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의 기초와 기본 개념 경문수학산책 5
HOWARD EVES 지음 / 경문사(경문북스) / 199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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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기초론의 기본적인 사항들을 전문적으로 개진 및 해설하는 전문서적이다 수학에 대한 형식주의적 관점이 두드러지는바 공리적 전개를 비롯하여 역사적으로 이뤄져온 수학 내적인 발전사항들을 엄밀하고 전문적으로 개술한다 수학기초론과 연관된 기술적인 사안들을 숙달하는 데에는 매우 유용하되, 기술적 사안을 넘어선 철학적인 사안들은 간단히 언급하고 넘어가는 정도이다 수학에 숙달한 독자에게는 기초론적 철학에 관심을 갖는 발판이 될 수 있겠고, 철학에 숙달한 독자에게는 수학적 기초를 향한 관심을 환기하는 자극제가 될 수 있겠는데,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 나로서는 그저 공부가 많이 필요하겠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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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트 타르스키 컴북스 이론총서
박우석 지음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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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실한 사항들을 정석적이고 체계적으로 얻어낼 수 있는 저서는 아니지만, 어쨋든 희소성 있는 인물과 주제를 가볍고 평이하게 접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일독해볼 가치가 있는 교양서이다. 비전문적인 수준에서 매우 쉽게 서술되어 있긴 하지만, 그 쉬운 내용들의 맥락과 의의를 좀 더 제대로 짚어내가며 재미를 느끼려면 타르스키의 이론은 물론이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전반에 걸친 수학철학적/논리철학적 역사를 약간이나마 알고 있어야겠다. 이론적인 내용보다는 일화적이고 에피소드적인 내용들의 비중이 높고 그마저도 다소 파편적으로 제시되지만, 애초에 전문서가 아닌 가벼운 교양서이니 이를 꼭 단점이라 단정짓기는 어렵다. 외려 그런 점으로 인해 수리논리나 모델론에 일절 관심이 없던 사람에게도 일말의 관심을 쉬이 환기해줄 수 있을 듯하다. 서너시간 반나절이면 능히 다 읽을 분량과 난이도이니, 요사이 하늘 표정 맑아 드는 볕 푸지는 날 주말 동네 어디 한갓진 카페에 물러앉아 오전 한나절 때우며 읽기 딱 좋다. 단, 구매소장보다는 빌려 읽기를 권하고 싶다. 


 추가적으로, 저자가 인용 혹은 언급하는 문헌들 목록이 전문성과 최신성을 갖춘바 꽤 유용해 보인다. 각잡고 타르스키에 대해 알아볼 요량이라면 제시된 서지사항들을 활용해보는 것도 장기적인 독서전략이 될 수 있을 듯하다. (다만 나는 아직 그렇게는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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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 - 철학의 문을 여는 열쇠
체이스 렌 지음, 서상복 옮김 / 연암서가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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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찬 내용, 깔끔한 구성, 균형잡힌 서술을 통해 읽는 재미와 지적인 소득 양자를 가져다주는 탁월한 개론서이지만, 주제 자체의 난이도와 곧이곧대로의 직역 문제로 인해 적당량의 선지식을 갖추고 있거나 아니면 강한 흥미를 지닌 독자층에게만 추천될 법한 학술서이기도 하다 책 전체를 통틀어 20세기 분석철학 전통에서 논의되어온 진리론들을 살펴보는데, 초입에 앞으로 다룰 문제의 성격과 구체적인 논의방식을 분명히 밝히고, 연후에 정합론 및 실용론 대응론 수축론 다원론 등을 앞서 설정된 논의 틀에 따라 해설 및 평가하는바, 통일적이고 명료한 구조가 우선 돋보인다 각 입론들을 가능한 한 비형식적 언어로 평이하고 간명하게 제시하되, 해설적 논증적 평가적 서술방식들을 적당한 호흡으로 배분함으로써 읽는 몰입도와 전달력을 제고하고, 다소 공인된 혹은 저자 나름의 문제 및 해결책을 제언하는 등 균형잡힌 시각도 시종 잃지 않는다 이렇게 얇은 책을 이렇듯 기교적이고 다채로우면서 학술적 교육적으로도 알뜰하게 저술해낼 수 있다니, 저자가 교육자로서 무척 탁월한 인물일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진리론만을 배타적으로 다루는 한국어 단행본으로는 거의 유잉하다는 희소성 및 2차대전 후 20세기 후반부에 대두된 비교적 동시대의 관점들을 아우른다는 최신성을 갖췄다는 점도 부차적인 장점이다 디자인도 미니멀하면서 적당히 이쁘게 잘 뽑혔다

