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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프에게 고한다 세트 - 전5권 (일반판)
데즈카 오사무 글 그림, 장성주 옮김 / 세미콜론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이것은 세 아돌프에 대한 이야기다.
누구나 '아돌프'라는 이름을 들으면 떠올릴만큼이나 유명해져버린, 세계를 아리아인의 우월성이란 깃발 아래 두려 했던 아돌프 히틀러, 그리고 독일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를 두고 '나치스'의 '아리아인 우월주의'에 혼란스러워하지만 결국은 나치스의 세뇌에 물들어버리는 아돌프 카우프만, 그리고 유대인이지만 카우프만과의 깊은 우정 속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던 아돌프 카밀.
그들이 전쟁이라는 추악함 시대상 속에서, 그 하나의 실타래 속에서 얽혀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그의 이름을 모든 사람이 알지는 못 하겠지만, 적어도 그의 만화는 보았을 만큼(사파이어 왕자, 밀림의 왕자 레오, 철완 아톰...설마 안 보셨습니까?) '데즈카 오사무'는 대단한 만화가다. 오죽하면 '만화의 신'이라 불릴까.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그가 타개한 날, 포털 검색순위에 그의 이름이 올라올 정도면 말 다 한 것이 아닐까 한다(여기가 일본도 아니고...). '아돌프에게 고한다'는 그의 마지막 작품이다.
내 유년기의 교육 속에서 '히틀러'는, 그리고 '나치스'는 미친 살인마와 그의 추종 집단으로서 기억될 뿐이다. 물론 그가 유태인들에게 자행한 참혹한 일들, 단지 유태인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당해야 했던 그들의 참혹함은 절대 받아서는 안 될 것이었다. 하지만 거기서 끝. 사실 전쟁은 그 자체가 나쁜 것이고, 인간이 벌이는 유일한 죄인 것. 그 이유는 모두 각자의 '정의'를 갖고 있고 그것이 옳다고 믿는다는 사실이다.
이 만화 안에서는 세 명의 각기 다른 아돌프가 등장한다. 그리고 각 아돌프는 각각의 정의를 믿고 - 아니 어쩌면 믿음을 강요당하며 - 자신의 행동에 대한 정당화 속에서 자신들의 정의에 반하는 자들을 처참하게 학살한다.
그런 참혹한 정의. 그 이름 아래 일본인은 만주인을 학살하고, 나치스는 유대인을 학살한다. 미국인은 일본인을 학살하고, 또 유대인은 팔레스타인인을 학살한다.
민족주의와 정의, 누가 이 아이들을 전장으로 밀어넣는가...
전쟁이란 그들'만'의 정의로 정당화된 살인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는 대목이다.
히틀러는 광기에 찬 미치광이로 묘사되지만 결국은 자신의 그 '정의'에 오히려 속박되어 있고, 흔히 수많은 책 등에서 피해자로 묘사되는 유대인 역시 결국은 중동 전쟁을 통해 그 '정의'에 속박된 모습으로 그려진다.
자신의 정의에 모든 것을 바친, 하지만 그 정의가 자기 자신으로부터 부정당한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왜 이런 참혹함을 자행하는가.
예전부터 데즈카 오사무의 만화를 참 좋아했었다. 동양 뿐 아니라 서양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는 철완 아톰을 비롯, 사파이어 왕자, 밀림의 왕자 레오. 그런 가운데 이제 유년의 나이가 아니라, 청년의 나이가 되어 읽은 그의 작품은 뭐랄까, 참 자각 있는 작가라는 느낌이랄까.
데즈카 오사무는 누구의 편도 아닌 담담함으로 그 전쟁을 그려낸다. 자신이 일본인임에도 불구하고.
누가 침략자인지, 누가 정의로운 것인지, 결국 그들을 그렇게 만들어낸 것은 국가 간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상이 만들어낸 '정의'라는 이름의 허상이었고, 그런 가운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결국 누구의 정의도 인정할 수 없는 그런 터무니 없는 발상이었을 뿐.
어려서 우리가 보았던 만화, 영화, 그리고 반공 포스터 속에서 느꼈던 북한(부끄럽지만 광서방은 초등학교 1학년때까지 북한은 늑대와 돼지들이 사는 곳인줄 알았다), 그리고 바로 이번 월드컵에 정대세의 눈물을 보며 느꼈던 북한과의 괴리감이랄까(이거.. 이러다 잡혀가려나...).
혹은 2차 세계 대전에 참혹한 박해를 받았던, 그래서 우리의 뇌리 속에 피해자로 남아있는 유태인과, 갑자기 잘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을 몰아낸 장본인, 그리고 이번 이스라엘 국제 구호선 공격이라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이고 있는 유태인(광서방도 불매운동 나름 참여중)과의 괴리감이랄까.
우리가 살아가면서 쉽게 잊고 살 수 있는, 그런 '정의'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 번 할 수 있게 해 주는 이 책, 아돌프에게 고한다. 참 많은 아픔을 겪어왔고, 또 지금도 분단 상황에 처해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 번 읽어보기에 충분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일본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에 대한 미화나, 혹은 아픔에 대한 지나친 호소 등 우리들이 보기에 거북한 그런 부분들도 전혀 없고. 개인적으로는 내가 갖고 있는 '명작 만화' 리스트에 추가할 정도로 마음에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