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불가능 자본주의»는 ‘기후 위기’가 우리의 삶과 직결되어 있고, 이는 ‘착하고’ ‘무해한’ 사람들의 주장만이 아니라 마르크스와 같은 경제사상가도 똑같이 중요하게 생각했음을 알려줍니다.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좋은 키워드가 많이 나옵니다. ‘가치와 사용가치의 대립’ 등. 과학철학 수업에서 알게된 로저 펜로즈와 과학과 인지철학이 맞닿아 있다는 것처럼,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의 내용도 새롭게 느껴집니다. 몇 장 넘기다 말았던 «플래닛 아쿠아»를 이어서 보고 싶습니다.
자본의 포섭이 완성됨으로써 자율성과 살아가기 위한 기술을 빼앗긴 우리는 상품과 화폐의 힘에 기대지 않으면 생존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생활의 쾌적함에 익숙해진 나머지 다른 세계를 상상하는 힘까지 잃고 말았다. 미국의 마르크스주의자 해리 브래이버만의 말을 빌리면, 사회 전체가 자본에 포섭된 결과 ‘구상’과 ‘실행’의 통일이 해체된 것이다. 무슨 뜻인지 간단히 설명하겠다. 본래 인간의 노동에서는 ‘구상’과 ‘실행’이 통일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직공은 머릿속으로 의자를 만들겠다고 구상한 다음 대패와 정 같은 도구를 사용해 실현한다. 이 노동 과정에는 하나의 통일된 흐름이 존재한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2020년 6월 21일 엘리자베트 보른 환경장관에게 제출한 프랑스 시민의회의 결론이다. 추첨으로 뽑힌 시민 150명은 기후 변화 방지를 위해 대략 150가지 대책안을 제출했다. 그중에는 2025년부터 비행장 신설 금지, 항공기 국내선 폐지, 자동차 광고 금지, 기후 변화 대책용 부유세 도입 등이 있었다. 나아가 헌법에 기후 변화 대책을 명기하는 것과 ‘에코사이드 ecocide죄’* 시행 여부를 국민투표로 결정하자는 요구도 담겨있었다. * 에코사이드란 생태계를 대규모로 파괴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말이며 ‘생태학살’이라 옮기기도 한다.
‘희유금속’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일반적으로 언론에 나오는 단어로는 ‘희토류‘인 것 같습니다. 일본어와 우리 말 표현이 다른 건지, 이렇게 번역한 이유가 궁금해집니다.
저자는 이 책을 아주 쉽게 써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한 것 같습니다. 어떤 책들은 잘 안 읽히는데, 그럴 땐 일단 끝까지 책장을 넘겨보라던 누군가의 말이 생각납니다. 한참 전 대학생 때, 평소 접할일이 적었던 역사/사회과학 책을 읽을 때 들었는데, 눈에 들어오지 않는 책을 읽을 때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아마도 이 책을 필자만큼 이해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그래도 두 번째 읽으니 좀 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