다만 주제 자체가 특수하고 전문적이어서 진입장벽이 높은데다 논리철학 인식론 형이상학 언어철학 등 이론철학 분야와 논의가 거듭 연관되다보니, 철학과 학부생 2, 3학년 정도의 숙달 수준을 갖춘 게 아닌 바에야 일반적인 독자층에게 선뜻 추천하기는 적잖이 망설여진다 내용이 어려워도 스타일이 탁월하니 강한 흥미만으로 끈질기게 븥든다면야 혹여 얻어내는 바가 있겠으나, 이 경우엔 번역이 발목을 잡을 듯하다 뭔소린지 못알아먹겠는 불성실하고 엉망인 직역은 결코 아니고, 반대로 원문에 충실하고자 하는 노력이 역력한 성실하고 정직한 스타일의 직역인데, 그러한 충실함이 외려 역효과로 이어진다고 느껴지는 대목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좀 더 타협해서 어순이나 어휘를 과감히 바꾸었다면 훨씬 매끄럽게 읽히겠다 싶은 문장들이 많았고, 그 문장들을 배경지식 없이 읽는다면 그런 차이를 눈치채기가 어렵겠지 싶었다

그러니 구매소장 여부는 빌려서라도 일별해본 뒤 본인의 여건에 비추어 스스로 판단해야 할 사안이겠다 개인적으로는 막연하게 언어적으로만 알던 대응론과 수축론의 입론 및 문제점을 좀 더 논증적으로 이해하게 되었고, 진리의 가치 내지 평가적 측면에 대한 관심이 환기되었으며, 명칭만 들어놨던 진리-결정자 이론 및 명칭도 모르던 진리 다원론 진영을 새로이 알게 되어 여러 모로 소득이 큰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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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미국 미술 - 현대 예술과 문화 1950~2000
휘트니미술관 기획, 리사 필립스 외 지음, 송미숙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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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각적인 서술이 장점인 동시에 번거롭게 여겨질 수 있는 단점인 책이다. 우선 시기별 미술사조가 배태된 당대 미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사건이나 맥락들을 각 장 초입마다 여러 시각자료를 곁들이며 폭넓게 서술하고 있는 점이 두드러진 특징이다. 미술사 외부의 역사적 맥락은 대강의 큰 줄기만 언급한 뒤 미술사 내부 영향사에 주로 치중하는 여타 통상적인 미술사 서적들에 비해, 적어도 양적으로는 역사적 서술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는 편이다. 또한 부제가 암시하듯 건축 사진 연극 무용 영화 문학 문예이론 대중음악 등 순수미술 이외의 예술 및 문화 분야들도 각 장에서 다뤄지는 미술사와 연관지어가며 시대순으로 간략히 살펴보고 있다는 점 역시 눈여겨볼 만하다.

 이렇듯 다양한 내용을 입체적으로 담고 있는바 분명 많을 볼거리를 제공하지만, 외려 그로 인해 여타 미술사 서적만큼 탄탄하고 깔끔하게 딱 꼴지어진 그림을 얻게 해주지는 않는다. 특히 두번째 특징의 경우 복수 저자들이 쓴 두어쪽의 글들이 본문 중간중간에 배치되어 있는 식이고 그 내용도 피상적 나열적인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폭넓은 선지식이 없는 한 그 글들만으로는 해당 예술분야나 그 사조를 맥락적으로 심도있게 이해하기는 어렵다. 

