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그리고 그 이후
자크 아탈리 지음, 양영란 옮김, 이종한 감수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현존하는 프랑스 최고의 지성'이라는 자크 아탈리. 40여권의 저서도 그렇겠지만, '미래의 물결' 등, 그의 괄목할만한 책들에 담긴 그의 지식과 지혜, 그리고 통찰력은 이 시대를 꿰뚫는 뛰어난 지식인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그런 그의 지식을 가득 담아, 현 시점에서의 글로벌 경제 위기를 분석하고 전망하는 책을 냈다. 그것이 바로 이, '위기 그리고 그 이후'다.

2008년 9월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위기가 발생하게 된 원인은 물론, 그 파장이 전 세계로 파급되는 과정, 같은 해 11월 말까지 각국 정부에서 오고 간 논쟁과 결정 사항을 시간 순서대로 차근차근 분석한 텍스트가 이 책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데, 미테랑 프랑스 전 대통령의 특별보좌관을 비롯, 실질적인 엄청난 영향력을 갖고 있는 인물인만큼, 핵심을 뚫는 정확한 내용으로 간결하지만 멋지게 그 문제점을 분석한다. 그런 이 책의 전반적인 내용을 그는 서문에서 직접 요약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세계화 이후 최초로 맞게 된 이번 금융 위기는, 상당 부분 미국 사회가 중산층에게 적절한 수준의 급여를 지급하지 못했다는 사실로 설명된다. 미국 사회는 이들에게 적절한 임금을 지급하는 대신, 주택을 구입할 때 빚을 얻으라고 부추김으로써 자산 가치를 높이고 생산을 독려하는 방식을 사용해왔다. 이와 같은 방식을 적극 권장하는 금융기관과 '정보선점자들'은 이 과정에서 창출되는 부의 대부분을 독식했으며, 이 과정에는 아무런 위험도 따르지 않았다. 부채담보부증권(CDO)의 예탁과, 일종의 유사보험이라고 할 수 있는 신용부도스와프(CDS) 덕분이었다. 이 방법 덕분에 부채는 성장을 거듭하여 마침내 통제 불능한 상태에 이르렀으며, 그 결과 신뢰의 상실과 대출 기피로 인한 집단 패닉 현상을 낳았다.
이는 조만간 전 세계적인 불황으로 이어지거나, 반대로 조화로운 성장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조화로운 성정이란 물론 부채의 실질적인 경감, 다시 말해서 모든 부담을 납세자에게 슬그머니 떠넘기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미봉책이 아닌 본질적인 해결책을 전제로 한다. 이를 위해서는 특히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민주주의가 지닌 권력을 통해 시장 권력과의 균형을 도모하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 시장 중에서도 우선 금융시장의 권력을 법의 권위 밑에 두어야 하며, '정보선점자들'의 권력을 시민의 권리 밑에 두어야 한다.

아직도 늦지는 않았다. 산사태를 미리 예고하는 일은 가능하지만, 일단 시작된 사태를 멈추는 일은 불가능하지 않은가." (7~8P)


우선 그가 말하는, 현 미국 경제 체제 최고의 문제점을 '중산층에게 적절한 수준의 급여를 지급하지 못했다는 사실'에서 찾는다는 부분이 흥미롭다. 흔히 '빌린 돈으로 흥청망청 써댄 미국의 말로'라고 분석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을 생각하면, 일부 '정보선점자'들에 의한 독식, 그리고 그에 의한 금융 자본주의자들의 거품에 대한 해석이 매우 적절하다는 느낌이다. 실제로 재화를 만들어내는 실물 경제보다 금융 경제가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아이러니한 상황들이 벌어지던, 그리고 그래서 생겨난 거품이 터지면서 만들어진 이번 '글로벌 경제 위기'에 대한 제대로 된 분석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그렇기에 이번 위기를 만들어낸 일부 '정보 선점자'과 그들의 금융 파생 상품에 대한 그의 비난이 더욱 와닿기도 하고.




한동안, 아니 지금까지도 자기계발 분야의 큰 트랜드 중의 하나인 '긍정적 태도' 부분이 이런 '정보선점자'들의 계략에 의한 것이라는 이야기도 매우 흥미로왔다. 정말?!!


