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법무부 교정위원입니다»에 «그렇게 나무가 자란다»가 나와서 읽어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고정순 작가’의 책으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또 한 가지는, 챕터마다 어미가 다릅니다. 챕터별로 평어체와 경어체가 섞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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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국수집 서영남 대표님 말씀이 툭툭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시간과 행동이 쌓인 무게 때문이겠지요.

재소자들에 비하면 노숙인들은 참 여리고 착하다고 하시면서도, 노숙인들과 재소자, 출소자들을 모두 돌보십니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삶의 많은 시간을 함께 하셔서 그런지, 사랑을 담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해서인지 어떤 변화를 포착하시는 경험, 변화를 지켜본 긴 세월들이 따뜻하게 담겨 있습니다.

온전하게 내어놓는 마음이 아니라면 알아차리기 어려웠을 것이고 변화를 지켜볼 수가 없었겠지요.

사회의 궤도에서 이탈했다가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는 많은 이야기들이 서영남 대표님의 글에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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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살아온 세계에서 말은 자주 사람을 배신했다.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다짐은 오래가지 않았으며, "괜찮아질 거야"라는 말은 실제로 괜찮아진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러니 내가 아무리 성심껏 설명해도, 그들에게는 ‘현실과 동떨어진 책 속 말’로 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매일 아침 달력에 X표를 그었다. 그날 하루를 겨우 버텼다는, 일종의 ‘생존 기록’ 같은 표시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렇게 하루를 지운다는 건… 살아 있다는 증거 아닐까요." 그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선생님, 그런 말은 책에나 나와요." 그 웃음에는 비웃음도 공감도 없었다. 받아들이고는 싶지만 믿을 수 없는 사람의 표정이었다. 희망이 무서운 사람들. 희망을 품는 순간 더 크게 다칠까 봐 조심하는 사람들. 그래서 그는 말 대신 X표만 남겼다. 나는 그 벽을 단번에 뚫 자신이 없었다.

(...)

그럼에도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책에 있는 말이라도, 내가 현장에서 직접 확인한 말이라면 그것은 ‘진짜 말’이 될 수 있다. 그래서 교과서의 문장을 앞세우지 않고 그의 말을 먼저 따라가 보기로 했다. "그렇군요. 날짜를 지우는 데… 본인만의 의미가 있네요." 내 의견이 아닌, 그의 경험이 먼저였다.
몇 주 뒤 그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요즘은 X 대신 O로 표시해요." 내가 고개를 들자 그는 약간 쑥스러운 얼굴로 덧붙였다. "하루를 지운다는 느낌보다… 살아냈다고 기록하는 게 더 나은 것 같아서요." 그 말은 그가 스스로 만들어낸 변화였다. 내가 준 문장을 반복한 것이 아니라, 그가 자신의 언어로 다시 해석한 문장이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치료는 정답을 알려주는 일이 아니라, 상대가 자기 답을 찾도록 옆에서 버티는 일이라는 것. 마음의 속도를 억지로 앞당기지 않고, 그가 스스로 움직일 때까지 함께 그 자리에 머무는 일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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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감정이 없는 사람도, 관계에 무관심한 사람도 아니었다. 오히려 관계가 쉽게 흔들리지 않도록 조심스럽고, 섬세하고, 생각이 많았다. 편견은 대상을 잘 몰라서 생기기도 하지만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한 사람을 판단할 때 더 쉽게 생긴다. 죄명, 기록, 숫자 같은 정보들은 사람을 설명하는 조각일 뿐 전체가 아니었다.
초기 만남에서 내가 배운 건 그 사실이었다. 이곳은 ‘통제된 공간’이기 전에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이고, 내가 마주하는 사람들은 줄어든 자유 안에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관계를 만들고 있었다. 나는 그 흐름을 ‘해석’하려 하기보다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조금씩 배워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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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옆에 있다는 게 이렇게 힘이 되는 줄 몰랐습니다."
그 문장은 ‘동행’이라는 요소가 심리적 회복의 전제 조건이 될 수 있음을 다시 확인시켜주었다.
이곳에서 나는 상담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상담은 기술 이전에 태도이며, 해결 이전에 관계이다. ‘존재해주는 일’은 무엇을 말했는가보다 어떤 상태로 그 자리에 있었는가의 문제이다. 특히 정서적 방어가 강한 사람일수록 기술적 개입보다 ‘정서적 안정감’과 ‘예측 가능한 태도’가 우선되어야 한다. 말이 떠오르지 않는 날에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 날에도, 나는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날들조차 누군가에게는 기억되는 시간이었다.
심리치료는 때로 큰 변화를 만드는 과정이 아니라 관계를 안전하게 유지하는 시간들로 구성된다. 그 시간들이 쌓일 때 비로소 변화의 조건이 마련된다.
그것이 내가 이곳에서 배운 ‘존재 기반의 치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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