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고 나니, 몇 가지 생각이 떠오릅니다.

어떤 친구는 오래전부터, 자주 나이 이야기를 합니다. ‘나이 들어서 그래요’, ‘우리가 나이 들었나봐요’ 등. 한때는 그런 대화가 매우 불편했습니다. 각자의 운명은 알 수가 없지만, 통계적으로 볼 때 황혼에 접어들기에는 아직도 한참 남은 나이였으니까요. 또, 살아가는 동안 계속 나이가 들어갈 수 밖에 없는 운명인데, 왜 자꾸 나이 이야기를 하는지, 왜 나이가 제약인 듯 이야기하는 지 잘 이해가 되진 않았습니다. 나이를 떠나서 내가 더욱 커가는 이야기, 넓고, 깊어진 이야기, 진흙탕에 굴렀던 이야기, 진흙이 묻었지만 결국은 깨끗하게 닦아낸 이야기, 살면서 내가 접한 세상, 신기하고 재미있었던 이야기를 더욱 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언젠가 ‘자꾸 나이 이야기를 안 했으면 좋겠다’고 직접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렇다고 그 후의 만남에서 ‘나이’ 이야기가 안 나온 적은 없습니다만, 이제는 크게 상관하지 않게 됐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 모든 과정이 친구는 자신을 꽤 사랑하고, 자신이 겪는 모든 것에 긍정적은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나이가 들어서’라는 클리셰 같은 표현을 자주 썼지만, 혹은 도입부 감탄사처럼 사용했지만 자신에게 일어나는 변화를 아주 잘 감지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이 책에서 작가는 소설의 등장인물들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되고, 그들의 모습으로부터 자신을 돌아보는 내용도 들어있습니다. 결국, 누구를 이해한다는 것은, 나를, 나 자신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한 가지는,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보는 게 달라진다는 생각입니다. 주변에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누구라도 ‘내가 다 알아’라는 식의 대화는, 호기심 많은 사람에게는 비호감으로 다가옵니다. ‘아,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대환영입니다. 누구나 비가역으로 지나는 시간 속에서, 나에게 온 시간, 내가 지나간 시간 속에서 경험한 것들은 나를 키울 수도 있고, 반대로 나를 작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책에 나온 작가의 깨달음에 대한 내용은, 지금은 구체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지만 - 대부분 읽지 않은 책들입니다 - 그래도, 사람은 누구나 죽을 때까지 성장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므로, 80대의 작가가 그동안 읽은 책을 다시 읽고 새로 느낀 점을 나누는 것은 아주 감사할 일이지, 일어날 수 없다거나, 이 작가만 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생, 죽을 때까지 더 넓고 깊은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것이 이 지구에 와서 살다가는 인생으로서 해야할 일이 아닐까 합니다.

아직까지는 완고하게 버티기도 하고, 상대에게 탓을 하기도 했지만, 한 발 더 뒤로 물러나서 보자면,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기도 하고, 또 어떤 상황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고 동의가 되기도 합니다. 그렇게 해야 하느냐, 안 해야 하느냐는 당위로 가기 전에, 처음 든 생각은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 부디, 작가의 다음 책에 등장하는 텍스트는, 본 텍스트가 조금 더 많기를 바래봅니다.

** 살면서 갖는 바램 중의 하나, 잘 나이드는 것입니다.

*** (잡담) ‘None of your business‘라는 영어 표현이 생각났습니다. 이 책의 원제는 «Unfinished Business : Notes of a Chronic Re-reader»입니다. ‘아직 내가 해야 할 일이 끝나지 않았다’는 의미일까요? ‘My Unfinished Business‘가 아니고 혹은 ’The Unfinished Business‘가 아닌 이유는, 이 작업은, 이 일은 모두에게 해당하는 일이기 때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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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여 만에 다 읽었습니다. (2024.8월 ~ 2026.10월)

«사나운 애착»을 읽었지만 «짝없는 여자와 도시»를 먼저 읽는게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끝나지 않은 일»은 작가가 어릴 때 읽었던 책을, 소설을 다시 읽으며 새롭게 의미를 되새기는 작업입니다. 그런데, 이 책에 나오는 소설 대부분을 읽지 않아서, 그럴 것이다,라는 짐작만 합니다.

그럼에도, 죽는 날까지 텍스트를 보면서 의미를 되새기는 작업을 할 수 있다면, 운이 좋은 인생이 아닐까 합니다.

