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자매가 셋이라 서로 자주 물건을 바꿔 썼다.
철이 바뀔 때이거나 대청소를 할 때면 싫증 난 옷이나 벨트, 가방 등을 동생들에게 물려주기도 하고, 새 손수건 두 장과 맞바꾸기도 했다. 장녀였기 때문에 그런 건 손 크게 베풀었는데, 며칠 지나서 내가 물려준 옷을 동생들이 나보다 더 잘 입고 다니거나 하면 슬쩍 배가 아파오기도 했다. 너무 성급했다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미안한데 내가 착각했지 뭐야. 그거, 돌려주지 않을래? 대신 다른 걸 줄 게."
그렇게 말하고 다시 돌려받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돌아오는 동생들의 경멸에 찬 시선도 그렇고, 또 내 나이를 생각해서 요즘은 돌려받는 짓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잘 어울리는데? 역시 좋은 옷은 뭐가 달라도 달라. 제법 품격있어 보인다."
그렇게 입에 발린 말도 하고 생색을 내기도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을 때 어째서 저렇게 좋은 걸 몰랐나 하며 한참을 아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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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 가장 질렸을 때는, 술에 취해 돌아와 "뭐야, 이게. 큰소리칠 거리가 하나도 없잖아" 하며 화를 냈을 때였다.
그때 우리들이 자다 일어나 아버지를 맞이하러 현관에 나갔더니 당신이 생각하기에도 억지다 싶었는지 "애들은 나올 필요 없다. 애비 사나운 꼴은 보지 않아도 된다고!" 하며 고함을 질러댔다.

- <오늘은 잘 쓰긴 틀렸어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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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스타일이냐구요?
먹는데 관심이 많지만 먹기위해 일부러 어디를 가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근처에 간 김에 먹습니다.

여행도 비슷합니다. 갈 곳을 먼저 정하고, 간 김에 들러볼 수 있는 식당을 찾는 편입니다.

요새 나오는 식당에 관한 책들은, 식당에 촛점을 둔 경우가 많습니다. «떡볶이 순례», «전국 김밥 일주» 등을 보면, 아직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구나 생각합니다.

본업을 먼저 하고 그 다음 한끼를 먹는 «고독한 미식가»와 «경양식집에서» 등을 쓴 조영권 피아노 조율사의 방식에 더 가깝습니다.

이런 책이나 영상을 보기 시작한 지는 오래됐지만, 그 전부터 시작됐습니다. 먹는 것이 제일의 이유는 아니지만, 먹는 것을 가벼이 여기지 않고, 대체로 건너뛰지도 않습니다.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게 주는 자유가 있습니다. 큰 범위이든 작은 범위이든. 실패를 했을 때 감당할 수 있는 범위도 선택을 가볍게 여길 수 있는 자유에 해당할 겁니다.

SNS에 올라오는 여러 인증샷과 추천을 보면, 더 풍성할 수 있는 시대에 자유를 가두어놓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다가, 어쩜 우리에겐 다양한 시도를 해 볼 만큼의 선택지가 없는채 지내고 있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다양한 경험이 토대가 되면, 어떤 일이 중요하고 어떤 일은 그다지 큰 일이 아닌지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버티면 되는지도. 아쉬움도 인생의 일부이니까요.

그러고 나니, 두 책이 다르게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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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TV와 언론에서 이세돌 9단이 나와 2016년 알파고 대전 이후 십년 동안 AI가 바둑에 미친 영향과 현재의 대응 방향에 대해 의견을 밝히는 프로그램들이 기획되고 방영됐습니다.

그 출발을 2016년으로 봤습니다. 당시 4국을 보면서 이세돌 9단이 더 이기기를 막연하게 응원했습니다. 하지만 이세돌 9단 뿐 아니라 대국을 보는 사람들도 이 대국이 얼마나 불공정한 대국아었는지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대리로 수를 두는 사람 뒤에 최소한 몇 만 명이 동시에 상황을 파악하고 작전을 짜는 상황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알파고가 처리할 수 있는 연산의 범위에 대해 생각조차도 하지 못할 정도로 저는 아는게 없었습니다. 그리고 얼마전 «이세돌의 수읽기»에서 밝힌 ‘버그를 유도해’ 4국에서 이겼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그리고 버그를 유도했던 결정적인 수는 78수가 아니라 68수라는 것도.

그리고 이렇게 불공정한 이벤트를 치르게 된 원인을 구글과 딥마인드로 생각했고, 두 회사에 대해 불쾌하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특히, 구글에 대해서는 그 사이 «감시 자본주의의 시대» 등을 보면서 만행을 알게됐습니다.