그런 그의 분석이 매우 흥미로왔기에 더욱 기대되었던 것이 그가 말하는 앞으로의 전망과 대책 부분이었다. 그리고 사실, 최근 몇몇 책을 읽었지만, 사실상 이후에 대한 거시적인 부분에서의 대책 마련이 어쩌면 참 실망스러웠던 것이 사실이었었고. 그렇기에 그 정도의 지식인이라면 어떤 대책을 마련해나갈 것인지에 대한 것이 기대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기대 속에서 읽은 그의 대책은 음... 사실 좀 미묘하다.
대책 자체에 대해서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모든 위기의 진원지인 미국 경제부터 시작해서, 초국가적인 규제와 지배구조를 정비하고, 이어서 성장을 주도할 수 있는 전 세계적인 대규모 사업까지 그야말로 거시적인 입장에서의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정리하고 있다. 그리고 그 각각의 세부 내용들이 실질적으로 어떻게 하면 전세계적인 정책에 도움이 될 것인지를 잘 이야기하고 있으며, 세계를 꿰뚫는 지식인들이기 때문일까? 지금 읽고 있는 또 한 권의 책인 토머스 프리드먼의 '코드 그린'에서 논하고 있는 이상기후에 대한 위기와 그에 대한 정책까지 참 괜찮은 정책들을 실질적으로 피력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국내 정부 역시, 우리나라에 맞는 대책을 마련하는데 좀 많은 참고를 했으면 하는 마음이고.
하지만 문제는, 그가 말하는 해결책의 대부분이 전작 '미래의 물결'에서와 같이 전인류적인 공감대가 형성되고, 초국가적인 협력이 이루어져야 하는 '하이퍼 민주주의'의 이상 구현에 기본을 두고 있다는 부분이다.



위기에는 뭉치지만, 위기가 지나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발동하는 이기주의적 역사의 반복가 끊기는 날은?


사실 그렇기에 그의 하이퍼 민주주의 성향을 담은 이상론적인 결론은 어떤 의미에서 참 아쉽다. 그가 말하는 '정보선점자들'이 자신들에게 가져다줄 엄청난 권력과 이익을 포기한채, 모두가 함께 가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갈 것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 인간의 이기적인 성향과 욕심 속에서 과연 이루어질 수 있는가는 솔직히 회의적이다. 사회를 구성하는 것은 우리 모두라지만 사실상 이끌어가는 것은 그들, 정보선점자들이고, 아무리 인터넷 등을 통한 정보 공유가 범 세계적으로 점점 확산되고 기술적으로 가능하기는 하지만, 사실상 그 기술의 이기를 정보의 통제와 여론몰이로 악용하는 것 역시 가능한것이 또한 그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갖는 지식인, 그것도 '정보선점자'로서의 강력한 권력을 가진 사람이 한 명이라도 더 존재하는 것이 그런 희박한 가능성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임은 분명하기에, 그리고 언제나 위기에는 뭉치지만, 그 위기에서 벗어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탐욕 속으로 빠져드는 이기적인 역사의 반복을 끊어낼 조그만 힘일 것이기에 그의 그런 주장에 힘을 실어본다.

이번 위기가 우리 모두에게 구원의 기회이며, 혼돈스러운 세계화가 촉발할 수 있는 재앙 전의 마지막 경고임을 깨달을 수 있기를.
언젠가 닥쳐올 다음 위기가 아니라 바로 이번 기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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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춤 2009-02-26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크 아탈리를 비판하는 글도 함께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540855

광서방 2009-02-23 11:44   좋아요 0 | URL
탈춤 // 네. 확실히 그의 하이퍼 민주주의적 부분이나 몇몇 부분에서는 비판을 받을 만한 것은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올려주신 URL이 깨져있어서 정확히 어떤 부분이 비판받고 있는지는 확실히 알 수는 없습니다만 완벽한 이론은 사실 있을 수 없고, 그래서 사실 저도 그런 부분 때문에 후반부에 아쉬운 점을 들었던 거구요. 하지만 문제 의식을 가진 '영향력있는' 석학들이 많아질수록 역사의 반복을 끊을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은 늘어나지 않을까요. 소중한 덧글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