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트라 마라톤으로 100km 를 달리고 나서 러너스 블루를 겪었다고 하는데, 어떤 것에, 어떤 일에 물리는 경험이 떠올랐습니다.

호기심이 많다는 것과 꾸준하다는 것은 양립할 수 없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꼭 그렇지 않을 수 있겠습니다.

호기심의 대상이 바뀌더라도 꾸준하게 호기심을 가질 수는 있을 테니까요.

카디건스의 <Sick and tired>라는 곡이 떠올랐어요.

시간이 지나면 한때 강렬하고 꽉찼던 경험과 기억이 희미해지겠지요. 그러면 다시 어떤 걸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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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종일각»을 읽고 있어요.

드라마 <유나의 거리>가 생각납니다.

지금은 낯선 유머코드가 있지만,
다양한 세입자들이 이어가는 얘기가 재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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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할 것도 없이 언젠가 사람은 패배한다. 육체는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쇠잔해간다. 빠르건 늦건 패퇴하고 소멸한다. 육체가 시들면 (우선 아마도) 정신도 갈 곳을 잃고 만다. 그와 같은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지점을 - 결국 내 활력이 독소에 패배해서 뒤처지고 마는 지점을 - 조금이라도 뒤로 미룰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것이 소설가로서 내가 목표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지금의 나에게는 ‘쇠퇴해 있을’ 겨를이 없다. 그러니만큼 "저런 자는 예술가가 아니다"라고 누가 말한다 해도 나는 계속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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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어떤 종류의 프로세스는 아무리 애를 써도 변경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 프로세스와 어느 모로나 공존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가정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집요한 반복에 의해 자신을 변형시키고(혹은 일그러뜨려서), 그 프로세스를 자신의 인격의 일부로서 수용할 수 밖에 없다.
아,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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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도 미리 말했지만, 나는 지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은 아니다. 진다는 것은 어느 정도 피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든 영원히 이기기만 할 수 없다. 인생이라는 고속도로에서 추월 차선만 계속 달려갈 수는 없다. 그러나 그와는 별개로 똑같은 실패를 몇 번이나 되풀이하고 싶지는 않다. 하나의 실패에서 뭔가를 배워서 다음 기회에 그 교훈을 살리고 싶다. 적어도 그러한 생활 방식을 계속하는 것이 능력적으로 허용되는 동안 그렇게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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