2017.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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