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란 무엇인가 - 의미론 지침서
폴 엘번 지음, 권연진.임동휘 옮김 / 한국문화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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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만족스러운 의미론 입문서이다 의미 내지 언어에 대해 언어철학, 언어학, 심리학 측면에서 균형있게 접근하고 있으며, 제반 학문분야의 전문용어와 핵심 논점들을 명료하면서도 알차게 해설하되, 이 모든 것들을 의미론에 관한 여하한 배경지식이 일절 없는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평이한 말로 전달하고 있다 요컨대 형식과 내용과 접근성의 세 측면 모두에서 만족스러운 입문서이다 역자들의 서문을 보면 학술서적에 대한 소개글 치고는 꽤나 인상적이고 다채로운 어조로 이 책을 추천하고 있는데, 다 읽고 나니 역자들이 왜 그런 식으로 서문을 썼는지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아주 멋진 책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다만 철학용어들에 대한 번역이 아쉽다는 사소한 단점이 있다 원저자는 언어학-철학 학제연구 프로그램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현직도 철학과에서 교수중이라고 소개된바 언어와 관련된 다양한 분야에서 훈련된 학자인 데 반해, 역자 두 명은 모두 순수하게 언어학 내에서만 연구를 한 분들이다 그래서인지 플라톤의 eidos 개념을 가리키는 'form'을 보통 철학서에서 역어로 선택되는 '형상'이 아니라 '형태'로 새긴다든지 하는 점이 조금 아쉬웠다 의미를 알아먹을 수 없게 만드는 정도의 오역이라곤 할 수 없지만, 자신이 종사한 바와 다른 학문분야의 전문용어에 대한 번역 용례를 폭넓게 고심해서 참조하지는 않았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탁월한 책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언급된 번역상의 단점은 단지 개별 단어에 대한 지엽적인 문제일 뿐, 문장 전체의 층위나 서술 맥락의 층위 에서는 아주 잘 읽히도록 번역되었다고 할 수 있다 오랜만에 매우 훌륭한 책을 읽게 되어서 참 만족스럽다 언어학이든 철학이든 심리학이든, 어떤 방향에서든 언어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학술적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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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논리학
앤서니 그레일링 지음, 이윤일 옮김 / 북코리아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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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와 형식 면에서 희소성 있는 문헌이라는 점이 큰 장점인 듯하다 논리철학 내지는 다소 느슨하게 보자면 언어철학을 다루는 국내 문헌이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주제를 형식 면에서 철학사별 혹은 철학자의 이론별로 다루지 않고 주제별로 다루는 문헌도 거의 없는 실정에서, 이 책은 그 주제에 배타적인 관심을 갖는 사람들에게 요긴하다

하지만 주제 자체의 어려움 및 원저자의 서술 방식의 개략성이 이해를 어렵게 만들며, 가뜩이나 그 어려움을 수준 이하의 번역이 가중시킨다는 점은 명백한 단점이다 서문에서 원저자는 이 책이 입문자들의 방향을 잡아주기 위한 도구라고 공언하지만, 다뤄지는 주제가 워낙 폭넓다 보니 한 이론 내지는 논제가 꽤나 약식으로 서술되고, 그에 대한 비판이나 문제점 역시 핵심적이고 압축적으로 서술된다 전자에 대한 사전지식이 있어도 후자를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으며, 전자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다면 후자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니 결국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결실이 매우 적을 수밖에 없다
서술방식 자체가 이러한 어려움을 지닐진대, 번역의 난삽함은 이 책을 더욱 읽기 어려운 것으로 만들고있다 나는 이 책의 주제에 대해서도, 번역작업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전문가가 아니기에 번역의 '전문성'에 관해 자신있게 평가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한국어 문장으로는 매끄럽게 읽히지 않게끔 번역되어있다는 것만은 지적할 수 있겠다 주술구조가 갖춰지지 않은 비문도 몇몇 있고, 어절의 순서를 굳이 왜 이런 식으로 두어 번역했을까 싶은 문장들이 매우 많다

