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마인드에서 바둑을 AI로 개발한 것은, 연습용으로 알고 있어요. 궁극적인 목적은 복잡한 경우의 수를 빠르게 연산해서 최적의 결과를 내놓는 것.
단백질 합성에 알파고에서 시험한 알고리즘을 적용했다고 들었어요.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했고, 그 공로로 하사비스가 노벨상을 받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 알파폴드와 노벨화학상 수상에 관한 얘기가 111페이지에 나옵니다. 그러나, 알파고의 경우의 수 알고리즘이 알파폴드에 활용됐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문득, 인공지능이 소설을 써야할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슈도인간으로 사람을 속이기 위한 서사가 필요할 때일까요? 혹은 소설을 통해, 소설의 영향력으로 사람을 조종하고 싶을 때일까요?

어쩜 인공지능이 쓴 소설의 작품성을 논하는건, 굳이 필요없는 일일지 모르겠습니다.

예전에 출간된 전 세계의 소설도, 올해 출간된 소설도, 앞으로 출간될 소설도 다 읽지 못하고 죽을 겁니다. 그러니, 굳이 ‘인공지능이 쓴 이 소설을 읽어보시오’라는 꼬리표를 달지 않는다면, 몇 만편을 써내든 읽히지 않을 가능성이 높을것 같아요.

전자책도서관에서 신작으로 검색하면, 특정작가와 출판사 이름으로 수십권의 책이 올라옵니다. 처음에는 관심을 가졌지만, 두세 권 읽은 후에 다시는 그와 유사한 책은 보지 않습니디.

* 그러니까, 돈이 되는 제약산업, 그 중에서도 어려운 단백질 합성 때문에 바둑계가 엄청난 타격을 입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이없는 공격의 실체라고 생각합니다.

** 그러니까, 경우의 수로, 엄청난 컴퓨팅 파워를 한 사람을 상대로한 불공정 게임이었다는 게 이세돌 9단과 알파고 대결이지 않을까 합니다. 알파고는 오로지 경우의 수로만 대결을 했는데, 여기에서 철학과 예술을 찾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즉, 딥마인드의 시커먼 속내에 속았다는게, 어쩜 이 대국에서 알파고가 승리했을 경우에 천문학적인 투자금이 걸려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으로는 구글이나 딥마인드에서 천문학적 상금을 내건다면 절대로 응하지 않아야 하는 일일 겁니다. 경우의 수를 다 분석했을테니, 대결의 화제성 외에 실제 상금이 지불되는 일은 없겠지요. 누군지 모르겠지만, 이 대국를 마케팅한 사람은 천문학적인 액수의 보너스를 받지 않았을까 합니다.

*** 그러니까, 예술과 철학을 논하지만 승부는 오로지 ‘집수‘로만 판가름이 나기 때문입니다. 지금이라도 피겨스케이팅, 리듬체조와 같이 철학과 예술 점수를 반영해서 승부를 겨루는 게 어떨까요? 그랬더라면, 아니 지금부터라도 그렇게 한다면 바둑을 인공지능으로부터 지킬 수 있지 않을까요? (169, 170페이지에 짧게 언급됩니다만, ‘돌파구’는 아니라고 합니다.)

**** 그러니까, ‘경우의 수 연산‘에서 진 싸움을 ’창의력의 승부‘로 가지고 온 이 글의 가정 자체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 그러니까, 승부의 본질을 바꿔버리는 건, 다양한 곳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교과서 혹은 EBS로 공부하는 학생들과 (평생) 수억원을 들여 영유(영어유치원)에서부터 시작해 과외를 받거나 학원에 다니는 학생들의 승부가 공평한가요? 어릴 때부터 잘 먹고 좋은 코치에게 지도를 받은 운동선수와 수돗물로 배를 채우며 독학한 운동선수 간의 승부는 어떤가요? 만약 전성기의 손흥민 선수와 아버지 손웅정 감독이 시합에서 만난다면 어땠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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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는 <뉴욕 타임즈> 등 세계 유수 언론의 기사로 학습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뉴욕 타임즈»가 오픈AI에 소송을 걸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당연히 훈련받지 않은 블로거들의 글보다, 글쓰기를 업으로 삼은 사람들의 글로 학습한 챗GPT의 글이 매끄럽게 읽힐 것 같습니다. 다들 알고 있듯이, 사실은 확인해야한다는 것, 자료의 출처를 요청하면 답하는 인용하는 문구나 도서, 링크 등은 임의로 만들어 내서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챗GPT는 시를 제법 썼고, 에세이도 무난하게 썼다. IT 잡지 «컴퓨터 월드«의 칼럼니스트 마이크 앨건은 "챗GOT는 현존하는 블로거의 99퍼센트보다 뛰어난 작가"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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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래 문장은 그다지 공감이 되진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추천한 작품 중에도 읽지 못한 책이 많은데, ‘인공지능 평론가’가 추천한 책을 못 읽는다고 슬프거나 큰 일이 일어나진 않을 것 같아요.

2. 듀나, 배명훈, 구병모 작가의 생각이 여전히 변함이 없는지 확인했더라면 어땠을까 합니다. 장강명 작가가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더 많았으니까요. 그러니까 통찰력에 관한 문제라고 해도, 다른 세 작가는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장겅명작가는 정보가 더 많은 상태에서 (물론 열심히 취재하고 써 내려간 결과이겠지만) 내리는 결론이니 공평하진 않습니다.

아니 한 편인데 2만 8800권 분량의 거대한 대하소설을 써낸다면? 인공지능 평론가들이 바로 그 작품이야말로 궁극의 소설이라며 감탄하는데 나는 그걸 이해하기는 커녕 살아서 다 읽어낼 수조차 없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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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발 하라리가 «넥서스»에서 이야기 했던 것이나,
아마도 장강명 작가가 이 책에서 하려는 말이나 같은 맥락이지 않을까 합니다.
(장강명 작가의 책은 아직 안 읽었습니다만.)

아직은 우리가 할 수 있는 몫이 있고,
그것으로 AI와 AI를 소유할 주체들에게 너무 많은 권한을 주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우리들에겐 우리가 지켜갈 수 있는 영역을 쉽게 포기하지 않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한 게 아닌가 합니다.

AI가 많은 것을 할 수 있지만 거기에 모든 것을 넘기지 않아야 합니다.

나중이 아니라 지금부터 챙겨야 합니다.
빅테크가 몰고 온 부정적인 영향에는 뒤늦게 알아차리고 대응하고 있지만, 이 경험으로 AI에 대해서는 보다 빠르고 강력하게 대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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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달 반 만에 다시 책을 펼칩니다.

주말동안 재밌는 콘텐츠만 섭렵했기 때문에,
공부하는 분량을 채우기 위해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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