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
존중,
따스함,
친절,
배려,
품위,
...

이런 단어들을 생활하면서 접해본 지가 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가끔 선생님과는 따스함, 친절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품위와 우아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눕니다.

몇몇 사람들 외에는 대화에 이런 단어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또, 언론에서도 이런 단어가 언제 나왔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살면서 경건함을 느낀다는 것은, 자신보다 더 큰 존재가 있음을, 더 숭고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겠지요.

살면서 상대방을 존중한다는 것은, 상대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말은 부드럽게 하는 것 같지만, 이미 결론을 내렸거나 혹은 앵무새처럼 같은 말만 반복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상대를 전체적으로 보지 않는다면, 상대에 대한 존중은 어렵겠지요.

따스함과 친절은 이제 꽤 목적을 가진 행위가 되고 있습니다. 누구에겐가 잘 보이기 위한 행동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따스함이나 친절은 운이 좋은 사람이라면, 또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후의로 지금 잘 지내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른 이들에게 전달하고 싶어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품위. 어른은 잔소리나 말을 많이 하는 것으로 품위가 전달되지는 않을 겁니다. 어떤 상황에서 젊은 사람들과는 다르게 크게 동요하지 않거나, 젊은 사람들은 미처 떠올리지 못한 방법으로 해석하고 풀어가는 데서 어른의 품위가 느껴지겠지요.

신자유주의는 이런 가치들을 무력화시켰습니다. 어쩌면 굉장히 단조롭게 모든 것을 돈으로 치환해버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수평적‘이라는 것은 ’존중‘의 다른 형태일 텐데, 상대의 경험이나 사고의 폭이나 깊이를 알지 못하면서도, 그냥 맞먹는 게 ’수평적‘이라는 것으로 굳어진 것 같습니다. 기울기를 인식하는 것은 경제력일 때가 많습니다.

따스함과 친절은 약점이 되기도 합니다. 누군가 따스하고 친절하다면, 제칠 수 있는 사람으로 인식이 되기도 합니다.

경건, 존중, 따스함, 친절, 그리고 품위는 이제 점점 희미해져가고 있습니다.

* ‘배려’를 추가했습니다.
김애란 작가의 새 산문집에서 ‘품위와 배려’라는 문구를 보고 반가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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