그래서 이 책은 해당 분야에 어느 정도 지식이 있는 사람 한정으로,논리철학, 언어철학, 형이상학에서 이뤄진 논의들을 주제별로 개관하거나 필요에 따라 한 주제를 간략히 정리해보는 데에 읽는 의의가 있다고 평가하고싶다 지적되었듯이 서술은 압축적이지만, 다뤄지고 있는 주제별 항목들 자체는 매우 세세하기에, 원저자의 말대로 개별 주제들에 대한 서문격의 글로서 활용한다면, 이 분야에 대해 알던 지식을 조금 더 다듬는 데에는 분명 일익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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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경험주의와 분석철학
볼프강 스테그뮐러 / 고려대학교출판부 / 199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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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하고 전문적으로 서술된 어려운 책이다 역자가 소개하듯이 현대 경험주의에 대한 가볍고 개괄적인 정보만을 기대하고 읽는다면 읽기도 버겁고 소득도 적을 것이다 분석철학 초기의 역사 및 논리실증주의에 관련된 지식을 적당량 숙지한 채 끈기있게 읽어나간다면, 경험주의라는 사조에 대해 막연하고 소박하게만 알고 있던 것들이 다소 교정되고, 특히나 현대철학의 분석적 전통에서의 경험주의가 "모든 지식은 경험에서 나온다"는 대강의 조악한 전통적 경험주의의 기조를 세련화하고 정밀화하기 위해 분투했던 치열하고 정치한 노력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추가적으로 카르납의 철학에 대한 상세한 해설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 이 책의 큰 장점 중 하나라 생각한다 철학에 대한 일반독자층의 관심이 전통철학이나 현대 대륙철학에만 집중되어 분석철학에 관한 저작이나 번역물이 상대적으로 적은 한국 출판계에서, 가뜩이나 어렵고 복잡한 카르납의 철학을 (개괄적으로든 심층적으로든)제대로 다룬 책은 개인적으로 여직껏 한 권도 보질 못하였다 그나마 번역된 그의 저서도 "구조" "통사론" 등의 주저가 아니라 과학철학에 대한 입문격의 저서 하나 뿐이다 이런 사정에서 카르납의 철학을 폭넓고 상세하게 다루고 있는 이 책은, 이해하긴 어려워도 번역, 출판되었다는 존재 자체에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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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 철학으로의 초대
박병철 지음 / 필로소픽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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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비트겐슈타인 입문서이다 나로서는 생소한 전환기 사유가 소개된 3장이 꽤 흥미로웠고, 전기 사유와 다른 의미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후기 철학이 특히나 잘 정리되어 있다고 느꼈다 딱딱한 학술적 느낌을 피하면서도, 대중적 철학서적이 지니는 피상성이나 조야함도 피했다는 점에서, 읽을 가치가 높은 입문서라고 생각한다 사소한 단점을 지적하자면, 쪽수와 활자크기에 비해 가격이 살짝 높은 것 같다 (알라딘 중고서점 오프라인 매장에서 반값에 산 나는 운이 좋다 혹여 헌책방에서 이 책을 발굴한다면 주저하지 말고 사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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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 - 그의 철학적 주제들 헤겔총서 1
프레더릭 바이저 지음, 이신철 옮김 / 비(도서출판b)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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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헤겔 철학에 관심이 많았다 나름 이해하고 느끼는 바가 있어 더 상세히 알고 싶어서가 아니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이해해보고 싶은 지적 욕구에서 자극된 관심이었다 헤겔도 분명 사람이었으니, 초등학교 교장도 지내보고 말은 좀 툭툭 끊겨도 강의가 인기 있는 대학 교수였던 지식인이었으니, 그의 철학을 어떻게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도대체 무슨 의미에서 '세계는 절대정신의 자기인식이다' 하는 따위의 말들을 하였는지 이해해보고 싶었다 카르납은 헤겔의 책을 읽고 낙담한 학생들은 자신의 무지를 탓할 것이 아니라 헤겔의 헛소리를 탓하라고 했지만, 나는 그를 탓하더라도 그의 말이 헛소리가 아니라는 전제 하에 이해해본 뒤 탓하고 싶었다

