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맘대로 하든지." 나하는 짓이 어찌나 마음에 안 드는지 목소리까지 떨린다. 엄마의 오만, 엄마의 경멸. 엄마에게서 결코 떨어지지 않을 기질. 절대적으로 엄마 곁에 머물러 있을 것들. 언어의 상징이요 존재의 숙어로 이것들이야말로 엄마의 자아를 완성한다고 믿는다. 타인을 경멸하고 무시하는 건 불쾌한 일에서 헤어나는 엄마만의 방식, 당신과 타인을 분리하는 방법, 옳고 그름을 아는 방법, 당신의 주장이 잘못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방식이다. 그 순간 엄마의 삶이 이해되면서 묵직한 돌이 가슴을 짓누르는 것만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비비언 고닉 작가는 이 책을 왜 쓰게 됐을까, 궁금했습니다.

그날 저녁 내내 슬프고 고요하고 무거운 무언가가 줄곧 엄마에게 내려앉아 있는 것만 같았다. 오늘 밤 엄마는 무척 어여쁘게 보인다. 결이 고운 흰머리, 보드라운 피부, 그 자체로 완벽한 작품처럼 보이는 주름지고 지친 노인의 얼굴. 하지만 지난 세월은 엄마를 엄마만의 세계로 끌고 가고 눈에는 다시 그 혼란이 찾아온다. 엄마를 놓아주지 않는 저 끈질긴 삶이라는 혼란.

"인생이 연기처럼 사라지네." 엄마는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저미는 듯해 그 고통을 감히 느낄 수조차 없을 것 같다. "정말 그렇네." 하는 높낮이 없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제대로 살지도 않았는데. 세월만 가버려."

엄마의 부드러운 얼굴이 결심이라도 선 듯 확고하고 단단해진다. 나를 보더니 강철 같은 목소리로, 이디시어로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네가 다 써봐라. 처음부터 끝까지, 잃어버린 걸 다 써야 해."

우리는 말없이 앉아 있다. 우리는 끈끈하게 얽힌 혈육이 아니다. 살면서 놓친 그 모든 것과 연기 같은 인생을 그저 바라보는 두 여자다. 엄마는 젊어 보이지도 늙어 보이지도 않고 그저 당신이 목도하고 있는 바, 그 혹독한 진실에 깊이 침윤되어 있다. 엄마한테 내가 어떻게 보일는지는 나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시티칼리지에 다니는 학생 대부분이 그랬을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지하철을 타고 공강 시간이면 익히 아는 거리를 걷고 매일 저녁 익히 아는 동네로 돌아가 고등학교 때 친구와 만난 다음 자던 침대로 들어가서 잠을 잔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도 모르게 머릿속 세상 안에서 살아가기 시작했다. 머리가 읽고 말하고 생각하는 방식은 부모나 집에서의 생활, 그 익숙한 거리의 삶과 철저하게 멀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속으로 숨기는 생각과 겉으로 표현하는 생각의 차이를 처음 소개받았고 하나씩 익혀 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각자의 집안에서 불순분자가 되어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아마도 성당이 가톨릭 교회였다면
“단상”은 “제대”가 아닐까,
“성찬을 하는 건”은 “영성체를 하는 건” 혹은 “성체를 모시는 건”이 아닐까 합니다.

중독자가 다시 중독물을 찾듯이 성당찾기는 몇 번씩 반복되곤 했으나 단상 가까이 가서 무릎을 꿇는다거나 성찬을 하는 건 자신의 권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그러니, 장례식장에서는, 장례가 막 끝난 뒤에는, 그저 위로하는 말 외에는 하지 않는 게 좋을지도 모릅니다.

진실이라고 하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충분히 느낄 기회를 빼앗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빠는 닷새 동안 세 번의 심장발작을 일으켰고 마지막 발작이 아빠의 생명을 앗아갔다. 쉰한 살이었다. 그때 엄마는 마흔여섯, 오빠는 열아홉, 나는 열세 살이었다.

(...)

나는 스스로를 엄마가 상중에 펼친 이 요란스러운 드라마의 소품 정도로 여겼다. 상관없었다.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할지 알 수 없었고 그걸 알아낼 시간도 없었다. 사실 무섭고 겁이 났다. 그리고 겁먹기를 거부하지도 않았다. 이런 상황을 겪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적절하고 마땅한 반응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겁먹은 사람은 누구보다 책임감으로 무장할 수 있다. 일단, 그 상태로 나는 엄마에게서 잠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울지도 않았다. 단 한 방울의 눈물도 안 흘렸다. 어떤 아줌마는 나를 보며 이렇게 중얼거리기도 했다. "정상적이진 않네." 그 말을 듣고 이렇게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빠는 우리 곁을 떠났고 보아하니 엄마도 오늘내일하는 것 같다. 내가 울면 엄마를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내가 보지 않으면 엄마는 눈앞에서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면 나는 그야말로 천에 고아가 된다. 그런 의식적인 집착으로 엄마를 내 시야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