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노사이드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수영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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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사이드? 이게 무슨 뜻이야?

중학교때 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영어공부를 하던 저는 저 단어를 사전에서 찾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집단학살'. 도대체 왜 이런 무서운 단어가 존재하는지, 그리고 중학생의 어휘에 왜 이런 단어가 필요한지 말이지요.

그러다 cide가 죽음을 뜻하는 접미어라는 것을 알게 되어 사전을 찾아본 결과...

수이사이드, 하미사이드, 디어사이드, 패트리사이드, 바이오사이드...

대체 왜 인간들은 이렇게도 많은 죽음의 낱말들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특히 제노사이드. 생각해볼수록 무서운 단어가 아닐까 합니다.



 

데뷔작인 13계단을 읽었을 때부터 푹 빠져들게 된 작가, 다카노 가즈아키.

그가 2011년에 발표한 최근작의 제목이 바로 '제노사이드'입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그의 작품들의 매력을 보면, 일본 소설들이 갖고있는 약간의 '허술함'이 훨씬 적다고 할까요? 

그리고 또한 긴박감과 추리의 재미가 상당합니다.

덕분에 그의 작품은 어떤 작품을 골라도 충분한 값어치를 한달까요.


그래서 최근에 그의 신작이 나왔길래 아무 생각없이 주문했습니다. 그리고 우선 결과는 당연하게도 만족스럽습니다.

그러면서도 상당히 놀랐습니다.




제노사이드.

인간의 탐욕에 의한 학살. 대량학살의 원인은 인류사를 통틀어 일정집단의 탐욕에 의한 것일 수밖에 없었겠지요. 

그래서 콩고의 피의 다이아몬드, 관동 대지진 사건, 홀로코스트 등

인간의 추악함이 가장 극명하게 나타나는 그런 순간을 얘기하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약간의 SF를 가미하여 진화에 의해 태어난 '신인류'를 등장시키고 신인류의 위협과 현 기득권층의 대립을 아주 짜임새있게 그리고 있습니다.

또한, 이 스토리의 전개를 등장하는 몇몇의 등장인물들의 각각의 스토리를 교차해서 풀어나가면서 조금씩 퍼즐을 맞추는 그런 구성을 통해서 치밀한 스토리가 전개됩니다.

특히 놀랐던 것은, 기존에 제가 읽었던 다카노 가즈아키의 소설들이 갖는 평면적인 드라마적 특성(일본 소설을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 소설들이 약간 이런 특성이 있지 않은가 합니다)이 굉장히 입체적으로 변화했다는 느낌입니다. 세계관을 새로 만들어냈다까지는 아니지만, 치밀한 설계를 통한 다양한 관점의 도입을 통해 소설을 읽는 재미가 훨씬 풍부해졌다는 생각입니다.
요컨데 '스케일'이 달라졌달까요. 왠지 '세계대전 Z'가 연상되기도 하구요.
여기에 다카노 가즈아키 특유의 빠른 템포의 전개가 엮이면서 상당히 재미있고 흡인력 있는 소설입니다. 700페이지에 폰트도 작은 상당한 분량(충분히 2권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분량인데, 1권으로 내주신 황금가지 편집부에 감사를...)임에도 불구하고 내달리듯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 대한 따뜻한 시선(특히 '정'에 관련된 서술 부분은 꽤 마음에 들었습니다)과 한국인 천재 등장인물도 마음에 들었구요.

다만 한 가지, 왜 이런 멋진 책이 '일본 서점 대상'에서 2위를 했을까?(물론 2위도 대단한 것이겠지만요)라는 생각을 해보면, 분명 이 책은 호불호가 좀 갈릴 수 있는 책이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합니다.
이 '제노사이드'에는 약을 제조하기 위한 '화학 반응'이라는 부분에 대한 할애가 너무 크지 않았나 합니다. 
신약 개발이라는, 스토리 전반에 꼭 필요한 중요 포인트 때문에라곤 하지만, 빠른 템포의 전개 속에서 중간중간 좀 지나친 듯한 화학에 대한 설명이 그 템포를 망가뜨리는 듯한 느낌이 좀 있습니다.
이런 '지적 유희'는 SF라는 과학적 토대를 가진 장르에서 꽤 강하게 나오는 특성인데요, 배경 지식이 많을수록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만, 그런 부분에 대한 니즈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장르 자체를 기피하게 하기도 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이 '화학' 부분은 욕심이 좀 과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 이 책을 읽을 생각이 있으신 분들께서는 이런 부분을 좀 고려해주시고, 화학에 대한 설명 부분이 재미를 해친다 싶으시면 대충 넘어가시고 스토리를 즐기시는 것도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사실 제가 잘 몰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 설명들을 대충 읽고 넘어간다 해도 큰 차이는 없거든요. 화학 지식에 의한 특별한 복선도 크게 눈에 띄지 않구요).


어쩌면 전쟁만큼이나 극명하게 인간의 본성이 가진 추악함을 드러내는 요소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 피해나 후폭풍도 엄청나구요. 지금까지 전쟁에 대한 수많은 책들이 발간되었고 각각 사람들에게 경각심과 나름의 경각심, 그리고 또 재미를 주었습니다. 이번 책 '제노사이드'는 그런 책들 중에서도(장르 소설이라고 국한하지 않더라도) 상당한 재미와 정신적인 충격을 주는 그런 작품입니다. 꼭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아, 마지막으로 일본어가 좀 되시는 분들은 공식 사이트(http://www.kadokawa.co.jp/sp/201103-07/)에 들르셔서 라디오 드라마나 TV CM들도 한 번 보시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카도카와 쇼텐에서도 작년에 이 책에 꽤 상당한 공을 들인 듯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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