그런 관심에서 헤겔을 읽어보아도, 소득이 하나도 없었다 이전에 읽은 헤겔 관련 책은 그의 "역사철학강의"와 "정신현상학", 니콜라이 하르트만의 "독일 관념론 철학", 프레드릭 코플스톤의 "18, 19세기 독일철학" 등 네 권과, 각종 철학사 윤리학사 종교철학 예술철학 관련 책들에서 헤겔에 관해 서술된 단편적인 내용들이었다 거짓말 안 하고, 그것들을 통해 내가 헤겔에 대해 이해하게 된 바는 정말 하나도 없었다 읽고 나서 뭘 읽었는지 기억 나질 않았다

많은 사람들의 리뷰가 호평인 것을 보고 구입한 이 책은 달랐다 난해하거나 모호하지 않은 명료한 문체로 쓰여서 일단 읽기가 수월하였고, 헤겔 고유의 전문용어들을 간략하게 해설한 뒤 그 용어들이 사용되는 맥락을 염두에 둔 채 그와 관련되어 진행되는 논의가 헤겔 철학을 대강이나마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 헤겔 철학에 쏟아지는 교조적인 동의와 비판 사이에서 균형잡힌 해석을 제공하려는 저자의 노력도 특기할 만한 장점이다 헤겔이 무엇을 문제삼아 어떻게 해결하고자 했는지, 나름대로 조금은 이해하게 해준 책이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앞서 언급한 네 권 책들을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다 책 한 권을 읽고 나니 외려 과제가 생겼다 뭔갈 배운다는 건 그런 것 같다

다만 "헤겔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저술되었다"는 저자의 말에는 감히 동의하지 못하겠다 여느 학문 분야의 여느 학자 혹은 학파든, 그 개별 이론에 입문하기 위해서는 그 이전의 학문적 흐름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고 진부한 말이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헤겔에 입문하는 데에는 그 정도가 더 심한 듯하다 아리스토텔레스, 스피노자, 근대 계몽주의, 칸트, 독일 낭만주의, 피히테와 셸링의 관념론 등에 대한 일차적인 지식이 없다면, 이 책을 읽는 것은 헤겔의 1차서적을 읽는 것 만큼이나 어렵게 느껴질 것 같다 요컨대 철학에 교양 수준의 관심은 있지만 헤겔 철학 자체와 그 전후 맥락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 독자가 읽기에는 버거운 책이라고 생각한다(물론 저자가 말하는 '헤겔을 처음 접하는 독자'층이 문자 그대로 이런 사람을 가리키지는 않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각 장마다 헤겔의 문제의식이 싹튼 철학사적 맥락이 간략하고 평이하게 설명되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유기체 관념이 무엇인지, 스피노자의 신 즉 자연이라는 개념이 무엇인지, 칸트가 구분한바 자연과 자유에 대응하는 현상계와 예지계가 무엇인지, 독일 낭만주의자들과 관념론자들이 칸트철학에서 발견한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사람으로서는, 저자의 간략한 맥락 설명마저도 읽기 싫어지는 부담스런 내용으로밖엔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제대로 된 철학사 한 권 및 칸트 철학 전반에 대한 평이한 해설서 한 권, 이렇게 두 권 정도는 읽어놔야, 이 책을 읽는 재미와 소득이 더 커질 듯하다 '탈레스는 물을, 아낙시만드로스는 무한정자를, 아낙시메네스는 공기를 만물의 근원이라고 주장했다'는 지식을 안다고 해서 고대 자연철학을 <이해했다>고는 할 수 없듯이, '헤겔은 칸트가 이성의 인식론적 권리와 형이상학적 권리에 대해 규정한 한계를 뛰어넘고자 하였다' 하는 등의 지식을 알게 되었다고 해서 헤겔의 철학을 이해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소박한 의미에서라도 나는 '모든 앎 즉 학문은 체계를 통해서만 온전한 앎 즉 학문이 된다'는 헤겔의 말에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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