* 20대에 좋아했던 음악, 영화, 드라마를 여러 번 듣고 보다가 마음에서 멀어진 적이 있습니다. 먼저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를 좋아해서 당시 DVD까지 구매했습니다. 이나영 배우가 연기한 전경 역이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몇 번 보다보니, 고복수와의 사랑이 정말 아름다운 사랑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고복수의 아버지는 왜 그렇게 여린 사람이었는지, 전경의 아버지는 전경의 엄마를 왜 그렇게 좋아했는지 그러면서도 자신의 딸에게는 왜 그렇게 함부로 했는지 등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지금 다시 보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무엇보다 고복수와 전경이 서로 사랑하게 되는 전개가 와닿지 않게 됐습니다. 7번 이상을 본 영화 <러브레터>도 4, 5번 즈음 볼 때부터, 이게 이렇게 아련하게 그려질 사랑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랑’의 관념에 사로잡힌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더 이상 훗카이도의 눈덮인 산에서 외치는 “오겡끼 데스까”가 아름답고 애틋하게 들리지 않았습니다. 가요는 토이의 노래들입니다. 유희열씨가 작사 작곡한 곡을 객원 가수들이 불렀고, 공부하면서 배경음악처럼 계속 틀어두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친구들 덕분에 아주 여러 번 들었는데요, 그로부터 아주 한참 뒤에, 문득, 토이 노래는 상대 여성을 사랑한다기 보다 떠난 연인을 잊지 못하는 자신을 사랑하는 노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직장 생활을 한참 하고나서 든 생각입니다. 그러니까, 정말로 상대를 사랑할 수 있겠지만, 나르시시스트 같이 상대를 그토록 사랑하고 못 잊는 내 모습이 노래의 주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누구나 각자의 인생에서 꼭 자신 만큼은 책을 좋아하겠지요. 비교를 하지 않는다면요. 당연히 비교할 필요가 없겠지요. 그럼에도 죽기 전에 비비언 고닉 작가가 80대에 느낀 이런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 메모하려고 했던 구절을 2024년 8월에 기록해두었네요.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나 봅니다. 아마도 한 십년 혹은 이십년 즈음 후에 다시 읽어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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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
존중,
따스함,
친절,
배려,
품위,
...

이런 단어들을 생활하면서 접해본 지가 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가끔 선생님과는 따스함, 친절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품위와 우아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눕니다.

몇몇 사람들 외에는 대화에 이런 단어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또, 언론에서도 이런 단어가 언제 나왔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살면서 경건함을 느낀다는 것은, 자신보다 더 큰 존재가 있음을, 더 숭고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겠지요.

살면서 상대방을 존중한다는 것은, 상대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말은 부드럽게 하는 것 같지만, 이미 결론을 내렸거나 혹은 앵무새처럼 같은 말만 반복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상대를 전체적으로 보지 않는다면, 상대에 대한 존중은 어렵겠지요.

따스함과 친절은 이제 꽤 목적을 가진 행위가 되고 있습니다. 누구에겐가 잘 보이기 위한 행동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따스함이나 친절은 운이 좋은 사람이라면, 또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후의로 지금 잘 지내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른 이들에게 전달하고 싶어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품위. 어른은 잔소리나 말을 많이 하는 것으로 품위가 전달되지는 않을 겁니다. 어떤 상황에서 젊은 사람들과는 다르게 크게 동요하지 않거나, 젊은 사람들은 미처 떠올리지 못한 방법으로 해석하고 풀어가는 데서 어른의 품위가 느껴지겠지요.

신자유주의는 이런 가치들을 무력화시켰습니다. 어쩌면 굉장히 단조롭게 모든 것을 돈으로 치환해버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수평적‘이라는 것은 ’존중‘의 다른 형태일 텐데, 상대의 경험이나 사고의 폭이나 깊이를 알지 못하면서도, 그냥 맞먹는 게 ’수평적‘이라는 것으로 굳어진 것 같습니다. 기울기를 인식하는 것은 경제력일 때가 많습니다.

따스함과 친절은 약점이 되기도 합니다. 누군가 따스하고 친절하다면, 제칠 수 있는 사람으로 인식이 되기도 합니다.

경건, 존중, 따스함, 친절, 그리고 품위는 이제 점점 희미해져가고 있습니다.

* ‘배려’를 추가했습니다.
김애란 작가의 새 산문집에서 ‘품위와 배려’라는 문구를 보고 반가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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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편 소설집에는 시간 여행, 과거와 미래 사이의 연관성에 대한 글이 많습니다.

한편으로는 우리의 삶에서 먼저 살다가 어떤 사람에게 후의를 입었다는 것을 떠올리게 합니다. 때로는 아는 사람들에게도 후의를 입겠지요.

시간 뿐 아니라 사람들과 연관된 우리의 삶에 대해, “울고 있지만 울고 있지만은 않는”이라는 문장이, 그래도 가만히 있지 말고 무엇이든 해봐야겠다는 메시지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연수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가 다음 작품에서 보다 더 명확해지지 않을까 하고, 기다려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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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음에 나올 책이 기다려집니다. 아마도 장편소설이지 않을까하는 “조금 뒤의 세계”를 떠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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