 이에 2차대전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전개된 동시대미술은 물론이요 19세기말부터 20세기 중반까지의 모더니즘도 충분히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라야, 이러한 풍부한 내용 속에서 필요한 내용들을 추려내가며 미진했던 부분을 메우는 데에 활용할 수 있겠다. 그렇지 않은 초심자라면 많은 욕심을 내기보다는 다양한 도판들을 일별하며 '어떤 미술사조가 어떤 맥락에서 여차여차하게 등장했구나' 정도를 파악하는 식으로 가볍게 읽는 편이 좋겠다. 여러 시각자료와 도판들 역시 풍부하고 다양하게 실려 있기에 차후 여러번 들춰볼 마음이 먹어진다면 구매소장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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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델 불완전성 정리 - “이성의 한계”의 발견
요시나가 요시마사 지음 / 전파과학사 / 199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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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매끄럽고 압축적이게 구성되어 있기에 숙련자에게만 추천될 법한 교양서이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부터 괴델에 이르기까지 진행된 수학기초론 소사를 다루고 있다 하겠는데, 방대하고 전문적인 이야기에서 중요한 사안들만을 저자 나름대로 취사선택하여 깔끔하게 요약 및 정리해냈다. 칸토어의 집합론 및 그와 연관된 역설의 발견에서부터. 힐베르트의 "기하학의 기초"에 의해 대두된 공리주의, 수학기초론 삼파의 논쟁, 괴델의 정리와 그 이후까지의 수학철학적 이야기들을, 저자 나름의 시각으로 정연하게 이어맟줘 재구해냈다. 

 그런데 (내용 측면에서) 학술적인 스타일이나 나름의 엄밀함을 좀체 벗어나지 않기에, 선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이 평이하게 읽어갈 수 있을 정도로 친숙하게 서술되어있는 편은 아니다. (일본어식 문어체를 그대로 직역한 것도 매끄러운 독서를 방해하는 사소한 요인 중 하나이다.) 글의 진행에서 핵심적인 개념이나 이론들을 이미 잘 알고 있지 않은 독자라면 논의를 피상적으로만 따라가게 될 뿐 철학적, 수학적인 핵심과 그 의의를 파악하고 깊게 음미하며 읽어내지는 못할 것 같다. 특히 간간히 제시되는 수학적, 準-형식적 증명들 및 책의 중심주제인 불완전성 정리의 증명 자체가, 이런 내용에 이미 익숙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해하기 거의 불가능한 형태로 제시되어 있다. 불완전성 정리의 증명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먼저 증명가능성 술어와 자기-지시성 구조를 도입하기 위해 괴델이 칸토어의 대각선 논법과 리샤르의 역설을 활용한 방식이 형식적으로 제시되고, 이후 괴델수 부여를 통한 구체적인 증명 절차 자체는 그 핵심 착상과 개요만이 자연언어로 짧게 기술된다. 보통 전자보다 후자를 상세하게 기술하는 여타 책들에 비하자면 분명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반면, 초두에 말했듯 학술적으로 잘 마물러진 교양서이기에, 이러한 어려움들에 개의치 않을 만큼 수학기초론과 그 역사 및 형식적 논의에 충분히 숙달된 독자라면 일독해 볼 가치가 충분하다. 취향에 따라 구매소장하여 생각날 적마다 거듭 읽다보면, 미진하거나 파편적으로 알던 사항들을을 이 책을 통해 빠른 호흡으로 정리해볼 수 있을 듯하다. 



