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적어도 나로서는, 소설가로서 오랜 세월에 걸쳐 소설을 계속 써오면서, 동시에 누군가로부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대상이 되는 일이 가능하다고는 여간해서 생각하기 어렵다. 누군가로부터 미움을 받거나 증오를 받거나 경멸을 당하는 그런 쪽이, 자연스러운 일처럼 생각된다. 나는 그런 일을 당하면 안도하게 된다, 라고까지 말할 생각은 없다. 나라고 해서 타인에게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것을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화가 나면 그만큼 자기 자신에 대해 분풀이를 하면 된다. 분한 일을 당하면 그만큼 자신을 단련하면 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왔다. 말없이 수긍할 수 있는 일은 몽땅 그대로 자신의 마음속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되도록이면 그 모습이나 형태를 크게 변화시켜) 소설이라고 하는 그릇 속에 이야기의 일부로 쏟아붓기 위해 노력해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제의 자신이 지닌 약점을 조금이라도 극복해가는 것, 그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장거리 달리기에 있어서 이겨내야 할 상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과거의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장편소설을 쓰고 있을 때와 똑같은 요령이다. 더 쓸 만하다고 생각될 때 과감하게 펜을 놓는다. 그렇게 하면 다음 날 집필을 시작할 때 편해진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아마 비슷한 이야기를 썼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계속하는 것 - 리듬을 단절하지 않는 것. 장기적인 작업을 하는 데에는 그것이 중요하다. 일단 리듬이 설정되어지기만 하면, 그 뒤는 어떻게든 풀려 나간다. 그러나 탄력을 받은 바퀴가 일정한 속도로 확실하게 돌아가기 시작할 때까지는 계속 가속하는 힘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주의를 기울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달리기와 농구를 좋아하는 오랜 친구가 추천해 준 책입니다.

«상실의 시대»를 읽고 무라카미 하루키는 저에게 기피작가가 됐습니다.

작가가 유명하다보니 에세이나 소설 등 선물도 꽤 많이 받았어요. 가벼운 에세이는 몇 개 읽었고 음악에 대한 에세이는 음악을 들으면서 읽다가 중단한 상태입니다. ㅎㅎ

가볍게 달리기에 대한 글을 읽으려고 합니다.

* 아, 에세이 중에도 별로인 내용이 있었어요. 여행갈 때 버릴 옷을 챙겨간다고 하는데... 생활인으로는 재밌지만, 그래도 여행 간 곳에 어쩔 수 없는 게 아닌, 계획한 쓰레기는 두고 오고 싶지 않거든요. 왠지 내 일을, 내 짐을 남에게 맡기는 기분이라서요. ㅎㅎㅎ 그래도 신선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어요.

** 이러저러해도 무라카미 하루키는 대학 시절부터 늘 존재해 오고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