지난 3월, 딥마인드의 데미스 하사비스에 대한 영문 책이 출간됐습니다. 아직 앞부분을 읽고 있는데, 알파고 대전으로 가졌던 생각이 조금 달라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흥미로운 내용은 하사비스가 일론 머스크만큼 다른 사람을 잘 설득시킬 수 있는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다른 사람을 통제하고 지배하는 것은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글과 결별을 시도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던 일에 대해서도 나와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릴 때 체스에 재능이 있어 체스 대회에 나갔었다는 것, 회사에 다니며 만들었던 게임이 철학적인 내용이었고 선과 악을 다루었다는 것, 대학에 가서 바둑에 시간을 꽤 보냈다는 것, 회사를 차려서 게임을 만들었지만 돈을 벌지 못해 다시 학교로 돌아간 것 등이 흥미로웠습니다. 재능이 많지만 과시를 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렸다고 합니다. 아직까지는 ’사람을 위한 AI‘를 추구했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동시대를 살면서 동시대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준 사건들의 출발과 전개를 보는 것은 늘 흥미롭습니다. 언론이나 경영 업계는 제한된 정보로 자신들의 우위를 드러낼 수 있을 만큼만 공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어떤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면서 어떤 의사결정을 했는지 알아보는 것은 앞으로 올 내일과 그 내일을 만들어갈 사람들을 알아보는데, 맥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올해는 이 책을 통해 AI로 노벨상까지 받은 하사비스라는 재능이 뛰어난 인물과 그와 함께 사업을 한 구글이 세계에 끼친 영향, 사람 중심으로 AI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과학자로서의 호기심으로 어떤 일들을 해왔는지 알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구글과 달리 하사비스는, 딥마인드는 변질하지 않았을지 궁금해졌습니다. 물론 마지막까지 읽기 전에는 이 책이 꽉 찬 책인지 아닌지 알 수 없겠지요.

* 일론 머스크와 오픈AI간의 법적 다툼이 빠르면 이번 달 안에 결정이 난다고 합니다. 오픈 AI도 처음에는 비영리를 추그했지만, MS와 더불어 사업적으로, 영리 목적으로 AI를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머스크도 초기에는 분명 AI와 같은 기술은 비영리를 목적으로 개발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는데, 영리화하는 것에 대해서는 입장이 왔다갔다 했다고 합니다. AI가 다스릴 세상에 대해 아주 꺼리는 입장은 그대로이겠지만, 어느 선까지는 안전하면서도 돈을 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요? 여러모로 흥미로운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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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 대해 생각합니다.

멀리 떠나는 것이 여행일까요? 해외 출장은 어떤 형태일지 모르지만 비즈니스 미팅을 우선으로 해, 사전에 일정과 묵을 곳 등을 정하고 간다면 대체로 그 나라에 대해서 제한적인 경험을 할 겁니다. 패키지로 가는 여행도 진정한 여행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수 있겠습니다.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은 맞지만 보는 것과 먹는 것 등이 다를 뿐, 약자로서의 경험은 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거주지에서 산다는 것은 평소에 무게중심이 꽤 분산된 삶을 사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어디에서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야하고, 교통카드가 있고, 등등을 익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주지가 있다면 짐을 모두 들고다니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포함됩니다. 좀 더 생각해보면, 내가 좋아하는 음식점이 있고, 이럴 때 가기 좋은 장소를 알고 있고, 어떤 영화를 상영하고 영화를 보려면 어느 시간대, 어느 극장이 덜 붐비는지, 어떻게 하면 좋은 가격으로 표를 구할 수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전시는 어디가 어떤 전시를 하고, 전시를 다 보기까지 대체로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는 지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행은 스스로를 약자로 만드는 시간입니다. 성경에 여행자들, 이방인들에게 잘 대해야 한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약자이기 때문일겁니다. 늘 짐을 많이 들고 다니는 노숙인들도 모든 무게중심을 떠안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요즘의 여행은 사전에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 대체로 신용카드로 결제가 가능하다는 것, 데이터를 사용할 수 있다면 실시간으로 정보를 찾거나 번역을 해 볼 수도 있습니다. 무게중심을 일부 분산시킬 수 있는 겁니다.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분산시킬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짐들은 맡길 데가 없어 끌고 메고 다녀야 하고, 어디로 가야할지, 어디서 차를 타야 하는지, 몇 번을 타야 하는지, 목적지는 오늘 쉬는지 안 쉬는지, 지금은 어떤 과일이 맛있는지, 어디 과일이 맛있는지 등등 모든 사소하고 별일 아니었던 행동들을 하나하나 처음 배우듯 해야 합니다. 그러니 이런 여행과 패키지는 입장이 전혀 다릅니다. 우리는 편하고 안전하다는 이유로 패키지를 선택하지만, 그로 인해 여행에서 날 것으로 경험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버리는 셈입니다.

기업의 총수들, C레벨들도 이런 여행을 다녀보기를 권합니다. 누군가 다 정해준 일정을 소화하는 것은 장소만 옮겨서 같은 행위를 반복하는 것일 뿐, 그 나라의 교통체계가 어떤지, 유통 체계는 어떤지 등을 체험하기 어려운 만큼 또다시 추려진 정보만 접하게 될 뿐이니까요. 약자가 되면 모든 감각이 열리는, 동시에 내가 이곳에서 얼마나 낯설고 무능력한 존재인가라는 한시적인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평생 경험해보지 못했을 혹은 꽤 오랜동안 경험해보지 못했을 시간일겁니다.

* 옛날 임금들 중에 암행을 다녔던 이야가도 종종 듣습니다. 라이트노벨이 원작인 만화 <약사의 혼잣말>에는 환관으로 알려진 권세있는 인물이 저잣거리에 나갈 때, 저잣거리에서 살았던 궁녀가 지적하는 포인트가 있습니다. 아무리 옷을 허름하게 입어도 향기와 머릿결이 다르다는 겁니다.

* 몇 차례 현지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한다고 달라질 건 없을 겁니다. 그래도 이 나라가, 이 도시가 어떻게 체계를 갖추고 운영되는지를 체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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