2. 보통 불완전성 정리의 의의를 '인간 이성의 한계를 엄밀하게 밝혀냈다'는 식으로 부정적, 소극적으로만 해석하는데, 이와 대조되는바 책 말미에 짧게 언급된 저자의 긍정적, 적극적 해석이 인상깊었다: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는 그러한 전능하고 절대적인 이론이 결코 존재할 수 없음을 알려준다. 역으로 말해 이 정리는, 현재 아무리 완전하게 보이는 이론일지라도 언젠가는 앞지름을 당하는 것이고, 인간에게는 항상 기성의 이론을 앞질러갈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남겨져 있음을 보증한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인간 이성의 '강함'에 대한 선언으로서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이 정리의 적극적인 파악방법이고 이 정리가 갖는 궁극적 일면이다." (226쪽)


읽자마자 U. 에코, "장미의 이름"의 두 등장인물 호르헤 노수도사와 윌리엄 수도사가 떠올랐다:


 "「우리 교단의 사명이자 우리 수도원 수도사들의 의무인 이 근행 가운데에는, 공부하고 지식을 보존하는 의무가 들어 있음을 잊어선 안 됩니다. 공부하고 그 지식을 보존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의무의 노른자위 같은 것이지요. 나는 〈탐구〉라고 하지 않고 분명 〈보존〉이라고 했습니다. 무슨 까닭인가요? 하느님께 속하는, 지식이라는 재산은 완전한 것이고, 태초부터 완전한 것으로 정제된 것이고, 말씀의 완전함 안에서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나는 〈탐구〉라고 하지 않고 〈보존〉이라고 했습니다. 부슨 까닭에서일까요? 선지자들의 설교로부터 초대 교부들의 해석에 이르기까지 수세기에 걸쳐 정제되고 완성된 이 지식이야말로 인간에게 할당된 몫으로는 최상의 보고이기 때문입니다. 지식의 역사에는 발전이나 진보가 있을 리 없습니다. 애오라지 연속적이고 더할 나위 없이 고귀한 요점 약설이 있을 뿐입니다. (…) 나는 성서의 마지막 권에서, 마지막 천사가 한 말을 상기시키고 싶습니다. 〈누구든 여기에 무엇을 덧붙일진대 하느님께서 그를 벌하실 적에 이 책에 기록된 재난도 덧붙여 주시리라. 또 누구든 이 책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에서 무엇을 때어 버릴진대,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그 거룩한 도성에 대한 그의 몫을 하느님께서 떼어 버리시리라.〉」" (이윤기 譯, 열린책들, 2006(보급판), 526-8쪽)


 "「이 영감아, 악마는 바로 당신이야! 악마라고 하는 것은 물질로 되어 있는 권능이 아니야. 악마라고 하는 것은 영혼의 교만, 미소를 모르는 신앙, 의혹의 여지가 없다고 믿는 진리 …… 이런 게 바로 악마야! (…) 저잣거리로 나가 이렇게 외치고 싶군.〈이 영감이 여러분에게 진리를 말한다. 진리란 것이 죽을 맛이라 하고 있으니 여러분은 영감의 말을 믿은 게 아니라 이이의 엄격함을 믿은 것이다!〉」(…)

 「너는 나를 악마라고 한다만, 그것은 사실과 다르니라. 나는 하느님의 손이었느니라.」

 「하느님의 손은 창조하지, 감추지는 않는다.」" (621-3쪽)


힐베르트를 완고하고 비뚤어진 광기에 사로잡힌 인물에 빗대는 게 불경한 일이겠지만, 이 빗댐에 기대 저자의 해석을 재해석해보자면, 비뚤어지거나 광기에 사로잡히지 않은 건강한 형태의〈엄격함〉이나 〈완전함〉이라도, 체계 외부의 시각에서는 모종의 또다른 광기나 비뚤어짐일 수 있음을 보여준 게, 괴델 정리의 적극적인 의의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신에게서 찾아내야 할 것은 그의 〈완전함〉이 아니라 무한한 〈창조력〉인바, 후자를 볼 수 있을 때에야 그가 우리게 부여한 〈이성의 강함〉 역시도 제대로 직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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