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 그리고 그 진실을 읽어내는 것. 진실의 의미는 진실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만 가서 닿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지어내는 말들은 금방 공중에 흩어집니다. 생명력이 없습니다.

반면 지금 느끼는 후회나 부끄러움 등의 감정을 잠시 뒤로 하고 진실을 쓴다면, 그 진실의 실체는 무엇이었는지, 다시 의미를 새겨보게된다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 «음악소설집»에 실린 이 단편을 읽었을 때는, 메모하지 않았던 내용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나는 그 노트를 꺼내 누운 채로 끄적였다. 기진이 죽은 뒤 새로 생긴 습관이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라면 다 적었다. 나는 그 노트에 진실만을 적기로 맹세했다. 아무리 형편없고 엉망이고 낯이 뜨거울 정도로 날 것의 문장이라고 해도 진실이라고 생각되면 다 적었다. 처음에는 나의 진실이란 원래 이렇게 부끄러운 것인가 싶었다. 쓴 것들을 다시 들춰볼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혹시 내가 죽기라도 해서 누가 이 기록들을 보게 될까봐 두렵기까지 했다. 그래서 쓰고 나면 그 즉시 찢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솟구쳤지만 나는 겨우 참았다. 그렇게 매일 아침마다 내가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적어내려갔다. 그게 진실이 맞다면, 나는 그걸 견뎌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는 안다. 그게 내게는 애도의 과정이었다는 사실을.

한 달 정도가 지난 뒤에야 나는 내가 쓴 것들을 다시 읽을 수 있었다. 쓸 때는 이해할 수 없었던 것들, 부끄러웠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자 새로운 의미로 내게 다가왔다. 일어난 일은 바뀌지 않았지만, 그사이에 그 일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이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나는 노트의 여백에다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을 적었다. 그러면서 진실을 쓰는 일이 왜 중요한지 알게 됐다. 진실되게 쓴 문장들만 새로운 의미를 얻었기 때문이다. 나는 한 번 썼던 내용을 여러 번 다시 쓰기도 했다. 그건 일기가 아니었을니까. 예를 들어 기진과 내가 처음 만났던 날에 대해 나는 여러 번 다시 섰다. 쓸 때마다 이야기는 조금씩 달라졌다. 그 당시에는 그 만남이 무엇을 뜻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무엇을 놓쳤는지 확실히 알게 됐다.

- <수면 위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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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인생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 그 일을 바라보는 눈이다.


- <우리 인생의 목격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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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어떤 에세이에서 양자역학에 대한 글을 읽는데, 관찰을 하면 과거가 달라진다는 문장이 나왔다. 중년의 고객를 오르는 게 너무 힘들었던 나는 그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살아온 삶을 바꿀 수만 있다면 관찰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뜻밖의 것이 내 관찰 대상이 됐다. 나는 날마다 떠오르는 해를 바라봤다. 불면증 때문이었다. 한밤중에 깨면 다시 잠들지 못하고 동틀 때까지 뒤척이게 마련이었는데, 그러느니 해뜨는 걸 보러 나가자고 생각한 것이다. 나는 매일 두세 시간씩 일출을 지켜봤다. 해는 무척 느린 속도로, 하지만 조금의 오차도 없이 떠올랐다. 그 관찰 덕분에 나는 인생의 중력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다.

- <우리 인생의 목격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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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한한 일입니다.
혹은 왜관이 환영한다는 뜻일까요?
혹은 공지영 작가처럼 왜관 손님의 집은 글쓰는 사람들과 인연이 깊은 걸까요?

김연수 작가의 신간을 기다리다가, 여름에 새 소설을 읽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곧 신간이 출간된다는 소식이 보고 바로 예약을 했어요. 예정된 날에 책이 도착했지만, 직장 일로 포장도 풀지 않고 있다가, 오늘 아침에 포장을 풀어 책을 챙겼습니다. 서울에서 왜관까지 기차로 와서, 점심먹고, 짐 풀고, 날이 너무 좋아 산책 겸 밖에 나가 이것저것 좀 챙기고, 책을 펼쳤습니다. 첫 날이니 책을 쓰기보다는 읽고 싶었습니다. 여러 권을 챙겨왔는데, 이 책 «눈 내리는 삼일포»를 가장 먼저 읽고 싶었습니다.

첫번째 소설 <우리 인생의 목격자>의 다섯번 째 페이지에 지명 ‘덕원’과 ‘왜관’이 나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왜관이 저를 환영하는 것 같습니다. ㅎ

* 공지영 작가의 «높고 푸른 사다리»도 덕원에 있던 수도원과 왜관 수도원 이야기가 나옵니다. 흥남부두에서 출발한 배를 타고 이북에서 거제도로 이주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중에 알게 됐습니다. 공 작가는 이 소설을 왜관 수도원 손님의 집에서 집필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 김연수 작가도 왜관 손님의 집에서 이 소설을 썼을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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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사나운 애착»을 읽고, 이전에 전자책으로 몇 번 시도했던 «끝나지 않은 일»을 종이책으로 빌렸습니다.

세상에.

오늘 다른 책들 사이에서 잘 챙겨둔 이 책을 발견했습니다. ㅎㅎ

더군다나, 2024년에 이 책을 읽고 북플에 기록을 남겼다는 것도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습니다. 이럴 때, 메모의 효용을 느끼기도 하지만, 기억이 얼마나 자의적인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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